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64
00267 267화
잠시 후.
태수는 하석준 과장에게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난 하석준 과장이 황당한 얼굴로 바라봤다.
“도대체 애가 얼마나 무거운 걸 들었는데 서혜부탈장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리 그 병이라는 게 급작스럽게 찾아온다고 해도 이건 너무 어이가 없네.”
“저도 상당히 황당했습니다.”
태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석준 과장은 반대로 고개를 저었다.
“막내 손자가 그렇게 귀엽다고 몇 번 이야기하시더니.”
“전 몰랐습니다.”
“그보다 6인실 입원은 좀 그렇지 않나? 명색이 이사장님 막내 손자인데 말이야.”
“굳이 특실에 입원시킬 만큼 큰 병도 아닌데요.”
태수는 외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하석준 과장은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치프는 신경 꺼.”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공부할 시간이 많이 지체돼서 좀 불안하네요.”
태수는 병명이 파악되자 이젠 이사장의 막내 손자보다 김덕현을 더 신경 썼다.
석종수 병명은 정확하게 급성서혜부탈장이다.
병세도 심각한 측에 속했다.
하지만 수술로 금방 완치가 되는 병이기에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런 반면 김덕현은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었다. 태수의 관심은 당연히 김덕현에게 쏠린 상태였다.
그런 태수의 모습에 하석준 과장은 묘한 미소를 보이며 물었다.
“그래도 이사장님 손자를 수술하면 병원에서 입지 좀 올라갈 텐데, 생각 없나?”
“네. 없습니다.”
“그렇군. 최 선생다워.”
“그럼 계속 저다워지기 위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태수는 넉살을 부리며 인사를 한 후 하석준 과장의 방을 나섰다.
잠깐 해프닝은 있지만 다시 공부해야 할 때였다.
태수에게 지금 다른 환자까지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그러나 상황은 마음처럼 돌아가지 않았다.
의국에 돌아온 후로 또다시 공부에 열중하고 있을 때였다.
끼익.
의국 문이 열리고 송민규가 들어와 태수를 찾았다.
“특실에서 잠깐 오라고 하시는데요.”
“특실에 누가 입원했어?”
태수가 의아하게 물었다.
배건형이 퇴원한 후로 특실은 계속 비어 있던 탓이다.
외려 송민규 눈이 크게 떠졌다.
“아까 치프께서 직접 검사까지 지시하셨다던데요.”
“아아, 결국 옮겼나 보네.”
“일단 가 보셔야 할 거 같은데요.”
“부르면 가야지. 참, 세상이 왜 이렇게 안 도와주는지.”
태수는 가볍게 툴툴거리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1분도 아까운 지금 계속 자리를 비워야 하는 게 썩 기쁘지 않은 탓이다.
특실에 도착한 순간이다.
조금 열린 문 사이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우리 외과에서 최선을 다해서 진료할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장 전문입니다. 서혜부탈장 중에서도 좀 심각한 부분이 있지만 수술만 하면 문제없습니다.”
외과 전문의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재욱의 목소리도 들리고 신창용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모두 자신이 수술하고 싶어 하는 목소리들이다.
태수는 그런 전문의들의 입장도 이해했다.
이사장의 눈에 띌 수 있는 기회를 차버리고 싶어 할 리가 없다.
다시 문을 더 열려 할 때 다른 목소리들도 들려왔다.
“회복은 아무래도 우리 내과에서 담당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부작용은 절대 없을 겁니다.”
“서혜부탈장은 우리 비뇨기과에서도 많이 다루는 병 중 하나입니다. 제가 비뇨기과의 명예를 걸고 완벽하게 고쳐 보이겠습니다.”
다른 의과에서도 쪼르르 쫓아온 모양이다.
‘얼씨구.’
이건 좀 어이가 없었다.
서혜부탈장이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아야 할 병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그들의 꿍꿍이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태수는 저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그때 석정현 이사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많은 의사가 관심을 가져주니 참으로 고마워요. 지금은 아이가 안정을 해야 하니까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지요.”
여러 의사가 있는 상황이라 이사장도 반쯤 존대했다.
그 말이 끝난 후였다.
드르륵.
병실 문이 열리더니 과장들과 전문의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문 앞에 서 있던 태수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때 태수를 확인한 의사들이 멈칫했다.
가장 앞에 있던 내과장이 물었다.
“바쁜 최 선생이 여긴 어쩐 일인가?”
“호출 받고 왔습니다.”
“초진을 최 선생이 해서 그런가? 그보다 크론병에 대해서는 열심히 연구하고 있나?”
내과장의 목소리에 가시가 느껴졌다.
그렇다고 태수가 같이 날카롭게 받아칠 이유는 없었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래야지. 그럼 좋은 소식 기다려 보지.”
내과장은 가볍게 대화를 마치고는 몸을 움직였다.
그 뒤를 따라가는 의사들 또한 태수를 가볍게 흘겨보고 멀어져갔다.
다들 바라보는 시선들이 부드럽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이미 예상했기에 태수는 덤덤했다.
이제 병실로 들어가야 할 때다.
병실로 들어가자 석정현 이사장과 석재민 사장의 시선과 마주쳤다.
두 사람 모두 이사장실에서와 다르게 한결 안도한 표정들이다.
일단 아이가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부모 입장에선 크게 안도되는 게 당연했다.
태수는 개의치 않고 들어가 가볍게 고개 숙였다.
“찾으셨습니까?”
“내가 부탁 하나 하려고 말이야.”
“말씀하십시오.”
태수가 덤덤하게 말하자 석정현 이사장이 차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종수 수술을 최 선생이 해 줬으면 해.”
“…….”
태수가 멈칫하는 사이였다.
옆에 있던 석재민 사장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아버지! 그건 안 됩니다.”
“왜?”
“아까 못 들으셨습니까? 저 친구 레지던트랍니다. 외과장이 직접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
석정현 이사장이 침묵하자 석재민 사장이 계속 따지고 들었다.
“급성서혜부탈장인데다가 꽤 심각하다잖습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종수 수술입니다. 어떻게 레지던트에게 부탁할 수가 있습니까.”
“나도 생각이 있어서 부탁하는 거야.”
“무슨 생각이요. 제가 평소에는 진짜 아버지 존경합니다만 이건 아닙니다. 외과 과장도 있는데 굳이 레지던트에게 수술을 시켜야하겠습니까?”
석재민 사장이 열변을 토했다.
하지만 석정현 이사장은 그런 그에게 차분한 얼굴로 물었다.
“만약 최 선생이 이 병원에서 내가 믿고 맡길 수 있는 유일한 의사라면 어쩔 거냐.”
“네?”
“너만큼이나 나도 종수를 아끼고 사랑해. 정말 문자 그대로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이다. 그런 아이를 수술하는데 내가 아무에게나 부탁할까.”
“그래도 아버지.”
석재민 사장의 눈빛이 가늘게 떨려왔다.
이 상황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때 태수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화에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만 이사장님. 사장님 말씀대로 외과장님께 이야기하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왜? 다른 의과에서 최 선생을 안 좋게 생각하고 있어서?”
“아니요. 지금 김수진 간호사의 아버지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합니다.”
태수의 정중한 대답을 들은 석정현 이사장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당장 수술하는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계속 같은 것만 보고 있으면 시야가 좁아져.”
“저도 압니다만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기가 힘듭니다.”
“외과장에게 듣자하니 상황은 좋지 않지만 수술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던데. 내 이렇게 부탁해도 안 되겠나?”
석정현 이사장이 바르게 서서 가볍게 고개만 숙였다.
태수는 솔직히 그 모습에 놀랐다.
석정현 이사장이 석종수를 얼마나 어여쁘게 여기는지도 대번에 느껴졌다.
그동안 믿고 기다려 준 것과 받은 걸 생각하니 더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태수가 잠시 생각하는 사이였다.
석재민 사장이 석정현 이사장을 향해 발끈했다.
“아버지. 그렇게 고개까지 숙이실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허.”
“…….”
석정현 이사장의 한마디에 석재민 사장은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를 존경하다는 말이 그냥 한 말은 아닌 모양이다.
석정현 이사장이 고개를 들고 태수를 진지하게 응시했다.
그 눈빛에 태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내일 아침에 일찍 수술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고마워.”
“아닙니다. 저도 그동안 감사했던 마음을 조금은 덜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래. 다 잊어도 좋으니까 부탁하지.”
석정현 이사장의 얼굴에는 그제야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한편 석재민 사장은 아버지의 태도를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너무도 갑갑했다.
이런 일을 상의할 사람은 동생인 석재봉 과장뿐이다.
세미나로 외국 출장 중인 걸 알지만 갑갑한 마음에 휴대폰을 들었다.
통화가 연결되자 석재봉 과장의 조금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이 어쩐 일이세요?”
“석 과장 아니, 재봉아. 진짜 너무 갑갑해서 전화했다.”
“무슨 일인데요.”
“종수가 말이다. 그러니까…….”
석재민 사장의 신세 한탄이 길게 이어졌다.
“……그런데 아버지가 최태수란 레지던트에게 수술을 맡기다니, 이건 너무하는 거 아니냐?”
“최 선생한테요?”
“너도 알아?”
“압니다만.”
석재봉 과장의 응답에 석재민 사장은 한결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럼 이게 말이 되냐는 말이야. 어떻게 종수 수술을 레지던트한테 부탁할 수가 있어. 가족이 중요하다고 늘 말씀하셨던 아버지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으시냔 말이다.”
“형님. 제 생각에는 말입니다.”
“그래. 말해 봐.”
석재민 사장이 기대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석재봉 과장의 목소리는 전혀 예상과 달랐다.
“아버지가 진짜 종수를 사랑하시는 거 같습니다.”
“뭐, 뭐?”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사랑하시는지는 몰랐네요.”
“너,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석재민 사장이 말을 더듬을 정도로 황당해 했지만 석재봉 과장은 개의치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최 선생은 앞으로 동성의 외과를 이끌어갈 아주 실력 좋은 의사입니다. 그건 제가 보장합니다.”
“레지던트…….”
“그 레지던트가 충남 유명종합병원 외과장, 아니죠. 그분이라면 서울 종합병원에서도 알아주는 분입니다. 그런 분한테 계속 러브콜을 받고 있습니다. 제발 그쪽으로 와달라고요. 최 선생은 그런 의사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 그러냐?”
“그렇다니까요. 전 또 진짜 큰일이 난 줄 알았습니다. 형님, 제가 내일 중요한 세미나 발표가 있어서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그리고 종수 수술은 걱정 푹 놓으세요.”
석재봉 과장은 사람 좋은 목소리로 통화를 마쳤다.
통화가 종료되자 석재민 사장은 얼떨떨한 얼굴로 휴대폰을 귀에서 떼며 중얼거렸다.
“내가 이상한 거야? 아니면 아버지하고 이 녀석이 이상한 거야?”
아직도 갈피를 못 잡는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