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230
229화 밀이 부족하다!
초가을이 되어 아스테라 대륙 동부가 본격적인 밀 수확기에 접어들었다.
이 시기가 되면 각국 간에 다소 다툼이 있더라도 적당히 마무리 짓게 된다.
밀을 포함한 식량 운송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귀족도 평민도 노예도 곡물을 주식으로 삼고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밀이었다.
심지어 인간의 식문화를 야만스럽게 여기는 엘브랑데에서도 여러 경로를 통해 밀을 수입하곤 했다.
대수림 등 숲을 늘리는 데에만 신경을 쓴 나머지 밀 경작지가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대륙의 1/4을 차지하는 그 넓은 땅에 제대로 된 평야가 없다는 것은 상당히 공포스러운 일이지만 엘프들은 무성한 숲을 보며 자랑스러워했다.
―우리가 가꾼 생명이 넘치는 이 숲을 보라.
―우리는 인간과는 다르다. 자연과 상생할 줄 안다.
어쨌거나 이 시기가 되면 각국은 밀 운송에 총력을 다했다.
여러 경작지에서 수확한 밀 이삭은 낱알을 털어낸 뒤 물레방아를 구비한 제분소로 옮겨졌고 밀가루로 가공되었다.
농민들은 이 과정에서 제분소 주인이 밀가루 포대를 빼돌리지 않나 철저히 감시했는데, 실제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영주는 제분소 주인을 내세워 밀가루를 빼돌리기 바빴고 덕분에 농민들의 제분소 주인에 대한 혐오도는 더욱 높아졌다.
이런 갈등에도 불구하고 1037년 가을에도 제분소의 물레방아는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란티스 백작령은 바그란의 동부의 식량 공급을 맡고 있는 만큼 그 어디보다 분주하고 시끄러워야 했다.
그런데 최근 란티스 백작령을 드나드는 상단은 예년의 7할 규모에 불과했다.
영지민들은 그것을 제일 먼저 눈치챘다.
―이상하다. 왜 수레가 이것밖에 안 왔지?
―몇 년 이래로 가장 규모가 작아. 수확량은 비슷한데 말이야.
―밀을 다른 곳에 팔기로 했나?
다만 이런 의혹이 겉으로 드러나는 일은 없었다.
정확한 밀 수확량은 란티스 백작의 가신들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경작지의 지배인들도 자신들이 맡은 땅 외에는 아는 게 별로 없었다.
그렇게 줄어든 밀 공급량은 즉각적으로 주변 영지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당장 란티스 백작의 가신들이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핀도르 남작마저 공급을 늘려달라는 부탁을 하러 직접 백작령에 들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러니 반다스 자작령은 순간적으로 밀 공급이 뚝 끊기는 상황에 처했다.
카슨 행정관을 비롯한 관료들이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하루에 밀가루 포대 5톤이 들어와야 된다고! 이건 최소한이야!”
“지금 들어오는 양이 3톤… 그마저도 수레가 계속 줄어들고 있으니 머지않아 영지 내에 밀가루 품귀현상이 일어나겠군요.”
“상단에는 알아봤나?”
“여러 경로로 알아봤습니다만 공급을 늘리는 건 어렵답니다.”
“대체 왜? 흉년인 것도 아닌데.”
그게 최대의 수수께끼였다.
밀가루 공급량이 이렇게 줄어들려면 예년에 비해 흉작이거나 공급자의 명백한 의도가 있어야 한다.
카슨 행정관이 전해 듣기로 전자는 확실히 아니었다.
‘란티스 백작령이 흉작이라는 말은 못 들었는데… 그렇다면 백작이.’
그의 생각은 거기에서 멈추고 말았다.
일개 행정관으로서 대영주를 비판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로지 영주인 레오볼드의 권한이었는데 양측의 관계로 미루어 보면 대화로 해결될 것 같지가 않았다.
‘오하멜 자작을 죽이고 그의 유족을 떠넘긴 우리 영주님을 백작이 좋아할 리가 없다…….’
어디까지나 소문이지만 왕도에서 열린 미팅에서 란티스 백작이 상당한 굴욕을 당했다고 한다.
관료들 사이에선 란티스 백작의 성이 일주일 동안 시끄러웠다고 말이 많았다.
‘그렇다면 이것은 우리 영주님을 압박하기 위한 백작의 계략인가.’
하지만 그 남는 밀을 어디로 빼돌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밀이란 것은 주식인 만큼 갑자기 수요가 늘어나진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루에 먹는 빵의 양은 500~600g 정도로 거의 일정했다.
귀족은 고기와 디저트를 많이 즐기고 평민은 고얌을 먹을 수밖에 없다는 게 차이점이랄까.
카슨 행정관은 이런 의혹을 정리하여 레오볼드에게 보고했다.
그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보고서를 훑어보더니 말했다.
“행정관, 란티스 백작이 밀을 빼돌리는 게 사실이라면 어디일 것 같소?”
“제가 어떻게 그런 것을 가늠하겠습니까.”
“갈리스토 왕국이라면 어떻겠소?”
“예에? 여, 영주님, 그건 말이 안 됩니다.”
“어떤 면에서 말이 안 된다는 거요?”
“갈리스토 왕국은 우리 바그란의 적국이잖습니까…….”
적국이라기엔 갈리스토 왕국이 일방적으로 시비를 걸어오는 것에 가까웠다.
인구부터가 2배가 넘어가고 자이움 제국의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상당한 발전을 이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바그란 왕국이 더 강했다고 하지만 이제 전세가 역전되었다.
“란티스 백작에게도 그럴까? 그가 갈리스토 왕국을 증오한다고 보시오? 나만큼이나?”
카슨 행정관은 그제야 문제의 핵심을 알아차렸다.
요는 란티스 백작이 레오볼드를 증오하기에 발생한 일이라는 것이다.
“영주님께서 이 땅을 흡수하신 것에 대한 앙심을 품은 거군요…….”
“자기 가신을 죽이고 유족을 떠넘긴 자를 누가 좋아할 수 있겠소? 그건 이해하지만 이런 식으로 이빨을 들이대선 곤란하지.”
레오볼드의 목소리엔 당혹감이나 분노가 전혀 서려 있지 않았다.
너무 당황해서 대책마저 잊은 것은 아닐 것이다.
카슨이 아는 레오볼드는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는 철두철미한 사람이었기 때문.
“영주님, 혹시 이 상황도 의도하신 것은 아니겠지요?”
“내가 란티스 백작을 조종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의도하겠소?”
하지만 이런 갈등을 기다려온 것은 사실이었다.
갈등은 그에게 기회를 가져다주기 때문.
당장 바그란 전체를 점령하긴 어렵지만 란티스 백작령 정도라면 충분히 집어삼킬 수 있었다.
그는 몇 가지 서류를 뒤적였다.
“당분간은 밀가루가 부족할 텐데 왕궁에서 신경을 써주겠지만 큰 도움은 안 될 거요. 버틸 수 있겠소?”
“요즘 사람들이 감자와 갑각류에 맛을 들여서… 생선 공급량도 충분하니 크게 굶주리진 않을 겁니다.”
“그리 오래 가진 않을 테니 조금만 참으라고 하시오. 내 예상으론 한 달 안에 끝나니까.”
“그 정도면 참는다고도 할 수 없는 수준이지요. 아시다시피 우리 주민들은 굶는 데엔 이골이 났으니까요.”
“란티스만 족치면 더 이상 그런 일은 없을 거요. 거기까진 말하지 말고 영지민들을 잘 다독이시오.”
“영주님, 정말로 란티스 백작님을…….”
“그런 소인배보다야 내가 대영주가 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지 않소?”
카슨 행정관은 고개를 숙였다.
사그리스 은광에서 비롯된 여러 사태에서 레오볼드는 자신이 현명하고 강한 군주임을 증명해 왔다.
그에 반해 란티스 백작이 보여 준 것은 혈통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혈통 그 하나가 바그란 왕국에선 아주 중요했다.
만약 레오볼드가 란티스 백작을 치려 한다면 다른 영주들이 가만히 있진 않을 것이다.
“물론 저는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만 자칫 다른 영주들의 반발을 불러올까 우려가 됩니다. 갈리스토도 그렇고요…….”
“그건 내게 맡기고 이 서류를 상단에 돌리시오. 그리고 한마디만 하시오. 잘 선택하길 바란다고.”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 * *
루아드 왕자는 각지에서 올라온 가을 작황 보고를 듣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여러 영지에서 예년과 비슷한 수확량을 보고한데 비해 유독 란티스 백작령만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7할 정도라… 뭔가 이상하군.’
그는 서류를 뒤진 끝에 란티스 백작령의 경작지에서 별다른 병충해에 시달린 적이 없음을 알아냈다.
‘경작지 면적도 줄지 않았고 홍수도 없었고 병충해에도 시달린 적이 없는데 작황은 예년의 7할이라…….’
덕분에 바그란 동부가 상당한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반다스 자작령의 악화된 상황이 눈에 띄었다.
‘하루에 밀가루 5톤이 필요한데 들어오는 것은 3톤… 그마저도 며칠 내에 2톤으로 떨어질 예정이고…….’
이쯤 되면 누구의 소행인지는 바보도 알 수 있다.
상인들이 자처해서 공급량을 줄일 리 없으니 란티스 백작의 짓이다.
루아드 왕자는 펜대를 내려놓고 헛웃음을 지었다.
‘내게 한 소리 들은 게 그렇게 억울했던가? 아니면 프로잔 후작과의 관계가 멀어진 것을 화풀이라도 하고 싶은 건가?’
확실한 것은 그가 반다스 자작에게 앙심을 품고 있다는 점이었다.
대놓고 밀 공급량을 줄이는 걸 보면 작정한 모양인데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다.
왜냐하면 반다스 자작은 그 이상으로 위험한 인물이고 자칫 잘못하면 전쟁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
‘전쟁이 터지면 란티스 백작령의 병력으로는 막아낼 수 없다. 하지만 다른 영주가 가만히 있진 않겠지.’
란티스 백작이 지금까지 다져온 인맥은 보통이 아니어서 왕도를 넘어서서 서부에까지 뻗어 있었다.
그의 영지엔 대단한 자원은 없지만 바그란 최대의 곡창지대가 존재했다.
그가 흔들리면 바그란 전체가 흔들린다는 뜻이다.
‘설마 그걸 노리고 이런 짓을 한 건가.’
란티스 백작과 반다스 자작.
루아드 왕자는 후자가 마음에 들었지만 바그란 전체를 생각해 보면 마음대로 선택할 수는 없었다.
최근 들어 신성교국 팔마에서 반다스 자작에 대해 의심하고 있는 것도 원인이 되었다.
성녀가 받은 신탁의 내용을 누군가가 유출시킨 것이다.
―신탁의 주인공은 바로 바그란의 반다스 자작이다.
―그의 생김새는 신탁의 주인공과 다르지만 성녀가 그렇게 믿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최측근에게 이 내용을 알려줬으며, 절대 다른 곳에 유출하지 말도록 당부했다.
―팔마의 미래를 깊게 우려하고 계시는 교황 성하께서는 심사숙고하신 끝에 반다스 자작의 조사를 명하셨다.
여기까지가 바그란에 들려온 소문이었다.
루아드 왕자는 이것이 성녀의 의도인가 말실수인가 궁금했다.
‘전에 만났을 때 확신을 한 건가? 이계에서 온 용사라고?’
이계에서 온 용사…….
누가 지었는지 참으로 웃긴 별명이었다.
왕도에선 벌써 이걸 가지고 온갖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할 일 없는 만담꾼들은 그 용사가 마침내 귀쟁이들의 폭정을 종식시켜 줄 것이라며 잔뜩 기대에 들떠서는 노래를 불러댔다.
정말 그럴지는 알 수 없지만 반다스 자작이 심상치 않은 행보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는 정말 용사인가? 그 이상한 힘은 용사라서 보일 수 있는 건가?’
오하멜 자작을 죽일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조사관을 파견한 결과 데노바를 통해 리빙메탈이라는 금속을 공급받았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정작 블루 드래곤이 데노바를 박살 내는 바람에 증거가 없는 것이 좀 그랬지만 책임을 그에게 물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거기까진 납득했지만 섀도우 엘프 해적들을 박멸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당시 정황을 보면 그랜든을 비롯한 소수의 병사들이 참여하긴 했지만 거의 혼자서 해적들을 도륙했다고 한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자이움의 하이 나이트를 사로잡은 것이 요행이 아니었다는 건가…….’
루아드 왕자는 고민 끝에 반다스 자작령과 연결된 통신구에 손을 올렸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그가 직접 나왔다.
“왕자 저하를 뵙습니다.”
“식량 건으로 한창 바쁠 텐데 불러내어 미안하오.”
“벌써 주제가 나왔군요. 란티스 백작이 물량을 줄였다는 것쯤은 알아차리셨을 거라 믿습니다.”
“경은 빠른 접근을 좋아했었지. 그와 전쟁을 할 생각이요?”
“아직은 아닙니다. 제 쪽에서 전쟁을 원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그가 견디다 못해 전쟁을 걸게 되겠지. 감당이 되겠소?”
“저하께서 묵인해주신다면 가능하겠죠.”
“…….”
루아드 왕자는 잠시 숨을 멈췄다.
믿기로 했음에도 심장 한쪽이 두근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건 반다스 자작의 본질을 모른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그는 정말 용사인가?
어디에서 왔으며 목적은 무엇인가?
바그란에 충성을 맹세한다는 것이 거짓말은 아닌가?
온갖 의문이 떠올랐지만 루아드 왕자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우리는 같은 뿔새를 탔고 이제 중간에 내릴 수 없소. 나는 경을 믿으니 경도 내게, 바그란에 충성을 다하시오.”
“허락해 주신 걸로 알겠습니다.”
“하지만 란티스 백작이 그리 호락호락한 인물은 아니오. 주변 영주들이 절대 가만히 있진 않을 거요.”
“아마 갈리스토도 개입할 겁니다.”
“갈리스토? 그 작자들은 또 왜?”
레오볼드는 백작령에서 밀 포대를 싣고 떠난 포대가 북쪽에 있는 한 영지로 들어갔음을 폭로했다.
하지만 루아드 왕자는 쉽게 믿으려 하지 않았다.
“란티스 백작에게 너무 죄를 뒤집어씌우는 게 아니오? 갈리스토는 우리의 적이오. 그가 반역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소.”
“다음 주에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신형 에테르 기관을 공개할 겸 해서요.”
“에테르 기관? 그 돈 많이 드는 녀석을 쓰겠다는 말이오?”
얼마나 운용비가 많이 드는지 엘브랑데나 자이움 정도만이 간신히 유지할 수 있었다.
요금도 워낙 비싸서 귀족들이 가끔씩 타는 게 전부였다.
한 마디로 과시용이란 말인데 그걸 작은 영지에서 써먹겠다니?
“이번에 공개할 에테르 기관은 드워프가 대대적으로 뜯어고친 버전입니다. 효율은 대폭 개선되어서 예전처럼 에테르석을 바닥에 뿌리는 정도는 아닙니다.”
“흐음… 확실히 오하멜 자작이 드워프를 데리고 있긴 했지. 하지만 이미르 공화국조차 대단한 효율을 내지 못했소.”
아직은 그렇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이미르 공화국의 기술력을 생각해 보면 길어도 수십 년 이내로 개량형을 생각해 냈을 가능성이 높았다.
레오볼드는 기술력이 훨씬 앞선 세상에서 왔기에 그걸 개량할 수 있었던 것뿐이었다.
에테르를 제외한다면 그렇다는 얘기다.
“그런데 움직일 수 없는 증거에 대해선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루아드 왕자는 머쓱해져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아니, 아니오. 하지만 란티스 백작이 갈리스토와 내통한 증거라니… 갑자기 묻어버리고 싶어지는군.”
대마불사라는 단어는 이 머나먼 행성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란티스 백작은 가볍게 치워버리기에는 너무 존재감이 컸다.
하지만 레오볼드는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저하. 그가 사라지기에 너무 큰 것이라면, 존재하기에도 너무 큰 것입니다.”
“…그것은 경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군.”
“최소한 란티스 백작처럼 외부의 적을 끌어들이진 않겠지요.”
루아드 왕자가 보기에 레오볼드는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여튼 이 시점에서 그가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이제 와서 갈라서기엔 둘은 너무 오래 손을 잡고 있었다.
‘최소한 바그란 동부는 그에게 넘겨주어야겠군.’
그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지금으로선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왕자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비교적 가벼운 소식을 전했다.
“참, 그거 아시오? 경의 혼담 대상자가 직접 오기로 했소. 아마도 경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오.”
“그건 크로이츠 백작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장차 자이움의 총사령관을 맡을 분이 그렇게 시간이 많으리라고 생각되진 않습니다만…….”
“만나고 싶지 않다는 게 말투에서 드러나는군. 내가 이런 말 하기도 좀 그렇지만 안심해도 좋소. 군부에서 그녀의 영향력은 확고하니까. 비행선을 타고 올 텐데 이번에 공개될 에테르 기관을 같이 참관해도 되겠소?”
“…나쁠 건 없지요.”
“부디 그녀 앞에선 대놓고 싫다는 티만 내지 말아주었으면 하오. 경 이상으로 성격이 화끈한 사람이니까.”
“여러모로 저와는 잘 맞지 않겠군요.”
“성격이야 상관없지. 결국, 능력이 중요한 것 아니겠소? 어쨌든 그 안건은 그렇게 하기로 하고 수확기인데 밀이 부족하지 않소? 거의 절반이 줄어들었을 텐데.”
“부유대륙에서 가져온 여러 식량을 재배하고 있어서 그렇게 치명적이진 않습니다.”
“어쩌면 그것마저 미리 계산되었다는 생각이 드는군… 경이 몬스터를 먹었다는 소문이 돌던데 사실이오? 그, 갯가재 같은 놈들 말이오.”
“저하께서도 먹어보면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귀족만 이런 것을 먹을 수 있게 포고령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시게 되겠죠.”
“그 정도요?”
“외형만 좀 그렇지 저하께서 지금까지 먹어보신 것 중에서 제일 맛있는 축에 들어갈 겁니다.”
“그거 기대되는군.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보고 싶소. 성녀가 경을 용사로 지목했다는 게 사실이오?”
“팔마의 성녀님은 의외로 입이 가벼운 것 같군요…….”
“성녀의 명예를 지키자면 그녀가 발설하지는 않았을 거요. 아마도 위쪽이 문제겠지.”
“거기까지 다 퍼진 모양이군요. 저를 용사로 지목한 건 사실입니다.”
“무슨 증거가 있었다는 말인데… 아, 대화 내용을 캐묻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소. 그냥 해보는 말이오.”
“대단한 건 없었습니다. 성녀 베로니카는 무슨 이유에선지 저를 용사로 지목했고, 저는 부정했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그렇군… 아무튼 밀 공급은 내가 란티스 백작에게 이야기를 해보겠소. 다시 영지전이 터지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으니까 말이오.”
“아마 좋은 대답이 나오진 않을 겁니다. 이미 빼돌렸으니까요.”
“그렇지 않기만을 바라야지…….”
* * *
1037년 가을, 반다스 자작령의 오하멜시에서 작은 행사가 열렸다.
바로 신형 에테르 기관의 공개 행사였다.
작은 영지의 행사인 만큼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사실은 달랐다.
루아드 왕자를 비롯해 바그란 동부에서 사업을 하는 여러 상인들.
거기에 왕도에 있던 에테르 공학자나 마법사들까지 행사를 구경하기 위해 오하멜시에 들렀다.
무엇보다 자이움의 대귀족 크로이츠 백작이 참가했다는 게 관심사였다.
그녀와 반다스 자작은 전혀 연관점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훤칠한 키에 검은색 머리카락을 찰랑이며 걷는 크로이츠 백작을 보곤 수군거렸다.
“여기에 온 게 남편감을 찾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던데 사실일까요?”
“자이움 내부에도 젊은 귀족들이 많을 텐데 왜 여기에 와서…….”
“자이움의 귀족이라고 해봐야 혈통으로 작위를 물려받고 싸움질이나 해대는 족속뿐이니까요. 반다스 자작처럼 자기 손으로 업적을 일궈낸 사람은 없죠.”
“쉿, 목소리가 너무 높아요.”
“그나저나 이 작은 영지에 왜 기차 궤도를 깔아놨을까요? 설마 에테르 기관으로 수레를 끌려고?”
“하하, 말도 안 되죠. 그게 효율이 얼마나 나쁜데.”
“과장 조금 보태면 에테르석을 바닥에 뿌리고 다니는 겁니다, 그거.”
비행선은 부유석 소모까지 감당해야 하기에 훨씬 더 효율이 안 좋지만 부유대륙이라는 자원의 보고가 있기에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었다.
일단 보내면 이익이 되니까.
하지만 저 기차의 경우 무슨 이익이 되는지 모를 일이었다.
“저 궤도 설마 오하멜 시와 반다스 마을을 연결하는 건 아니겠죠?”
“설마요. 거리가 얼마인데. 약간만 깔아둔 거겠죠.”
“무슨 짓을 해도 결국 뿔새 수레가 제일 나은데…….”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뿔새 두 마리가 이끄는 수레의 효율을 결코 넘어설 수 없었고 그건 엘브랑데와 자이움이 수십 년에 걸쳐서 입증했다.
일부 귀족들은 이럴 돈이 있으면 식량을 더 구입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우회적으로 레오볼드를 비판하기도 했다.
“당장 영지민들이 굶고 있잖습니까? 영지민에게 무한한 사랑을 준다는 반다스 자작의 소문이 잘못된 걸까요?”
“몇 명이 죽어 나가면 그제야 부랴부랴 식량을 구입할지도 모르겠군요.”
“방법이 없는 걸 알고 포기한 거죠. 이 시기에 동부에서 식량을 구할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대부분 란티스 백작과 친분이 높은 귀족들이었다.
그들은 반다스 자작령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기에 영지민들이 쫄쫄 굶고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는 다른 영지보다 오히려 나은 처지였다.
빵을 줄인 대신 다른 음식을 섭취하고 있어서 영양학적으로는 더 나았다.
카밀라 크로이츠는 귀족들의 헛소리를 들으며 레오볼드에게 다가섰다.
아무래도 자이움에서 도는 그에 대한 소문이 완전히 빗나가지는 않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