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156
156화 레볼루숑!
베타 원은 강하다.
인류문명의 어지간한 무기는 통하지도 않았고 하프늄2 탄두만이 그나마 타격을 줄 수 있었다.
메가톤급 핵무기를 직격시킨다면 확실히 박살 낼 수 있지만 베타 원이 가만히 있진 않았다.
녀석은 미국의 B-2 전폭기를 격추시킴으로서 대공이 약하진 않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비록 근접전을 선호하긴 하지만 방어대책은 충실히 갖춘 것이다.
그 훌륭한 전과에 방심해서였을까?
베타 원은 커다란 녀석들이 꽁지가 빠져라 달아나는 걸 쫓느라 하늘에서 낙하하는 재앙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까지처럼 레이저 한두 방이면 삭제될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레이저를 막아 내며 낙하한 탄두는 베타 원의 머리 위에서 기폭되었다.
총합 60그램의 입자와 반입자가 쌍소멸 반응을 일으키며 순수한 빛과 열을 사방으로 뿜어내었다.
1메가톤을 가볍게 넘는 탄두의 위력에 블랙메탈 외피가 형편없이 무너졌다.
베타 원은 끊임없이 트랜스폼을 일으켜 몸을 복구하려 했지만 외피가 무너지는 게 더 빨랐다.
복구 한도를 넘는 타격이 들어온 것이다.
「…….」
그렇게 트랜스폼이 중지되었고 베타 원은 외피를 잃고 코어를 화구에 노출시켰다.
대폭발이 일어나며 코어조차 충격파에 휩쓸려 저 멀리 날아갔다.
쿠쿵.
1메가톤급 반응탄의 위력은 장난이 아니었다.
주변의 바닷물이 싹 밀려나갔고 바닷가 마을과 시설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콘크리트 시설은 그나마 멀쩡했지만 몇 대 남지 않은 차량이 낙엽처럼 여기저기 굴러다녔다.
오트노르망디 북해안에 마치 태양처럼 거대한 빛의 덩어리가 생겨났다.
그러나 반응탄의 후유증은 생각보다 심하진 않았다.
후폭풍도 약한 편이고 방사능 낙진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저 깔끔하게 플레이그와 주변을 삭제시키고 사라졌을 뿐이었다.
인류연합이 플레이그 상대로 반응탄을 주력 무기로 쓴 것도 여기에 있다.
순수한 에너지반응으로 파괴력은 극대화되었지만 주변에 미치는 파급력은 생각보다 낮았다.
물론, 기가톤급에 이르면 배달한 파일럿도 생사를 걱정해야 할 정도가 되지만 프랑스에서 터트린 탄두는 겨우 1메가톤이었다.
위력은 현저히 낮지만 현 시대의 인류가 보기엔 세상의 종말이 온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용기 있게 헬기를 띄운 한 방송사의 아나운서가 멀리서 이 현장을 중계했다.
“세상의 종말이 왔습니다! 핵무기일까요? 부디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빛을 본 제가 살아날 수 있게요!”
그는 한동안 헬기에 탄 채로 엘리제궁과 교신할 기회를 얻었다.
“핵무기는 확실하게 아니랍니다! 그렇다면 하프늄2 탄두일까요? 우리는 이 정도의 무기를 갖고 있지 못했는데 어디서 날아온 건지 궁금하네요. 설마 미국일까요?”
“아… 지금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인류연합입니다! 인류연합의 어스 플릿이 하프늄2 탄두를 터트린 거라고 합니다!”
방송을 들은 많은 프랑스인들이 그제야 손을 번쩍 치켜들고 환호했다.
“괴물이 죽었다!”
“오오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엘리제궁에서도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정작 엘리제궁의 주인은 이 자리에 없었다.
마리 르펜 대통령은 정신질환을 이유로 입원한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 이 사태에 대한 분석이 진행되면 자신의 과실이 낱낱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이 그런 심정이거나 말거나 베타 원은 죽었고 프랑스 전역이 환호에 들끓었다.
거리에 나와 있던 파리 시민들이 열광적으로 국기를 흔들어 댔다.
가끔은 인류연합과 유지하의 이름을 외쳐대는 사람도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히틀러 같은 인간을 추종한다고 얻어맞았겠지만 오늘만큼은 너그럽게 허용되었다.
오히려 누군가가 서투르게 유지하의 이름을 외치며 팔을 힘차게 뻗자 다른 사람이 따라하는 모습도 보였다.
프랑스인 전부가 유지하를 싫어하는 건 아니라는 증거였다.
그들의 머리 위로 어스 플릿이 비행하다가 점차 고도를 높여 구름 사이로 사라졌다.
이렇게 사태는 일단락되었지만 진짜 중요한 건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토론 좋아하는 프랑스인들이 여기저기에서 의견을 나눴다.
―대체 저 괴물을 왜 르아브르까지 끌고 온 거야? 누가 결정한 거지?
―보나마나 르펜 이 작자겠지. 여러모로 궁지에 몰려 있었으니까.
―괴물을 끌고 왔으면 깔끔하게 죽이기라도 할 것이지 왜 시민들을 불러모은 거야? 같이 죽으라고?
―몰랐으니까! 우리 프랑스가 이렇게 약한 줄 누가 알았겠어?
―우리가 약하다고?
―약하지… 최소한 미국이나 인류연합보다는 약해.
프랑스인들은 그제야 그걸 깨닫게 되었다.
이번 사태를 해결한 것은 전적으로 인류연합이라는걸.
만약 그들이 없었다면 파리 전체가 파괴되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명 피해는 최소 수십만으로 늘어났을 테고 재산 피해도 장난이 아니었겠지.
프랑스인들은 바보가 아니었는지라 그걸 자각했다.
그들은 방송을 통해 모루아 총리와 유지하 대통령이 담판을 지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실질적인 대화는 3분밖에 안 되었다는데, 별다른 조건도 안 걸고 도와준 거네.
―땅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해외령 내놔라 했을 줄 누가 알아? 기아나라도 내줬겠지.
―설마… 그런 사람이면 어스 플릿의 고도를 높이지 않았을 거야. 파리 상공을 개선군처럼 누볐을걸.
―지금 기자회견 시작됐는데. 뭔가 발표할 건가 봐.
원래 프랑스인들은 유지하의 기자회견을 놓치지 않았다.
욕을 하려면 최소한의 지식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레퍼토리를 토론에서 써먹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시청했는데 덕분에 그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의 기자회견이 잦았던 만큼 자국의 대통령보다 더 유명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러시아나 일본도 그렇지만.
아무튼 평소 그를 증오하던 프랑스인들이지만 어스 플릿으로 도와줘서인지 욕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다들 일단 한번 들어 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귀를 쫑긋 세웠다.
“베타 원이 죽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괴물의 난동으로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을 프랑스인들에게 진심으로 위로의 말을 하고 싶습니다.”
“이제 어스 플릿은 돌아갑니다. 나는 프랑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프랑스인들이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나를 바라봐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는 같은 인류이고, 하나이니까요.”
“앞으로 더 많은 우주괴물이 지구를 찾아올 겁니다. 우리는 그때를 대비해 협력해야 합니다. 끝으로 프랑스의 무궁한 발전과 건승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기자회견은 무척이나 짧았고 또 인상적이었다.
곳곳에 모인 사람들은 그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뭐야, 그걸로 끝이야? 아무것도 안 줘도 돼?”
“그런 사람에게 욕을 한 내 입이 부끄러워지는구만…….”
히틀러니 최악의 살인광이니 전 국민이 바게트 씹듯 씹어댄 게 불과 며칠 전이다.
그러나 유지하는 그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기자회견을 끝냈다.
“애초에 우리 욕을 별 신경 안 썼나 봐.”
“못 들어서는 아닐 거고, 그에겐 별 의미가 없었던 거겠지.”
“그렇게 욕을 한 놈들을 도와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니, 최악의 독재자 맞아? 르펜이나 정부가 그렇게 보도록 조장한 건 아니고?”
“애초에 문제의 발단부터가 수상했어. 갑자기 금수조치라니 반발하는 게 당연하지.”
“그 빌어먹을 반독점법부터 손봐야 된다니까.”
“아니, EU 자체가 문제야. 아무런 도움도 못 됐잖아.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려고 한 건 미국과 인류연합뿐이었어.”
프랑스인들은 진지하게 EU의 존속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당장 EU를 탈퇴하진 않겠지만 그런 여론이 생겼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유지하에 대한 호의적인 바람이 불었다.
어스 플릿을 동원해 프랑스를 도왔음에도 전혀 바라는 게 없다는 기자회견이 프랑스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그걸 왜 밝히느냐는 삐딱한 시선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대외적으로 확실히 해두는 게 좋다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했다.
못을 박아둬야 다른 곳에서 수작을 부리지 못할 테니까.
그리고 프랑스 정부에 대해서는 모두 같은 인식이었다.
―르펜 정부로는 안 된다. 갈아치워야 한다.
―정부 관료들은 이번 사태를 속수무책으로 방관했을 뿐만 아니라 원인이기까지 하다. 르펜을 안 말리고 뭐 했나?
―너희 때문에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너희도 목숨을 내놔라!
사망자들의 유족이 울부짖자 엘리제궁의 관료들은 일이 있다며 자신의 부처로 돌아가거나 숨어 버렸다.
그들을 비난하는 시위가 프랑스 곳곳에서 시작되었다.
라 마르세예즈에서 독재자를 비난하는 구절은 어느 사이에 사라졌다.
대신 사람들이 부르는 것은 잔혹한 피의 혁명을 원하는 노래였다.
―무기를 들어라, 시민들이여!
―대열을 갖추고 전진하자! 전진하자!
―놈들의 더러운 피로 밭을 적셔라!
혁명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 * *
베타 원 사태는 프랑스에 큰 상처를 남겼다.
물질적인 피해도 컸고 무엇보다 수천 명의 인명 피해가 났다.
루앙은 폐허로 변했으며 수백만 명이 피난길에 오르는 과정에서 입은 피해도 장난이 아니었다.
꾸준히 하향세이던 각종 경제 상황이 나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특히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것은 금융 분야였다.
사람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간단하게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공포심을 갖게 되었다.
이는 화재나 태풍 같은 자연적인 재난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화재나 태풍은 대비라도 할 수 있지, 괴물은 갑자기 우리를 찾아온다.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 그저 막대한 피해를 감당해야 할 뿐이다.
―그 과정에서 주식이나 가상화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독일로 도망가 있는 동안 내가 진짜 중요하게 여긴 것은 가판대에서 산 빵 한 쪼가리와 물이었다.
―유지하의 기자회견에 의하면 앞으로 괴물은 더 많이 온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국가의 입장에서도 그렇지만 개인에게도 상당한 문제가 되었다.
다들 국가의 물류 시스템만 믿고 비상식량이나 구급약마저 상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각지에서 사재기가 발생하고 식료품을 확보하기 위한 싸움까지 일어나면서 진지하게 생존을 중요시하는 풍토가 마련되기 시작했다.
―국가는 우리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뿐이다.
―우주괴물 한 놈만 와도 이 지경인데 여러 마리가 오면 어떻게 대처하지? 올 때마다 핵무기를 써야 하나?
―난 주식투자를 그만두고 정원에 쉘터를 마련했어. 최소 한 달 정도는 보급 없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프랑스의 주식이 끝도 없이 빠지는 건 이런 풍토 때문이었다.
주위 사람들과 가족, 그리고 친구가 고통 받는 걸 보며 실물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이런 여론은 프랑스뿐만이 아니라 각국에서 공통적으로 형성되고 있었다.
―금, 금이 중요해. 그따위 온라인의 데이터가 아니라.
―프랑스가 베타 원을 끌고가 줘서 다행이다. 영국에 왔다면 큰일 날 뻔했다.
―코쿤이 2연속 유럽에 낙하하고 있는데 그 어떤 국가도 안심할 수 없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근본적인 대책이란 우주괴물을 막아내기 위한 전 지구적인 경보 시스템과 대응책, 그리고 사람을 안전하게 수용할 수 있는 쉘터와 보급물자를 의미한다.
새삼 세계는 인류연합의 메가시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저 거대한 도시는 사람 많기로 유명한 각국의 수도를 가볍게 능가하는 인구밀도를 갖고 있었다.
일부 학자는 메가시티 퍼시픽의 인구밀도가 제곱 킬로미터당 5만 명을 넘는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이는 혼잡하기로 유명한 마카오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였다.
실제 메가시티에 가본 사람들은 어딜 가나 인파의 물결에 치였다고 회상하곤 했다.
―사람이 많긴 진짜 많았죠. 그만큼 놀기는 좋았지만 솔직히 좀 지치긴 했어요.
―거리는 굉장히 자유롭지만 또 질서가 있었어요. 이게 상반되는 개념이 아니란 건 메가시티에서 처음 느꼈죠.
―몇몇 난동을 부리는 무리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았어요. 아마 추방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정확한 인구는 아마 관리국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인구 자체가 아니라 메가시티가 가진 기능에 집중했다.
―좁은 구역에 사람들을 몰아넣고 관리하는 데 최적화된 곳이네.
―식량 생산은 스마트팜으로 하고 에너지 공급은 핵융합… 식수는 넘쳐나는 전력으로 담수화시설을 가동해서 해결… 이거 거대한 쉘터 아니야?
―제일 중요한 오폐수와 쓰레기는 매스 드라이버를 써서 태양으로 던져 버리고. 완벽해.
―무엇보다 주변 방어시설이 장난이 아니야. 레일건 포대에 아이언 빔이 좌르륵 깔려 있어. 정체를 모르는 시설도 엄청 많고.
요약하면 메가시티는 이런 비상사태를 대비한 일종의 쉘터였다.
사람들은 이제야 그걸 알아차렸지만 당장 우르르 몰려가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이뤄온 것들이 있었기에 메가시티에 가서 살기엔 리스크가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가시티의 문을 두드리는 입주 희망자가 폭증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관리국은 메가시티의 입주조건을 하향하지 않았다.
하여튼 세계적으로 생존주의 열풍이 붐에 따라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가상화폐는 인식의 변화에 따른 직격타를 맞아 휴지조각 이하로 취급되었다.
국가적인 위기상황에서 가상화폐란 주머니 속에 든 빵 한 조각만큼의 가치도 없다는 걸 사람들이 인식한 것이다.
대량의 자금이 빠져나가 인류연합에 투자되었다.
인류연합의 정부나 신라그룹은 채권을 발행하지도 않고 투자도 받지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회사의 주식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덕분에 이번 사태로 세계경제가 바닥을 기는 상황에서도 인류연합은 호황을 누릴 수 있었다.
미국이 투덜거릴 정도였다.
―우린 프랑스를 구원하고자 노력했지만 공은 인류연합이 다 가져갔다. 이건 불공평하다.
―유지하 대통령은 괴물을 죽인 그 무기가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 이는 인류의 평화를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각국에 하프늄2 폭약 제조법을 알려주지 않았나? 그 무기도 필요하다.
하지만 유지하의 공식적인 반응은 없었다.
대신 그는 우주괴물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 조직으로서의 인류연합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UN은 이번 사태에서 뭘 했습니까? EU는요?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기껏해야 전후복구에서 콩고물을 얻어먹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을 뿐이죠.”
“세계적인 위기상황에서 느슨한 구조의 연합체는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은 과감한 결단과 행동력입니다. 오로지 인류연합에 이 힘이 있습니다.”
“인류연합에 힘을 실어주십시오. 우리는 당신을 보호할 것입니다.”
이는 정면으로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불편한 기색을 보였을지언정 당장 반박하진 못했다.
어쨌거나 프랑스 사태를 해결한 건 인류연합이었기 때문.
다만 의회나 정치권 일부분에서 볼드윈으로는 안 된다는 기류가 만들어진 것은 분명했다.
―나약하고 친 유지하적이다. 그는 미국의 이익을 중요시한다고 떠들어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별 효과가 없었음이 드러났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지도자이다.
―애초에 볼드윈은 브라이언트의 대타였을 뿐이다. 이제 그의 역할은 끝났다.
이렇듯 압력이 거세지자 볼드윈 대통령은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듯 기자회견을 열어 자진하야를 발표했다.
이는 워터게이트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경악한 기자들 앞에서 덤덤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오늘부로 나는 더 이상 미국의 대통령이 아님을 밝힙니다. 2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보람도 느꼈지만 대통령 직무에 한계를 느꼈고, 이제 내려놓으려 합니다.”
“오후부터는 리처드 번스타인 부통령이 직무를 맡습니다. 미국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어이없을 정도로 짧은 기자회견이었고 형식을 지키지도 않았다.
백악관 내외에서 비판받는 처지라 조금이라도 빨리 대통령 직을 내려놓고자 하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볼드윈 대통령이 하야하자 민주당뿐만 아니라 공화당에서도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그는 너무 인류연합에 끌려 다녔다. 우리가 처한 현실에 맞지 않는 사람이다.
―번스타인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이끌 것이다.
이런 기대감을 나타내는 데에는 그가 초강경파라는 것에 있었다.
번스타인은 맹견론을 넘어선 맹수론을 주창한 정치인으로, 인류연합과 유지하에게 필요한 것은 입마개가 아니라 동물원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오늘날 우리는 맹수를 도시에서 볼 수 없습니다. 모든 맹수는 자연 아니면 동물원에 가야 합니다. 이는 모든 미국인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당시 이런 주장은 미국인들이 보기에도 너무 강경했기에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인류연합이 중국과 일본을 패퇴시키고 러시아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하자 당 내에서 그의 영향력이 커져만 갔다.
“그를 다시 UN에 불러들여야 합니다. 미국의 주도로 인류연합을 이끌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입니다.”
다들 번스타인의 취임사에 박수를 보냈지만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맹수를 어떻게 동물원에 집어넣지?
유지하는 보통 맹수도 아니고 인류연합이라는 거대한 세력을 가진 독재자였다.
그 어떤 국가도 그를 제지하는 데 실패했고 미국이 진지하게 나서더라도 압박할 카드는 많지 않다는 평이었다.
그나마 확실한 게 있다면 전쟁이었는데 프랑스 사태로 인해 불확실해졌다.
북해안에서 터트린 무기가 대체 뭐냐고 미국 전역이 뒤집어졌기 때문이다.
군부의 장성들은 그게 뭔지 알기 전까진 어떠한 군사 행동도 있어선 안 된다고 합참의장에게 성명서를 보내기까지 했다.
번스타인의 주도 아래에 우발적인 전쟁이 터질까 우려해서였다.
다행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번스타인을 위시한 민주당이 인류연합에 신형 폭탄의 정체를 공개하라고 압박하면서 긴장감이 높아졌다.
“인류연합은 프랑스 북해안 뿐만이 아니라 화성에서도 100메가톤에 달하는 무기를 테스트했습니다. 이 자료가 증거입니다.”
자료에는 도저히 발뺌할 수 없는 증거가 담겨 있었다.
운석은 확실히 아니며 핵무기 또한 아니었다.
하프늄2 폭약은 미국이 의혹을 제기하면서 붕괴현상을 발표해 버렸기에 가능성이 낮았다.
새로이 대통령 자리에 오른 번스타인은 그 화끈한 성격만큼이나 괄괄한 입담의 소유자였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인류연합과 연결된 핫라인을 통해 유지하에게 협박에 가까운 발언을 했다.
“만약 이 의혹을 밝히지 않는다면, 우리는 즉각 행동을 개시할 것입니다.”
“하십시오. 말리지 않겠습니다.”
미국과 인류연합 사이에 긴장감이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