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126
“나도 사람이니까.”
단형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종칠을 쳐다봤다. 어느새 입가에는 알 듯 말 듯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해결책이 없는 건 아니다.”
단형우의 말에 종칠의 눈이 커졌다. 아니, 그 말보다 단형우가 자신을 보며 웃고 있어서 더 놀랐다. 하지만 이내 단형우가 한 말을 떠올리며 다시 놀랐다.
“저, 정말입니까?”
“죽을 수도 있다.”
단형우의 말에 종칠이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나라면 했겠지.”
단형우는 그렇게 말하며 검을 뽑았다.
종칠은 크게 당황했다. 지금 단형우는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뭔가를 하려고 한다.
만일 실패하면 자신의 목숨은 사라지는 것이다. 단형우의 표정을 보니 여전히 미소가 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절대 검을 다시 거둘 것 같지는 않았다.
“죽기 싫으면 움직여라.”
단형우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종칠의 몸이 움직였다. 의식보다 본능이 먼저 경고를 했다. 즉시 보법을 펼쳤다.
번쩍!
밤하늘에서 벼락 한 줄기가 떨어졌다. 정확히 종칠이 방금 전까지 있던 자리에.
콰광!
종칠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단형우는 정말로 자신을 죽일 생각이다. 그 생각과 동시에 종칠의 몸이 또 움직였다.
번쩍!
콰광!
이젠 종칠의 온몸이 식은땀으로 푹 젖어 버렸다. 죽음의 위기를 두 번이나 용케 넘겼다. 하지만 그것도 이젠 끝인 듯했다. 움직임이 멎은 순간 단형우의 검이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 그동안 했던 수련이 빛을 발했다. 예전 같았으면 벌써 몸이 굳었을 텐데, 지금은 저절로 발이 움직였다.
번쩍!
치직!
벼락이 옷깃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번에는 정신이 아찔했다. 옷깃만 스쳤는데 상의가 모조리 재로 변했다. 저런 것을 몸에 스치기라도 하면 정말로 끝장이었다.
종칠이 다급하게 단형우를 쳐다봤다. 정말 놀랍게도 단형우의 표정이나 자세는 처음과 똑같았다. 그리고 단형우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단대협이라면 했겠지만, 전 종칠이라고요!’
종칠은 속으로 그렇게 외치며 발걸음을 옮겼다.
번쩍!
또 다시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헉헉……”
종칠이 숨을 몰아쉬었다. 천뢰가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단형우는 그런 종칠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이젠 진짜로 죽여주지. 하지만 죽지 마라.”
단형우의 눈이 빛났다. 그리고 온몸에서 살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살기가 어찌나 지독했는지 종칠의 몸이 그대로 굳이 전혀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종칠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단형우는 진짜로 자신을 죽일 생각이었다. 머릿속에 그동안 살아왔던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종칠이 이를 악물었다. 단형우의 살기를 어떻게든 이겨내야 했다. 단형우가 자신을 죽이려는 것은 진심이지만, 또한 자신이 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분명히 진심이었다.
“흐압!”
종칠이 기합을 내지르며 단형우의 살기를 밀어냈다. 모기눈물 만큼이지만 분명히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단형우의 검이 아래로 떨어졌다.
번쩍!
꽈르릉!
어마어마한 벼락이 떨어졌다. 지금까지 떨어뜨렸던 그 어떤 천뢰보다 거대했고, 강력했다.
콰과과광!
바닥이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다.
단형우는 부서진 바닥을 보며 빙긋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어느새 원래 자리에서 삼장이나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종칠을 쳐다봤다.
단형우가 검을 집어넣은 후, 돌아섰다. 그리고 한 걸음을 걷는 순간, 그대로 몸이 사라졌다.
종칠은 단형우가 사라진 자리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자신의 보법이 극에 이르면 저렇게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큭큭큭큭.”
종칠의 입에서 웃음이 새나왔다. 주체할 수 없는 희열이 온 몸에 가득했다. 그리고 그 희열이 밖으로 터져 나왔다.
“으하하하하하핫!”
종칠의 웃음이 밤하늘 가득 울려 퍼졌다.
다음 날, 종칠은 여유 가득한 표정으로 연무장에서 검왕과 검마를 기다렸다.
어젯밤 터득한 그 보법은 정말로 대단했다. 어찌나 대단했는지 밤새 수련을 했는데도 제대로 제어할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이 왜 제대로 된 보법을 익히지 못했는지 몸으로 깨달았다.
죽음으로 극한 상황에서 벽을 넘어섰기 가능한 일이었다. 그동안 죽을 정도로 괴롭힘을 당하며 수련했지만 진짜 죽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검왕과 검마가 자신을 죽이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고 생각해도 이미 몸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진짜 죽을 정도의 위협은 느끼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어제 단형우는 전혀 달랐다. 진짜로 죽이려 했다. 만일 종칠이 벽을 넘지 못했다면 분명히 죽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죽었더라도 종칠은 절대 단형우를 원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암, 그래야지. 내게는 은인 아닌가.’
종칠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한 걸음 움직였다.
스윽.
별다른 파공성도 없이 연무장 벽에 도달했다. 한 걸음을 더 걷자, 어느새 반대편 벽에 있었다.
단형우처럼 사라졌다 나타난 것은 아니었지만 정말로 그 누구도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른 것은 분명했다.
“이 정도면 도망갈 수 있겠지?”
종칠의 온몸에서 자신감이 쏟아져 나왔다.
잠시 후, 낙뢰대가 연무장에 들어섰다. 그들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잠시 종칠을 쳐다봤다. 종칠이 이렇게 일찍 연무장에 나오는 일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와 비슷한 표정으로, 검왕과 검마에게 질질 끌려 나오는 것이 보통인데 오늘은 자발적으로 나와 있으니 신기한 일인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눈빛도 잠시, 낙뢰대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구경하는 사람이 지루해 미칠 지경이 되게 만드는 반복수련을 시작했다.
종칠은 그 모습을 보며 빙긋 웃었다. 이제는 낙뢰대가 전혀 부럽지 않았다. 보법의 벽을 넘어섰으니 이제 천뢰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단형우가 도와줘야겠지만, 어쩌면 혼자서도 익힐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아직은 아니지.”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새로 익힌 보법을 수련하는 것만도 벅찼다. 너무나 대단한 보법이었다.
어쩌면 팽생 수련을 해도 제대로 펼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절대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목숨을 주고 얻은 보법이니까.
“이놈이 뭐가 좋아서 실실 웃어?”
빠악!
종칠은 갑작스런 격통에 뒤통수를 감싸쥐며 주저앉았다.
“크으윽……”
평소 거의 비명을 지르지 않을 정도로 독해졌는데 이건 자신도 모르게 신음이 흘러나올 정도로 아팠다. 불길이 이는 눈으로 뒤돌아보니 역시나 검왕이었다.
“어라? 이놈 눈빛 보게나? 잘하면 한 대 치겠네?”
종칠은 슬며시 눈길을 돌렸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조금 더 보법에 익숙해져야 했다.
현재 종칠의 수준으로는 짧은 거리를 자주 끊어서 이동할 수 밖에 없는데 검왕이나 검마 정도 되는 고수가 그런 틈을 내버려둘 리 없지 않은가. 검왕과 검마는 십대고수다.
“헤헤, 수련이나 시작하죠?”
종칠의 말에 검왕이 못 먹을 걸 먹은 표정으로 쳐다봤다.
“이놈이 뭘 잘못 먹었나? 오늘따라 왜 이래?”
“그냥 앞으로 열심히 해보려고요. 왜? 안 되나요? 그냥 평소처럼 갈까요?”
“이놈이?”
빠악!
“크으윽……”
종칠이 다시 뒤통수를 감싸쥐며 신음을 흘렸다. 조금 전에 맞은 것보다 훨씬 더 아팠다.
어떻게 하면 더 아프게 때릴 수 있을까 밤새 연구한 것이 틀림없었다.
‘젠장, 두고 보자.”
종칠은 그렇게 속으로 투덜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검왕에게 두들겨 맞는 동안 검마가 도착했다.
종칠의 처절한 수련이 다시 시작되었다.
혈영과 사영
혈영은 허리춤에 있는 검을 조용히 쓰다듬었다. 지금 혈영이 서 있는 곳은 혈마자의 거처 중 하나인 화영루였다.
동정호 근처에 있는 기루로, 크고 화려하기로 유명한 곳 중 하나였다.
월영으로부터 들은 혈영검의 각성법이 옳다면 지금 그것을 가능케 할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그리고 그 한 명은 이용하기 위해서는 나중에 사영의 힘이 반드시 필요했다.
“과연 회주께서 허락을 해주실지 모르겠군.”
혈영은 그렇게 중얼거리긴 했지만 혈마자도 분명 허락해 줄거라 믿었다.
비록 조금 늦긴 했지만 혈영검의 힘이 있으면 마인들의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혹 마인들의 힘을 얻지 모하더라도 마인들을 이용해 세상에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금마공에서 벗어난 마인들이 무슨 짓을 저지를 지는 불을 보듯 훤한 일 아닌가.
혈영이 화영루로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아름다운 여인들이 그를 맞이했다. 화영루의 기녀들은 하나같이 아름답기로 유명했다.
혈영은 그런 기녀들의 안내르를 받으며 기루의 가장 위층으로 올라갔다. 혈영은 화영루의 가장 중요한 손님 중 하나였다. 화영루 주인이 바로 혈마자의 그림자 중 하나인 화영(花影)이었으니까.
화영루 최상층은 혈마자의 거처였다. 평소 혈마자가 이곳에 없을 때는 항상 비워 두는 방이었다.
그곳에 도착한 혈영은 인자한 미소로 그를 반견주는 혈마자를 볼 수 있었다.
“회주를 뵙습니다.”
혈영이 존경을 가득 담아 허리를 깊이 숙였다. 혈영이 유일하게 존경하는 인물이 바로 혈마자였다.
“그래, 월영은 어떻던가?”
“여전합니다.”
혈영은 그렇게 대답한 후, 월영과 있었던 일들을 보고했다. 혈마자는 혈영이 보고를 흥미로운 눈으로 끝까지 들었다.
“재미있군. 혈영검에 그런 비밀이 숨겨져 있다니, 그나저나 월영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다고 하던가?”
“천기진해에 담겨 있는 내용이라 했습니다.”
혈마자의 눈이 빛났다.
“월영이 천기진해를 얼마나 파악한 것 같던가?”
“그건 저도 아직 모르겠습니다. 월영 자체가 워낙 파악하기 어려운 사람이라서…….”
혈마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겠지. 월영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녀석이지.”
십 년 전부터 월영을 키워왔다. 그때가 월영이 고작 열 살 때였다.
본래는 천기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물려줄 전인으로 점찍어 둔 아이였는데, 그것을 혈마자가 가로챈 것이다.
“혈영검이라……”
혈마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천기진해는 혈마자조차 그 진정한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책이었다.
원본은 혈마자가 가지고 있었으니, 책 자체에 뭔가 술수를 부린 것은 절대 아니었다. 내용 자체에 뭔가 비밀이 있다는 뜻인데, 그것을 혈마자는 알아내지 못했고 월영은 알아냈다.
‘천마자가 뒤를 맡길 만하군.’
“그래, 어떻게 할 생각인가?”
혈마자는 생각을 접고 혈영에게 물었다. 혈영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 천기자가 마지막으로 나긴 무공을 알고 계십니까?”
혈영의 질문에 혈마자가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를 만들었다.
“이미 알고 있는 일 아니었나?”
혈마자의 말에 혈영의 눈이 살짝 커졌다. 천기자의 마지막 무공을 알고 있다는 것은 분명놀랄 만한 일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렇게 크게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혈마자가 혈마대에게 전재 준 무공은 천기자의 마지막 무공을 겨냥해서 만든 것이다. 즉, 혈마자는 예전부터 천기자의 마지막 무공과 그것을 익히고 나타날 사람들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것을 익히고 싶은 겐가?”
혈마자의 질문에 혈영은 입을 다물었다. 물론 알고 싶기는 했다. 최근 십대고수들을 연파한 단형가 익힌 무공 아닌가. 하지만 그것을 익힐 생각은 없었다.
“그저 알고 싶을 뿐입니다. 어떤 무공인지. 제가 익힌 무공이 훨씬 훌륭하다는 것쯤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혈영의 대답에 혈마자가 빙긋 웃었다.
“원한다면 알려줄 수도 있네.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그것을 익히겠다면 말리겠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필요할 걸세.”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혈영이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천기자의 정수가 담긴 마지막 무공을 쉽게 익힐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혈마자는 그런 혈영을 보며 품에서 얇은 책자 하나를 꺼냈다.
“보고 태워버리게.”
혈영은 그 책자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였다. 표지에는 선명한 금박으로 ‘삼재공(三才功)’이라 적혀 있었다. 혈영은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책자를 품에 넣었다.
‘한데 회주께서 왜 이걸 가지고 계신 걸까?’
사실 혈마자가 천기자의 무공을 갖지고 있어야 상식적으로 맞긴 하다. 그래야 그것을 능가하는 무공을 만들어 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얻었는지는 도저히 추측할 수가 없었다.
천기자도 보통 인물이 아니다. 자신이 창안한 무공을 그렇게 함부로 굴릴 리가 없다. 이렇게 책자로 남겼다면 훨씬 더 소중히 보관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