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666
01669 1669화
그사이 태수가 청진기로 내부 상황을 확인하려던 찰나였다. 구급대원 중 하나가 태수에게 빠르게 다가왔다.
“지금 요구조자 한 명을 발견했는데 쉽게 구조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인원이 없는데.”
“그냥 끌어내기엔 심상치가 않답니다.”
“알겠습니다. 대신, 이쪽에 인원 좀 지원해 주십시오. 그리고 수돗물이라도 좋으니까 씻어 낼 수 있는 것도 부탁드립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구급대원이 대답과 동시에 멀어졌다.
그가 뭔가 말하자 다른 구급대원들이 빠르게 다가왔다. 총 4명의 구급대원이 도착과 동시에 태수에게 물었다.
“어떻게 도와 드리면 되겠습니까?”
“먼지부터 싹 닦아 주세요. 그리고 두 분은 저쪽으로.”
“알겠습니다. 움직여.”
2명씩 나눠 양쪽으로 흩어지는 모습이 일사불란했다.
태수는 그런 그들을 믿고 청진기를 목으로 내리며 김은영을 찾았다.
“김 선생, 이쪽으로.”
“알았어. 정 선생, 나 저쪽으로 갈게. 혁권 씨가 여기 좀 잡아 주세요.”
“……잡았어. 얼른 가 봐요.”
김혁권의 말에 김은영은 재빨리 몸을 돌려 반대쪽 간이 책상으로 향했다.
태수는 스쳐 가는 김은영을 향해 낮고 빠르게 말했다.
“지원 인력이 곧 도착할 거야. 그때까지만 고생하자.”
“넌?”
“현장에 다녀올게.”
그 소리에 김은영이 멈칫하며 쳐다봤다.
“태수야.”
“자식. 내 걱정은 말고. 저분 좀 부탁할게. 이 간호사님, 부탁합니다.”
태수의 말에 이선정 간호사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은 어떻게든 버틸게요. 그런데 몸조심하세요.”
“무사히 돌아오겠습니다.”
“……다녀오세요.”
이선정 간호사는 걱정이 앞섰지만 가지 못하게 할 방법이 없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표정도 잠시, 그녀는 김은영을 도와 처치에 들어갔다.
“이 간호사님, 고통이 너무 심해요. 모르핀부터.”
“지금 준비할게요.”
“IV 키트 어디 있어요? 아니, 제가 직접 찾을게요.”
김은영은 화이트엔젤에서의 경험을 더해 자신만의 순서로 환자를 응급처치하기 시작했다.
당찬 여자였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다시 눈으로 보니 더더욱 확실했다.
태수는 더 지체하지 않고 자그마한 가방을 앞으로 멨다.
가장 필요한 것들만 담아 놓은 가방은 바로바로 내용물을 꺼낼 수 있게 앞으로 메게 되어 있었다.
준비를 마친 태수는 돌아서며 정신없이 손을 움직이는 정민수에게 물었다.
“민수야, 여기 책임질 수 있지?”
“……이가 없으면 잇몸이 일을 해야지.”
“부탁할게. 문제 있으면 무전기로 연락하고.”
“시끄러우니까 빨리 꺼져.”
투박한 말투와 달리 눈빛엔 걱정이 가득했다. 걱정이 되어 오히려 딱딱하게 소리쳤는지도 모른다.
태수도 알기에 옅게 미소 지었다.
“그럼 간다.”
“캡틴, 다치면 현미가 간호할 겁니다.”
“그런 말씀 마시고요. 갑니다.”
김혁권의 협박 가득한 걱정에 태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대답하며 달려갔다.
송현미 간호사가 간호한다는 말을 들으니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났다.
태수는 다시 텐트 밖으로 나왔다.
기이잉.
포클레인의 육중한 엔진음이 먼저 들려왔다.
경찰차와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 여기저기에서 소리쳐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까지.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태수는 그 혼란스러움에 휩쓸리지 않고 정신부터 다잡았다.
현장으로 향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기 직전, 태수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앞으로 도착할 지원 팀원들이 의료를 펼칠 공간이 없었다.
한두 시간에 끝날 일이 아니었다.
그에 따른 철저한 준비가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그 생각으로 돌아보던 태수는 옆에서 상자를 들고 움직이는 구급대원에게 물었다.
“혹시 텐트를 더 설치할 수 있습니까?”
“저렇게 막힌 건 하나뿐입니다.”
“상관없습니다.”
“그럼 몇 개 더 있습니다.”
그의 대답에 태수는 반색하며 빠르게 말했다.
“텐트부터 모두 설치해 주시고, 최소한 하나는 천막으로 가슴 높이 정도까지 가려 주십시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대량의 물도 필요하고, 구급대에 준비된 의료 물품도 전부 이쪽으로 옮겨 주시고요.”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태수는 그에게 가볍게 고개 숙이고는 몸을 돌렸다.
눈앞에 보이는 건 어지럽게 무너진 호텔 건물의 잔해였다.
살수차로 물을 뿌려 먼지를 가라앉히고 있고, 그 물길 속에서 구조대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거기 조심해.”
“밑이 비었을지 몰라. 한 발을 딛더라도 제대로 디뎌.”
구조하는 그들 사이에 민감한 고함 소리가 오갔다.
그들의 안전을 챙기는 게 아니라 그 밑에 깔린 요구조자들을 위해 조심하는 행동들이다.
태수가 봐도 무너진 모양이 불안해 보였다.
태수는 어느 틈에 손에 쥐고 있던 빨간 안전모를 뒤집어썼다.
“푸우.”
길게 한숨 한 번 쉬고.
눈빛을 단단히 굳히고.
그렇게 준비를 마친 태수는 비장한 표정으로 붕괴 현장을 향해 걸어갔다.
태수가 현장 초입에 도착하자 온몸이 이미 엉망이 되어 있던 구조대원들이 깜짝 놀랐다.
가운을 입은 의사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현장 속에 들어오는 경우는 없던 탓이다.
다들 태수의 얼굴 정도는 알고 있었다.
“선생님.”
“요구조자 어디 있습니까?”
“여기는 위험합니다.”
“그래서 어디 있습니까?”
태수는 일부러 낮고 강하게 말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걸음을 막을 수 없단 걸 은연중에 표현한 것이다.
그런 강렬한 말투에도 구조대원들은 쉽사리 물러서지 않았다.
“여긴 저희가 어떻게든 합니다. 구해 내서 저기 안전한 곳으로 보내겠습니다.”
“시간 많습니까?”
“…….”
“일분일초가 아쉽고 가슴 졸이는 이 순간에 이렇게 말다툼을 해야겠냐고 묻는 겁니다.”
“선생님.”
구조대원들은 눈에 힘을 줬다.
그들은 화재와 붕괴 등등 대형 사고를 전전한 베테랑들이었다.
생명 구조의 최전선에서 싸워 온 그들은 강렬한 태수의 분위기에도 전혀 움츠러들지 않았다.
태수도 알고 있지만 지금은 입씨름하는 시간이 아까웠다.
“요구조자가 버틸 수 있는지만이라도 확인해야 하지 않습니까?”
“…….”
“기껏 구조했는데 손을 쓰지 못하길 바라십니까?”
“그건…… 아닙니다.”
이치에 맞는 태수의 말에 그들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태수는 그런 그들에게 차분하게 말했다.
“다치고 싶어서 가는 거 아닙니다. 다들 건강하게 구조하기 위해서 가는 길이란 말입니다.”
“…….”
“안내해 주세요. 지금, 당장 말입니다.”
태수가 딱 잘라 말을 마쳤다.
그런 굳건한 각오에도 구조대원들은 고민했다.
그때 덩치 좋고 고집 세게 생긴 구조대원이 태수에게 물었다.
“왜 가운 입고 개고생을 자처합니까?”
“그럼 다들 왜 따뜻한 밥 먹고 현장에 뛰어드십니까?”
“…….”
“똑같습니다. 여러분도, 저도.”
태수의 말에 덩치 좋은 구조대원이 퉁명하게 말했다.
“내 옆에 꽉 붙어 있어요. 절대 떨어지지 말고.”
“제가 껌딱지 같은 구석이 있습니다.”
“젠장. 내가 별별 지랄을 다 겪어 봤는데, 이런 막무가내 의사는 또 처음이네. 소문은 과장되기 미련이라는데 왜 축소가 됐냐고.”
하지만 그런 태수의 적극성이 싫진 않은 표정이었다.
그가 앞서자 태수는 차분하게 뒤를 따랐다.
턱, 턱.
부서진 콘크리트 덩어리를 밟고 요구조자가 기다리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던 중 앞선 구조대원이 태수에게 줄을 내밀었다.
“이거 허리에 묶어요.”
“뭡니까?”
“당신 생명줄.”
그 소리에 내려다보자 구조대원의 허리에 반대쪽이 묶여 있었다. 만약 태수가 발을 헛디뎌 떨어진다고 해도 그가 함께 있겠단 의미였다.
태수는 그 끈을 허리에 묶으며 물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그건 왜요?”
“나중에 묘비 만들 일 있으면 이름 좀 넣게요.”
“재수 없게.”
그가 짜증을 왈칵 내자 태수가 정정해서 물었다.
“그럼 나중에 소주 한잔하자는 의미로 통성명하는 거는요?”
“홍정규.”
“최태수입니다.”
“누가 그 이름을 몰라? 이름값 하겠다고 현장에 뛰어드는 미친 의사를 누가 모르냐고.”
“그딴 건 관심 없습니다.”
태수의 말에 앞서 걷던 홍정규 대원이 힐끔거렸다.
“그럼?”
“생명값이면 갈 이유가 충분한 거 아닙니까?”
“그런 말 함부로 입에 담는 거 아닙니다.”
“입에 담았다면 각오가 되어 있단 거겠죠.”
“…….”
태수가 한마디도 지지 않고 대답하자 홍정규 대원은 입을 다물었다.
태수에 대한 소문을 익히 들었을 텐데도 썩 신뢰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태수는 몰랐고, 지금은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요구조자가 있는 현장으로 가는 게 중요할 뿐이었다.
그건 홍정규 대원도 마찬가지였는지 속도를 조금 올려 구조대원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향했다.
성큼성큼.
그는 바위산을 걷듯이 익숙하게 콘크리트 잔해들을 건너갔다. 그런 반면, 태수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쉽지 않았다.
부서진 콘크리트가 일정하지 않았고, 철근과 그 외에 파손된 인테리어 자재들까지 삐쭉 튀어나와 있었다.
그런 상황이라 한 걸음 디딜 때마다 발밑을 확인해야 했다.
그래도 태수는 두 사람을 연결한 끈이 팽팽해지지 않도록 바지런히 따라갔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던 중이었다.
후두둑.
머리 위에서 물이 흩뿌려졌다.
비가 내리는 게 아니라 살수차가 분진을 막기 위해 뿌리는 물이었다. 점점 가운이 젖어 묵직하게 변해 갔다.
먼지가 뭉쳐졌는지 턱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이 검게 변해 있었다.
태수는 그런 자신의 몸은 관심이 없었다. 그저 한 걸음을 더 나아가기 위해 신경을 바짝 곤두세워야 했다.
곧 구조대원들이 모여 있는 장소 근처까지 도착했다.
홍정규 대원이 뒤를 힐끔 돌아보며 말했다.
“거의 다 왔습니다.”
“보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잘 따라오네.”
“빨리 가시죠.”
태수의 말에 홍정규 대원은 차갑게 미소 지으며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태수가 재촉하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멈추면 미끄러질 것 같았다.
부서진 콘크리트들이 물기를 머금자 마찰력이 확실히 줄어들었다. 게다가 안전화가 아닌 일반 운동화를 신고 있는 상황이라 미끄러움이 더했다.
자신을 제어하며 위험이 산재한 곳을 걸어가는 게 쉽다면 그게 더 이상했다.
그래서 태수는 조금이라도 빨리 요구조자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태수의 희망대로 곧 구조현장에 도착했다.
“비켜.”
홍정규 대원의 외침에 다른 구조대원들은 그제야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태수의 모습에 놀란 얼굴로 좌우로 비켜섰다.
공간이 비자 태수는 조금 더 속도를 내 다가갔다.
요구조자는 가슴 아래가 모두 묻혀 있었다.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묘하게 맞물려 있는 상황이라 그 아래도 조금은 확인이 가능했다.
태수는 그런 상황을 뒤로하고 우선 요구조자의 안색부터 확인했다.
40대 중반 정도로 공사 현장에서 오래 일했는지 구릿빛의 단단한 인상이었다. 하지만 그 구릿빛이 옅어질 정도로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끄으응.”
고통이 심한지 인상을 찌푸리며 신음을 흘렸지만 비명을 토하진 않았다.
태수는 빠르게 발 디딜 곳부터 확인했다. 마침 좌우 1미터 간격으로 평평한 면이 보이자 다리를 벌려 올라섰다.
몇 번 좌우로 무게중심을 옮겨 봤지만 예상보다 단단했다.
그렇게 균형을 잡은 태수가 몸을 굽혀 요구조자에게 말을 붙였다.
“응급의료대에서 나왔습니다. 지금 제 얼굴이 보이십니까?”
“끄응. 어, 어, 어…… 최태수…….”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강…… 덕환.”
“일단 의식은 괜찮네요. 혈압부터 재겠습니다.”
태수는 지금 강덕환이 자신을 알아보는 건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의 건강이 우선이었다.
바로 가슴에 멘 가방을 열어 자동 혈압계를 꺼내 혈압과 맥박부터 확인했다.
띡.
자그마한 기계 소리와 함께 수치가 표시되자 태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출혈이 있을 때 보이는 전형적인 바이탈 수치였다.
태수는 강덕환을 다시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