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118
01121 1121화
즐겁게 웃고 떠들며 한숨 돌리고 나니 어느덧 떨리던 몸도 모두 진정되고,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슬슬 퇴근하시죠.”
태수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송현미 간호사가 얼른 물었다.
“축하파티 안 해요? 복귀에 첫 수술까지 한 번에 끝냈잖아요.”
“제 침대가 그리운데요.”
“뭘 또 빼고 그래요. 나이도 나보다 훨씬 어린 사람이.”
“푹 자고 싶습니다.”
그때였다.
띠리릭.
휴대폰 소리에 김혁권이 힐끔 액정을 보더니 전화를 받았다.
“왜요……. 네? ……바로 갑니다!”
급하게 통화를 마친 김혁권이 모두에게 외쳤다.
“emergency(응급)!”
“어디요?”
“따라와요!”
김혁권이 부리나케 휴게실을 뛰어나갔다.
다들 묻지 않았다.
풀어졌던 몸을 잔뜩 긴장시킨 태수와 모두는 비장한 표정으로 김혁권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방향이 이상했다.
신속대응센터 2층에 위치한 휴게실을 나가서 바로 아래로 내려가면 응급실이었다.
김혁권이 뛰는 방향은 2층 현관이었다.
신속대응센터는 1층과 2층에 모두 외부와 출입할 수 있는 현관이 있었다.
마치 공항처럼 2층에도 차가 올라올 수 있는 구조였다.
응급 환자가 이송되어 올 때 곧바로 수술에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거였다.
그걸 직감한 의료진들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이 시간에 다른 병원에서 환자가 이송되어 온다는 의미인 탓이다.
그렇게 김혁권의 뒤를 쫓아 현관 밖으로 나간 직후였다.
2층 현관 앞에는 몇 대의 차가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그 앞에는 박성민과 성재경, 공우혁과 다른 의료진들이 외출복 차림으로 서 있었다.
다른 의사들을 바라본 태수의 눈이 크게 떠졌다.
여성현과 조현민, 그리고 서강재도 서 있었고, 함은선 간호사들도 같이 자리하고 있었다.
서강재야 당연히 신속대응센터로 돌아오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여성현과 조현민은 진짜 의외였다.
태수가 놀라움을 누르고 인사할 틈도 없었다.
박성민이 모두를 지휘하듯이 빠르게 말했다.
“여기서 지금 인사할 시간은 없고, 빨리 차에 타!”
“도대체 어딜 가는데요?”
“대참사야. 일단 타라고. 시간 없다니까!”
박성민이 저렇게 다급하게 얘기할 때는 정말 큰 문제였다.
게다가 다른 의료진들도 비장한 각오로 서 있었다.
심각성을 눈치챈 태수와 모두는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30분 후.
태수는 지금 상황을 황당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넓은 식당에 다들 앉아 있는 모습 때문이었다.
“자자, 고기 굽고. 거기 술 부족하면 얼른 말하고.”
박성민이 식당 곳곳을 누비며 마치 주인처럼 행세했다.
태수는 그의 모습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대참사라고 하시더니.”
태수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반대편에 앉아 있던 백성현 흉부외과장이 말했다.
“박 선생이 대참사라고 그랬다고?”
“네. 진짜 얼마나 긴장하고 왔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당하고도 또 속다니, 최 선생도 참 순진해. 한 잔 받지.”
백성현 흉부외과장이 술병을 잡아 태수가 얼른 만류했다.
“아닙니다. 제가 먼저.”
“받으라니까.”
“그럼.”
태수가 양손으로 술잔을 내밀자 시원한 맥주가 차올랐다.
술을 따르며 백성현 흉부외과장이 말했다.
“오늘같이 뜻 깊은 날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서 내가 한잔하자고 했어.”
“감사한데 인원이 너무 많은 거 아닙니까?”
대충 둘러봐도 20여 명 가까이 되었다.
자신 때문에 마련한 자리라고 하니 태수는 더더욱 부끄러워졌다.
그러나 백성현 흉부외과장은 개의치 않고 말했다.
“다들 최 선생 보고 싶었다고 따라온다는데 어떻게 내가 거절하나.”
“소문낸 건 선배님이시겠네요.”
태수가 말하는 사이 박성민이 소주병을 들고 다가왔다.
“이 자식이. 맥주가 뭐야. 이런 기본이 안 되어 있는 새끼 같으니라고.”
“과장님이 따라 주신 건데요.”
“이야, 어쩐지 맥주가 때깔부터 황금빛인 게 내가 딱 본 순간, 이건 은총받은 맥주구나 싶었다니까.”
말의 앞뒤가 완전히 달라졌지만 박성민은 그게 당연하단 표정이었다.
그런 말투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태수와 백성현 흉부외과장도 마찬가지였다.
태수가 박성민의 술잔에 술을 채우며 자그맣게 타박했다.
“너무 많이 데려오신 거 아닙니까?”
“나도 이렇게 많이 올 줄은 몰랐다고.”
“다 말씀하신 거 아닙니까?”
“내 입이 무슨 모터가 달려서 같은 얘기를 사람 쫓아다니면서 나불나불거릴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뭐야?”
“아니라고 대답은 해 드리겠지만, 좌우간 어떻게 된 겁니까?”
태수가 은근슬쩍 넘어가자 박성민이 살짝 째려보며 얘기했다.
“따지고 싶은 말이야. 책 한 권으로 부족하니까 일단 넘어가고, 난 조현민 선생한테만 얘기했어. 너 보건의 할 때부터 알고 지냈잖아. 너랑 한잔한다니까 바로 과장님한테 비비던데.”
“그림이 그려지네요. 조 선배가 성 선배한테 얘기했고…… 그다음부터는 줄줄이 딸려 온 거고요.”
“내 생각도 그렇긴 해. 서강재는 내가 직접 부른 거고.”
박성민이 순순히 인정하자 태수도 더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다른 건 따질 게 있었다.
“그런데 응급이라고 하시면 안 되죠. 거기다 대참사라니요.”
“너는 이 불판에서 지글지글 익어 가는 고기들의 거룩한 희생을 알지 못하는 것이냐? 우리에게 오기까지 이분들이 얼마나 끔찍한 일을 겪으셨는지…….”
박성민의 말도 안 되는 이론이 이어지려 하자 백성현 흉부외과장이 제지했다.
“한잔할까?”
“……그럼요. 과장님, 제가 또 그 말씀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다들 술잔 채웠냐!”
박성민이 크게 소리치자 모두 언제 웃고 떠들었냐는 듯이 바로 대답했다.
“네!”
“준비됐답니다, 과장님.”
박성민의 말에 백성현 흉부외과장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우선 최 선생의 복귀를 축하하고, 여기 자리한 모든 의료진들이 환자뿐 아니라 모두에게 존경받길 바라지.”
“감사합니다.”
“그럼 들자고.”
백성현 흉부외과장의 말이 끝나자 다들 술잔을 높이 들며 소리쳤다.
“마셔!”
술자리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백성현 흉부외과장과 몇 잔 술을 마신 태수는 자리를 옮겨 보건의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성재경이 얼른 자리를 만들며 태수를 끌어당겼다.
“앉아. 여기 술도 받고.”
그가 술을 따라 주는 사이 태수는 모두를 둘러봤다.
성재경, 조현민, 여성현, 유병태, 공우혁까지.
그들을 한 번 더 본 태수는 궁금한 것부터 바로 물었다.
“도대체 다들 어떻게 함께 여기 있는 겁니까?”
“조건이 좋았으니까.”
“그거야 그렇긴 하겠지만.”
“이유야 어찌 되었든 다시 같이하게 된 거잖아. 그거면 된 거 아닌가?”
공우혁의 물음에 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나이로 따지면 나나 성 선생, 조 선생이 선배지만, 성호종합병원에서는 최 선생이 선배잖아. 우리가 잘 봐 달라고 해야지. 그래서 오늘 여기 온 거고.”
“무슨 말씀을요.”
“서로 길게 얘기할 거 뭐 있겠어? 일단 마시고 보자고.”
“그렇죠. 이럴 때는 또 술이죠.”
태수가 화답하며 술잔을 들자 다들 같이 마주쳤다.
어떤 이유에서 여기로 왔는지는 모르지만 앞으로도 함께할 생각에 태수는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한편으로 생각했다.
‘이거 무슨 양파도 아니고.’
하루 종일 놀랄 일이 끊이지 않았다.
이젠 다 놀란 거 같아서 그건 좀 안심이었다.
다음 날.
태수는 살짝 쓰린 속으로 출근길에 올랐다.
머릿속으로 어제 일을 떠올렸다.
다들 반가웠고, 술자리까지 함께해서 더욱 고마웠다.
서강재와 따로 오래 얘기하진 못했지만 그건 차츰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출근길에 오른 태수는 의국으로 향하지 않고 신속대응센터 중환자실로 향했다.
태수는 의국 회의에 참여해야 할 의무가 없었다.
과장들의 말대로 화이트 엔젤팀을 조직하는 게 급선무였기에 행동에 자유가 보장되어 있었다.
물론 단점이라면 시도 때도 없이 응급 호출을 받을 거란 것이다.
태수는 언제나 그런 생활을 해 왔기에 그게 특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신속대응센터에 들어서자 오전이라 그런지 조금 한가했다.
그러다 보니 어제 미처 인사하지 못한 의사와 간호사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응급의학과장도 만나 차 한 잔을 하며 눈도장도 찍었다.
솔직히 아는 의사들보다 모르는 의사들이 더 많았다.
태수가 이런저런 일로 얼굴을 많이 알렸기에 상대가 먼저 다가오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많이 잊혔지만 의료진들은 다른 모양이다.
신속대응센터 2층 중환자실에 도착한 태수는 어제 수술한 환자부터 찾아갔다. 그러나 환자가 깊이 잠들어 있어 대화를 하지 못했다.
대신 김아름에게 경과를 들을 수 있었다.
“밤새 크게 문제는 없었고요. 기흉이 한차례 발생해서 드레인을 연결해 놓았어요.”
“기흉 원인은?”
“수술 후 징후라서 폐 내부에 압력이 갑자기 높아졌을 가능성을 염두에 뒀는데, 그 이상은 잘 모르겠어요.”
김아름의 대답에 태수는 자그마한 미소를 지었다.
“정답이야. 외과 공부도 꾸준히 한 거 같네.”
“같이 붙어 있다 보면 아무래도 얘기를 많이 하게 되어서요.”
“이거 인턴 때부터 지금까지면…… 장기 커플인데. 민수가 아무런 말도 안 해?”
태수가 사적인 대화로 넘어가자 김아름이 슬쩍 주변 눈치를 보고 자그맣게 말했다.
“안 그래도 보건의 끝나면…….”
“축하해.”
“감사합니다. 그런데 진짜 아무도 몰라요. 그러니까…….”
“내가 그런 쪽 입은 좀 무거워.”
“믿을게요.”
태수는 김아름의 쑥스러워하는 모습에 더욱 짙게 미소 지었다.
가장 친한 친구의 좋은 소식이라 더 기분이 좋았다.
짧게나마 그 생활을 경험한 태수이기에 지금이 얼마나 행복하고 설렐지도 충분히 짐작이 갔다.
김아름과 기분 좋게 헤어진 태수는 병동 건물이기에 일단 위로 올라갔다.
어제 인사하지 못한 전문의들이 양쪽 의과를 합치면 너무도 많았다.
후배 된 입장이니 태수가 움직이는 게 옳았다.
태수는 그때부터 안면이 있는 선배와 그렇지 않은 선배들을 두루 만날 수 있었다.
이정민 교수가 흉부외과 부과장으로 역임 중이었고, 의외로 대전에 있어야 할 신창용이 서울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 외에도 신속대응센터에서 인연을 맺은 선배들이 몇몇 진료실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 외에는 모두 모르는 의사들이었다.
태수의 이야기가 이래저래 세상에 알려진 적이 있어서 그런지 다들 호의적이었다.
진료 시간 중이라 짧게 짧게 대화하고 다음에 자리를 마련하잔 얘기로 일단 인사는 마무리를 지었다.
그 후에 태수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병동 건물 외과 간호사실이었다.
병동 응급도 태수가 맡기로 했기에 어떤 환자들이 어떤 증세로 입원해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태수는 간호사실에 비치된 컴퓨터를 통해 EMR을 집중적으로 확인했다.
널찍한 모니터와 빠른 속도가 일할 맛 나게 했다.
그러면서 어제 황경석과 나눴던 이야기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외과에 입원한 환자들 수는 대략 150명 정도 됐다. 그중에 ICU(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의 수는 대략 30명 남짓이었다.
외과에 할당된 전체 병상에 비하면 반 정도 되는 수치였다.
외과뿐 아니라 흉부외과도 마찬가지였고, 다른 의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전제 2천 병상 중에 실제로 이용되고 있는 병실은 반 정도라고 봐도 좋았다.
태수가 그 수치들을 보는 사이였다. 김혁권이 커피 한 잔을 내밀며 말했다.
“병원 크기에 비해서 환자 수가 진짜 부족하긴 하죠.”
“그러네요.”
“내가 좀 이상한 건지 모르겠는데, 나 같으면 이 병원에 올 거 같거든요. 최신식 건물과 편의성을 갖췄지, 의사들도 나름 실력 좋지. 그런데 도대체 뭐가 문제야.”
“전 알 거 같은데요.”
태수의 말에 김혁권이 의아하게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