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738
02741 2741화
태수와 정민수의 차량은 복잡한 주차장까지 다가가지 않았다.
한가한 게 좋아 조금 멀찍이 텅텅 빈 주차장에 대충 주차했다.
탈칵.
멈춰 선 순간 차의 문들이 동시에 열리며 사람들이 내렸다. 차주인 태수와 정민수, 그리고 VWD 수술팀원들이었다.
그들의 모습은 평소와 너무도 달랐다.
다른 사람들이라고 착각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남자들은 슈트에 머리에 힘을 잔뜩 줬고, 여자들은 드레스에 과하지 않은 화장과 장신구를 걸친 모습이다.
박성민은 한껏 꾸며 놓으니 마치 연예인 같았다.
그리고 그 옆에 선 김혁권은 이국적인 이목구비와 슈트가 어우러져 해외 시상식에 초대된 배우를 연상케 했다.
두 사람의 모습만 멋진 건 아니었다.
태수 또한 오늘은 머리를 뒤로 쭉 넘기고 턱수염을 말끔하게 깎아 산뜻한 이미지를 풍겼다. 거기에 몸에 꼭 맞는 슈트의 맵시도 제법이었다.
그런 태수는 정작 자신의 모습이 아닌 팀원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쭉 한 바퀴 둘러본 태수는 감탄한 얼굴로 엄지를 들었다.
“모두 최고, 너무 퍼펙트 합니다. 우리 팀이 이렇게 비주얼이 강한 팀인지 이 순간 확실히 와 닿습니다.”
“어쩐 일로 아부를 하실까요?”
이선정 간호사는 칭찬이 싫지 않은 눈길로 핀잔했다.
그런 그녀 또한 평소의 강인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연녹색의 수수한 드레스를 입고, 그에 맞게 장신구도 은은한 느낌으로 착용하고 있었다.
화장도 풀 메이크업을 해서 그런지 너무도 분위기가 달랐다.
하나하나 쌓여 완성된 그 모습에서 우아함이 풍겨 나왔다.
태수는 그 부분을 확실히 짚었다.
“이 간호사님, 거울 한번 보세요. 진심으로 파티장에 들어가면 무조건 혼자이실 겁니다.”
“무슨 말이 그래요? 아무도 안 쳐다볼 정도로 엉망이라고요?”
“아니요. 너무 깨끗한 물엔 물고기도 접근하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해 봤을 때 이 간호사님의 품격 있는 분위기에 접근하기 어려울 같습니다.”
“으흐흠.”
태수의 격한 칭찬에 이선정 간호사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가다듬기 바빴다.
그만큼 부끄러웠는지 태수가 한 말을 꼬투리 잡았다.
“그, 그래도 어째 말씀하시는 게 팀장님은 남자가 아닌 거 같으시네요.”
“제가 왜 이 간호사님에게 남자입니까? 이 간호사님이 저에게 여자가 아닌데.”
“듣고 보니 맞는 말이네요……. 그런데 왜 뭔가 기분이 나쁘지?”
이선정 간호사가 미간을 크게 좁히며 갸우뚱거렸다.
그런 그녀의 옆에 드레스가 아닌 활동적인 정장 차림의 송현미 간호사가 다가섰다.
약간 품이 넓은 옷차림은 단점을 감춰 주고 푸근함과 부드러움을 강조해 줬다.
그런 그녀는 살뜰하게 이선정 간호사를 챙겼다.
“기분 나쁠 일 아니니까 그렇지 않아도 돼. 인상부터 펴. 화장 뭉치겠다. 괜히 눈 비비지 말고. 마스카라 번지면 판다 되니까.”
“힝, 언니. 역시 화장하면 신경 쓰이는 게 너무 많아요.”
“우리가 화장할 일이 뭐가 있니. 수술실에 화장하고 들어갈 것도 아닌데.”
송현미 간호사는 부드럽게 얼렀다.
그런데 정작 그녀가 짓는 미소 속엔 약간의 어색함이 담겨 있었다.
평소엔 의식하지 않던 간호사로서의 어두운 면을 오랜만에 마주한 탓이다.
간호사들에겐 남들이 몰라주는 제한이 의외로 많았다.
화장, 향수, 장신구, 네일아트 등등.
자신을 치장할 모든 것들이 제한의 대상이었다. 특히 수술 전문 간호사들은 맨 얼굴로 살아가는 게 익숙했다.
그녀들이라고 꾸미고 가꾸고 싶은 마음이 왜 없을까.
그러나 자신의 미적 욕심과 즐거움을 내려놓는 대신 어려움과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를 높인다.
그렇게 자신을 억누르고 누군가의 아픔을 덜어 주고 슬픔을 나눈다.
그게 간호사들의 직업적 소신과 자부심이었다.
송현미 간호사는 그 모든 걸 담은 눈빛으로 이선정 간호사를 측은하게 바라봤다.
“선정이가 예쁘긴 예쁘네. 그동안 이렇게 꾸미고 싶었을 텐데.”
“언니는! 나 이제 안 예뻐. 진짜 예쁠 나이는 저기 소현이하고 김 선생님이지.”
“그래. 확실히 나이가 깡패긴 하다.”
“누가 아니래. 어후, 괜히 얄밉다니까.”
이선정 간호사가 저쪽을 바라보며 새초롬한 미소로 괜히 힐난하는 척했다.
그런 이선정 간호사의 반응이 크게 과한 건 아니었다.
한껏 꾸민 김아름과 최소현의 모습은 슬쩍 보기만 해도 가슴 설렐 정도였다.
저쪽은 성숙한 느낌이라면, 이쪽은 활동성 있고 통통 튀는 매력을 강조한 코디로 각자 성격을 잘 표현했다.
특히 그녀들의 연인인 정민수와 유병태는 정신 놓고 쳐다보기 바빴다.
“와……. 우와……. 이야.”
“진짜 어떻게……. 어후. 대박.”
나란히 선 정민수와 유병태의 탄성이 멈출 줄 몰랐다.
그들의 유난스러움에 김아름과 최소현이 괜히 민망해 시선을 피했다.
“왜 저래. 좀 그만 봐도 되는데.”
“아까도 그렇게 봤으면서 뭘 또 본대요.”
“그러니까요. 다들 보는데 눈빛은 왜 저래.”
“같이 있는데 좀 적당히 하지.”
번갈아 험담하면서도 연인의 시선을 잡아끈 자기 모습에 극히 만족하고 있었다.
그때 정민수와 유병태 사이로 도성민이 다가서서 말했다.
“언제까지 여기서 이러고 있을 거야?”
그 소리에 힐끔 쳐다본 유병태와 정민수가 기겁했다.
“아, 그렇지. 가야……. 윽! 눈 정화, 눈 정화. 후우, 큰일 날 뻔했네.”
“나도 내 눈한테 너무너무 미안해하는 중이야.”
수선스러운 친구들 모습에 도성민이 인상을 굳히며 한쪽 볼을 씰룩거렸다.
“이 자식들을 어쩌면 좋지? 진짜 묻어야 하나?”
“가자!”
타다닥.
유병태와 정민수가 소리치며 얼른 흩어졌다. 한껏 차려 입어도 하는 짓은 역시 평소와 똑같았다.
“저, 저 자식들이…….”.
살짝 얼굴이 붉어지려는 도성민에게 태수가 슬쩍 다가서서 진심으로 충고했다.
“도끼야, 워워. 진정해. 그리고 지금 네 모습이 이 어둠과 격하게 어울리니까 저 안에 가면 조심해. 알았지?”
“너까지 왜 그러냐, 진짜…….”
“왜냐고? 잠깐 가만히 있어 봐.”
바로 주섬주섬한 태수가 휴대폰의 셀프 카메라를 켜 도성민에게 건넸다.
“자, 봐 봐.”
그렇게 도성민이 카메라에 비친 자신을 본 순간이었다.
“아, 나네……. 하하. 나, 이 자식, 언제 봐도 참 개성 있게 생겼어.”
도성민이 민망한 듯 민머리를 쓸었다.
“다들 아주 쇼를 해라, 쇼를.”
“태수야, 내가 진지하게 고민해 봤는데, 오늘은 말할 때 단어 선택에 특별히 신경 쓸게.”
“그건 좀 부탁하자. 그건 그렇고…… 왜 안 와?”
태수가 정문을 쪽을 응시했다.
이렇게 꾸민 모습을 서로에게 보여 주려 서 있는 건 아니었다.
이어서 도착할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곧 미니버스 한 대가 정문을 넘어 이쪽으로 다가왔다.
부웅.
태수는 그 모습을 보고야 굳어졌던 얼굴이 다시 차분하게 돌아왔다.
“길이 막혔나?”
“모르지. 서울 시내 교통 상황은 수시로 변하니까.”
“비슷하게 출발했다고 그랬잖아.”
“얼추 비슷하게 도착했네.”
도성민이 수더분하게 답해 줬다.
그사이 미니버스가 근처에 멈춰 섰다.
성호종합병원 이름과 로고가 옆면에 크게 새겨진 병원 버스였다.
치익.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안에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석준 팀장과 공우혁을 시작으로 정승휘와 박인수, 성재경 등 전문의들이 먼저 나왔고, 그 후 이성혁, 남선우, 양정한 등 연차별 레지던트들이 함께였다.
김수진과 박수영 등등 간호사들도 이어서 내려섰다.
그리고 그 속에 현 응급의료대 윤주성과 몇몇 조장들, 그리고 보건의로 근무 중인 황경석과 설국진 등도 모습을 보였다.
모두 한껏 멋을 낸 모습이 낯설었지만 나름대로 개성이 느껴졌다.
다 같이 모여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느새 태수의 주변에도 VWD 수술팀이 모여 서 있었다.
천진난만하던 표정은 순식간에 가라앉아 정중한 태도로 먼저 인사했다.
“하 팀장님, 선배님들, 안녕하십니까.”
예의 바른 모습에 하석준 팀장부터 밝은 얼굴로 화답했다.
“어떻게 선남선녀들이 여기 다 모여 있어?”
“박 팀장님, 안녕하십니까. 다들 잘 지내셨죠? 이야, 진짜 옷발 죽입니다.”
“아이고, 다들 영양제 하나씩 맞았다더니……. 멋지긴 한데 피곤이 완전히 풀리지 않는 모양입니다.”
꾸벅.
전문의들이 이어서 인사하고 다른 이들도 고개 숙여 반가움을 표현했다.
같은 원내에 있었다지만 얼굴은 오랜만에 보는 거였다. 또 이렇게 한데 모이니 꽤 인원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하석준 팀장이 혹시나 싶은 표정으로 크게 둘러보며 물었다.
“다 온 거지?”
“대충이요. 이 자리에 없으면 알아서 하겠죠.”
“그래. 애들도 아니고 말이야.”
하석준 팀장은 그러면서도 한 번 더 팀원들과 눈을 마주했다. 그런 그의 눈빛이 평소보다 더 날카로웠다.
“…….”
눈빛 하나로 점차 들뜬 분위기가 가라앉아 갔다.
곧 차분한 표정으로 모두가 가만히 마주 봤다.
그제야 하석준 팀장이 다시 입을 열어 묵직하게 말했다.
“병원장님하고 과장님들은 개별적으로 오신다고 했으니까 알아서 하실 거고, 지금 이 순간부터는 개개인이 화이트엔젤의 대표가 되어야 해.”
“네.”
“특히 전문의들, 인사하고 싶은 분들이 많을 거야. 그래도 레지던트들을 항상 신경 써 주고.”
하석준 팀장의 오더에 전문의들이 단단한 목소리로 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레지던트들은 화이트엔젤 동료들을 대표해 온 자리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도록 해. 저 속에선 너희도 어엿한 의사란 사실 잊지 말도록.”
“네!”
레지던트들은 주차장이 쩌렁쩌렁할 정도로 소리쳐 답했다.
그 기세가 마음에 들었는지 하석준 팀장이 먼저 움직이며 말했다.
“출발하지.”
척, 척.
모두 일제히 컨벤션 센터 현관으로 향했다.
그 눈빛들이 사뭇 비장했다.
그러던 중 태수가 걸음을 조금 늦췄다.
뒤따라오던 이성혁과 어깨를 나란히 하자 속도를 맞춘 태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하 팀장님 말씀 잘 새겨 놓되, 너무 긴장하지 마.”
“긴장이 됩니다.”
“너희도 어엿한 의사 취급 받는다고 하셨잖아. 그런 너희를 누가 잡아먹기라도 할까?”
“그야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성혁은 어색한 얼굴로 대답을 끝마치지 못했다.
태수는 개의치 않고 덧붙여 말했다.
“위축되지 말라고. 그리고 저 안에선 많은 외국 의사들이 다가올 거야. 두 번의 참사에 적극 참여한 덕분에 화이트엔젤이란 의료팀도 상당히 알려졌으니까.”
“그, 그렇겠죠.”
“자식, 더 긴장하네……. 아무튼 대화하다 보면 실수도 나올 거야. 그땐 사과하면 돼. 그런데 어떤 놈이 시비 걸면 한 대 쳐 버려.”
태수의 과격한 말에 이성혁이 움찔했다.
“네?”
“누구나 납득할 명분이 있으면 참지 말란 뜻이야. 그 뒤는 나, 박 팀장님, 하 팀장님이 책임질 테니까.”
태수가 단호하게 말하자 이성혁이 데구루루 눈을 굴리다 이내 거칠게 저었다.
“그래도 그게……. 죄송한데 어려울 거 같습니다.”
“이 자식이.”
“이번 심포지엄에서 희망 병원에 대해 말씀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시작도 전에 저희가 초를 치라고요?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성혁의 대답 소리가 단호했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앞서 걷던 전문의들과 간호사들이 멈칫했다.
힐끔.
쳐다봤지만 걸음을 멈추진 않았다.
대신 이쪽으로 귀가 쫑긋거리는 모습이 확연히 보였다.
단호하고 확고한 이성혁의 대답이 귀를 활짝 열게 한 모양이었다.
태수 또한 그 소리에 조금은 감동했다.
“자식. 그게 신경 쓰였어?”
“당연한 겁니다. 이번 참사에서도 구출 후에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이 계십니다. 만약 희망 병원이 가동 중이었다면 어땠을지 계속 머릿속에 맴돕니다.”
“이 녀석…….”
태수의 목소리가 잦아들자 이성혁이 이어서 말했다.
“물론 희망 병원이라 해도 모든 분들을 회생시킬 순 없었을 겁니다. 그래도, 단 한 분이라도 회생하셨을 거 아닙니까.”
“그야…… 가능성이 제로는 아닌 추측이지.”
“전 확신합니다. 희망 병원은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목숨을 마지막까지 싸워 지켜 낼 병원이란 걸요.”
이성혁의 강렬한 목소리가 모두를 잔잔하게 자극했다.
듣는 태수도 가슴이 찌릿했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건 칭찬이 아닌 괜한 타박이었다.
“너 대체 뭘 먹고 왔는데 말이 청산유수야?”
“제 마음속에 그린 희망 병원의 이미지를 말씀드린 겁니다.”
“이 녀석이 뜬금없이 자극적인 말을 하는 재주가 있네.”
태수가 수더분하게 넘기려 했다.
그런데 이성혁의 생각은 달랐는지 태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