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268
#닥터 플레이어 268화
‘놈들을 서랜스 성에 묶어둔 후, 서랜스 성에 ‘죽음의 영토’를 소환하겠다. 그러면 놈들은 꼼짝 못 하고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겠지.’
죽음의 영토!
아크 메이지 격의 흑마법사만 사용 가능한 ‘궁극 등급’의 흑마법으로 말 그대로 일정한 범위를 죽음의 땅으로 만드는 거다.
‘지금 내 상태상 죽음의 영토를 쓰면 큰 무리가 되겠지만, 놈들을 잡으려면 어쩔 수 없어.’
이틀.
흑마법을 준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었다.
최악의 죽음이 강림할 터. 놈들은 곧 죽은 목숨이었다.
검은 어둠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 * *
일행은 선택의 기로에 빠졌다.
성민들을 구하기 위해 남느냐, 아니면 도주하느냐.
‘제길, 어쩌지.’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버리고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아 있으려니 무섭고.’
가장 큰 딜레마는 해볼 만할 것 같다는 거였다.
레이몬드는 성 밑을 바라보았다.
힘을 잃은 상태라는 추측이 맞는 건지 언데드의 숫자가 아주 많지는 않았다. 특히 상급 언데드는 한 명도 없었다.
일행이 도와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전력.
반대로 일행의 도움이 없으면, 이곳 성민은 모조리 죽임당할 거다.
문제는 검은 어둠의 꿍꿍이였다.
과연 저 조잡한 언데드 군단이 끝일까?
만약 검은 어둠이 뒤로 끔찍한 술수를 준비하고 있다면?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몰랐다.
같은 생각인지 일행은 말했다.
“위험해요. 성민들이 안타깝지만, 전하는 휴스톤 왕국의 미래.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어요.”
크리스틴이 대표로 냉정히 말했다.
‘마스터께서는 어떻게든 이곳 성민들을 살리고 싶어 하시겠지만.’
그건 그녀도 당연히 마찬가지다.
하지만 왕세자인 레이몬드의 생명이 더욱 우선이었다.
그때, 엘무드가 결연히 나섰다.
“주군, 만약 이들이 걱정된다면 제가 남아서 싸우겠습니다! 주군은 피하십시오!”
미엔도 같이 싸우겠다는 듯 냐옹 했고, 렌, 룬도 검과 지팡이를 들었다.
자신들이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레이몬드만은 피하게 하겠다는 의지였다.
‘……시끄러워, 이 바보들아. 더 심란하잖아.’
레이몬드는 팍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은 도망가고 저들만 남기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때, 가만히 잠자코 있던 쥬드 왕세녀가 뜻밖의 말을 하였다.
“스승님, 그리고 여러분. 제가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될까요?”
“……?”
다들 쥬드 왕세녀를 바라보았다.
쥬드 왕세녀는 하얀 안색으로 주먹을 움켜쥐고 있었다.
“스승님과 여러분께서는 당장 성을 떠나, 록타르 지방 옆에 있는 피한 성에 가서 지원군을 불러와 주세요.”
모두 눈을 크게 떴다.
“전하, 그 말씀은?”
“제가 이곳에 남아 성민들과 함께 싸우겠어요.”
“……!”
레이몬드가 놀라 말했다.
“하지만 제자 왕세녀님? 그렇게 하면?
“네, 알아요. 성민들과 함께 죽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전 카탈 왕국의 왕세녀예요. 저들은 나의 백성. 놔두고 홀로 떠날 수는 없어요.”
쥬드는 결연히 말했다.
‘이전의 나였다면, 감히 이런 생각을 할 수 없었겠지만.’
쥬드는 레이몬드를 바라보았다.
그와 함께한 짧은 시간.
그녀는 그의 헌신적인 모습을 보고 많은 걸 깨닫고 변하였다.
‘설사 죽더라도, 저들을 지키겠어.’
레이몬드가 지금껏 보여준 모습처럼.
이번엔 그녀가 싸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레이몬드와 일행들을 함께 위험에 처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이건 카탈 왕국의 일. 이분들을 위험하게 할 수는 없어.’
특히 레이몬드는 대륙을 밝힐 빛이 될 분이다.
그러니 성민들을 위해 위험을 감수할 사람은 자신 혼자면 충분했다.
“제가 어떻게든 버텨 볼 테니, 스승님과 여러분께서는 지원군을 불러와 주세요.”
그런 쥬드의 말에 일행은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하지?’
레이몬드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대로 떠나면, 쥬드 왕세녀는 죽게 될 것이다.
그러면 드래곤 하트를 얻으려던 그의 계획도 끝이었다.
또한, 서랜스 성에 사람들, 1,000여 명에 달하는 생명도 목숨을 잃게 될 거다.
끔찍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감정적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야.’
목숨이 걸린 일이다.
‘어떻게 하지?’
고민하던 차, 한 가지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잠깐. 지금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속성이 있잖아.’
레이몬드는 속으로 외쳤다.
‘일시적 전직! 군의관 클래스로!’
군의관 클래스 재전직!
일전에 받은 특전 중 하나로 전쟁, 재난 상황 시 특수 클래스로 일시 재전직이 가능했다.
[스킬 포인트를 300포인트 소모합니다!] [일시적으로 ‘군의관’ 클래스를 겸임합니다! ‘전장의 수호 의사’ 속성이 발현됩니다!]‘좋았어.’
전장의 수호 의사!
드로튼 왕국과의 전쟁 때 톡톡히 도움을 받았던 속성이었다.
과연, 기대했던 효과가 나타났다.
[위기 상황에 능력 이상의 힘을 발휘합니다!] [지력 스탯이 10 오릅니다!] [냉철한 판단이 가능해집니다!]지력 상승.
그리고 냉철한 판단.
두 효과가 조화를 이루니, 큰 효과를 발휘했다.
두려움에 좁아진 시야가 넓어지며, 마치 전장의 지략가가 된 것처럼 차분하게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 끙끙대고 있을 게 아니야. 검은 어둠의 속내를 파악해야 해. 그래야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어.’
과연 지금 상황에서 검은 어둠이 노리는 게 뭘까?
‘어차피 저 언데드 군단으로 우리를 해칠 수 없어. 그렇다면, 검은 어둠의 진짜 속셈은?’
레이몬드는 이곳에 오기 전, 조사했던 내용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반란 때 검은 어둠이 부렸던 술수들을 촤르륵 떠올린 것이다.
그리고 곧 레이몬드의 눈이 커졌다.
‘설마? 검은 어둠이 노리는 진짜 꿍꿍이가?’
레이몬드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확실하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가 떠올린 추측이 맞는다면?
‘그렇다면 어쩌면 검은 어둠에게 큰 타격을 줄 수도 있어.’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머릿속에서 저울 침이 째깍거렸다.
도박을 해보느냐, 아니면 도주하느냐.
결론을 내린, 레이몬드는 말했다.
“미엔, 피한 성으로 가줘. 네가 가장 빠르니 지원군을 불러와 줘.”
“……!”
“제자 왕세녀님과 함께 나도 성을 지키겠어.”
다들 깜짝 놀라 레이몬드를 바라보았다.
레이몬드는 이를 악물었다.
‘내 추측이 확실하진 않아. 하지만 충분히 걸어볼 만한 가치가 있어.’
그는 무턱대고 이런 결정을 내린 게 아니다.
얻을 이득을 계산하고 결정을 내린 것이다.
‘내 추측이 맞으면, 난 검은 어둠에 승리한 영웅이 될 수 있어.’
무엇보다 1,000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승부를 걸어볼 가치가 충분했다.
그렇게 레이몬드는 사람들을 지켜내기로 했다.
* * *
이후 공성전이 시작되었고,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키아아악!
언데드들이 끔찍한 소리를 내며 성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해골, 시체 괴물들이 성벽에 매달리는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지만, 성민들도 만만치 않았다.
다들 분연히 용기를 내고 일어나 언데드들에게 맞섰다.
“싸우자! 성자님이 우리와 함께하고 계셔!”
“레이몬드 성자님 만세! 쥬드 왕세녀님 만세!”
물론 그들이 이런 용기를 낼 수 있는 건 레이몬드와 일행 덕분이었다.
특히 쥬드.
그녀의 활약이 눈부셨다.
“모두 물러서지 마십시오! 제가 함께 싸우겠습니다!”
“와아아!”
그녀는 한 손에 궁을 들고 성벽 위에서 가장 앞장서 마물들과 맞섰다.
짧은 은발을 흩날리며 화살을 날리는 모습은 마치 어린 장수를 연상시켰다.
‘……난 성벽 근처로 가기도 무서운데. 왕세녀의 자질을 타고났구나.’
레이몬드는 감탄해 고개를 끄덕였다.
쥬드는 왕위 후계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
백성을 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들을 위해 앞장서 나설 줄 알았다.
‘사람들을 이끄는 지도력도 뛰어나.’
그녀가 앞장서 싸우니 감동한 백성들도 힘을 내어 마물에 맞서고 있었다.
또한, 성벽에는 쥬드만이 있는 게 아니었다.
그녀만큼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는 여인이 있었다.
크리스틴이었다.
그녀도 쥬드와 마찬가지로 리더의 자질을 타고난 터.
뛰어난 검술로 성벽을 기어오르는 마물들을 베는 한편, 사람들을 이끌어 마물과 맞서게 하였다.
그런 두 여인의 활약은 하늘에서 아름다운 발키리들이 가련한 사람들을 위해 강림한 듯했다.
“감사해요, 공녀.”
잠깐 틈이 났을 때, 쥬드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크리스틴에게 다가왔다.
크리스틴은 고개를 저었다.
“별말씀을요.”
“저 사실 공녀가 부러웠어요.”
“네?”
쥬드는 옅게 웃었다.
“이전 소문을 들었을 때, 스승님 옆에서 멋지게 활약하는 공녀가 너무 부러워 동경하였거든요.”
뜻밖의 이야기였다.
쥬드는 웃는 얼굴 그대로 말했다.
“언젠가 저도 공녀처럼 되고 말 거예요. 스승님의 모든 걸. 특히 환자를 위하는 마음을 배워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거예요.”
크리스틴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느낌이지만, 왠지 그녀가 자신을 쫓아오는 게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한편, 뒤에서 그 말을 들은 레이몬드는 얼떨떨한 얼굴을 하였다.
‘……이미 둘 다 환자를 위하는 마음은 날 넘은 것 같은데? 난 두려워 앞에 나서지도 못하고 있다고. 무서운 제자님들.’
그런 레이몬드의 마음도 모르고 두 여인은 이렇게 말했다.
“반드시 언제가 스승님을 최고로 본받는 제자가 될 거예요.”
“……최고라. 그건 쉽지 않은 일일 것 같군요. 저 역시 마스터를 본받기 위해 발버둥 치는 건 마찬가지인지라.”
그렇게 두 여인은 선의의 경쟁을 하기로 하였고, 서로에게 자극받아서인지 더욱더 열심히 백성을 위해 나섰다.
또한, 활약하는 이들은 그들뿐이 아니었다.
엘무드.
그는 사람들을 이끄는 지도자 타입은 아니었지만, 압도적인 검술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둘째라면 서러울 열혈 바보!
‘주군! 제가 주군을 대신해 싸우겠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분연히 나서 마물들을 격퇴하였고, 룬, 렌도 각자 실력을 발휘해 마물과 맞섰다.
그러면 레이몬드는 뭐 하고 있느냐고?
레이몬드 또한 나름대로 역할을 했다.
멀리서 성궁을 치켜든 채 사기를 북돋아 준 거다.
물론 들고 있기만 했고, 무서워서 앞에 나서서 싸우지는 못했지만, 굉장히 효과적이었다.
“성자님이 우리를 지켜보고 계셔!”
“용기를 내자!”
사람들은 성궁의 주인공 레이몬드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용기백배했다.
그뿐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