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445
#닥터 플레이어 445화
약간의 실랑이 끝에 레이몬드는 ‘최고 프리셉터’란 직함을 가지게 되었다.
“프리셉터가 정확히 무엇입니까?”
사전적 의미는 ‘인도자’, ‘교훈자’같이 아랫사람을 이끄는 이를 뜻한다.
“마탑의 전설입니다. 마탑에 도탄에 빠졌을 때, 마탑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줄 ‘프리셉터’가 나타난다는 전설이지요.”
“…….”
처음 듣는 전설이다.
“어쩌면 전 폐하께서 그 전설의 주인공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드는군요.”
‘……아니거든.’
어쨌든 호칭에서 알 수 있듯, 막대한 권한이 주어진 직위였다.
여러 복잡한 권한이 많았지만, 종합하자면 마탑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권한!
그 외 다른 의무는 거의 없어 딱 레이몬드에게 알맞은 직위였다.
‘흐흐, 내가 바라던 대로야. 단물만 빨아먹어야지.’
레이몬드는 만족해 함박웃음을 지었다.
어쨌든 그렇게 마탑에서의 일을 해결하고, 레이몬드는 셔트폰에 올랐다.
상황이 급해 마탑에 한가하게 머물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최고 프리셉터’ 직위를 공식적으로 받는 건 차후로 미루기로 하고, 황도로 돌아왔다.
그런데 황궁에 돌아온 레이몬드는 고개를 갸웃했다.
분위기가 이상한 것이다.
다들 딱딱히 굳은 얼굴로 레이몬드를 맞았다.
레이몬드는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무슨 일입니까? 혹시 기어스 왕국군이?”
이제 슬슬 교전이 시작될 때가 되었다.
전선에서 사달이 난 건가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아직, 교전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피오네 왕녀가 나서 말했다.
“그런데 어째서?”
“기어스 왕국에서 폐하를 찾아온 손님이 있어요.”
레이몬드는 의아한 얼굴을 하였다.
전쟁 중인 적대국에서 손님이라니?
“루드비히가 사신을 보낸 겁니까?”
“아니, 그게 아니에요.”
고개를 갸웃하는 레이몬드에게 믿을 수 없는 말이 들려왔다.
“패왕 노르기언이 보낸 밀사예요.”
* * *
패왕 노르기언.
기어스 왕국의 국왕으로 철의 제국과 맞서 어마어마한 군공을 세운 피의 군주였다.
기어스 왕국이 지금 같은 최강대국이 되는 데 가장 커다란 공을 세운 위인.
하지만 하늘의 운명은 공정해, 그런 거인조차 병환을 피하지는 못했다.
‘병석에서 누워 오늘내일하는 처지라고 들었는데. 그래서 동생인 루드비히 대공이 기어스 왕국을 대리 통치하고 있었던 거고. 그런데 왜 내게 밀사를?’
레이몬드는 놀라 패왕 노르기언이 보냈다는 밀사를 만났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레이몬드는 밀사의 모습을 보고는 흠칫하였다.
옷에는 흙먼지가 가득했고, 여기저기 상처가 가득한 몰골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커다란 고초를 겪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대가 노르기언 국왕이 보낸 밀사이오?”
“그렇습니다, 폐하. 국왕 전하의 명을 받고 왔습니다.”
“귀국과 짐은 전쟁 중이오. 그런데 무슨 용무로…….”
그런데 밀사가 생각지도 않은 외침을 내질렀다.
“이 전쟁은 국왕 전하께서 뜻한 바가 아닙니다! 이 모든 건 루드비히 그 간악한 자의 음모입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밀사는 레이몬드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제발, 루드비히의 손에서 국왕 전하를 구해주십시오!”
“……!”
레이몬드는 밀사의 말에 당황했다.
갑자기 적국의 국왕이 구해달라니?
“아니, 그게 무슨……?”
“국왕 전하께서는 단순히 병환에 걸리신 게 아닙니다! 바로, 루드비히 그 악적의 수작에 당해 몸이 망가지신 겁니다!”
“……!”
생각지 못한 비사에 장내가 술렁였다.
밀사는 처참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심지어 루드비히 그자는 국왕 전하의 몸을 망가뜨린 것에 그치지 않고,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끔찍한 처지로 만들어 지금껏 목숨만 부지하게 해놓았습니다.”
대략적인 상황을 알아들은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끔찍한 일이었다.
“그러면 지금 노르기언 국왕은?”
“원래 아국의 왕궁 가장 깊은 심처에 루드비히 놈의 감시하에 유폐되어 있었는데, 이번에 우리 로열 나이츠들이 결사대로 나서서 국왕 전하를 구출해 내었습니다. 다행히 천운이 따라 추적을 따돌리는 데 성공해 안전한 곳에 국왕 전하를 모신 상태입니다.”
“안전한 곳이면?”
“외부에 노출된 적 없는 고대 유적입니다.”
고대 유적.
자체적으로 은폐 효과를 지닌 경우가 많아 정확한 위치를 아는 이가 아니면, 발견할 수 없어 몸을 숨기기 적격이었다.
“몸을 피했으면, 이제 노르기언 국왕이 다시 전면으로 나서 왕권을 찾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레이몬드가 물었다.
루드비히가 기어스 왕국의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건 패왕 노르기언이 부재해서였다.
패왕 노르기언이 다시 얼굴을 드러내면, 루드비히는 산산이 몰락하게 되리라.
“국왕 전하께서는 지금 죽어가고 계십니다.”
“……!”
“루드비히, 그자는 국왕 전하의 목숨이 끊이지 않게 하려고 모종의 약물을 투약하였는데, 왕성에서 탈출하며 그 약이 끊겨, 현재 기식이 끊기기 직전이십니다.”
밀사는 고개를 숙였다.
“제발 부탁합니다! 폐하밖에 희망이 없습니다! 부디 당신의 빛으로 국왕 전하를 구해주십시오!”
장내가 침묵에 잠겼다.
어마어마한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만약 노르기언을 구해낼 수 있다면, 전쟁을 피해 없이 마무리 지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동시에 까마득하게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패왕 노르기언을 살리려면, 내가 기어스 왕국 안으로 잠입해야 해.’
상황을 들었을 때, 노르기언을 데리고 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를 살리려면 레이몬드가 직접 적국의 한복판으로 들어가야 했다.
얼마나 위험할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어쩌지?’
레이몬드는 마른침을 삼켰다.
* * *
그때, 기어스 왕국.
“노르기언 국왕의 행방은 찾았습니까?”
루드비히가 서늘한 음성으로 물었다.
“아, 아직입니다. 죽여주십시오.”
루드비히의 수하가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노르기언이 탈주한 건 예상치 못한 사고였다.
노르기언을 감시하던 책임자가 하얗게 질려 루드비히 앞에서 죄를 고했다.
‘제길,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그렇지 않아도 상황이 좋지 않은데.’
전쟁 선포 후, 상황은 루드비히의 뜻과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머지 십국이 단번에 들고 일어선 것은 시작일 뿐, 인접한 철의 제국도 갑작스레 수상쩍은 움직임을 보여 쉽사리 국경의 병력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거기에 레이몬드 놈이 마탑에서 벌인 일까지.
아직 제대로 싸움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손발이 꽁꽁 묶이고 있었다.
‘제길.’
루드비히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감정을 다스렸다.
“됐습니다. 이미 일이 벌어진 일 어쩔 수 없지요.”
노르기언을 놓친 수하는 뜻밖이란 얼굴을 했다.
예상외로 잠잠한 반응이었던 탓이다.
‘어차피 노르기언은 곧 죽을 테니까.’
루드비히는 차갑게 생각했다.
노르기언이 지금껏 목숨을 유지하고 있었던 건, 루드비히가 투약하고 있었던 약물 때문이었다.
그 약이 끊겼으니, 오래 버티지 못하고 사망할 게 분명했다.
‘그러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던 중 몸이 굳었다.
‘설마 레이몬드 놈이 또 무언가 기적을 일으키는 건 아니겠지?’
레이몬드 놈이라면, 루드비히가 썼던 약과 같은 효과의 약을 사용할 수 있을 수도 있었다.
‘……아니야. 그래도 이미 늦었어. 지금쯤 상태가 더욱 악화했을 테니, 이제는 그 약으로도 생명을 유지할 수 없어.’
루드비히는 불안감을 잠재웠다.
도리어 루드비히는 섬뜩한 계획을 떠올렸다.
‘레이몬드 놈은 노르기언을 구하러 올 가능성이 높아. 그때, 놈을 잡으면 모두 끝이야.’
레이몬드! 레이몬드!
모든 일의 원흉이자, 그의 가장 큰 대적.
지금 기어스 왕국과 맞서려고 일어난 국가들은 모두 레이몬드를 중심으로 일어난 것이니, 레이몬드만 잡으면 모든 상황이 끝이었다.
‘과연 놈이 오려고 할까?’
루드비히는 곧 답을 내었다.
‘당연히 오려고 하겠지. 노르기언을 살리기만 하면, 이번 전쟁을 어떤 피도 흘리지 않고 승리로 이끌 수 있을 테니.’
루드비히는 레이몬드를 잘 안다.
남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은 어떤 희생을 하든 아랑곳하지 않을 숭고한 빛.
그런 놈이 백성들의 피를 피할 수 있는 이번 기회를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노르기언 국왕이 도주한 남동(南東) 지방에 촘촘한 포위망을 짜겠습니다.”
“아니, 그러지 말도록. 탐색은 하되, 빈틈을 만들어.”
“각하?”
수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반문했다.
‘그래야 놈이 올 테니.’
만약 지나친 경계를 하고 있으면 놈이라도 노르기언을 살리는 걸 포기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남들을 위해서라면 목숨 아까운 줄 몰라 하는 놈이라도, 무모한 짓은 벌이려 하지 않을 테니.
“되레 남중(南中) 지방에 군사를 풀어. 우리가 노르기언의 행방을 정확히 모르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남중 지방.
노르기언이 도주한 곳과 옆에 자리한 곳이었다.
레이몬드 놈의 경계를 늦춤과 동시에 놈이 덫에 걸려들 시 곧바로 포위망을 만들기 위한 포석이었다.
‘이걸로 끝이다.’
루드비히는 시커먼 미소를 지었다.
* * *
한편, 황도에서는 격렬한 외침이 오고 가고 있었다.
“절대 안 됩니다!”
“폐하께서 기어스 왕국으로 향하시겠다니!”
“이번만은 재고해 주십시오!”
“맞습니다. 절대 허락할 수 없습니다!”
다들 레이몬드를 필사적으로 말리고 있었다.
문제는,
레이몬드는 당황해 눈을 끔뻑거렸다.
‘……나 갈 생각 없는데?’
레이몬드 본인이 갈 생각이 없다는 것!
그런데 제자들과 밑의 사람들은 당연히 레이몬드가 갈 거로 생각하고 저런 필사의 만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미쳤어? 내가 기어스 왕국에 가게?! 어떤 위험이 있을 줄 알고! 내 목숨은 소중하다고!’
아직 부귀영화를 누리지도 못했는데, 죽을 수 없었다.
레이몬드는 딱 잘라 말했다.
“안 갈 겁니다.”
“……폐하?”
레이몬드는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잠시 아련한 얼굴을 하였다.
“물론 안타깝긴 하지만, 전 이제 일개 힐러가 아닌 황제.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데, 갈 수는 없지요.”
그런데 제자들과 밑의 사람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레이몬드가 안 간다고 하자, 안도는커녕 더욱 심각한 얼굴을 하였다.
엘무드가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폐하, 다 압니다! 겉으로 그렇게 이야기해 우리를 안심시킨 후, 또 위험을 감수할 생각이신 것이지요?!”
“냐옹, 냐옹!”
“……이 바보. 왜 당신은 항상 모든 걸 혼자서 짊어지려고…….”
미엔, 크리스틴 등도 말했고,
“이미 마음을 굳히시다니. 하아. 이를 어쩐단 말인가?”
“사람이 너무 빛나도 문제라더니.”
황도의 밑의 사람들은 자포자기한 얼굴을 하였다.
‘……아니, 아니거든? 왜 그렇게 받아들이는 거야?’
레이몬드는 당황해 입만 뻐끔거렸다.
분위기가 안 간다고 하면 도리어 실망할 듯한 분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