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736
01739 1739화
오물 냄새에 익숙해진 태수였기에 오히려 더욱 확실하게 맡을 수 있었다.
환자의 옷차림은 거칠고 질긴 소재에 신발은 안전화였다.
오늘 하수구를 청소하기 위해 투입된 현장직 근무자가 분명했다.
이해는 간다.
몸을 쓰는 고된 일을 하는 사람들 상당수가 점심에 반주로 한 잔씩 걸친다.
태수가 여러 현장을 다니면서 익히 들은 소리였다.
그들뿐만이 아니라 농촌에서도 새참으로 막걸리를 먹기에 잘 알고 있었다.
육체적 피로를 술로 푼다?
그리 현명한 방법은 아니지만 현실은 달랐다.
결국 술이 문제인 모양이었다.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은 그걸 탓하며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다시 환자에게서 멀어진 태수는 환부를 자세히 살피며 이기준에게 물었다.
“바이탈은?”
“엉망이지. 보다시피 수혈을 진행 중인데도 입술에 치아노제가 생겼어.”
“내출혈 응급처치는?”
“옆에 드레인 있잖아. 계속 피가 흐르고 있는 상황이라 더더욱 막막하다고. 지금 빼낼 수도 없어. 정확하게 안이 어떤지 몰라. 맥박도 점점 약해지고 있고.”
이기준이 차분하고 냉정하게 말했다.
태수는 그 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서 물었다.
“후두부에 출혈이 있다고 하던데?”
“그건 응급처치했어. 그런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까 문제가 없다고 확신할 수는 없을 거 같아.”
“그렇단 말이지.”
태수는 중얼거리듯이 대답하며 반쯤 감긴 환자의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초점이 흐렸다.
플래시로 눈동자를 비춰 봤지만 반응이 거의 없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후두부의 부상 정도를 짐작하기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눈동자가 넋을 놓고 풀어지지 않았단 점이다.
자세한 건 병원에서 확인해 봐야겠지만 아직까진 괜찮단 판단이 섰다.
그 후로 태수는 이선정 간호사로부터 청진기를 건네받아 심장 소리부터 듣기 시작했다.
바이탈이 좋지 않단 이기준의 말대로 확실히 심장이 약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런 단편적인 정보를 얻고자 한 건 아니었다.
태수는 눈을 감고 좀 더 심장박동 소리에 집중했다.
두근두근.
여전히 똑같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 소리에 익숙해지기 시작하자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근육이 충분히 부풀어야 하는데 약간 막힌 듯한 소리였다.
판막이 제대로 닫히지 않는 소리와 비슷하기도 했다.
그러나 심장박동을 보면 판막의 문제라고 정의할 수가 없었다.
맥박이 점점 약해진다는 게 그 증거였다. 판막에 문제가 생겼다면 맥박이 급격히 안 좋아져야 했다.
태수는 그 차이를 알기에 판막 문제에 대한 예측을 접었다.
점점 선택의 폭을 줄여 가던 태수가 거칠게 청진기를 벗으며 말했다.
“철골이 심장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거 같아. 어쩌면 심장을 살짝 빗겼는지도 모르고.”
“음.”
“그래서 심장이 계속 죽어 가는 거야.”
“항생제로는…… 역시 어려웠나?”
이기준의 물음에 태수가 바로 대답했다.
“항생제로는 힘들어. 심장 자체가 계속 녹슨 철에 닿아 움직임을 조금씩 제한하고 있는 상황 같으니까.”
“후우.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 이 상태로 빼낼 수도 없고, 철골이 너무 깊이 박혀서 잘라 낼 수도 없어.”
이기준의 말이 끝나자 조용히 둘을 쳐다보고 있던 이선정 간호사가 이어서 말했다.
“핸드 그라인더로 시도해 보려고 했다가 멈췄어요. 우선 공간이 없고, 그 충격을 환자가 모두 감당할 수 없을 거 같아서요.”
“잘하셨습니다. 그 외의 문제는요?”
“일단 보시다시피 골절 부위에 부목은 모두 대 놨어요. 그런데 심장의 움직임만큼이나 산소 포화도도 떨어졌어요.”
그 말에 태수의 눈빛이 굳어졌다.
“그렇겠죠.”
“전 이 선생님이 응급처치를 해서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고 생각해요.”
“음.”
“이 선생님도 더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계속 고민하고 계셨어요. 그리고 상당히 괴로워하셨고요.”
이선정 간호사의 말에 태수의 시선이 이기준에게 향했다.
그러나 이기준은 환자만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는 안 하셔도 됩니다.”
“사실을 말하는 게 잘못된 건가요?”
“절 별로 안 좋아하시는 줄 알았는데요.”
“여기서 개인감정 드러내요? 환자가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이선정 간호사의 따가운 목소리에 결국 이기준이 입을 다물었다.
이기준의 태도는 확실히 조금 소극적이었다. 의료 자체가 아니라 환자에 대한 적극성을 말하는 것이다.
태수는 격했던 이기준과의 통화가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지웠다.
지금은 환자를 하수도 밖으로 옮기는 게 더 중요했다.
태수가 빠르게 주변을 둘러봤다.
오물로 가득한 하수구, 그 외에 특별한 건 어디에도 없었다.
사람이 더 들어오면 다 같이 움직이기 힘든 상황이다. 환자를 옮기는 것도 태수와 이기준, 두 사람만이 할 수 있었다.
기계로 하수구를 부순다면 약해진 지반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환자의 입술은 파랗게 변색되어 있었고, 얼굴도 창백해졌다. 호흡은 약하고, 심장은 언제 멈출지 모르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이기준이 필사적으로 시간을 끌었다고 해도 이후로는 장담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태수는 결정을 굳혔다.
무식하다고 해도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결심과 동시에 태수가 환자의 왼쪽으로 돌아가며 이기준에게 말했다.
“잡아.”
“뭐?”
“뽑자고.”
태수가 낮게 말하자 이기준이 멈칫했다.
“이걸 지금 뽑으면…….”
“위에 애들하고 김 간호사님 있어.”
“거기까지 옮길 수 있느냐도 문제 아닌가?”
이기준은 태수와 달리 냉정하게 조목조목 따지고 들었다.
어쩌면 그가 더 이상 응급처치를 할 수 없었던 것도 그 제한적인 생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태수는 지금 그걸 깨우쳐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반대로 더욱 목소리를 깔며 자극적으로 물었다.
“여기서 더 시간 보낼까? 그냥 지켜만 볼까?”
“……그건 아니지.”
“최대한 빨리 뽑아야 해. 그리고 뽑자마자……. 거기, 홍! 들것 좀 내려놔!”
태수가 외치자 그 소리가 울려 맨홀 구멍에 얼굴을 내밀고 있던 홍진만에게 닿았다.
“들것만 내리면 됩니까?”
“고정 장치 좀 많이. 수직으로 끌어 올려야 할 거 같으니까.”
“흠.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해서 내려놓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홍진만의 얼굴이 쏙 사라졌다.
태수의 시선은 다시 이기준에게 향했다.
“이견 있어?”
“……없어.”
“그럼 준비해. 들것이 떨어지면 바로 시작할 거야.”
끄덕.
이기준은 고개만 끄덕이고는 환자의 오른쪽으로 다가갔다.
태수와 이기준은 동시에 한 손을 환자의 등 쪽에 밀어 넣었다.
그 작은 충격도 지금 환자에겐 엄청 크게 느껴지는지 기운 없는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으으으…….”
“아픈 거 압니다. 하지만 여기에 계속 있을 순 없잖아요.”
“…….”
환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탈진했다.
태수도 대답을 기대하고 한 말은 아니었다.
간신히 등 뒤로 손을 집어넣은 후 다른 한 손으로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한 발을 하수구의 벽에 대고 지지했다.
발을 박차며 그 반동으로 힘껏 밀어낼 계획이었다.
이기준의 생각도 같았는지 태수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태수는 그런 이기준을 확인하고 이선정 간호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다 챙기세요. 그리고 들것 떨어지면 고정 장치를 좌우로 펼쳐 주시고요.”
“알았어요. 준비 다 되면 바로 콜 할게요.”
이선정 간호사는 커다란 스티로폼 위에 올려놓은 가방 속에 늘어진 의료 도구들을 쑤셔 넣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동 준비를 마친 이선정 간호사가 맨홀 입구 밑으로 옮겨 갔다.
텅!
맨홀 구멍을 통해 들것이 떨어져 내렸다.
들것은 그냥 떨어진 게 아니라 두꺼운 줄이 연결되어 있었다.
거기까지 확인하자 김혁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덩치 좋은 인간들이 줄 잡고 있어요. 장담할게. 1분, 그 안에 올라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신호 줘요.”
김혁권의 목소리는 거기까지였다.
태수와 이기준의 시선은 어느새 들것으로 향했다. 이선정 간호사가 반듯하게 펴고 고정 장치들을 좌우로 벌리고 있었다.
곧 그녀에게서 신호가 올 터였다.
그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단 걸 알기에 태수와 이기준의 긴장감은 점점 고조되었다.
입속이 말라 물 한 모금 마시고 싶다고 느껴진 순간이었다. 이선정 간호사가 계단 뒤로 몸을 움직이며 뾰족하게 소리쳤다.
“됐어요!”
그 소리에 태수와 이기준의 눈빛이 마주쳤다.
이젠 환자를 빼내야 할 때다.
눈빛 교환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잠깐의 시선 교환이 끝난 직후 태수가 낮고 강하게 말했다.
“셋에 민다. 하나, 둘…… 셋! 아자!”
“으자!”
태수와 이기준이 벽을 발로 차며 그 반동으로 환자의 몸을 앞으로 밀어 버렸다.
그 순간 환자가 앞으로 쏠리며 가슴을 관통한 철골이 조금씩 빠졌다.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의식이 가물가물한 환자의 입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끄아아악!”
“버터요! 버티라고요! 이기준, 뭐 해! 더 밀어!”
“밀고 있……. 으아!”
이기준이 힘을 줘 고함을 질렀다.
태수도 그에 맞춰 한 번 더 벽을 발로 차며 힘을 더했다.
쩌적!
철골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지는 환자의 몸에서 소리가 났다.
정확하게는 등과 어깨를 짚은 손에서 그런 진동이 느껴지고 있었다.
진동이 커질수록 환자의 비명 소리도 커져 갔다.
“아아아악!”
철골에 들러붙은 근육과 조직들이 찢어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심장과 가까이 붙어 있는 철골이었다.
이 과격한 행위로 심장의 문제가 심각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나가는 게 중요했다.
이게 가장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방법이라고 해도 우선 이 끔찍한 장소에서 벗어나는 게 최우선이었다.
아니면?
죽는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태수와 이기준이 죽어라 환자를 밀어낸 탓인지 몸을 관통한 철골이 드디어 빠져나왔다.
“카으으으!”
환자의 비명 소리가 너무도 괴기스러웠다.
그만큼 그가 느끼는 고통은 누구도 쉽게 상상할 수 없단 증거였다.
그러나 태수와 이기준은 그 고통이 가라앉을 시간을 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일부러 진통제를 약한 걸로 투약했다. 그 이유는 의식을 계속 유지하기에 가장 좋은 게 고통인 탓이었다.
지금 고통까지 느끼지 못한 채 의식을 잃으면 끝이다.
이 순간에는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직업이 의사라고 욕해도 상관없었다.
태수는 물론 이기준도 다르지 않았다.
둘 다 고민했다고 하더라도 결정이 나면 돌아보지 않았다.
응급의료대에 속한 이상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해야 했다.
태수와 이기준은 지체하지 않고 괴로워하는 환자를 양쪽에서 부축했다.
세 사람이 나란히 서서 걸어갈 폭이 아니었다.
그래서 태수가 앞서며 옆으로 이동했다.
착, 착.
바닥에 가득한 오물이 발의 진로를 막았다. 또 엄청 미끄러워 제대로 발을 디뎌도 조금씩 옆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그런 사소한 문제 때문에 발길을 늦출 수는 없었다.
“빨리!”
“가고 있어!”
태수가 소리치며 옆으로 더 강하게 당기자 이기준이 대꾸하며 밀었다.
조금 수월해졌다고 해도 기분 좋아질 상황이 아니었다.
철골이 뽑혀 구멍이 난 흉부에서 계속 피가 흐르고 있었다.
가뜩이나 출혈이 많은데 피를 더 흘리고 있으니 서치라이트에 비친 환자의 얼굴이 백지장에 가깝게 변했다.
태수와 이기준은 그런 환자의 모습에 더욱 신속하게 옆으로 이동했다.
“커으윽…… 으윽…….”
한 걸음을 뗄 때마다 환자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마음이 급했다.
이대로 조금이라도 지체한다면 환자는 살아서 하수구를 나가지 못할 확률이 컸다.
이건 추측이 아니라 진실이었다.
그걸 알기에 태수와 이기준은 걸음을 재촉하고 또 재촉했다.
그렇게 들것 앞에 도착하자 태수와 이기준은 자세를 바꿔 환자를 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