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912
01915 1915화
태수는 그 움직임에 휘둘리지 않고 일정한 힘과 빠르기로 재빨리 쥐었다가 펴기를 반복했다.
그런 태수의 옆으로 도성민이 빠르게 다가왔다.
“내가 할게.”
“둘, 셋. 괜찮아. 다섯, 여섯…….”
“인마, 난 뭐 하라고.”
“아홉, 열. 뭐 하기는, 남은 출혈부터 걷어 내. 열둘, 열셋…….”
태수가 숫자를 세는 중간중간 말하자 도성민은 얼른 다시 썩션을 쥐었다.
CPR을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우기지 않았다.
누가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은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했다.
태수가 CPR을 하고, 박성민이 제세동기로 충격을 줬다. 그 사이사이 도성민은 남은 출혈을 걷어 냈다.
그렇게 순차적인 과정들이 몇 차례 돌아가며 진행되던 중이었다.
심장을 반복적으로 쥐던 태수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자기 마음대로 뛰겠다며 저항하던 심장이 어느 순간에 순해진 느낌이 들었다.
두근, 두근.
확실히 태수가 쥐었다가 펴는 박자에 심장이 따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서영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많이 안정됐어. 박 선생님, 한 번 더 샷!”
“얼마든지 갑니다. 태수, 비켜!”
박성민이 다가오자 태수가 심장에서 손을 뗐다.
그와 동시에 박성민이 쥔 제세동기가 심장에 거침없이 전기 자극을 퍼부었다.
“샷!”
치직. 두근.
전기 자극에 크게 수축했던 심장이 일정한 움직임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상황을 서영우의 목소리가 증명해 줬다.
“푸우. 돌아왔어요. 그런데 아직 턱없이 약해.”
확답을 들은 후 모두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후아.”
“흠.”
사방에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게 이 상황이 모두 끝났단 안도감을 뜻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숨을 고른 것뿐이었다.
짧게 숨을 내쉰 의료진 모두의 눈빛이 다시 날카롭게 돌변했다.
집도의인 박성민이 바로 입을 열었다.
“찢어진 폐정맥 봉합부터 시작합니다.”
“김 간호사, 선배 좀 도와주세요. 조 간호사가 이쪽으로, 박 간호사는 계속 IV 좀 맡아 주세요.”
태수가 추가적으로 오더하자 어지럽던 수술실 분위기가 빠르게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내 찢어진 폐정맥을 찾는 과정부터 진행됐다.
도성민은 물론 태수도 어시스던트를 자청했다.
“후크, 디바키.”
“인터네셔널 포셉, 믹스터.”
두 의사가 주는 오더에 조현정 간호사가 재빨리 움직였다. 그녀도 최근 출동이 잦아지며 행동이 상당히 빨라졌다.
예전엔 화이트엔젤에서 실력 좋은 수술 전문 간호사였지만, 이젠 응급의료대에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거치는 동안 야전 간호사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조현정 간호사에게서 수술 도구를 건네받자 태수와 도성민은 그 짧은 순간에도 스스로 역할 분담을 했다.
제2어시스던트를 자청한 도성민은 깊게 구멍이 파인 폐를 좌우로 조금씩 벌려 시야를 확보했다.
그 사이를 제1어시스던트가 된 태수가 재빨리 파고들어 정확한 환부를 찾기 시작했다.
폐부종의 흔적인 구멍 내부가 촉촉했다.
폐부종은 폐에 체액이 쌓여 가는 증상을 의미했다. 폐 전체적으로 차오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게 조금 이상한 태수가 바로 도성민에게 물었다.
“이 구멍은 폐부종 때문만은 아닌 거 같은데?”
“종양이 있었어. 조직 검사 보냈으니까 내일쯤 결과가 나올 거야.”
“역시. 여기 폐정맥……. 선배!”
태수가 낮고 빠르게 부르자 박성민이 니들홀더를 쥔 손을 빠르게 뻗었다.
“확보했지? 바로 간다.”
“그 전에 여기부터 보세요.”
“시간 없어 죽겠는데 뭘 또 보라고 하는데……. 아아.”
박성민의 니들홀더가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그건 폐정맥의 모습 때문이었다.
좌심실과 가까운 부근을 차단해 놓은 상태라 출혈이 없었다.
게다가 도성민이 한 번 더 깔끔하게 정리해 놓아 혈관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났다.
그런데 문제가 된 폐정맥은 날카로운 수술 도구에 찢어진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거칠게 터진 흔적만 가득했다.
박성민은 지금까지 자신의 잘못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란 게 이렇게 드러났으니 마음이 복잡한 모양이었다.
태수는 그런 박성민에게 말했다.
“선배는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순간적으로 폐 내부의 압력에 변화가 생겨서 터진 겁니다.”
“…….”
“건드렸단 말 자체가 이상했는데, 그 이유를 이제야 알았네요.”
태수의 말이 끝나자 도성민이 슬쩍 나섰다.
“저도 확실해지기 전까지 기다렸는데…… 분명히 폐정맥은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제 두 눈으로 봤습니다.”
“그걸 왜 이제 얘기해?”
“일단 수습이 먼저였으니까.”
그건 도성민의 말이 옳았다.
당장 심장이 멈추네 마네 하는 환자를 앞에 두고 책임 운운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수술에 있어 불확실한 건 말하지 않는 게 당연했다.
그런 태수와 도성민의 말에 박성민은 입을 다물었다.
“…….”
침묵한 채 구멍 내부를 가만히 쳐다볼 뿐이었다.
그 시간은 잠깐뿐이었다.
결국 박성민은 그에 대한 언급 없이 말을 돌렸다.
“이어 가자.”
“네.”
박성민이 니들홀더를 터진 폐정맥에 가까이 가져가자 태수는 시야를 확보하기 좋게 수술 도구 방향을 살짝 돌렸다.
휙. 휙.
박성민의 봉합이 시작됐다.
하지만 그는 그 봉합이 끝날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출혈이 없는 폐정맥 봉합은 순식간에 마무리됐다.
“됐어.”
박성민이 먼저 손을 떼자 태수가 말했다.
“그럼 풉니다……. 풀었습니다.”
폐정맥을 막아 둔 지혈 클램프를 풀자 곧 혈액이 차오르는지 부풀어 올랐다.
태수는 심장으로 향하는 폐정맥뿐만 아니라 폐로 혈액이 들어가는 부분까지 막아 뒀었다.
그래서 지혈 클램프 2개를 꺼냈다.
태수가 꺼내 든 걸 조현정 간호사에게 건네는 사이 서영우가 말했다.
“딱 5분만 휴식. 이젠 혈액이 어느 정도 차야 다음 수술이 가능하니까. 그리고 흉부는 마무리된 거니까 복부 쪽으로 넘어가야지.”
“교대하겠습니다.”
태수의 말에 반대편에 선 박성민이 수술대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 분위기가 평소와 달랐다.
이상함을 직감한 태수가 수술대를 돌아서 가며 도성민에게 부탁했다.
“민규 좀 들어오라고 해 줘.”
“알았어.”
대답과 동시에 수술대에서 벗어난 도성민은 인터폰으로 향했다.
그사이 태수는 박성민 옆에 도착했다.
“선배, 계속 마음에 두고 계시는 겁니까? 선배 잘못이 아닌 걸 직접 보셨잖아요.”
“그거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야.”
“그럼요?”
“당황했어.”
“네?”
태수가 의아하게 묻자 박성민이 미미하게 떨리는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 박성민이가 당황했다고. 요즘 너무 상황실만 지키고 있어서 수술에 대한 긴장감이 무뎌졌단 말이야.”
“…….”
“그래, 누구나 자리에 따라 할 일이 다르지. 나도 아는데, 진짜 알고 있는데…… 나 조금 슬퍼지려고 그래.”
“선배, 그건…….”
태수가 입을 열려 할 때 박성민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위로하지 마라. 어떤 위로를 해도 내 귀가 막혀 있으니까.”
“그래도 말입니다…….”
“됐다니까. 지금은 아무 소리도 듣기 싫다고.”
박성민의 눈빛이 조금은 복잡했다.
태수는 그런 그에게 결국 어떤 말도 건네지 못했다.
그가 상황실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지 태수는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매일 수술실 속에 들어가 있는 정도의 스트레스였다.
그의 판단에 따라 누군가의 목숨이 오가게 된다.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누구도 짐작조차 하기 힘들었다.
당연히 응급의료대의 어떤 의료진도 박성민이 출동하지 않는 데 대한 불만이 없었다.
차라리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치는 게 속 편하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태수는 그런 박성민을 바라만 봐야 했다.
그때 김혁권이 엉덩이로 박성민을 거칠게 밀었다.
턱!
“이 양반이 어디서 신파극을 찍어!”
“윽! 뭐, 왜? 뭐 땀시 그 더러운 엉덩이를 들이미는데!”
“손으로 때리면 수술 장갑 갈아 끼워야 하니까.”
“그거 얼마나 한다고. 내가 사 줄 테니까 차라리 손으로 때려요. 자자, 손으로 때리라고!”
박성민이 얼굴까지 들이밀자 김혁권이 질색했다.
“이 닥터 양반이 어디서 얼굴을 들이밀어?”
“그렇게 말하는 아저씨는 어디서 화장실을 들이밀어!”
“한심해서 그럽니다. 도대체 나이를 어디로 자셨는지.”
김혁권의 말에 박성민이 발끈했다.
“뭐요?”
“슬프기는 쥐뿔.”
김혁권이 빈정거리자 박성민이 울컥했다.
“쥐뿔?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내가 박씨 선생이었으면 그런 소리 안 할 겁니다. 도대체 시리아에서 뭘 하고 왔어? 아, 달달 떨면서 ‘뱀이 물었네.’이러고 있었지.”
“이 아저씨가 진짜.”
박성민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으나 김혁권은 외려 물었다.
“무뎌졌으면 날카롭게 벼리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게 쉬워? 쉬우면 내가 당장 숫돌에 손톱을 갈든지 해서 날카롭게 벼릴 거라고.”
박성민의 항변에 김혁권은 심드렁하게 대꾸할 뿐이다.
“말만 하지 말고 실천을 하라고. 그리고 애초에 그런 문제를 말하면 되는 거였잖아.”
“이…….”
김혁권의 잔소리에 박성민이 다시 울컥하려 했다.
그때 지켜보던 태수가 나섰다.
“이번 수술 끝나면 과장급으로 몇 명 추천해 달라고 하겠습니다.”
“어? 갑자기 무슨 소리야?”
“대신 컨트롤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면 그렇게 하면 되는 겁니다. 그 과정이 쉽진 않겠지만, 가만히 속 끓이는 것보다는 좋다고 생각됩니다.”
태수가 바로 결정해 버리자 박성민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그렇게 쉬운 거였어?”
“인원은 몇십 명인데 팀장은 둘입니다. 현실적으로 모두를 세세하게 관리하고 컨트롤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그거야 물론 그렇기는 했다만.”
박성민이 떨떠름하게 대답하자 태수가 단언하듯 말했다.
“그동안은 선배가 말씀이 없으시고, 저도 출동에 바빠서 신경 쓰지 못했던 부분입니다. 기왕 말이 나왔으니까 최대한 빨리 건의하겠습니다.”
“…….”
박성민이 멍하니 바라볼 때 김혁권이 한마디 했다.
“평소에 주절주절 나불거리지 말고 이렇게 필요한 걸 말하란 말입니다.”
“…….”
“박씨 선생 고생하는 거 다들 알고, 미안하게 생각해요. 뭐, 그쪽에서도 먼저 말하기 좀 그랬겠지만, 이건 캡틴 잘못도 좀 있습니다.”
김혁권이 나무라자 태수는 바로 수긍했다.
“네. 그건 제 잘못도 분명히 있습니다.”
“됐으니까 그 얘기는 여기까지 합시다. 가까스로 얻은 휴식 시간인데 허무하게 날리지 말자고. 나갈 사람은 빨리 나가고. 번잡스러우니까.”
툭.
김혁권은 박성민의 팔을 가볍게 치며 지나갔다.
그러나 박성민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시비를 걸기 위한 게 아니라 그 나름대로 위로하는 걸 알고 있는 탓이다.
알지만 살짝 기분이 나쁜지 뒷모습을 째려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대화가 끝났을 때다.
도성민이 다가와 태수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민규하고 김수진 간호사는 곧 들어올 거고, 너 사과는 했냐?”
“무슨 사과?”
“역시 기억 못하나 보네. 그러니까…….”
도성민은 태수가 완벽히 집중할 때 일어났던 일을 말해 줬다.
그 이야기를 들은 태수는 어색한 표정으로 변했다.
분명 박지민 간호사가 건드린 건 잘못이었고, 태수는 당연한 반응을 보인 것뿐이다.
그래도 평소 존대하다가 갑자기 반발로 소리쳤으니 놀랐을 터였다.
그 부분은 고의든 아니든 태수가 실수한 건 분명했다.
태수는 고개만 끄덕인 후 뒷정리를 하는 박지민 간호사에게 다가갔다.
2차 선별 인원으로 응급의료대에 소속된 간호사였다.
예전에 이선정 간호사와 외국에서 함께 일해서 그런지 헬기 레펠을 높은 점수로 수료하고 응급의료대로 활동하고 있었다.
태수는 정리를 하고 있는 그녀를 불렀다.
“박 간호사님.”
“네, 팀장님,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박지민 간호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되물었다.
그녀의 눈빛과 행동, 손짓 하나에도 섭섭함은 담겨 있지 않았다.
태수는 오히려 더 미안했다.
“아까 제가 소리쳤다고요. 죄송합니다.”
“왜 그러세요, 우리 사이에.”
박지민 간호사가 방긋 웃으며 말하자 태수가 더 미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