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552
02555 2555화
곧 이선정 간호사가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우선 대답부터 할게요. 저도 간단한 수술은 몇 번 한 적 있어요. 물론 피 공포증을 이겨 낸 직후라 끝나고 기절까지 했지만요.”
“흐음.”
“대답했으니까 이제 확실하게 말씀해 주세요.”
이선정 간호사가 분명한 선을 그었다.
오더를 내릴 거라면 확실하게, 그냥 질문이라면 빨리 수술하란 재촉의 의미이기도 했다.
그러자 박남일 외과장이 하석준 팀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 팀장님, 이제 좀 바빠지셔야겠습니다.”
“저도 한가한 게 답답했는데 좋네요.”
“그럼 들어오시죠. 그리고 이 간호사, 정식으로 오더하는 겁니다. 간 좀 잘 붙들어 주세요.”
박남일 외과장의 깔끔한 오더에 이선정 간호사는 곧바로 답했다.
“외과장님 오더면 따라야죠. 그럼…….”
턱.
두툼한 리트렉터인 디버를 든 이선정 간호사가 능숙하게 간을 떠받쳤다. 이어서 옆으로 미끄러지지 않게 데프레서(Depressor)를 옆에 댔다.
데프레서는 내과에서 혀를 누를 때 주로 사용하는 진료 도구 중에 하나였다.
수술 중에 필요에 따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보다 지금 이선정 간호사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직접적 수술 참여는 아니지만 간접적 수술 참여로는 가장 적극적인 접근이었다.
박남일 외과장도 필요하다면 직종보다 인재의 능력을 더 중시하는 모양이었다.
정작 이선정 간호사를 자극해 참여시킨 박남일 외과장이 놀랐다.
“대단하시네요.”
“연약한 여자라 오래 떠받들기 힘들답니다.”
“그래도 잘 버텨 보십시오. 그럼 이어 갑니다.”
박남일 외과장은 놀라는 것도 잠시, 바로 수술을 이어서 진행했다.
그는 여전히 아래쪽을 담당했다.
위쪽은 태수를 대신해 하석준 팀장이 수술을 진행했다.
그렇게 복부 쪽은 알아서 수술을 수월하게 이어 갈 길을 찾았다.
한편, 흉부로 돌아선 태수는 재빨리 돌아가는 상황을 눈에 담았다.
지금 진행 상황으로 보면…….
정리를 마친 태수가 유병태에게 말했다.
“유 선생, 포지션 체인지.”
“알았어.”
슥.
유병태는 군소리 없이 옆으로 옮겨 왔다. 자연스럽게 그의 집도의는 백성현 흉부외과장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당연하단 듯이 어시스던트를 시작했다.
“이쪽부터 보조하겠습니다.”
“잘해 보자고.”
백성현 흉부외과장은 짧게 말하고 수술을 이어 갔다.
그런 두 의사의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근거리에서 수술하고 있었으니 서로의 수술 진행을 안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모든 게 당연하게 진행됐다.
그사이 태수는 정민수의 반대편에 섰다.
그때까지 뒤에 있던 김혁권이 이번엔 옆으로 나와 섰다.
태수는 바로 옆으로 손을 내밀었고, 김혁권은 기다렸단 듯이 니들홀더와 믹스터를 내밀었다.
탁.
받아 든 태수는 어디를 수술 중인지부터 확인했다. 기존 폐정맥 위에 새로운 인공혈관을 덧대던 중이었다.
한쪽은 연결됐고, 반대쪽을 연결하면 된다.
임시 연결이라 해도 정민수의 손놀림은 꼼꼼했다.
태수는 그렇게 봉합에 집중하는 정민수에게 말했다.
“하나라도 빨리 끝내자.”
“나도 그게 좋다고 본다. 그런데…….”
“반대쪽은 내가 진행할게.”
태수가 딱 부러지게 말하자 정민수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나야 좋지.”
“최대한 빨리 진행하자고. 김 간호사.”
태수가 찾자 김혁권은 기다렸단 듯이 롱 포셉과 인공혈관을 내밀었다.
“준비하고 있길 잘했지.”
“그럼 시작해 볼까요?”
“잠깐…… 됐어요.”
말끝을 흐린 김혁권은 태수가 봉합하기 좋게 인공혈관을 잡아 줬다. 그 순간 태수가 쥔 니들홀더와 믹스터가 동시에 움직였다.
휙, 휙.
태수의 양손이 마치 재봉틀처럼 움직였다.
지금 수술에 들어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의 모습이었다.
그걸 본 정민수가 한마디 했다.
“놀고 있었냐?”
“쥐어짜는 중이니까 말 시키지 말고, 다음 연결 빨리 준비해.”
“체력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송 간호사님, 뭐 하십니까? 제가 다른 건 몰라도 태수한테 지는 건 싫다니까요.”
정민수가 타박하자 송현미 간호사도 포셉을 들고 다가와 잡아 주며 말했다.
“저도 김 간호사에게 지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오랜만에 달려 볼까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민수의 봉합 속도가 다시 올라갔다.
그런 태수와 정민수의 봉합 속도는 물론 김혁권과 송현미 간호사가 보조하는 모습이 엇비슷했다.
두 사람이 속도를 올린 모습은 다른 수술에도 자극을 줬다.
“유 선생, 좀 더 신속하게!”
“알겠습니다!”
“하 팀장님, 가장 쌩쌩한 우리가 늦으면 안 됩니다.”
“물론입니다. 그럼 속도 올립니다.”
의사들이 각자 기력을 끌어올려 속도를 높였다.
그런 그들의 변화에 간호사들도 바빠졌다.
“박 간호사, 썩션통 비워 주고 부족한 거 빨리 채워.”
“네!”
“최 간호사, 유 선생님 교체할 수술 도구 없을 때 틈틈이 같이 움직여 줘!”
“알겠습니다!”
그렇게 간호사들까지 열을 올리자 수술대 밖은 난리가 났다.
서영우가 암담한 표정을 재빨리 털어 버리고 굳건하게 외쳤다.
“그래. 젠장. 나 오늘 입원한다. 기사님, 계속 수혈 들어가야 됩니다!”
“하고 있어요!”
“공 선생, 뭐 해? 지금 왜 손을 놓고 있는데?”
“지금 투여 마치고 수치 보는 중입니다. 내가 다시는 최 팀장 수술에 들어오나 봐!”
공우혁은 이젠 힘이 빠졌는지 짜증만 토해 냈다.
그 투정에 ECG를 비롯한 각종 수치들을 빠르게 훑어보던 서영우가 가늘게 미소 지었다.
“그러게 각오하랬잖아.”
할 말은 그뿐이었고, 그 후로는 두 손 바쁘게 환자에게 필요한 걸 보충했다.
모두가 내뿜는 열정에 차가운 수술실 온도가 올라간단 느낌까지 들었다.
이젠 자잘하게 오가던 대화도 사라졌다.
다들 이성으로 판단하고 있지만 손놀림은 본능에 가까웠다.
그런 수술이 계속되던 중이었다.
턱!
태수가 한 발 뒤로 물러서며 거친 숨을 애써 끊어서 내뱉었다.
“후, 후.”
“다행히 먼저 끝냈네요.”
툭툭.
김혁권이 태수의 땀을 닦아 주며 말했다.
그때 정민수도 마무리를 지었는지 살짝 질린 얼굴로 따졌다.
“후우! 먼저 끝낸 게 아니라 제가 도와주느라 먼저 끝난 겁니다.”
“그래요. 정 선생님이 최고예요. 여기 봐요. 땀 좀 닦고.”
울컥한 정민수를 송현미 간호사가 땀을 닦아 주며 달랬다.
둘 다 어느 정도 땀을 닦아 낸 후였다. 들뜬 분위기는 쥐도 새도 모르게 다시 가라앉아 있었다.
분명 양쪽 폐의 동맥과 정맥이 하나씩 더 연결되어 원활하게 흐르는 중이다.
그럼 기뻐야 하는데 표정이 그렇지 못했다.
태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선 수술 끝날 때까지 폐에 혈액이 부족할 일은 없을 거야.”
“그런데 폐부종은 아직도 못 건드렸고…….”
“경정맥도 마찬가지야.”
태수가 덧붙여 말하자 정민수가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이야.”
“다행이라면…….”
태수가 서영우 쪽을 힐끔거렸다.
폐혈관 수술이 끝났는데 ECG의 소리가 조용했다.
그걸 같이 확인한 정민수가 덧붙여 말했다.
“이제 수술 끝날 때까지 시간은 벌었단 거지.”
“너 괜찮아?”
“그냥저냥. 그런데 우리보다…….”
정민수가 말끝을 흐렸다.
어느새 두 사람의 시선은 백성현 흉부외과장에게 향해 있었다.
관상동맥의 기본적인 순환 처치를 마치고 관상정맥으로 넘어간 모습이었다.
그런 그의 얼굴이 엉망이었다. 헤어캡 내부에 습기가 가득 차 있었고, 마스크도 입김으로 눅눅해졌다.
유일하게 드러난 눈매에선 아무런 표정도 읽을 수 없었다.
지쳤단 의미다.
자신들보다 최소 20년이나 차이 나는 대선배였다.
어느새 자신들이 이립을 넘어선 지 오래됐으니, 그의 나이는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런 백성현 흉부외과장은 수술 시작부터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
앓는 소리는커녕 신음 한 번 내지 않았다.
대단한 정신력이었다.
현역에서 왕성한 활약을 하고 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젠 한계란 게 보였다.
지금도 반대편에서 유병태가 눈치껏 받쳐 줘 관상정맥 수술이 이어지고 있단 걸 부정할 수 없었다.
문제는 역시 똑같았다.
대처할 의사가 없단 점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끝까지 함께할 수도 없었다.
태수와 정민수가 서로를 바라봤다.
끄덕.
가볍게 고갯짓으로 신호를 주고받은 두 사람이 동시에 움직였다. 그중 태수가 먼저 백성현 흉부외과장에게 말했다.
“과장님, 이제 저희가 하겠습니다.”
“왜…… 내가 힘들어 보여?”
“솔직히 그렇습니다.”
태수는 거짓을 말할 수 없었다.
전체적인 수술 시간이 지체되면 안 된다.
백성현 흉부외과장도 그 부분이 우선이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방해가 되면…… 안 되지.”
“죄송합니다.”
“내가 나이 먹은 게 두 사람이 미안할 일인가?”
“…….”
“그보다 두 사람 얼굴도 좋지 않아. 난 그게 더 걱정이야.”
그의 염려에 태수가 얼른 고개를 저었다.
“저희는…….”
“젊다고 말하지 말고.”
“…….”
“지금 나까지 빠지면 남은 흉부의 문제는 두 사람이 해결해야 해. 간 수술도 이제 막 시작 단계를 벗어난 상황이니……. 흐음.”
백성현 흉부외과장이 묵직한 탄성을 흘렸다.
그의 걱정이 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정확한 게 문제였다.
태수와 정민수의 표정도 점점 어두워져 갔다.
그런데 그때였다.
백성현 흉부외과장 뒤로 누군가 다가섰다.
그 상대를 본 태수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어, 어……?”
“넌 또 뭘……. 어머나, 깜짝이야!”
정민수는 태수의 뒤에 선 누군가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그런 두 사람의 반응에 잠시 수술이 멈출 정도였다.
“왜 갑자기……. 어?”
“아니, 이 사람들은 또 언제……. 이거 참.”
박남일 외과장과 하석준 팀장 또한 놀라워했다.
그렇게 다가선 두 사람은 바로 박성민과 도성민의 얼굴이었다.
마스크와 헤어캡으로 철저히 감춰도 특유의 장난기 서린 눈빛, 또 우람한 덩치는 숨길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의 등장은 수술실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수술 직전까지 이쪽 상황을 메일과 전화로 전달받은 탓이다.
특히 박성민과 도성민이 함께할 때 시너지는 태수와 정민수 못지않았다.
그들이라면 얼마든지 흉부외과 수술을 맡길 수 있었다.
그리고 너무 적절한 순간에 나타나 더 반가웠다.
다들 감격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박성민이 옆으로 나와 백성현 흉부외과장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너무 늦었습니다.”
“좀 쉬었나?”
“푹 자고 왔습니다. 정말입니다.”
박성민이 그답지 않을 정도로 차분하게 말했다.
눈빛 또한 다부졌다.
백성현 흉부외과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스럽게 자리를 양보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박 팀장이라면 이 자리에 서도 되지.”
“마무리까지 충분하신 거 알지만 제가 건방 좀 떨겠습니다.”
“무슨 소리. 잘 부탁해.”
백성현 흉부외과장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반대편에선 도성민이 태수와 유병태를 밀어내며 말했다.
“고생했다. 좀 쉬어.”
“언제 들어왔어?”
“너 모를 때.”
도성민이 짧게 대답하자 태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질문을 바꿨다.
“그래, 잘했고. 그보다 저쪽 수술은?”
“지금 여기 이렇게 왔잖아.”
짧지만 의미 깊은 대답에 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생했어.”
“더 고생할 예정인데. 그래서 뭐가 문젠데 최태수가 쩔쩔매고 있었어?”
“쩔쩔매?”
“아주 죽을상을 하고 있던데. 내가 싹 다 해결해 줄 테니까 얼른 말해 봐.”
도성민이 덩치가 무색할 정도로 얄밉게 말했다. 그러나 속뜻은 따스했기에 태수는 적당히 넘어가며 산재한 문제들을 말했다.
“관상정맥은 뚫던 것만 마저 뚫으면 되고, 폐정맥 풍선삽입술 진행, 경정맥…….”
수술할 모든 걸 말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