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82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82화
* * *
소방관들의 방문은 꽤 오랜만이다.
서준은 손님들 중에서도 소방관들을 특히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단체로 온다. 그만큼 매상도 많이 나오는 편이고.
물론 서준은 언제라도 레이드를 통해 큰돈을 벌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노동의 대가가 아니다.
땀 흘려 돈을 번다는 이 기분.
그건 서준이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또렷하게 자각하는 데에 한몫을 하고 있었다.
‘누구지?’
소방관들 틈에 못 보던 얼굴이 보였다.
나이는…… 20대 초반?
겉모습만 봐서는 대학생 같은데 새로 들어온 분인가?
아니면 다른 지역 소방관?
궁금해하고 있을 때 박준식이 가게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청년의 어깨를 둘렀다.
“여기는 이민호라는 친구입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분도 소방관이신가요?”
“아, 이 친구는 군인요.”
“군인이요?”
“네. 공용 던전에서 경계 근무 서던 녀석인데 제가 구했죠. 아니, 구하려고 했었죠.”
“아…… 이번에 화재가 났다는 곳 말씀이시군요.”
“알고 계시네요?”
서준은 TV를 가리켰다.
“하루 종일 떠들더군요.”
“아…… 아무튼 다른 분들은 다 대기실에 계셔서 한번에 구조할 수 있었는데 이 녀석만 안쪽에 있지 뭡니까. 상당히 애먹었다니까요.”
이민호가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던전 안에서 용돈 벌이 하다가 그만…….”
“용돈 벌이요?”
“네. 잘 찾아보면 질 좋은 삼이나 약초 같은 게 나오기도 하거든요.”
“나중에 복학하면 부모님 손 안 벌리고 자기가 등록금 내겠답시고 그랬다지 뭡니까? 겁도 없이.”
박준식이 이민호의 머리를 한 대 콩 쥐어박았다.
“이놈 때문에 저까지 죽을 뻔했습니다.”
앵커가 말하던 A(37) 소방관이 박준식이었군.
“……그래서 가시라고 했는데.”
“혼자라도 나가라던 놈이 표정은 울상이더라?”
“…….”
“아무튼 이 녀석이 오늘 한잔 사겠다네요. 목숨 구해 준 값으로다가. 마다할 저희가 아니죠.”
그렇게 말한 박준식은 이민호가 한눈판 사이 카드를 쓱 내밀며 말했다.
“이따 이걸로 계산해 주세요.”
서준은 피식 웃으며 카드를 받았다. 확실히 박준식은 좋은 사람이다.
‘얻어먹어도 될 텐데.’
이민호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서준 본인이라도 대접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목숨을 구해 준 생명의 은인 아닌가?
박준식도 그 마음을 모르진 않을 터.
그런데도 미리 카드를 내민다. 공무원법에 걸릴 걸 우려한다기보다 이민호의 주머니 사정을 우려하는 것일 터였다.
알게 된 지는 얼마 안 됐지만 서준이 아는 박준식은 그런 사람이었다.
“자, 그럼 오늘은 요구조자한테 실컷 얻어먹어 볼까나? 사장님, 술부터 부탁드리겠습니다! 궤짝으로다가!”
이민호와 소방관들이 늘 앉는 테이블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서빙 담당인 연준이 기본 안주와 술을 내어다 줬다. 소방관들이 시킨 메뉴는 고추장 삼겹살과 아루트스 프라이.
치이이이익!
먼저 삼겹살부터 굽고 아루트스 프라이를 만들었다.
접시에 예쁘게 담은 음식들을 연준이 소방관들의 테이블로 가져간다.
손님도 소방관들밖에 없었다. 서준은 턱을 괴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와…… 비주얼 장난 없는데요?”
“말했잖아.”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먹으면 더 놀랄걸?”
삼겹살을 한 점 집어 입에 넣은 이민호가 두 눈을 화등잔만 하게 치켜떴다.
“맛있어요!”
“딱 봐도 맛있게 생겼잖아?”
“대박!”
마수걸이가 좋아서였을까.
손님들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가게가 비교적 한산해진 것은 자정이 넘어서였다. 그때까지도 소방관들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물론 얼큰하게 취한 채였지만.
딸꾹!
“현님.”
혀가 꼬인 이민호는 어느새 박준식을 형님이라 부르고 있었다.
고개를 떨군 채 졸고 있던 박준식이 퍼뜩 고개를 들어 올리며 침을 닦았다.
박준식 역시 혀가 꼬인 건 매한가지였다.
“어? 나 안 조랐어.”
“……감사함돠.”
“응?”
탕탕!
이민호가 제 가슴을 두들기며 말했다.
“저도 저녁카면…… 소방가니 될랍니다!”
“그래, 그럼 내 미트로 와라. 내가 맨날 갈거 줄게.”
그 말에 엎드려 졸고 있던 구정석이 고개를 비스듬히 돌린 채 말했다.
“소방관 아무나 모탄다…….”
“아무나 모타니까! 에? 모타니까 할라는 거예요…… 암후나 모타니까…….”
그 말을 끝으로 이민호는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 * *
할짝할짝!
뭔가가 혀로 뺨을 핥고 있다. 잠결에도 어떻게 혀인 줄 아냐면.
‘혀니까…….’
혀는 매우 축축했다. 수분을 한가득 머금고 있었다. 특이한 건 혓바닥에 나 있는 돌기였다.
‘아프진 않아.’
돌기가 느껴지긴 했지만 아프진 않고 간지러웠다.
‘잠깐…… 혓바닥?’
박준식은 문득 든 생각에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두통이 엄습한다.
“으으…….”
캉캉!
익숙한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역삼이?”
캉캉캉!
“네가 왜……?”
꿈인 건가?
아니면 뭐지?
그 순간 역삼이가 젤리 같은 발바닥으로 그의 팔을 꾹꾹 눌렀다. 마치 얼른 일어나라는 듯이.
“알았어, 알았어.”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을 참고 일어난 뒤에야 준식은 그 옆에 누군가가 함께 누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다.
풍체를 보아 집사람은 아니다.
그럼 누구지?
여긴 어디고 이 사람은 누구지?
‘설마…….’
불현듯 치미는 불온한 생각에 준식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술김에라도 나쁜 짓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술이 왕창 취해도 그런 짓을 할 위인이 못된다. 그런데 이 현장은…….
‘박준식 너 설마!’
제발 아니길…….
기도와 함께 준식은 조심스럽게 이불을 들췄다. 살며시, 상대가 깨지 않게 조심히.
그때!
“깨셨네요?”
“흐억!”
“괜찮으세요?”
박준식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장님?”
“네.”
“사장님이 왜 여기에 계십니까?”
“기억 안 나세요?”
“기억…… 안 나는데요.”
“가게입니다.”
“아?”
박준식이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이불을 들췄다.
“흠냐…… 음냐, 마왕…… 네가 어째서 진정한 여신과…… 안 돼! 안 된다…… 으으아!”
준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꼬대가 심하시네요.”
“오늘은 그나마 좀 덜한 편이네요.”
“그나저나 어제 제가 대체 얼마나 마신 겁니까?”
“일곱 분이 오셔서 혼자서만 열 병은 넘게 마시셨어요.”
“아, 열 병…… 젊은 친구랑 같이 마시다 보니 저도 모르게 페이스 조절을 못했나 보네요. 필름이 끊겨서 기억이 안 나는데 혹시 실수 같은 건…….”
“얌전히 잠만 주무셨습니다.”
“아…… 다행이네요.”
캉캉!
다행히 민폐는 끼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준식은 문득 역삼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어제 던전에서는 경황이 없어서 인지를 못 했는데 역삼이가 짖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역삼이로 추정되는 생명체의 입에서 불이 나왔고 그 불을 맞은 리자드맨이 고통에 몸부림치기도 했고.
‘그리고…….’
생각을 이어 나가던 준식은 피식 웃고 말았다.
‘제대로 개꿈을 꿨네.’
그때였다.
드르르르!
휴대전화가 미친 듯 울었다. 액정을 들여다 보니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에, 카톡도 수십 개가 와 있었다.
모골이 송연해졌다.
“……사장님, 지금 혹시 몇 신가요?”
“열 시입니다만.”
그러자 하얗게 질린 준식이 헐레벌떡 가게를 나섰다.
“아차, 사장님, 실례 많았습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서.
그 뒷모습을 보며 서준은 난감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카드 갖고 가셔야 되는데.’
* * *
저 멀리 남산에서 귀뚜라미 울음 소리가 들린다. 철써기 우는 소리도 들렸다.
여름이 끝나 간다는 뜻이다. 이제는 한낮에도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가게 문을 열었다. 산들바람이 머리를 훑고 지나갔다.
이제는 점점 옅어지는 녹음(綠陰)을 음미하던 서준은 창문을 열고서 주방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견우와 직녀가 일 년에 한 번 만난다는 칠석.
보통 사람들은 칠석에 딱히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하지만 서준은 달랐다.
초복하면 삼계탕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처럼 서준은 칠석하면 김밥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이었다.
그가 서우만 하던 시절, 서준은 엄마에게 달력에 적힌 칠석이 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그의 엄마는 견우와 직녀 일화를 들려주며 김밥을 해 주셨었다.
그 기억 덕인지 서준은 칠석날만 되면 김밥이 생각났다. 그래서 오늘은 김밥을 해 볼 생각이었다.
김밥은 간단하고 간편한 음식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만들기는 만만치 않은 음식이었다.
속 재료들만 해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재료들을 하나하나 손질하는 것도 일이었다.
단무지와 햄, 맛살, 어묵은 따로 다듬을 필요가 없지만 지단과 당근, 오이 같은 것들은 하나하나 손질하거나 만들어야만 했다.
물론 요즘은 그런 귀찮은 과정 없이 밀키트로 된 제품들이 나와서 뚝딱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사 먹는 김밥과 다를 바가 없다. 서준은 사 먹는 김밥이 아닌, 가정식 김밥을 먹고 싶었다.
김밥은 집집마다 레시피가 달랐다. 어느 집은 시금치를 넣고, 또 어느 집은 깻잎을 넣고 또 어느 집은 우엉을 넣는다.
심지어 멸치를 넣는 집도 있다.
서준은 깻잎과 우엉 대신 시금치를 넣을 생각이다.
딱히 이유는 없다. 어린 시절 엄마가 그렇게 만들어 줬었던 기억, 그거 하나 때문이었다.
서준은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더듬 되짚었다.
-왜 계란부터 부치는 거예요?
-그건 서준이가 크면 말해 줄게.
기억이 떠올라 서준은 피식 웃었다. 지금 생각하면 지단부터 부치든 당근부터 볶든 상관이 없었다.
그냥 장난을 치신 것이다.
서준은 엄마가 한 대로 지단부터 만들었다.
‘그다음은 당근이었지.’
당근을 곱게 채 썰어서 소금을 넣고 볶아 준다.
-소금은 조금만 넣어야 돼.
-왜요?
-많이 넣으면 짜잖아.
피식.
엄마는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말씀을 하셨었다.
어린 아들에게 소금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려 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서준은 생각했다.
-이것들은 이제 빼서 식혀 줄 거야.
서준은 엄마의 말에 따라 당근과 지단을 따로 빼 뒀다.
-나는 오이 싫은데…….
-엄마가 오이 맛있게 먹는 방법 알려 줄까?
-네!
-오이는 안에 씨를 빼야 돼. 그리고 단촛물에 살짝 담가서 절여 줘.
어린 시절의 서준은 단촛물이니 절인다느니 하는 뜻이 뭔지 몰랐다. 그냥 엄마랑 김밥을 만드는 게 좋았던 기억만 있다.
-아, 가장 중요한 밥을 깜빡했네?
-김밥에는 밥이 들어가야 돼.
-그렇지. 김밥에는 밥이 들어가야지. 서준이가 여기 밥에 소금이랑 참기름 넣어 볼래?
-네!
준비된 밥과 당근, 지단을 식히며 시금치를 준비한다. 손질한 시금치는 살짝만 데친다.
-그럼 이제 다 된 거야.
-이건 김밥이 아니잖아요?
-이제 만들어야지.
-어떻게요?
-김을 여기 김발에 놓고 아까 서준이가 만든 밥을 김 위에 올려 줘. 그리고 넓게 펴는 거야.
서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밥을 너무 많이 올렸나?
‘뭐, 상관없겠지.’
팔 것도 아니니까.
-이제 고르고 넓게 펴 준 밥에 재료들을 하나씩 올리는 거야. 단무지, 햄, 지단, 오이, 시금치, 그리고 맛살.
-다 했어요!
-그럼 이제 말아 볼까? 안쪽부터 꾹꾹 누르면서.
서준은 엄마의 말을 따라 안쪽부터 꾹꾹 누르며 김밥을 말았다. 처음치고는 모양이 제법 괜찮게 나온 것 같았다.
그렇게 서준은 몇 개의 김밥을 더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