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361
Chapter 129화.
그때였다.
삐비삐빅.
ECG의 소리가 미묘한 변화를 보이자 태수가 턱짓했다.
“얼른요.”
“간다고, 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한 거지?”
타다닥.
조운철은 멀어지면서도 궁금함을 흘렸다.
태수는 애써서 그 대답을 하진 않았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때 지긋이 주시하는 느낌에 태수가 정민수를 바라봤다.
힐끔.
“왜?”
“아니야. 얼른 하나 더 만들어. 쇄골하정맥도 일단 그렇게 시간 벌어야 되잖아.”
“그래. 그게 먼저지.”
태수는 바로 대답하고 몸을 돌렸다.
그러나 정민수의 부러워하는 시선은 확실히 읽었다.
지금 그걸 왈가왈부할 때는 아니었다.
잠시 후.
태수가 제작한 브릿지를 끊어진 쇄골하정맥에도 똑같이 연결했다.
결과는?
김혁권이 직접 샨메흠 오른팔에 손을 얹고 소감을 알렸다.
“오, 오. 따뜻해지고 있어요.”
“손가락 끝에 퍼렇게 물들어가던 색도 옅어지고 있고요.”
이초롱 간호사가 브레드 김을 바라보며 추가 정보를 알려줬다.
마지막으로 황지수 간호사가 바이탈을 알렸다.
“현재 맥박은…….”
들려오는 수치들은 아직 불안했다.
하지만 당장 숨이 넘어갈 정도의 불안감은 아니었다.
그 순간에 비하면 엄청 좋아진 거였다.
정말 시간을 벌었다.
그런 계산을 마친 태수의 굳어진 얼굴이 서서히 부드러워졌다.
턱밑까지 차고 올라온 다급한 시간을 알차게 사용했다.
그 덕분에 시간을 좀 더 벌었다.
그걸로 만족할리 없었다.
수술을 끝낼 때까지 멈출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브레드, 그래프트는요?”
“1번 그래프트 채취 완료까지 앞으로 1분.”
브레드 김이 묵직하게 확답을 말했다.
계속 된 소란에도 흐트러짐 없이 진행한 결과였다.
그가 말한 1분은 알차게 써야할 시간이다.
태수와 정민수는 재빨리 머리를 모았다.
CABG를 진행할 정확한 위치 파악부터 해야 했다.
“여기서부터…….”
“여기하고, 여기는…….”
정민수도 바로 합세했다.
한 번 경험이 있던 CABG여서 그런지 시야가 좀 더 넓어졌다.
약속한 1분은 순식 간에 지나갔다.
브레드 김이 적당한 길이의 혈관을 들어 올리며 크게 말했다.
“그래프트 확보 완료.”
“전달이요.”
“여기.”
척, 슥.
혈관을 주고받는 손길이 날렵했다.
그렇게 그래프트를 받아든 태수는 살짝 놀랐다.
‘엄청 깨끗해.’
숙련도의 차이였다.
다양한 수술에 활용되는 그래프트라서 그런지 브레드 김은 경험이 많은 모양이었다.
놀람은 순간이다.
혈관이 찢어진 곳이 없는지 철저하게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브레드 김의 꼼꼼한 성격답게 혈관엔 물 샐틈 아니, 피 샐틈 하나 없었다.
이젠 CABG를 진행해야 할 때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이번엔 심장박동을 끌어올릴 약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그걸 조운철이 기다렸단 듯이 말했다.
“최 선생, 이번엔 그 약 못 써.”
“맥박 올리는 약 말입니까?”
“그래. 그거 쓰면 100퍼센트 심장마비 와.”
조운철이 묵직하게 경고했다.
태수도 예측하고 있던 부분이다.
쿵쿵쿵.
심장이 쉬지 않고 뛰고 있었다.
이런 상태로 CABG수술을 진행하는 건 태수도 어려웠다.
오하메드 때는 해냈지만 지금은 그럴 체력이 부족했다.
체력은 곧 집중력이다.
지금 태수는 그때와 같은 집중력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그건 자신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내린 결정이다.
그럼 그래프트 문합할 의사가 필요했다.
태수는 이미 낙점지은 인물이 있었다.
척.
태수는 그래프트를 심장 쪽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혈관 끝을 약속한 위치에 대고만 있었다.
“…….”
스윽.
고개를 들어 반대편에 선 정민수를 묵직하게 바라봤다.
그 시선에 정민수가 멈칫하며 불렀다.
“태, 태수야.”
“정밀봉합 진행 안 해?”
“……어?”
“연습하면서 나한테 봉합의 신이 되겠다며.”
태수는 과감하게 자극했다.
그러나 정민수는 결정적인 순간에 망설이는 소심함을 아직도 버리지 못했다.
“그게…….”
“후우. 그럼 얘가 네 손에 죽어야할 이유 하나만 대.”
“어?”
정민수가 크게 동요했다.
태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 자극했다.
“이유 하나만 대라고. 마음대로 하게 해줄게.”
“없어.”
“뭐?”
“없어서 문제다, 새꺄.”
정민수가 잔뜩 일그러진 눈매로 거칠게 쏘아붙였다.
궁지에 몰린 쥐라면 고양이도 무는 법이다.
지금 정민수 모습이 딱 그러했다.
태수가 바라던 모습이기도 했다.
“뭐해. 실력이 없으면 오기로 달려들어.”
“아흐씨. 니들 홀더, 인터네셔널 포셉.”
차작.
정민수는 수술도구를 쥐자마자 곧장 관상동맥으로 손을 뻗었다.
그런 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눈빛은 냉정했다.
무엇보다 봉합을 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그 우려는 기우였다.
정민수의 양손은 거짓말처럼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사삭.
두 눈에 가득 차오른 독기가 집중력을 더해주는 모양이다.
가느다란 관상동맥을 꿰는 손길이 과감할 정도였다.
심장이 격동하는 타이밍까지 맞추고 있었다.
또 촘촘하고 일정하게 문합되고 있다.
태수의 CABG보다 훨씬 숙련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마쿠트에서 봉합연습에 매진한 결과다.
심지어 트럭으로 이동할 때도 봉합을 연습했다.
어떤 환경에서도 봉합을 하겠단 일념으로 밀어붙였다.
그 연습이 지금 빛을 내고 있었다.
“호오.”
김혁권도 알고 있지만 이런 결과는 흥미롭단 반응을 보였다.
태수는 좀 달랐다.
마스크 속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봉합의 신?
‘떡 잎부터 확실히 남다르네.’
그저 정민수의 허풍 깃든 목표가 아니었다.
그 만큼 태수는 처음부터 정민수의 향상된 봉합실력을 계산에 넣고 있었다.
너무 많은 생각에 몸이 일시적으로 처진 탓이다.
혼자라면 불가능했다.
정민수가 있어서 이렇게 단시간에 까다롭고 복합적인 혈관 문합을 계획할 수 있었다.
이번 응급수술의 성패는 정민수에게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만큼 악조건 속에서 CABG가 진행되어야 했다.
정민수는 차근히 해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해낼 터였다.
태수는 절대적으로 믿었다.
CABG수술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브레드 김이 한 번 더 혈관을 들어올리며 소리쳤다.
“2번 그래프트 채취 완료.”
“혁권씨.”
태수가 찾자 조용히 보조하던 김혁권이 바로 돌변했다.
“받을 건 받아야지. 브레드, 내놔요.”
김혁권은 깨끗한 밧드를 불쑥 내밀었다.
그 당당한 모습에 브레드 김이 움찔거리며 한 소리 했다.
“지금 빚 갚는 거 아닙니다.”
“난 빚 받으러 왔습니다. 어서 내놓으라니까요.”
“그래요. 그냥 가져 가세요.”
“땡큐. 또 필요하게 되면 부탁 좀 합시다.”
원하는 걸 받아낸 김혁권의 표정이 만족감으로 돌변했다.
브레드 김은 쓰게 미소 지어보였다.
눈 뜨고 코 베인 듯한 묘한 느낌 탓이었다.
그때 태수가 씁쓸해하는 브레드 김에게 새로운 미션을 선사했다.
“간 수술 바로 이어가세요.”
“음. 살짝 위험하지 않을까?”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야죠.”
“그래도 출혈이 상당할 텐데 말이야.”
브레드 김이 깊은 우려를 보이자 태수는 조운철에게 시선을 줬다.
벌써 기진맥진한 얼굴이었지만 태수에겐 늠름하게 보였다.
“마취의가 떡 하니 서 있잖습니까.”
“금방 쓰러질 거 같은데?”
“빨리 수술 끝내고 같이 쓰러지고 싶습니다.”
“그건 동감이야. 그럼 폐 수술하기 전에 사인 줘. 닥터 윤, 시작합시다.”
브레드 김은 간단히 말하고 윤주성을 찾았다.
방금 벗어난 윤주성은 다그치는 소리에 기염을 토했다.
“바로요?”
“쉴 틈이 없습니다.”
“엄청난 강행군이네. 아니, 그래야지. 후욱.”
윤주성도 풀어지는 자신을 다시 다잡으며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곧 브레드 김이 소리내어 알렸다.
“간 파열 수술 이어갑니다.”
“거즈 걷겠습니다. 식염수.”
착, 착.
브레드 김과 윤주성은 바로 수술을 이어갔다.
김혁권과 추강익 간호사는 좌우를 번갈아 보조하며 한층 더 바빠졌다.
이초롱 간호사와 황지수 간호사도 마찬가지였다.
“수혈팩 추가할게요.”
“부족한 거 채울게요.”
사사삭.
간호사들은 눈치 좋게 움직였다.
수술 분위기는 어느 정도 물이 올랐다고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한 사람만 절망 중이었다.
“또 출혈? 으아.”
조운철이 머리를 흔들었다.
이 순간, 자신이 마취의란 사실을 믿고 싶지 않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 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체념한 조운철은 다시 움직였다.
태수가 모두를 둘러볼 수 있는 건 CABG수술이 계속된 탓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정민수의 손길은 빨랐다.
40분 정도 지나고 있다.
벌써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봉합 만큼은 정말 노력한 흔적이 역력히 보였다.
아니 재질이 남다르다고 봐야 했다.
시작하기 전에 머리끝까지 화를 내던 정민수도 끝이 다가오자 다시 온순해졌다.
“좋아, 3분 내로 마무리 될 거 같아.”
“2분대로 줄이자.”
“넌 좀.”
“같이 할 거야, 서둘러.”
착, 착.
지금껏 보조하던 태수의 손길이 바뀌었다.
정민수가 봉합에 열중하는 사이 태수도 체력을 충전한 덕분이다.
빵빵하게 채워진 체력을 남은 수술에 모두 쏟아낼 작정이다.
벌써 그 각오를 보여줬다.
태수의 손엔 언제 집어들었는지 니들홀더가 들려 있었다.
슥.
그 니들홀더는 정민수가 꿴 봉합바늘을 붙들었다.
태수는 그 봉합바늘을 놀려 똑같이 꿰고는 다시 정민수에게로 돌려줬다.
“받아.”
“어, 응……. 다시, 여기.”
정민수는 얼떨떨한 얼굴로 한 땀을 꿰어 다시 태수에게 밀었다.
그렇게 하나의 봉합바늘을 좌우에서 번갈아 꿰었다.
처음 진행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의외로 봉합속도가 조금 더 올라갔다.
쿵덕, 쿵덕.
심장의 박동에도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브레드 김이 힐끔 쳐다보고는 어이없어 했다.
“별의 별 방법을 다 쓰네.”
하지만 부러움의 시선도 약간 묻어있었다.
척 봐도 알 수 있다.
신뢰가 깃들지 않고는 불가능한 방법이었다.
당연히 이들 중에선 태수와 정민수만 가능할 터였다.
그 결과는 곧 확인할 수 있었다.
태수와 정민수가 동시에 손을 들며 목소리를 냈다.
“CABG 끝.”
“끝났습니다.”
휘휙.
동시에 조운철을 바라봤다.
계속된 바이탈 방어에 얼굴이 떼꾼해진 그의 목소리에 한줄기 희망이 떠올랐다.
“그래. 괜찮아. 이 정도면 안정권이야.”
목소리 끝이 떨려왔다.
이젠 숨 쉴 틈이 생겼단 환희가 담긴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