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117
#닥터 플레이어 117화
특히 이런 야전에서 응급으로 시행해야 한다니. 성공 확률은 더 감소할 것이다.
‘잘못 건들면 혈관의 상처가 커지며 출혈이 악화해 사망할 수도 있어. 어쩌지?’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첫 번째는 팔 윗부분을 완벽하게 묶어버려 피의 소통을 완전히 막아버리는 것.
이런 경우 팔 밑부분으로 피가 가지 않아, 팔을 잃게 되지만 출혈을 막아 생명은 살릴 수 있다.
두 번째는 출혈이 악화할 위험을 감수하고 수술을 하는 것.
성공하면 팔을 잃는 걸 피할 수 있지만, 최악의 경우 동맹의 상처가 악화하며 출혈이 심해져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모두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젠장.’
그때, 엘무드가 힘겹게 눈을 떴다.
“크윽. 레, 레이몬드 님? 여, 여기는 어떻게? ”
그는 곧 상황을 파악했는지, 눈물을 그렁그렁했다.
“저, 절 위해…… 여기까지…… 죄, 죄송합니다. 레이몬드 님께 부끄럽지 않은 기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는데. 또, 또 이렇게 폐만 끼치다니…….”
레이몬드는 한숨을 팍 내쉬었다.
‘이 고구마 녀석.’
처음부터 끝까지 답답한 녀석이다!
마음만 같아서는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환자이니 참고 입을 열었다.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팔의 상처가 좋지 않아 지금 당장 수술을 해야 합니다. 다만 수술을 할 경우…….”
실패할 가능성이 있고, 최악의 경우 사망할 수도 있다.
그런 위험성을 설명했다.
“……만약 수술을 받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렇게 되면 생명이 위험하지는 않을 겁니다. 단, 팔을 잃게 될 겁니다.”
엘무드는 곧바로 답했다.
“수, 수술하겠습니다.”
“……!”
“……저, 전 당신의 검이 되기로 맹세한 몸입니다. 그런 제게 팔을 잃는 건 목숨을 잃는 것보다 더한 끔찍한 일입니다.”
한 마디, 한 마디 하는 게 힘겨운지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엘무드는 강렬한 단호함이 담긴 눈빛으로 레이몬드를 바라보았다.
‘당신의 검이 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죽겠습니다!’
그런 곤란한 의지가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아니, 무슨 내 검이 되겠다고. 필요 없다니까?’
레이몬드는 당황해 다시 말했다.
“그러지 말고…….”
“그리고.”
엘무드가 똑바른 음성으로 말했다.
“전 레이몬드 님, 당신을 믿습니다.”
“……!”
“당신을 믿으니, 수술해 주십시오.”
조금의 두려움도 존재하지 않는.
강렬한 확신이 담긴 음성이었다.
‘……아니, 내 뭘 믿고 그러는 건데?’
레이몬드는 곤란한 한숨을 내쉬었다.
환자의 의지가 저렇게 확고한 이상 선택은 하나였다. 수술할 수밖에.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어떻게든 성공해 낼 수밖에.’
꼭 수술에 성공해, 이 고구마 녀석에게 따끔한 알밤을 한 방 먹여주리라!
그렇게 응급 수술이 시작되었다.
* * *
야외에서 곧바로 수술해야 했기에 최대한 먼지 등이 없는 자리를 찾았다.
이후, 함께 온 기사들이 최대한 깨끗하게 자리를 정리 후 진통제, 수면제를 투약해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구조대의 인원들이 혹시 모를 적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서전의 손놀림이 발현됩니다! 감각 수치가 10 상승합니다!] [서전의 경험(C-)이 발현됩니다! 감각 수치가 5 상승합니다!] [스탯]감각 : 42 → 57
‘후우. 해보자.’
찌익.
메스를 움직였다.
일단 상처 부위를 샅샅이 살폈다.
‘동맥 외에 다른 중요 기관이 상한 게 없는지 확인해야 해.’
가장 대표적인 게 신경이었다.
팔을 지배하는 신경이 같이 상하면 큰 후유증이 남을 거다.
‘난 아직 말초 신경 손상을 치료할 실력이 되지 않아.’
말초 신경 손상을 치료하려면 보다 높은 격(格), 최소 ‘교수’급에는 도달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신경은 괜찮았다. 그 외 큰 정맥이나 힘줄의 손상도 없었고.
문제는 동맥의 손상이었다.
‘생각보다 길게 찢어졌어.’
동맥이 절단된 건 아니다.
하지만 날카로운 돌에 찍혔는지 횡 방향으로 2㎝가량 찢어져 있었다.
‘2㎝이면 인조 혈관을 이식해야 하는데.’
가장 표준적인 치료는 다리의 복재 정맥(Saphenous vein)을 떼와 이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야외에서 그런 치료가 가능할 리가 없다.
결국, 찢어진 혈관을 촘촘히 다시 꿰매는 방법밖에 없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혈관 봉합.
쉽지 않은 치료이다. 특히 이런 환경에서는.
더구나 찢어진 양상도 좋지 않았다. 횡 방향으로 갈기갈기 찢어져 꿰매기 어려운 경우였다.
‘하지만 해야 해.’
그가 아니면 아무도 못 한다.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
그나마 드워프들에게 의뢰해 수술용 확대경(루뻬)을 미리 만들어놔서 다행이다.
의뢰할 때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비싸 눈물을 흘렸지만, 확대경이 없다면 수술을 시도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거다.
레이몬드는 수술용 확대경을 통해 혈관을 확대해 보며 긴장된 손으로 실을 움직였다.
조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특수 제작한 실낱같은 바늘이 미세하게 혈관을 뚫고 들어갔다.
푸욱.
긴장해서일까?
미세한 소리가 천둥처럼 느껴졌다.
다행히 첫 매듭은 성공적이었다.
‘할 수 있어. 긴장하지 말자. 후우.’
[강철의 심장이 발현 중입니다!] [굳건한 의지가 심기를 갖습니다!]마음을 가다듬으라는 듯, 메시지가 떠올랐다.
레이몬드는 숨을 들이켜고는 두 번째, 세 번째 매듭을 이어갔다.
혈관 봉합은 너무 느슨해도, 너무 촘촘해도 안 된다.
또한, 너무 약하게 묶어도 안 되며, 너무 강해도 안 된다.
부족하면 혈관 안을 흐르는 혈액의 압력에 상처가 벌어질 것이며, 과하면 섬세한 혈관 조직이 상할 것이다.
오로지 완벽한 정확함을 요구하는 고난도 수술.
레이몬드는 첨예한 긴장 속에서 수술을 이어갔다.
어시스트를 서는 크리스틴은 레이몬드에게 조금의 방해라도 될까 봐 숨 쉬는 소리조차 죽였고, 다른 이들도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긴장하며 레이몬드의 수술을 지켜봤다.
극도로 집중해서일까?
다행히 수술 진행은 나쁘지 않았다.
갈기갈기 찢어진 혈관의 상처가 조금씩, 조금씩 입을 다물었다.
‘좋았어. 이대로 조금만 더 하면.’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크르릉!
갑작스럽게 늑대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필 근방을 배회하는 늑대 떼가 그들을 발견한 것이다!
“이런! 모두 엄호하라!”
“신경 쓰지 마십시오, 페닌 남작님! 저희가 해결하겠습니다!”
구조대 인원이 철통같은 방어를 하였다.
이 자리의 모두가 가려 뽑은 정예이니 늑대 따위에게 당할 일은 없었다.
문제는 레이몬드였다.
첨예하게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신경이 분산되어 도통 수술에 집중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제길!’
레이몬드는 곤란한 얼굴을 하였다.
‘어쩌지?’
신경 쓰지 않고 수술을 하려 하였지만, 쉽지 않았다. 점점 머리가 하얘졌다.
주변이 갈수록 시끄러워졌다.
소란을 듣고 다른 맹수들이 어슬렁거리며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얼른 수술을 끝내야 해!’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손이 꼬였다.
‘이런. 안 돼.’
자칫하다가 크게 실수할 뻔한 레이몬드는 아찔한 얼굴을 하였다.
이대로는 수술에 실패할 거다.
‘방법이?’
레이몬드는 초조히 생각했다.
그때,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그래, 이 방법이 있었어! 전투 군의관 전용 스킬, 야전 치료 구입!’
[야전 치료]분류 : 전쟁 스킬
등급 : 일반
숙련도 : D
-거친 야전에서 환자를 치료해야 하는 군의관을 위한 스킬입니다!
-야전에서 환자 치료 시 주변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평상시와 ‘비슷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숙련도가 오를 시 야전에서 더욱 뛰어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포인트가 70점 소모됩니다!]스킬의 효과가 곧바로 나타났다!
소란한 환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손을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매듭을 이어 묶어나갔다.
‘아니, 어떻게?’
크리스틴은 그런 레이몬드를 보며 경악한 눈빛을 보냈다.
이런 환경에서도 저런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하다니?
아마 환자를 위하는 마음으로 저런 집중력을 발휘하는 것일 거다.
‘얼마나 환자를 위한 마음이 깊으면 저런 일이 가능한 거지?’
크리스틴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제 그녀는 레이몬드를 완벽히 인정한다.
그렇다고 뒤꽁무니만 쫓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언젠가 그의 곁에 당당히 서는 게 그녀의 목표였다. 하지만 그의 이런 대단한 모습을 볼 때마다 좌절감이 느껴졌다.
환자를 위하는 그의 마음은 숭고하기까지 했다.
‘아니야. 나도 절대 지지 않겠어!’
한편, 구조대의 책임자인 발라스트 경도 경악해 그런 레이몬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혹시 모를 돌발 사태에 대비해 레이몬드의 바로 곁에서 호위하고 있었다.
‘저런 집중력까지 가지고 있다니?’
가히 탈인간적인 집중력이었다.
‘하늘이 내린 신체, 책사를 뛰어넘는 뛰어난 두뇌, 통찰력, 존경이 절로 나오는 완벽한 인품에…… 저런 어마어마한 집중력까지.’
짧은 시간 지켜본 것이지만, 도대체 몇 번이나 경악하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레이몬드는 파내도 파내도 끝없이 새로운 보물이 나오는 보고(寶庫) 같았다.
‘더구나 저런 미세한 손놀림이 가능하다니?’
발라스트 경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소드 익스퍼트 중급의 강자.
그래서 레이몬드가 지금 펼쳐내는 수술 테크닉이 얼마나 어렵고 대단한 것인지 꿰뚫어 볼 수 있었다.
‘현란한 기검(技劍)을 익히는 자들이나 펼칠 수 있을 법한 미세한 손놀림이야.’
이제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너무 뛰어나니 라이프 공작 각하께 뭐라고 보고해야 할지 모르겠군. 내 말을 믿을지나 모르겠어.’
그때, 레이몬드가 말했다.
“동맥 윗부분을 묶은 지혈대를 풀겠습니다.”
혈관 수술을 위해 팔 윗부분을 완전히 묶어 피를 틀어막은 상태였다.
긴장된 얼굴로 지혈대를 풀었고, 심장에서 동맥을 향해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
어떤 출혈도 없었다!
완벽히 혈관 봉합을 끝낸 것이다!
레이몬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고구마 녀석. 날 마음 졸이게 한 대가는 나중에 톡톡히 치르게 해주마!’
그렇게 성공적으로 수술이 끝났다.
* * *
「이 겁쟁이.」
엘무드는 꿈을 꾸었다.
그는 최악의 겁쟁이였다.
최고 명문 무가의 후계자로 태어나 검을 제대로 들지도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는 사실 겁쟁이가 아니었다.
「검이 싫어.」
그냥 검이 싫었다.
정확히는 사람을 향해 휘두르는 것이 싫었다.
스스로 검을 연마하는 건 즐거웠지만, 자신이 휘두른 검에 피가 튀고 누군가 다치는 건 싫었다. 끔찍했다.
하지만 얼마 전 그 생각이 바뀌었다.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사건이었다.
「레이몬드 님.」
엘무드는 아련하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