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009
03013 3013화
그때 태수가 한 명씩 호명하며 물었다.
“김 간호사, 병실 준비는요?”
“선정이가 애들 데리고 갔고, 늦어도 10분 안에 마무리될 겁니다.”
“그렇군요……. 그럼 유 선생, 검사실은?”
태수가 묻자 유병태가 수첩을 뒤적이며 말했다.
사락사락.
“일단 CT는 바로 되고…… MRI하고 혈액검사, 그리고 초음파는 예약이 좀 있어. 아마 CT 검사하면 20분 정도 기다려야 할지도 몰라.”
“20분이라……. 애매하네.”
“예약된 환자들 담당의는 모두 조사했는데, 바로 연락해서 양해를 구할까?”
유병태가 휴대폰을 들자 태수는 가볍게 손을 들어 막았다.
“일단 보류.”
“왜?”
“예약하고 기다린 사람들은 환자 아니야?”
태수가 바로 묻자 유병태가 동치미 들이켠 듯 진한 탄성을 내뱉었다.
“크으! 내가 이래서 우리 팀장을 존경한다니까. 차별 없는 의료!”
“이상한 소리 말고. 최 팀장, 환자가 도착했을 때 상태가 안 좋으면 어쩌려고.”
도성민이 묻자 태수는 심드렁하게 답했다.
“응급이면 다 밀어낼 수 있잖아. 응급이 아니면 기다리면 되고.”
“그건 그러네.”
“너무 걱정부터 하지 말자고. 난 저 EMR을 그렇게 신뢰하진 않으니까.”
태수가 힐끗거리며 말하자 모두 옅게 미소 지었다.
“하긴 모두 믿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지.”
“이래저래 꼼수 부리다가 이송하는 건데 신뢰가 가겠냐고.”
다들 한 마디씩 하며 동조했다.
가만히 듣던 태수가 서영우와 공우혁을 보며 말했다.
“환자가 도착하면 두 분 역할이 큽니다.”
“부담 주지 마. 살 떨려.”
공우혁이 끙끙 앓는 소리를 했지만 표정은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환자가 누구든 특별할 거 없단 의미였다.
그건 공우혁뿐만 아니라 서영우, 그리고 VWD 수술팀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그 속엔 당연히 태수도 포함되어 있었다.
태수는 덤덤한 얼굴로 이어서 말했다.
“이렇게 미리 소집한 건 저 신뢰할 수 없는 EMR로 수술 가이드를 잡기 위함입니다.”
“그건 너무 앞뒤가 안 맞지 않아?”
“네. 앞뒤가 안 맞죠. 하지만 불신한다고 그저 넋 놓고 있다가 더 심각한 상황이란 걸 알게 되면 그땐 정말 대책이 없겠죠?”
태수가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을 합당하게 정리해서 말했다.
다들 그런 대답을 예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야 태수가 본격적으로 수술을 위한 토의의 시작을 알렸다.
“자, 위 EMR을 일단 신뢰한단 전제 하에 수술의 시작은…….”
“…….”
슥슥.
소회의실은 바로 고요해지며 노트에 필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고요함은 브리핑까지만이었다.
그다음엔 바로 자신의 의견을 소리 내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결핵이 일주일 방치됐는데 결핵성 폐공동만 있다는 거야?”
“당장 저기 놓인 것만 보고 하자니까.”
“이건 보고 있어도 답답하네. 아무튼 저런 상황이라면…….”
의견이 뒤섞일수록 점점 목소리가 커졌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단 속설이 이렇게 확인된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듯이 VWD 수술팀에겐 이런 모습이 익숙했다.
그런데 오늘 새롭게 추가된 이기준도 어느새 그 분위기에 휩쓸려 있었다.
스스로는 냉정함을 유지한다고 생각할 터였다.
그건 본인의 생각이었다.
지켜본 태수는?
‘똑같은 놈.’
속으로 읊조릴 뿐,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이젠 이렇게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당연하게 여겼다.
엎치락뒤치락 토의가 이어지던 중이었다.
그사이 병상 준비를 마친 이선정 간호사와 최소현 간호사도 합류해 있었다.
다들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도 상대의 말에 집중했다.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게 이들에겐 정석이었다.
그중엔 태수도 포함되었다.
펼쳐 놓은 노트 여기저기 의학 용어들이 가득 적혀 있었다.
수술의 가장 기본적인 가이드는 잡혀 있었다.
다들 이 부분들을 심도 깊게 토의하는 중이었다.
태수가 그 의견을 신중하게 듣고 있을 때였다.
툭.
옆에서 건드리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 돌려 바라보니 박성민이 한 손에 휴대폰을 쥔 채 바깥을 손짓했다.
뭔가 느낌이 온 태수는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어느새 헬기가 도착할 시간이 되어 있었다. 잠깐 토론하는 사이 이렇게나 시간이 지나간 모양이다.
“가시죠.”
태수가 짧게 한마디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릉.
그 소리에 다들 힐끔 쳐다봤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수술 토의는 끊이지 않고 계속됐다.
그런 의료진들 사이에서 박성민과 몇몇 의료진들이 함께 일어났다.
검사와 전신관리 등을 진행할 이들이다.
가볍게 눈을 마주친 그들은 자연스럽게 밖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태수와 박성민은 옥상에 서 있었다.
투두두.
자그마한 로터 소리가 들려오고, 저 멀리 헬기들이 보였다.
1대가 아닌 모습에 박성민이 나지막이 한 소리 했다.
“중요 인물이긴 한가 봐. 저렇게 편대로 날아오는 걸 보면 말이야.”
“그러게요. 그런데 군용 헬기인 거 같은데요.”
“당연한 거잖아. 아차차! 클라크인가, 클락인가 하는 군인하고는 아직도 연락해?”
“그럼요. 별 2개 달고 인도양 사령부 쪽으로 갔다네요.”
“어이쿠, 인도양 쪽이 세계 분쟁 지역의 대부분인데……. 그 양반도 참 인생 고달파.”
박성민이 안타까워하자 태수가 쓰게 미소 지었다.
“PKO 소속이라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안전한 섬에 있답니다. 주변에 아름다운 섬도 많으니까 놀러 오라던데요.”
“놀러? 퍽이나 놀게 해 주겠다. 아마 도착하자마자 의료 텐트에 밀어 넣고 환자 보낼걸?”
“저도 그럴까 봐 안 간다고 했습니다. 하하.”
태수는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헬기가 접근하는 중이라 잠깐 대화하는 거였다.
그런 와중에도 시선은 병원으로 접근하는 헬기들에 집중되어 있었다. 수송 헬기가 중앙에 있고, 좌우로 전투 헬기가 호위 중이다.
보고 또 봐도 과보호였다.
그걸 태수가 콕 찍어 말했다.
“정말 엄청 몰려왔네요.”
“켕기는 게 많은가 봐.”
태수와 박성민의 감상은 짧고 간결했다.
긴장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곧 전투 헬기들의 호위를 받으며 수송 헬기가 착륙점에 안착했다.
투다다.
시동을 껐는지 시끄럽던 로터음도 점점 작아졌다. 그렇게 프로펠러가 완전히 멈추고야 수송 헬기의 문이 활짝 열렸다.
이어서 가운을 입은 의사 1명과 간호사 1명, 그리고 미군들이 함께 내렸다.
그 뒤를 양복 입은 외국인들이 함께했다.
그르릉!
무리 지은 이들이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걸 본 태수가 박성민에게 권했다.
“마중은 나가야죠.”
“그게 예의지.”
뚜벅뚜벅.
태수와 박성민은 서두르지 않고 저들의 발걸음에 맞춰 움직였다.
그렇게 서로 가까워지던 중이었다.
의사와 간호사의 얼굴이 자세히 보였다.
두 사람 모두 태수가 알고 있는 이들이었다.
이필영, 그리고 박은정 간호사.
태수의 표정이 살짝 어색하게 변했다.
‘이거 참.’
이젠 연성대학병원에 알고 있는 사람이 몇 명 되지 않았다. 그중에서 아는 사람들만 만나고 있어 신기할 정도였다.
그때 옆에서 박성민이 가볍게 손을 들며 이필영에게 인사했다.
“이여, 이필영이, 이게 얼마 만이야? 반갑지만 인사는 나중으로 미루기로 하고. 지금 환자는…….”
거리를 좁히며 환자 상태를 물으려 할 때였다.
척.
군인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한 손을 앞으로 내밀어 접근을 차단하고 다른 손은 총집으로 향해 있었다. 모두 권총을 소지한 걸로 보아 최소 부사관 이상으로 추정됐다.
태수의 예상은 맞았고, 군인들 가슴엔 의무병과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그런 군인들 사이로 양복 차림의 키가 큰 백인 남성이 나왔다. 그는 자신의 몸을 이용해 스트레쳐카를 교묘하게 가리며 물었다.
“영어로 대화가 가능하십니까?”
“가능합니다.”
“그럼 본인의 신분부터 증명해 주셔야겠습니다.”
딱딱하고 형식적인 말투였다.
그 소리에 태수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솔직히 기분이 나빴다. 상대는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중이래도 엡디시 차관은 응급 환자였다.
응급 상황에선 미국에서도 웬만한 절차는 무시하고 있었다. 직접 경험한 태수였기에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신분을 밝히라고 한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만약 중요하다고 해도 스스로 신분을 먼저 말하는 게 옳았다. 이건 명백하게 한국을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태수 성격에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곧바로 차갑게 반문했다.
“그러는 당신은?”
“뭐요?”
“당신 소속하고 이름은 뭐냐고.”
태수가 싸늘한 목소리로 재차 물었다.
그러 태수의 뻣뻣함은 예상과 너무 달랐는지 상대가 멈칫했다. 그러나 굽힐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더욱 강압적으로 말했다.
“……그쪽에서 먼저 신분을 밝히지 않으면 먼저 밝힐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도 내가 싫다면? ……그쪽은 신분을 밝히지 않으면 환자를 맡길 수 없다고 말할 겁니다. 아닙니까?”
“미 국무부 차관을 모시고 왔습니다. 신분을 밝혀 달라는 건 무례한 요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여러 소리 하는 걸 보니까 환자는 살 만한가 봅니다.”
태수가 비비 꼬아 말하자 상대 눈살이 찌푸려졌다.
“지금 닥터 최…… 아니, 그쪽이 먼저 시간을 끌고 있잖습니까.”
“날 알고 있으면서 묻는 게 시간 끄는 거 아닙니까?”
“귀하가 닥터 최인지 증명부터 해야 순서가 맞습니다.”
“…….”
태수가 듣고만 있자 상대가 더욱 강하게 압박했다.
“그리고 차관님께 무슨 일이 생기면, 그에 대해선 대한민국이 뼈아픈 대가를 치르게 될 겁니다.”
“지금 한 말이 가볍지 않을 텐데요.”
“분명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입니다.”
상대가 더 딱딱하게 나오자 태수가 어이없는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그럼 데리고 가세요.”
“……네?”
“난 겁나서 수술 못하겠으니까 데려가라고.”
휙휙.
태수가 손을 저으며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박성민은 그런 태수를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에휴, 똥고집이 또 튀어나왔네.”
“제가 잘못했습니까?”
“전혀. 그 정도는 해 줘야 잔소리 안 듣지.”
박성민도 느긋했다.
그런 반면, 이필영은 양측 분위기를 번갈아 살폈다.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식은땀이 맺혀 갈 정도였다.
이상한 대치 구도로 상황이 변해 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옥상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것 같았다.
정확하겐 미 정부 측 인사만 그랬다.
태수와 박성민은?
“선배, 오늘은 밤에도 날씨가 좋을 거 같네요.”
“그러게. 휘영청 둥그런 달이 떠오를 아주 맑은 날씨야.”
“다들 모여서 바비큐 파티나 할까요?”
“그거 좋지.”
느긋한 대화만큼이나 얼굴도 태평했다.
그런 그들과 달리 앞을 막아 선 상대의 얼굴이 점점 붉게 달아올랐다. 미 정부 측 통역사가 지금 대화를 통역해 준 모양이었다.
상대는 인내심이 부족한지 바로 태수와 박성민에게 으르렁거렸다.
“지금 뭐 하자는 거지? 차관님이 위험한데 뭐 하는 짓이냐고.”
“하늘 구경하잖아.”
“닥터 최…….”
그가 낮게 부르자 태수는 그제야 마주 보며 차갑게 경고했다.
“시간 끄는 건 그쪽인 거 모르나?”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한국 정부에 정식으로 항의하지.”
“해.”
태수가 짧게 답하자 상대가 황당해했다.
“뭐?”
“전화하라고.”
“……한국에서 자신을 건드릴 사람이 없다고 확신하는 건가?”
“무서운 사람은 많은데, 당신이 할 말은 없을 거 같은데.”
태수가 이죽거리자 상대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내가 할 말이 없어?”
“왜 귀찮게 자꾸 말꼬리 잡고 늘어지고 그래. 환자 인계할 거면 당신이 누군지 말하고, 인계하지 않을 거면 데리고 가. 그럼 되잖아.”
태수가 강하게 나가자 상대가 눈을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