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39
중국 시장이 할리우드에 미치는 영향력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미국의 영화 시장을 정리한 자료들만 보더라도, 중국 내에서만 판매된 박스오피스 규모가 북미 전체 판매량을 추월한 지 오래임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현재의 중국 영화 시장은 세계 최대의 규모라 평가받아도 부족하지 않을 지표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니, 이를 겨냥한 작품들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
합작도 많아졌다.
심지어는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서 중국 당국의 검열을 대비해 할리우드에서 자체 검열을 한다는 소리까지 심심찮게 나오고 있었고.
아시아 3대 문화 강국인 한국·중국·일본이 세계 무대에서 각각 다른 분야로써 두각을 나타내는 모습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한국은 일명 ‘한류’라 불리는 문화적 현상으로 세계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K-Pop이나 드라마 위주로 광풍이 부는 경향이 있었고.
일본이 압도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쪽은 단연 만화책·애니메이션 영역.
그 말인즉슨….
아직 영화 쪽, 즉 할리우드 내에서의 영향력은 3국 중 중국이 압도적이란 의미였다.
현재까지 할리우드에 진출한 배우들의 분포도만 보더라도 중국계 배우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고.
이러한 배경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덧붙인 미쉘이 촬영 현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얘기했다.
“저도 그렇고, 캐스팅에 조금이라도 관련이 된 스태프들 전부 Ellen Kim 역에는 우진 배우가 딱이라고 봤었어요. 배역 설정 자체가 한국계 미국인이었잖아요. 불발돼서 아쉽지만….”
“…네.”
“아, 불편하게 하려고 한 말 아니에요! 오해 말아요.”
“알아요. 불편하지 않습니다.”
“그럼 다행이에요. 어차피 1순위가 아니더라도, 차선으로 리스트업 해뒀던 배우 중에서 다시 고르면 되니까 거기까진 전혀 문제가 없었어요. 아무튼, 우리로서는 일정으로 보나 이미지로 보나 중국의 루오시안(羅賢)이라는 배우가 가장 베스트 초이스더군요. 제작사에서도 오케이했고, 배우 측에서도 배역 설정을 중국계 미국인으로 바꿔준다고 하니까 수락하더라고요. 배역 이름도 Ellen Jie, 이런 식으로 중국풍으로 바꿨고요.”
“잘 돼 가고 있었네!”
“맞아, 릴리. 여기까진 말이지….”
미쉘의 눈썹이 ‘부르르-’ 떨렸다.
‘깊은 빡침’이 서린 눈빛이었다.
“후, 일단 결론만 알려주자면… 현재 제작이 중단된 상태야.”
“네?!”
“헐, 갑자기?”
우진과 릴리의 눈이 동시에 휘둥그레졌다.
미쉘은 연신 크래커를 집어 ‘아그작-’ 씹어댔다.
‘루오시안….’
‘차이나….’
중얼중얼하는 것은 덤이었다.
그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중국 배우가 에릭 감독의 영화에 주연으로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중국 자본이 어마어마하게 붙었었거든요. 갑자기 제작비가 3배 이상으로 커졌어요. 우리는 완전히 땡큐였지!”
“그러면, 셋업을 다시 했겠네요?”
“맞아요. 프리 프로덕션 때 준비했었던 규모보다 더 크게 가기로 했어요. 예산 때문에 빼기로 했던 씬들도 수정되고, 콘티도 추가되고.”
“제작진도 늘어났겠네.”
“그렇지! 그렇게 했는데도 돈이 넉넉하게 남으니까 아예 C팀까지 돌리기로 했다니까? 팀 꾸리자마자 계약서도 바로바로 썼어!”
아이고….
여기까지만 들었는데도,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예상이 됐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나♪’
한줄기 노랫말이 뇌리를 스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크랭크인 들어갔는데, 와… 릴리, 우진! 나는 무슨 영화 촬영이 아니라 광고 촬영인 줄 알았다니까요?”
미쉘은 그런 와중에도 테이블을 아주 소심하게 살짝 내리쳤다.
썰을 풀다 보니 자연스레 분노가 몰려오지만, 이성의 끈은 단단히 붙잡고 있는 모습.
그녀는 역시, 프로였다.
“촬영장에 중국 쪽 투자사 담당자가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서 이것저것 관여하기 시작하는데, 미치고 팔짝 뛰겠더라고요.”
갑질 오브 갑질이었다고 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A, B캠에서 각 인물들을 잡고 C캠이 전체 풀샷이나 부감 샷을 조율한다고 하면… 난데없이 C캠을 루오시안의 바스트로 붙이길 요구하는 것은 기본. (정면과 오른쪽, 왼쪽 얼굴이 다 나오도록)
콘티 상으로 Ellen의 숄더 샷을 걸어야 하는 앵글까지 전부 루오시안의 얼굴에 초점을 맞춰라.
기타 등등.
말도 안 되는 요구투성이였다고 했다.
아무리 콘티와 시나리오를 보여주면서 설득을 시도해도, 도통 먹히지 않더란다.
감독을 포함해 전체 스태프의 역할에 대해 월권을 행사하려 드니, 에릭 감독이 참다 참다 터졌다고.
‘자꾸 이러시면, 차라리 루오시안의 캐스팅을 바꾸거나 역할을 축소할 수도 있다.’
갑질엔 갑질로 상대해주겠다.
그래도 할리우드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거물급 감독인데, 별일 있겠어?
그때까지만 해도, 에릭은 물론 미쉘 본인도 투자사 측에서 깨갱할 줄 알았단다.
그런데…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려는 조짐이 다음 날부터 곧바로 나타났다고.
“…콜타임이 훨씬 넘었는데도, 배우가 안 나타나는 거 있지?”
“와… 배째라?”
“할리우드에서?”
“완전 눈 뜨고 코 베인 꼴이었다니까. 내가 캐스팅디렉터 짬밥만 10년이 다 돼가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었어.”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어떻게 되긴? 연락을 아무리 해도 안 받으니까 난리가 났지. 급한 대로 연출부에서 숙소까지 찾아갔었는데….”
“찾아갔는데?”
“…쌌다.”
“어?”
“싸다니?”
“짐을 이미 다 싼 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이럴 생각이었던 건지… 방을 뺐더라고. 텅 비어있더라?”
미쉘이 ‘피식-’ 웃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어안이 벙벙하기는 우진과 릴리도 마찬가지였다.
영화가 제작 중에 엎어지는 거야 다반사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할리우드라고 그렇지 않은 법 있겠는가.
일련의 문제로 제작 보류 상태로 남아 있는 작품들이 수두룩할 터.
그러나, 지분율이 가장 높은 투자사에서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배우를 전면에 내세워 촬영을 거부하는 것은 듣도 보도 못한 경우였다.
대륙의 클라스가….
우진도 너털웃음이 나오는 얘기였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더 골 때리는 얘기 해줄까요?”
“여기까지만 들어도 서프라이즈인데, 더 있다고요? 말도 안 돼.”
“말이… 되더라고요. 아까 제가 제작 중단이라 그랬잖아요.”
“네.”
“왜 그랬겠어요?”
아….
우진이 침음했다.
배우만 도망간 게 아니라,
“투자사가 아예 발을 뺐다는 얘기군요. 단순히 촬영 거부만 하는 게 아니라.”
“그렇습니다. 투자금 회수도 이미 끝났더라고요. 빛의 속도로.”
미쉘이 칵테일 잔을 비웠다.
그래도 갈증이 쉽게 가시지 않았는지, 추가로 주문한 칵테일도 단숨에 들이켰다.
“중국 측 투자금이 들어오는 조건으로, 제작부에 중국 측 인원을 더했어요. 물론 우리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을 한 건데, 얘네들 생각은 그게 아니었던 거지.”
“언제든 발을 쉽게 뺄 수 있는 장치였구나.”
“맞아, 릴리. 그랬던 거야. 아무도 몰랐어.”
첩첩산중이었다.
중국 측 자본이 들어오기 전의 제작비는 이미 스태프와 배우 임금 등의 직접적인 지출 영역에서 사용이 된 후였고.
나중에 들어온 중국 측 자본이 로케이션과 포스트 프로덕션 단계에서의 추가 지출 예산으로 잡혔던 터였다.
즉, 원래 제작비는 이미 사용이 완료된 상태고 중국 측이 투자한 제작비는 아직 미집행 상태였던 거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중국 투자사에서 자금을 빼버렸으니.
이미 규모가 커진 영화 촬영이 한 마디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해버린 거다.
엎질러져 버린 물.
깔끔하게 수습하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회수된 제작비만큼을 다시 투자해줄 투자처를 어디선가 끌어 와야 했다.
“시간도 없는데, 갑자기 기존 제작비의 2, 3배 되는 금액을 어디서 끌어오겠어? 그렇다고 다시 원래대로 규모를 줄이자니, 이미 지불한 임금이 문제고. 스태프들도 각자 일정이 있는데, 시간을 계속 끌 수도 없고.”
“감독님만 물먹었네.”
“그 감독님이 우리 UTA 소속이니까, 결국은 우리만 물 먹은 게 되어버렸지.”
“소송해야 하는 거 아니야?”
“법무팀에서 알아보고 있다는데… 솔직히 이기기 힘들다는 얘기가 있어.”
“왜요? 명백하게 중국 투자사에서 잘못한 거 아닌가요?”
“그게… 21세기에도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도 있더라고요.”
미쉘이 말끝을 흐렸다.
우진은 그 의미가 뭔지 충분히 알 것 같았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중국과의 소송은 난공불락의 과제이기도 하니까.
얼마나 승소하기가 어렵냐면은, 자사의 저작권을 손톱만큼이라도 침해한다면 절대 참지 않는 미국의 거대 미디어사인 ‘월스 디자인 컴퍼니’의 선례를 보면 알 수 있었다.
[만약 무인도에서 표류 중이라면, ‘월스 디자인 컴퍼니’의 캐릭터를 모래사장에 크게 그려라. 그러면, ‘월스 디자인 컴퍼니’에서 당신을 고소하기 위해 찾아와 구출해줄 것이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저작권 침해에 굉장히 민감한 세계적인 기업조차 자사의 자동차 애니메이션을 대놓고 표절한 중국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상대로 승소한 게 겨우 2017년이다.
지금으로부터 3년 뒤에나 있을 일이며, 저작권 침해를 중국 법원에서 인정한 것이 굉장히 이례적인 판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파급력이 큰 사건이었다.
그만큼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얘기다.
당연히 손해배상 소송을 논하고 있지만, UTA 측에서도 승소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을뿐더러.
어차피 시간이 지체될수록 손해 보는 것은 UTA라서, 그야말로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황이라고.
“다른 감독도 아니고 무려 에릭 크리스토퍼 혼이라고요. 은 내년 라인업 중에서 가장 기대작으로 손꼽히는 작품 중 하나였고, 우리 UTA에서 전적으로 도맡은 작품입니다. 그런 감독과 작품조차 물을 먹은 거예요. 할리우드에는 지금 쇼크 웨이브가 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그렇다고 앉아서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순 또 없는 법.
영화 제작진은 일단 추후의 상황을 지켜보자는 약속을 남기고 흩어졌다고 한다.
언제든, 촬영 재개만 된다면 의리를 지키겠다고 했다.
에릭 감독의 성품과 인성이 좋다는 풍문이 여기서 사실로 입증되는구나.
우진과 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쉘이 말을 덧붙였다.
“간단하게 줄여서 이 정도지, 두 사람한테 말 못 한 것들도 많아요. 정말 오프 더 레코드 직전까지인 얘기들만 한 거야.”
“본의 아니게 아픈 곳을 찔렀네요. 미안해요, 미쉘.”
“아니에요. 원래 우진이 참여할 수 있었던 영화기도 하니까, 궁금한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잘 물어봤어요. 나도 오늘 우진을 만난다면, 이 얘기를 꼭 하고 싶기도 했고요.”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마워요.”
“자, 마십시다. 아까부터 우리 둘이 얘기 듣느라 바빠서 미쉘이 혼자서만 마시더라고요. 이번에는 같이 마시자고요!”
“건배!”
– 짠.
잔을 부딪쳤다.
미쉘은 한층 홀가분해 보였다.
이 엎어지고 나서 미쉘은 멘탈을 가다듬기 위해 집으로 돌아온 것이라 했다.
한동안은 영국에 머물면서 웨스트엔드 공연을 마음껏 즐길 것이라 했다.
우연히 ‘나’도 이 시기에 와서 공연을 치르고 있으니, 한 번 엮인 인연의 고리란… 어딜 가나 쉽게 풀리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너무나도 좋았다.
지금의 이 만남이.
“…음, 우진에게 한 가지만 더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네, 말씀하세요.”
“사실 민감하게 들릴 수도 있어서 할까, 말까를 계속 고민했었는데요. 우진은 내 말을 꼬아서 들을 사람도 아니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줄 것 같아서요.”
“그럼요. 불편하게 듣지 않습니다. 미쉘이 그럴 사람이 아닌 것도 잘 알고요.”
“고마워요. 아무튼, 아까 얘기의 연장선인데… 우진에게만 슬쩍 알려주고 싶어요. 이건, 어찌 보면 오프 더 레코드일지도?”
미쉘의 말에, 우진과 릴리가 동시에 마른침을 삼켰다.
또 다른 흥미로운 얘기가 시작되려는 찰나였다.
미쉘이 말을 이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평균적으로 일본 배우들은 연기력이 가장 안 된다고 봤어요. 중국도 이번 경우처럼 자본에 따른 해프닝이 워낙 대두돼서 그렇지, 연기력도 사실 고만고만한 것 같고요.”
중국은 표준어 외에도 지방 언어가 굉장히 많은 까닭에, 배우들의 대사를 각 지방 사투리에 맞게 새로이 녹음해서 송출한다.
중국어 드라마나 영화가 중국 내에서 더빙이 돼서 나간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바스트샷이나 개인 샷을 딸 때 꽤나 심심찮게 보이는 편이 많다.
표정으로만 연기하고, 대사 처리는 대충하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는 얘기다.
한국 배우들이 연기를 더 잘한다고 느끼는 것이 괜한 소리가 아니라는 의미다
“그래서 한국 배우들의 가치가 좀 올라갔다고 해야 할까요? 연기력도 좋고, 이번 사건처럼 자본으로 물 먹이는 일도 없을 것 같고 말이죠. 민감하게 들릴지도 모른다고 서두에 얘기했던 게 바로 이 부분입니다. 한국 배우들이나 투자사들을 대하는 게 비교적 쉽다고 들릴까 봐 잠시 망설였던 거예요.”
“친절하게 설명 붙여주셔서 감사해요. 오해 전혀 안 했습니다.”
“다행입니다. 캐스팅디렉터는 작품의 시작을 책임지는 최전선의 활동자들이라 생각해요. 캐스팅의 시작은 우리들의 손에서 비롯된다는 자부심이 있거든요.”
“동감합니다. 저도 한국에서 캐스팅디렉터 분들 도움 많이 받았었거든요.”
“그래요? 그 캐디가 내가 아닌데도, 괜히 우쭐해지네.”
미쉘이 미소 지었다.
“현재 우리가 지켜보는 아시아계 배우 1순위는 단연 우진이에요.”
“네?”
“오-! WMAC에 와서 영업을 하시겠다?”
릴리의 짓궂은 멘트에, 미쉘이 손을 ‘휘휘-’ 저었다.
그냥 사실만 말한다는 거다.
“이번 일을 겪고 나서 특히나, UTA 내에서 우진을 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졌어요. 예전에 제의했을 때와는 정반대로 말이죠. 그 사이에 우진은 해외에서의 커리어도 차근차근 쌓는 중이잖아요? 증명하는 배우를 사전에 잡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너무나도 큽니다.”
“…….”
“언젠가는 합작했으면 좋겠어요. 할리우드로 나가려거든, 꼭 저한테 먼저 기회를 주십사 하는 바람을 슬쩍 전해봅니다.”
“영업 맞네!”
“릴리, 조용!”
미쉘이 릴리의 입에 크래커를 물렸다.
이윽고,
“도 기대할게요. 행운을 빕니다. 릴리도 마찬가지고.”
그녀가 잔을 들며 말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