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945
02949 2949화
타이밍이 딱딱 맞아떨어졌다.
특히 홍진만의 반응 속도가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그건 염증이 다른 곳으로 흐르는 걸 방지해 오염이 번지는 걸 막을 수 있었다.
몇 번 더 같은 방식으로 진행하던 중이었다.
김혁권이 가벼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이런 식이면 잘 마무리될 거 같은데요.”
그런데 그때였다.
삐비빅!
ECG의 소리가 급변했다.
그와 동시에 공우혁이 따갑게 소리쳤다.
“뭐야, 뭐지? 갑자기 심장 움직임이 이상해졌어!”
그 말에 김혁권이 스스로를 자책했다.
“이런, 젠장 맞을 주둥이!”
“나중에 자책하시고……. 공 선배, 강심제 투여!”
“이미 했어!”
“항부정맥제는요?”
태수가 이어서 물었지만 공우혁의 대답은 똑같았다.
“내가 그것도 안 했을까!”
“마그네슘, 칼륨, 인, 전해질 수치도 모두 확인해 주세요!”
“그건……. 기다려. 빨리 볼게. 기다려……. 이게 어디서부터…….”
공우혁이 순간 헤매었다.
스스로 부족한 걸 알기에 더욱 민첩하게 파악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ECG의 소리는 점점 급해져 갔다.
삐비빅, 삐비빅!
한계까지 치고 올라간 맥박 소리에 태수의 목소리도 다급해졌다.
“아직 파악 안 됐습니까?”
“아이씨! 미치겠네!”
공우혁의 짜증이 수술실을 가득 울렸다.
이렇게 되면 심정지가 올 확률이 높아진다.
그건 안 될 말이다.
영양실조를 앓는 환자가 수술 중인데, 심정지가 온다면 회생이 어려울 터였다.
그때 태수가 멈칫했다.
영양실조!
그걸 간과한 건 아닐까?
생각할 틈 없이 바로 소리쳐 물었다.
“공 선생님, 영양제 계속 투여 중이죠?”
“그럼. 그건 필수지!”
공우혁의 대답은 전광석화 같았다.
그런데 태수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져 있었다.
바로 시간대별로 상황을 정리해 봤다.
“병원 도착까지 30분, 도착해서 수술까지 30분……. 영양제 투여 시간 1시간……. 젠장. 너무 빨리 들어왔어.”
“뭐?”
“수술에 들어온 시간이 빨랐단 말입니다.”
“그럼 어째. 이런 상황에서 계속 밖에 둘 순 없었잖아!”
공우혁이 소리쳐 항변했다.
물론 공우혁의 소견이 옳았다.
더 수술을 끌었다면 확률은 급격히 떨어지는 게 현실이었다.
문제는 이 아이가 오랫동안 식사를 하지 못했단 점이다.
올라간 맥박과 혈압이 좀처럼 떨어질 줄을 몰랐다.
태수가 내심 긴 한숨을 내쉬었다.
결과가 머리에 그대로 느껴진 탓이다.
이대로 수술을 강행하게 되면 심장이 터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차선책을 찾아야했다.
태수는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일단 수술 중지. 홍진만, 제세동기 준비해. 그리고 송 간호사님은 중심정맥관 준비해 주세요.”
“네!”
휙휙!
순식간에 두 사람이 움직였다.
그사이 태수는 김혁권에게 말했다.
“개흉 준비해 주세요.”
“여차하면 열겠단 말입니까?”
“그래야죠. 심장이 안 뛰면 수술이 의미가 없는데요.”
“하아, 정말 미치겠네. 왜 갑자기 이렇게 급변한 겁니까?”
김혁권이 답답한 얼굴로 물었다.
태수는 그런 그에게 핵심을 찌른 현실 그대로를 말했다.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지친 아이를 수술대에 올려놓고 수술을 강행하는데 문제가 안 되면 그게 더 이상한 겁니다.”
“젠장. 차라리 닫고 시간을 더 줍시다.”
“시간을 벌어도 여기서 벌어야 합니다. 지금 닫으면 그때와 똑같아집니다.”
태수는 냉정한 목소리로 상황을 말했다.
맞는 말이다.
멈추면 힘들다.
동시에 순탄하게 시작했던 순간은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이제 급변한 환자의 수술을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할지 걱정해야 한다.
이 순간에도 태수는 어떤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차분하고 냉정하게 이 위기를 넘길 그 방법을 생각했다.
순식간에 몇 분이 흘러갔다.
불과 몇 분이다.
잠깐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짧은 시간이 흘렀을 따름이다.
그런데 상황은 그리 편하지 않았다.
환자의 상태가 점점 더 안 좋아짐이 한눈에 보였던 탓이다.
삑삑삑.
당연히 귓전에 울리는 ECG의 소리도 계속 따갑기만 했다.
수술실 공기는 보다 무거워졌고, 점점 긴장감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젠장.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경우는……. 아닌데, 이러면 안 되는데…….”
공우혁이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그가 짊어진 마취의란 포지션의 무게가 많이 버거워진 모양이다.
충분히 이해는 간다.
공우혁은 엄연히 내과의였지, 마취의가 아니다. 마취의가 모두 수술에 들어간 응급 상황이라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 그 차이는 엄청났다.
지금 상황도 공우혁이 제대로 받쳐 준다면 조금 더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른다.
명백한 사실이지만 그걸 지적할 순 없었다.
그는 이 순간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다만, 역량의 부족을 단숨에 메울 방법이 없었다.
삑삑, 삑삑삑!
ECG의 소리가 점점 다급해져 갔다.
저쪽에선 홍진만이 제세동기를 끌고 왔다.
그르릉!
“젠장. 이거 왜 이렇게 무거워!”
“중심정맥관 세트가…….”
송현미 간호사의 손길도 다급해졌다.
개흉 준비를 위해 필요한 수술 도구를 더하는 김혁권도 마찬가지였다.
“그거 어디 갔지? ……이 녀석들이, 정해진 자리에 놓아야 헤매지 않는다니까!”
우당탕!
급해진 손길에 넘어지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어떤 응급 상황에서도 침착할 이들의 모습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그만큼 환자의 심장 소리가 격했다.
맥박이 너무 상승해 심장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덮어놓고 차분함을 강조할 상황이 아니다.
“…….”
그때까지 태수는 냉정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태수도 그저 기다리는데 이미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결국 태수가 먼저 움직였다.
스윽.
비장한 눈빛으로 수술대를 벗어난 태수는 곧장 공우혁에게로 향했다.
공우혁은 태수가 다가오자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팀장, 아니, 태수야, 얘 좀 어떻게 해 봐. 내가 이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진짜 모르겠어. 진짜 모르겠다고!”
“진정하시고요.”
“마! 지금 진정이 되겠어?”
공우혁의 목소리에 분노가 서렸다.
그래도 아무 말도 쉽게 하기 힘들었다.
“…….“
”빨리 뭐든 좋으니까 말해 봐.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면…… 잠깐이라도 시간을 벌 수 있을까?”
공우혁의 눈시울이 점점 붉게 변해 갔다.
이 순간 무력한 자신의 가슴을 쥐어짜고 싶은 얼굴이었다. 그간의 노력에도 손을 쓰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운 눈빛이었다.
의사로서 가치관이 흔들리고 있을 정도로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다.
태수는 그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스윽.
옆으로 한 걸음 옮겨 선 태수는 앰풀이 가득한 밧드(철제 그릇)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신속하게 몇 가지 약을 한 주사기에 섞어 담았다.
“…….”
급조한 약을 바라보는 태수 눈빛이 날카로웠다.
이어서 태수는 그 주사기를 IV에 조금씩 주입하기 시작했다.
다들 그런 태수를 뚫어질 것 같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태수가 직접 약을 쓰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래서 이 순간에 움직인 태수를 신중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태수는 누구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금 추가하는 주사제에 시선을 고정한 채 피스톨을 신중하게 조절했다.
약이 반 정도 들어간 후였다.
삐삐비, 삐빅, 삐빅.
따갑게 울리던 ECG의 소리가 빠르게 안정적으로 변해 갔다.
수술실은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시한폭탄이 터지기 직전에 갑자기 꺼진 느낌이었다.
한마디로 황당했다. 그럴 정도로 다들 이 순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단 표정으로 가득했다.
그때 태수가 남은 주사약을 빼며 말했다.
“잠깐 시간은 벌었습니다.”
“시간을…… 벌긴 했는데……. 도대체 그게 뭔데 갑자기 이런…….”
공우혁은 얼떨떨한 얼굴로 물었다.
그러자 태수가 쓸쓸한 눈매로 말했다.
“조 형사 병실에서 응급처치할 때, 스미스가 나서니까 갑자기 맥박이 정상으로 변했었던 걸 기억하실 겁니다.”
“그, 그랬지.”
기억을 되살린 공우혁에게 태수가 짧게 말했다.
“그 방법을 쓴 겁니다.”
“뭘 섞은 건데?”
공우혁이 서둘러 태수가 사용한 앰풀들을 확인하려 했다. 그러나 태수는 사용한 다른 앰풀들과 빠르게 뒤섞어 버리며 말했다.
차르륵.
“요행입니다. 그냥 천운이라고 생각하세요.”
“어?”
“특정한 조건이 갖춰진 환자에게만, 그것도 잠깐 시간을 벌어 주는 게 전부입니다. 스미스도 위험성이 커서 세상에 공개하지 않은 거고요.”
태수는 공우혁의 궁금증을 칼같이 잘랐다.
실제로 스미스가 알려 주면서도 몇 번이나 위험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방금 섞어서 투여한 주사제엔 결정적인 단점이 있었다.
태수는 그 단점부터 얼른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길어야 10분입니다. 두 번은 못합니다. 그런데 다들 뭐 합니까? 빨리 오더한 것부터 준비하세요!”
호통 가득한 소리에 홍진만이 먼저 움직였다.
그르릉!
제세동기의 자리를 잡고 전원을 올린 홍진만이 얼른 보고했다.
“제세동기 가동합니다. 우선 200줄 충전합니다!”
“개흉 준비는 5분만, 5분 안에 준비 끝납니다!”
“중심정맥관 준비도 잠깐이면 돼요!”
김혁권과 송현미 간호사가 곧장 뒤따라 보고하며 계속 몸을 움직였다.
그제야 태수도 제자리로 향하려 했다.
그때 공우혁의 묵직한 질문이 들려왔다.
“극단적인 방법이야?”
“……네. 메스로 심장을 겨누는 것과 비슷하게 위험합니다.”
“그래. 그럼 더 묻진 않을게. 어쨌든 시간은 벌었다며. 그런데…… 난 계속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
공우혁의 목소리에 맥이 빠져 있었다. 지금 응급 상황에서도 소리만 지른 자신에게 실망한 모양이었다.
태수는 그런 공우혁에게 진심을 담아 말했다.
“선배, 거기서 나오세요.”
“……그러게.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마취의란 맞지 않은 옷을 걸친 자신이 초라해진 모양이었다.
그러나 태수가 말한 뜻은 전혀 달랐다.
“그 시간에서 벗어나시라고요. 계속 거기 붙잡혀 있으니까 선배가 스스로 얼마나 달라졌는지도 모르는 거 아닙니까.”
“달라져서 요 모양 요 꼴이야?”
“선배 없었으면 수술도 못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선배…… 후회는 한 번만 하면 족하지 않습니까?”
척척.
태수는 매정할 정도로 딱 잘라 말하고 다시 수술대로 향했다.
반면, 공우혁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듯했다.
수술대로 돌아온 태수는 수술 장갑부터 교체했다.
그사이 다들 모여들어 보고했다.
“제세동기 200줄 차지 됐고, 언제든 샷 가능합니다.”
“중심정맥관 준비 다 됐어요.”
“흉부는 언제든지 열어도 됩니다.”
그저 보고가 끝이 아니었다.
뭐든 빨리하자는 열망 가득한 눈빛으로 태수를 압박했다.
그런데 태수는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일단 대기.”
“대기?”
“잠시만요.”
그리고 입을 다물었다.
굳은 눈빛으로 환부만 직시하고 있었다.
뭐라도 해야 되지만 그저 단순하게 생각할 상황이 아니었다.
현재 상태로 개흉을 하게 되면 중심정맥관 연결이 늦춰진다. 반대로 중심정맥관을 연결하면 흉부 수술이 지연된다.
사실 원칙적으로는 두 가지를 병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는 건 공우혁의 전신관리 능력이 부족해서였다.
제세동기를 준비시킨 건 무슨 변수가 발생할지 모른 탓이다.
그 정도로 한 치 앞을 예상하기 어려웠다.
복부 수술은 그래도 여기까지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흉부 수술은 주먹구구식으로 진행할 수 없다.
“하!”
태수가 길게 한숨을 몰아쉬었다.
마취의가 부족했다.
아니 전문의가 더 부족했다.
희망병원의 갈 길이 정말 멀었단 아득함이 가슴속에서 자리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