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183
01186 1186화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고, 출근 준비를 마친 태수는 신발을 신고 있었다.
뒤에는 아이들만 배웅 나와 있었다.
툭툭.
신발 끝을 가볍게 치며 준비를 마친 태수가 아이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 간호사님은 새벽에 가셨다고?”
“네. 저희도 문자 남기신 거 보고 알았어요.”
“그래. 진료 시간 맞춰야 하니까 민수도 급했겠지. 그건 그렇고, 여기.”
태수가 품에서 봉투를 꺼내 주자 아이들이 질색했다.
“괜찮아요. 저희도 돈 있어요.”
“자식들이. 삼촌이 오랜만에 주는 용돈인데 손 무안하게. 미성아.”
태수가 부르자 주미성이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태수는 아예 주미성의 손에 봉투를 쥐여 주며 말했다.
“맛있는 거 먹고, 재밌는 거 구경하고, 사고 싶은 거 다 사고.”
“네.”
“부족하면 언제든지 말해. 삼촌이 같이 못 놀러 가서 미안해서 주는 거니까 꼭 그래야 된다.”
태수가 확답을 요구하자 주미성이 깊숙이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자식이. 언제부터 우리가 그런 딱딱한 사이였다고.”
“헤헤.”
“웃기는. 자, 그럼 나도 출근한다. 오늘 들어올지, 내일 들어올지 모르지만 재밌게 놀고. 보고 싶으면 놀러 오고.”
“네!”
놀러 오란 말에는 이구동성으로 씩씩하게 대답하자 태수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집을 나섰다.
성호종합병원에 도착한 태수는 우선 화이트엔젤팀 의국으로 향했다.
안에는 조금 피곤한 얼굴의 브레드 김이 홀로 자리하고 있었다.
손을 번쩍 든 브레드 김이 먼저 말했다.
“왔어?”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들어가서 쉬셔야죠.”
“얼굴보자마자 보내려고 그래.”
“그런 건 아니고요. 주말 사이에 특별한 일 있었습니까?”
태수가 묻자 브레드 김이 태블릿 PC를 들고 다가왔다.
“이거 이제 익숙해져서 아주 편해. 이걸로 보면서 얘기하자고.”
“저야 좋죠. 음료수 한잔하시겠습니까?”
“아니. 믹스 커피. 진하게.”
“앉아 계세요. 준비해서 가겠습니다.”
태수의 말에 브레드 김은 고개를 끄덕이며 소파 쪽으로 향했다.
이내 커피를 가져간 태수와 브레드 김이 태블릿 PC를 보며 인수인계를 시작했다.
주말 사이에도 역시 사건 사고가 많았다.
여러 환자들에 대한 얘기가 오간 후, 브레드 김이 커피를 마셨다.
“음, 역시 피곤할 때는 이게 최고야.”
“그보다 주말 사이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수술만 여덟 건이었다니요.”
“그래도 아주 난감한 환자가 없어서 다행이었지. 그리고 다들 적극적으로 대처해서 큰 문제가 작아진 경우도 많았고.”
“그 얘기는 다시 들어도 기분 좋네요.”
태수의 말에 브레드 김이 힐끔 쳐다봤다.
“그게 다 캡틴 때문이잖아.”
“또 접니까?”
“그럼. 오프 직전에 진행한 아기 수술 때문에 레지던트들뿐만 아니라 전문의들도 상당히 많이 자극받았어. 다들 주말도 없이 신속대응센터나 각 의과에서 일하는 중이고.”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좋은 일이죠. 그보다 브레드 김에게 조금은 좋은 소식이 있을 거 같은데요.”
태수의 말에 브레드 김이 의아하게 바라봤다.
“무슨 좋은 소식?”
“이선정 간호사가 조만간 올라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간호사가? 아이들은?”
“당연히 애들 때문이죠. 자세한 건 결정되면 다시 말씀드리겠지만, 아마 이 간호사님이 이쪽으로 오는 건 거의 확실해진 거 같습니다.”
“그럼 캡틴은 김 간호사, 닥터 정이 아직 없으니까 닥터 박을 송 간호사가 집중 보조해 줄 거고, 난 이 간호사인가?”
브레드 김의 물음에 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사실은…….”
“닥터 박한테 대충 들었어. 이 간호사가 온다면 나야 좋지. NGO 스타일이라서 호흡도 잘 맞는 편이고.”
“그런데 이젠 진짜 특별한 일 없으면 계속 여기 계시는 거죠?”
태수의 물음에 브레드 김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적인 전쟁이 나서 NGO가 모두 소집되지 않는다면 거의 여기 있는다고 봐야지.”
“그럴 일은 없으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제임스가 캡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라고 했는데, 내가 있는 게 좋아할 일만은 아닐 거야.”
“제임스의 감시자라면 당연히 환영해야죠. 계속 지켜봐 주십시오.”
태수가 넉살 좋게 인사하자 브레드 김도 푸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브레드 김을 퇴근시킨 후였다.
태수는 주말 사이 수술한 환자들에 대한 경과를 한 번 더 살펴봤다.
그리고 신속대응센터로 내려가 의료진들과 인사를 나누고, 화이트엔젤팀 레지던트들을 지도하며 환자들을 살폈다.
오전을 그렇게 보낸 태수는 오후가 되자 자신의 진료실로 향했다.
주말 사이에 많은 일이 있어서 그런지 오랜만에 가는 것 같았다.
복도를 걸어가던 중이었다. 저쪽에서 누군가가 바삐 걸어오고 있었다.
좀 더 가까워진다고 생각하던 사이, 상대가 태수를 보고 멈칫하더니 후다닥 달려왔다.
너무 빠른 속도에 태수는 주변을 휙휙 돌아봤다.
그런데 주변에 의료진은 자신 혼자뿐이었다.
“그럼 나?”
당황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사이에도 상대가 빠르게 다가왔다.
태수는 그제야 상대를 알아봤다.
오프 전에 수술했던 아기의 아빠였다.
폭주 기관차처럼 달려온 그는 거짓말처럼 태수 앞에 멈춰서 넙죽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무슨 일이신데…….”
“앞으로 진짜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리고 꼭 성준이가 크면 선생님이 어떤 분이셨는지 알려 주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할 말을 마친 그는 또다시 번개같이 달려갔다.
“야호!”
복도를 울리는 그의 행복한 외침이 뭔가 좋은 일이 있었다는 걸 느끼게 했다.
그가 저렇게 좋아할 일이 뭐가 있을까.
물론 오성준의 회복이 순조롭다는 건 EMR(전자의무기록)을 통해 확인했다.
그것도 기쁘겠지만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혹시 원무과에 다녀왔나?
병원비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충분히 저런 반응을 보일만 했다.
그러면 됐다.
아기를 위해 더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인사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졌다.
띠리릭.
갑자기 울리는 휴대폰 소리에 바라보니 박성민의 전화였다.
“네, 선배님.”
“긴말하지 않겠다. 1분 안에 이리 컴. 진료실이다. 이상.”
뚝.
전화가 짧게 끊어진 순간 태수는 의아한 얼굴로 박성민의 진료실로 향했다.
도착과 동시에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박성민이 의자에 깊게 기대 앉아 초를 재고 있었다.
얼마나 열중하고 있는지 태수가 들어온 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31초…… 32초…….”
초침 흘러가는 것만 확인하는 그에게 태수가 말했다.
“선배, 저 왔습니다.”
“어? 뭐야, 너 왜 벌써 와?”
“아침에 인사 제대로 못 드린 게 마음에 걸려서 오고 있었죠.”
태수가 입에 침도 안 바르고 넉살 좋게 말하자 박성민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역시 우리 태수. 오늘도 우리 태수는 이 선배의 은혜를 잊지 않고 언제나 초심과 같은 마음으로 이렇게 남들과는 다르게,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왔단 말씀.”
“그럼요.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나야말로 묻고 싶은 말인데. 뭐가 어떻게 된 거냐?”
“그러니까 뭐가요?”
태수가 묻자 아차 한 박성민이 얼른 말했다.
“내가 출근하고 정확하게 2시간 24분 51초 지나고 있을 무렵, 문자 한 통을 받았다는 거 아니냐. 내 계좌에 돈 들어오는 문자 말이야.”
“어디 투자하신 거 배당금 들어온 겁니까?”
“그랬으면 내가 너한테 술을 딱 사야 될 거 같은데 그런 건 아니고, 병원에서 보낸 거더라고. 수술 보증금 반환이라고 해서 말이야.”
“수술 보증금 반환이요?”
태수가 어리둥절하게 바라보자 박성민이 말했다.
“그래. 니가 나한테 삥 뜯어간 그거. 짝 다리 짚고 침을 퉤 뱉어 가며 어이, 형씨, 수술 보증금 좀 내놓지그래? 그랬던 그 돈 말이야.”
“사실과 상당히 다르지만, 좌우간 그 돈이요.”
“그래. 그 돈이 돌아왔다고. 이게 무슨 일인가 하다가 진료 끝나고 원무과로 향하려는 찰나에 그 아기 아빠가 또 남들과는 다르게, 누구보다 빠르게 다가와서 비트를 쪼개 가며 속사포 같은 랩으로 고맙다고 인사까지 했다니까.”
박성민이 꾸며서 말했지만 태수는 핵심만 정확하게 알아들었다.
“저도 방금 만나고 왔는데요. 아니, 만남을 당했다는 표현이 맞긴 하지만요.”
“좌우간 나도 뭔가 이상하고, 돌려받은 돈이 찝찝하고 꺼림칙해서 원무과에 전화해 봤더니 이사장님이 할부도 아니고 일시불로 수술, 입원, 치료비까지 계산하셨다던데?”
“이사장님이요?”
“그랬다니까. 나도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끝에 너에게 물으면 답이 나올까 해서 오라고 한 거지.”
박성민의 말에 태수가 머리를 굴려 보고 말했다.
“그럼 일단 순서는 제가 이사장님을 찾아가는 거겠네요.”
“내가 생각해도 너의 순서가 맞는다는 직감적인 직감이 들고 있어.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당연히 시원하게 일시불로 계산한 그분을 찾아가야지.”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사장님께 다녀오겠습니다. 아차, 그리고 선배는 오늘 낮에 좀 쉬세요.”
“나? 너 지금 나 걱정하는 거니? 어무이! 이 자식이, 태수 자식이 드디어 이 선배 보기를 하늘과 같이 하던 아름다운 아이로 돌아왔습니다.”
천장을 보며 감격하는 그에게 태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낮에 쉬셔야 당직 서시죠. 이틀 연속 당직인 것도 기억하실 거란 걸 의심하지 않습니다.”
“…….”
박성민은 그 말을 듣자마자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
태수는 그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얼른 인사부터 건넸다.
“그럼 전 이만.”
후다닥.
태수가 빠르게 진료실을 나간 순간이었다.
“최태수, 이 호랑말코 같은 놈아! 내가 아무리 근무를 바꿨어도 하루는 니가 좀 서고 그래야지. 나 요즘 삭신도 쑤셔서 요양해야 한다고!”
아무리 소리쳐 봐야 소용없었다.
태수는 이미 이사장실로 향한 후였다.
석정현 이사장은 월요일에는 가급적이면 이사장실에 자리하고 있었다.
주말 사이 일어난 일들을 보고받고, 또 한 주의 계획을 세우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한 탓이다.
다행히 병원장과 재무이사와의 대화가 끝났는지 태수는 바로 이사장 집무실에 안내되었다.
끼익.
비서가 열어 주는 문으로 들어가자 석정현 이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찾아올 건 알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주말에 편히 쉬셨습니까?”
태수가 안부 인사를 건네자 석정현 이사장이 푸근한 얼굴로 말했다.
“나야 주중이나 주말이나 그렇지, 뭐. 그보다 찾아온 이유는 대충 알 거 같고. 앉지.”
“실례하겠습니다.”
태수가 자리하자 상석에 앉은 석정현 이사장은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얘기했다.
“오성준이란 아기 때문에 찾아온 거 맞나?”
“맞습니다.”
“그래. 아침에 출근해서 그 얘기부터 들었어. 박 선생 주머니까지 털어 가며 수술을 강행했다고 말이야.”
“…….”
태수가 진득하게 바라보자 석정현 이사장이 이어서 말했다.
“재무이사에게 한번 조사해 보라고 했지. 참 딱한 사람들이더라고.”
“그렇습니까?”
“그래. 조실부모한 두 남녀가 어렵게 가정을 꾸려서 낳은 아이였어. 그 부부에게는 아이가 삶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음, 그렇군요.”
태수도 얼핏 가난을 짐작했지만, 사정을 알게 되니 아기 아빠의 행동들이 고개가 끄덕여졌다.
석정현 이사장이 계속 얘기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돈을 내라고 하면 되나. 그래서 내가 이번에는 사비로 계산했어. 원무과에는 어떤 독지가가 지원해 줬다고 대충 말을 맞춰 놓고.”
“그러셨군요.”
“돈 벌자고 시작한 일도 아니지만, 삶의 전부를 돈 때문에 빼앗는 건 너무 잔인한 일 아닌가.”
석정현 이사장은 자신의 행동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태연하게 말했다.
그런 마음 씀씀이는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들을수록 존경스러웠다.
“오는 길에 알아보니까 제 수술비도 같이 계산하셨다고 하던데요.”
“그거 몇 푼이나 된다고. 최 팀장 마음은 내가 잘 받았으니까 그거면 됐어. 더 따지지 말고 그 돈으로 애들 뭐라도 더 사 주든가.”
“애들 올라온 것도 알고 계셨습니까?”
태수의 물음에 석정현 이사장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