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705
02708 2708화
이 블로거는 응급의료대 마니아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될 정도로 심도 깊은 내용까지 알고 있었다.
태수의 머릿속에 그때 상황들이 사진처럼 그려질 정도로 정확했다.
이 블로거에게도 뭔가 아픔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절레절레.
태수는 고개를 저어 생각을 털어 냈다.
아직 읽을 내용이 남아 있었다.
하나하나 정성 들여 작성한 글인 만큼 태수도 차분하게 마음을 달랬다.
그 후 남은 내용을 눈으로 읽기 시작했다.
-응급의료대는 현장 출동이 위험하단 걸 동료의 죽음을 통해 더욱 절감했을 거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이번 참사에 누구보다 빨리 도착했다.
아마도 가장 가까운 동료를 병원에도 데려가지 못하고 떠나보내야 했던 응급의료대의 한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본다.
그들이 그렇게 위험을 감수하고, 두려움을 뒤로하고 현장에 찾아가 구하고 싶은 건 환자가 아닌 송민규 선생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응급의료대의 활약을 기사로 접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송민규 선생의 죽음을 놓고 비난한 사람들은 당장 사과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위험에 처하게 되면 응급의료대는 분명 두려움을 털어 내고 헬기에 오를 거다. 그 상대가 동료의 죽음을 비난했단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해도 응급의료대는 최선을 다해 치료할 거다.
분명 그럴 거라 확신한다.
응급의료대에게 응급 환자는 곧 송민규 선생일 테니까.
‘우리는 영원히 함께다.’
응급의료대 기사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 일종의 구호 비슷한 문구다. 그 문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정확한 정보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젠 알 것 같다.
개운하고 싶어 시작한 글이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하고 있다. 오늘은 알싸한 소주 한잔 마셔야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블로거의 글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태수는 마지막 한 글자까지 정독했다. 그리고 고개를 든 태수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꽈악.
휴대폰을 강하게 움켜쥔 태수의 시선이 가늘게 흔들렸다.
긴 글을 정독하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송민규와의 첫 만남부터 마지막 모습까지 사진첩을 펼친 듯이 떠오른 탓이었다.
그렇게 홀로 생각을 이어 가던 중이었다.
손에 쥔 휴대폰을 가슴으로 이끈 태수는 가득 품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
망부석처럼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그러던 중이었다.
파르르.
태수의 어깨가 가늘게 떨려 왔다.
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그렇게 숨죽였다.
그 후로 이틀이란 시간이 더 지나갔다.
신기하게도 송민규를 회상한 글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그 글을 작성한 블로거는 개인 방송을 하는 스트리머였다. 그의 팬들이 여러 커뮤니티 사이트에 복사해 옮겨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개인 방송의 주제도 응급의료대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또 현장에서 직접 촬영한 영상도 있었다.
당시 브리핑 시간을 통보하고 돌아선 태수를 험담하는 걸 그대로 영상으로 녹화하고, 소리 내 주변에 알려 기자들의 입을 막은 적도 있었다.
장문의 글과 함께 그 동영상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의 방송 채널의 구독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현상도 발생했다.
신문 방송기자들이 인터뷰를 요청하기도 했고, 그 내용이 뉴스에 짧게 소개되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짧은 시간 사이 엄청난 인기인이 되어 있었다.
그 덕분에 송민규의 이름이 곳곳에서 들려왔고, 일부 기자들은 발자취를 쫓아 기사로 내기도 했다.
태수는 병상에서 그 모든 걸 주의 깊게 관찰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있었다.
“사람이 마음을 갈고닦아야 한단 말이 이렇게 증명되는 거지. 그게 결국 복이 되어 돌아오는 거잖아.”
중얼거리던 태수는 순간 멈칫했다.
옥상에서 응급처치를 마친 중년인이 떠나가기 전 했던 말이 떠오른 탓이다.
진짜 복은 금전적으로 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게 어떤 복인지 몰라도 태수에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복이길 바란다고 했다.
그가 빌어 준 복이 이건가?
아니, 이게 확실했다.
그 중년인이 옳았다.
송민규가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된 건 태수에게 있어 가장 큰 복이었다.
태수가 홀로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뭘 그렇게 흐뭇하게 보고 있나?”
갑자기 들려온 인자한 목소리에 문득 고개를 들어 본 태수가 깜짝 놀랐다.
어느새 병실에 들어온 석정현 회장과 정용철 이사장이 지켜보고 있던 탓이다.
“아, 아니…….”
당황한 태수가 얼른 일어나려 했지만 석정현 회장이 먼저 다가와 만류했다.
“몸도 성치 않으면서 인사는 무슨. 그냥 있어.”
“아닙니다. 그래도 이렇게 오셨는데…….”
“환자는 그래도 돼. 환자는 응석도 부리고 투정도 부려도 되는 권리가 있지 않나.”
툭툭.
석정현 회장은 태수의 멀쩡한 어깨를 가볍게 다독이며 다시 눕길 권했다.
그의 말이 맞는다고 해도 누워 있을 순 없는 노릇이라 태수가 병상 등받이를 세웠다.
기잉.
반쯤 누운 자세로 바꾼 후에야 태수는 불편했던 얼굴이 조금 편안하게 변했다.
그런 태수를 보고 정용철 이사장이 한 소리 했다.
“이제야 마음이 편해?”
“하하. 네.”
“그렇게 고집부리면 미워 보여야 정상인데, 최 팀장은 그 정도까진 아니라서 더 신기한 거 같아.”
“음, 워낙 귀여운 인상이라 그럴 겁니다.”
태수가 뻔뻔하게 답하자 정용철 이사장이 빙그레 웃고 말았다.
“그래. 뭐 그렇다고 하자고.”
“아닙니까?”
“적당히 해. 회장님 앞에서 진지하게 욕하긴 싫으니까. 하하.”
정용철 이사장은 짓궂은 농담을 하며 크게 웃었다.
그의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다.
태수가 그 이유를 물으려 했지만, 오히려 그 질문을 석정현 회장에게서 받게 됐다.
“최 팀장의 기분이 무척이나 좋은 거 같은데, 그 이유가 뭘까?”
“저요?”
“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휴대폰 들여다보며 웃으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있나.”
석정현 회장은 태수가 난감하지 않게 푸근히 물어 왔다.
태수는 고민할 것도 없이 석정현 회장에게 휴대폰 액정 화면을 보이며 짧게 설명했다.
“송 선생에 대한 기사들이 이렇게 많이 올라왔습니다.”
“안 그래도 요 며칠 사이 송민규란 이름이 자주 보인다 싶었는데……. 음, 이거 상당한데?”
휴대폰 액정에 가득한 송민규의 이름에 석정현 회장은 짐짓 놀란 표정으로 변했다.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던 태수는 간략하게 핵심만 추려서 전달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오호, 그런가. 그렇게 해서 송 선생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가?”
“네. 어째 큰 선물을 받은 거 같습니다.”
태수의 답에 석정현 회장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메마른 가슴도 이리 크게 뛰는데, 최 팀장은 오죽할까.”
“…….”
태수는 뭐라 할 말이 없어 침묵을 택했다.
그런 태수를 더욱 부드러운 미소로 바라본 석정현 회장이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최 팀장, 사람이 죽어서 이름을 남긴단 말의 의미를 아나?”
“계속 회자되는 걸 말하는 게 아닐까 추측해 본 적은 있습니다.”
“그런 의미도 있겠지. 그런데 그게 전부는 아닐 거야.”
“그럼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태수가 조심히 묻자 석정현 회장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누군가의 가슴속에 새겨지는 게 아닐까?”
“새겨진다라……. 음, 조금 어려운 내용 같습니다.”
“그런데 왜 어렴풋이 이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나?”
석정현 회장이 빙긋 웃으며 물었다.
태수는 어색한 미소와 더불어 대답했다.
“제 가슴속에도 많은 분들이 살고 계셔서요.”
“그래. 그렇게 머리가 아닌 가슴이 기억하는 이들은 죽은 게 아니야. 내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거지.”
“옳은 말씀입니다.”
태수는 명쾌하게 답했다.
그리고 천천히 가슴에 손을 댔다.
카프레네, 사비, 송민규 등등.
그들 모두 이렇게 가슴으로 불러 보면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자신의 가슴속에 살아 있었다.
지금껏 그랬듯이 언제까지나 함께 살아갈 터였다.
그래서 석정현 회장이 건넨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태수만이 아니라 석정현 회장과 정용철 이사장도 각자 가슴속에 살아 있는 누군가를 잠시 그려 봤다.
그중 사색에 잠겨 있던 석정현 회장의 시선이 태수에게로 향했다.
평생 답답했던 가슴을 시원하게 해 준 인물인 탓이다.
어느새 태수의 시선도 석정현 회장을 마주했다.
“…….”
“…….”
둘 다 말이 없었다.
하지만 눈빛은 끝없이 대화하고 있었다.
그 눈빛 속에 오가는 의미는 두 사람만 느낄 터였다.
잠깐 무거운 시간이 흘러간 후였다.
각자 상념에서 깨어난 세 사람은 시선을 마주치자 덤덤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병실 분위기는 한층 가벼워졌다.
석정현 회장이 먼저 입을 열어 한 번 더 분위기를 어루만졌다.
“이런 얘기 하려고 찾아온 게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되어 버렸어.”
“너무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회장님, 저도 그렇습니다.”
정용철 이사장이 한층 깊이 있는 미소를 덧붙여 답했다.
석정현 회장이 부드럽게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언제 또 기회가 되면 깊은 얘기를 느긋하게 나눠 보자고.”
“언제든 불러 주십시오.”
“그래. 그건 그렇게 하고, 이제 이렇게 찾아온 용건으로 들어가야지.”
석정현 회장이 슬쩍 눈짓했다.
눈치 빠른 정용철 이사장은 서류철 사이에서 종이 한 장을 빼 태수에게 건네며 말했다.
“한번 확인해 봐.”
“이게 뭘까……. 어, 어?”
무심하게 확인한 태수의 눈이 점점 휘둥그렇게 떠졌다.
그 반응이 재밌었는지 석정현 회장과 정용철 이사장은 의미심장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까무러치게 놀란 태수는 얼른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정용철 이사장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거 혹시…….”
“맞아. 최 팀장 이름으로 모인 후원금이야.”
“이, 이렇게나 많습니까?”
태수는 말까지 더듬었다.
인터넷을 하도 돌아다녔더니 후원금이 모인단 소식은 접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십시일반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절감하는 중이었다.
석정현 회장은 그런 태수에게 넌지시 말했다.
“얼마의 가치를 지녔는지보다 보내 주신 분들의 뜻을 헤아려야지.”
“그럼요. 제가 그 뜻을 왜 모르겠습니까. 제 일을 더 열심히 하란 격려와 응원인데요.”
“그래. 알면 됐어.”
석정현 회장은 그렇게 결론을 지으려 했다.
거부할 수 없게 만드는 그만의 화법이었다.
태수도 몇 번이나 같은 수에 당했었다. 그러나 학습을 통해 패턴을 확실히 파악한 태수는 이번엔 당하지 않았다.
“회장님, 이렇게 끝낼 대화가 아닌 거 같습니다.”
“음, 이런.”
“이젠 안 통하죠?”
태수가 밝은 얼굴로 묻자 석정현 회장도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래. 제법이야. 그렇다고 모두가 보내 준 선심을 거부할 순 없을 터.”
“네. 저도 받을 거고, 이렇게 받았습니다.”
태수는 손에 든 종이를 가볍게 쥐어 보였다. 그러나 그 종이는 후원금이 어떻게 모였는지 알려 주는 내용이 전부였다.
그걸 이 자리까지 가져온 정용철 이사장은 정확히 알고 있어 넌지시 물었다.
“받았단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렇게 마음을 받았단 겁니다.”
“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말하는 건데, 성호종합병원으로 별도의 후원금이 모이고 있어. 이번 참사의 환자들에게 써 달라고 말이야.”
“그럼…….”
태수가 말하기 직전 정용철 이사장이 한 번 더 입을 열어 말했다.
“응급의료대도 별도 계좌가 개설돼서 후원금이 들어가고 있고. 충선대학병원과 다른 병원들도 마찬가지야.”
“그럼 그 규모가…….”
“모금 규모가 역대 최고란 분석이 있었어. 그랜드 타워 화재사건은 이미 범국가적 재난으로 선포됐고, 그에 맞게 정부기관에서 적극적으로 피해 규모와 보상 방안을 검토 중이야.”
“그건 저도 뉴스로 봤습니다.”
태수는 아직 얼떨떨한 얼굴로 답했다.
그런 태수에게 정용철 이사장이 차분하게 이어서 말했다.
“그래. 오늘 아침에 최종 집계된 사상자 수와 추산적 피해액이 발표됐으니까. 새삼 그랜드 타워가 얼마나 경제적으로 거대한 가치를 지녔는지도 알았고.”
“하필 가장 사람이 많이 모이는 주말이라 더 피해가 컸죠.”
태수가 어두운 얼굴로 한마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