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494
Chapter 262화.
곧 군용지프가 모습을 보였다.
이쪽으로 정신없이 달려왔다.
그제야 굳어진 태수 얼굴에 가느다란 미소가 지어졌다.
“하여간 아슬아슬해.”
투다다다.
중얼거림은 더 시끄러워진 헬기 로터음에 묻혔다.
그 만큼 지상과 가까워지던 헬기가 곧 안착했다.
동시에 반대쪽에선 군용지프에서 내린 정민수와 김혁권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도 각자 더플 백을 어깨에 걸고 있었다.
서로를 확인함과 동시였다.
태수와 샘 분대장이 헬기를 향해 빠르게 달렸다.
반대쪽에선 정민수와 김혁권이 마주 달려왔다.
양쪽에서 급속도로 거리를 좁힌 그들은 동시에 헬기에 탑승했다.
푸다다다.
헬기는 어느새 다시 하늘로 솟구쳤다.
탑승한 네 사람은 비치된 헬멧을 빠르게 착용했다.
공군헬멧의 특징은 역시 자체적으로 통신이 가능하단 점이었다.
태수는 곧장 정민수에게 물었다.
“얼마나 챙겼어?”
“왕창 쓸어 담았어.”
“순순히 주디?”
“지금 군병원 응급실에 성난 사자가 난동부리는 중이야.”
엉뚱한 정민수의 말에 태수는 바로 흘겨봤다.
“알아듣게 말해.”
“군병원 응급실에선 공문 받은 적 없다고 협조 못 해준다더라.”
“그럼 누가 연락해서 클라크 대령을 부른 거야?”
태수의 추측이 옳았는지 정민수가 크게 답했다.
“응. 마침 근처를 지나가는 중이었나 봐.”
“그쪽 표정 볼만 했겠는데?”
“세상 억울한 표정으로 항의 하는데, 누가 깜빡하고 전달을 안 했었나봐. 더 난리가 났지.”
정민수가 대답한 후였다.
김혁권의 목소리가 바로 들려왔다.
“남의 사정은 신경 끄고, 닥터 최는 어떻게 됐습니까?”
“숙소에 있는 거 죄다 쓸어 왔습니다.”
“집을 털어놓고 당당할 건 아니죠.”
“그래도 남의 집은 안 털었습니다.”
태수가 변죽 좋게 답하자 김혁권도 빙그레 미소 지었다.
“집을 잘 털었다니까 다행입니다.”
“전리품은 나중에 내려서 확인하기로 하고요. 태수, 상황은 아까 말한 게 다야?”
정민수가 불쑥 끼어들었다.
전에는 듣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이젠 확실히 궁금한 걸 그때그때 물었다.
그게 여러 사람 속편하고 좋았다.
태수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응, 더는 못 들었어.”
“세 명만 다쳤을리는 절대 없을 거고.”
“관광버스에 몇 명 탔는지도 몰라.”
“현장을 모르니까 동선을 짤 수도 없고, 환장하겠네.”
정민수가 버럭버럭 소리쳤다.
그렇게 한국어 대화가 빠르게 오갈 때였다.
잠깐 무전이 끊어진 순간 익숙한 영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도 어느 정도 내용은 알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스윽.
질문과 동시에 기장이 고개를 돌려 얼굴을 보였다.
그 상대를 눈에 담은 태수와 정민수가 깜짝 놀랐다.
“음?”
“어?”
김혁권도 의외란 표정으로 변하며 기장의 이름을 불렀다.
“오스틴 기장이네.”
“안녕하십니까.”
척.
샘 분대장은 거수경례로 예의를 표했다.
다들 기억해주는 게 좋은지 오스틴 기장의 싱거운 농담이 들려왔다.
“이렇게 빨리 다시 만나게 될 줄 몰랐습니다.”
“이번엔 의견 조율이 잘 되겠죠?”
“두 번째 만남이니까 좀 수월하지 않겠습니까?”
오스틴 기장이 미소 띤 얼굴로 반문했다.
확실히 날이 선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둥글둥글한 분위기가 짙었다.
태수는 직감을 믿고 수더분하게 대했다.
“그런데 응급수송헬기는 어쩌시고 이걸로 갈아타셨습니까?”
“그 헬기는 정비 중입니다.”
“이거는요?”
“시험 운행 중에 호출 받아서 온 겁니다.”
“이 정도면 우연이라고 말하기 어렵겠습니다. 아무튼 잘 부탁드립니다.”
태수는 수더분하게 인사를 마쳤다.
여러 대화가 싹둑 잘려 나간 듯이 급작스러운 마무리였다.
그걸 누구도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현장으로 향하는 길이다.
이젠 여유보다 긴장을 좀 더 내세워야 했다.
오스틴 기장도 동의하는지 곧 가라앉은 목소리가 헬멧에서 들려왔다.
“속도 올립니다.”
푸다다다.
헬기는 PKO를 떠나 남쪽으로 신속히 날아갔다.
나란히 앉은 네 사람은 똑같이 눈을 감았다.
이동하는 사이 조금이라도 체력을 비축하기 위함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의미도 담겨있었다.
내부가 조용한 가운데 헬기는 점점 더 속도를 높였다.
대략 8분여가 흐른 후였다.
헬멧에서 오스틴 기장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착 1분 전.”
그 소리와 동시였다.
번뜩.
모두가 감았던 눈을 일제히 떴다.
이어서 동시에 자신이 착용한 레펠 장비부터 다시 점검했다.
척, 탁.
그 손길이 너무도 익숙하고 자연스러웠다.
지난 시간동안 수도 없이 착용해본 경험이 손길에 가득 녹아 있었다.
신속한 준비가 끝난 후였다.
척.
네 사람이 각자 돌돌 말린 로프를 붙들고 있었다.
그리고 시선은 정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꽤 커다란 규모의 도시가 펼쳐졌고, 그 가운데 어디쯤에서 검은 연기가 아직도 솟구치고 있었다.
화재 진압이 아직도 진행 중이란 게 대번에 파악이 됐다.
모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테러 발생 후 20여분이 지나고 있는 상황이다.
부상자들이 아픔에 지쳐가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 사이 헬기는 검은 연기의 중심에 가까이 접근했다.
투다다다.
곧 고도를 유지하며 호버링이 시작되고 오스틴 기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강 10초전.”
“오픈 더 도어.”
그륵.
헬기의 좌우 슬라이드 문이 동시에 개방됐다.
아래에는 불에 상당히 타들어간 미니버스가 보였다.
그 주변에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모여 있었다.
현지 경찰들이 주변을 통제 중인 탓에 버스와 사람들 사이에 공간이 있었다.
레펠로 강하할 목적 지는 그 공터였다.
“로프 풀어.”
촤르륵.
헬기 좌우에서 네 개의 로프가 일제히 길게 늘어졌다.
태수와 세 사람은 각각 로프에 안전장치를 결속시키고 더플 팩을 어깨에 멨다.
준비를 끝낸 태수는 하강할 장소를 내려다 봤다.
“후우우.”
낮은 숨소리가 길게 흘러나왔다.
긴장하고 겁먹은 건 결코 아니었다. 차라리 레펠 연습이라면 지금도 얼마든지 즐겁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태수가 숨을 길게 내쉰 건 처참한 현장의 모습 탓이었다.
몇몇 부상자들이 벌써 눈에 보였다.
자세한 표정이나 안색까지 확인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빨간 피는 본능적으로 알아볼 수 있었다.
붉은 피는 곧 환자를 의미한다.
그렇게 환자를 눈으로 보자 마음이 더 급해져 갔다.
그때였다.
휘이잉.
바람의 방향이 바뀌며 검은 연기가 헬기 쪽으로 날아왔다.
메케한 공기를 느낀 순간 오스틴 기장의 벼락같은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무운을 빕니다. 모두 하강.”
“뛰어.”
차작.
네 사람은 일제히 헬기 밖으로 힘껏 몸을 내던졌다.
교육의 성과는 역시나 컸다.
샘 분대장은 말할 것도 없었다.
태수와 정민수, 김혁권은 똑같은 자세로 빠르게 지상으로 향했다.
촤르륵.
강하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10미터……. 7미터…….
순식간에 좁혀지는 지상과의 거리를 가늠하며 제동할 타이밍을 재고있었다.
그리고 몇 초 후였다.
샘 분대장의 외침이 헬멧에서 들려왔다.
“브레이킹.”
차자작.
똑같이 비너를 움직여 제동을 걸었다.
훈련의 성과대로 착지까지 군더더기가 없었다.
박수 받아도 충분한 FM자세였다.
정작 본인들은 감탄 따윈 안중에도 없었고 재빨리 로프 결속부터 풀었다.
사삭.
“빠져.”
샘 분대장, 태수, 김혁권, 마지막으로 정민수 순으로 로프에서 벗어났다.
확인한 샘 분대장이 머리 위로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휙휙.
“전원 이상 무.”
“일동 선전을 기원한다.”
“썰.”
“한 번 더 실어올 예정이니 그렇게 알도록, 간다.”
투다다다.
헬기는 급격히 현장을 벗어나 되돌아갔다.
그렇게 오스틴 기장의 목소리가 헬멧 무전의 마지막이었다.
그때 태수가 더플 백을 열었다.
“이거부터.”
“뭔데?”
척, 척.
그 속에서 둘둘 말린 하얀 천을 꺼내 이름을 부르며 던졌다.
“민수.”
“음?”
“혁권씨.”
“나도?”
두 사람은 의아한 얼굴로 받아들여 펼쳤다.
그건 하얀 의사 가운이었다.
그것도 NGO의 마크가 선명하게 새겨진 가운이었다.
그게 끝이 아닌지 태수가 더플 백 안을 손으로 휘저으며 소리쳤다.
“헬멧 주고, 이걸로 교체.”
그리고 꺼낸 걸 본 김혁권이 바로 알아봤다.
“무전기하고 인이어?”
“일단 받으시고……. 민수, 너도……. 샘.”
척척.
태수는 빠르게 하나 씩 나눠줬다.
다들 재빨리 헬멧을 벗어 더플 백에 넣고 무전기를 착용했다.
인이어를 귀에 걸며 무전기 전원을 켰다.
띠릭.
“들립니까?”
태수가 낮게 말했다.
그와 동시였다.
척, 척, 척.
김혁권, 정민수, 샘 분대장이 똑같이 ‘OK’ 사인을 줬다.
태수는 다시 더플 백을 어깨에 걸며 외쳤다.
“그럼 뛰어.”
차자작.
네 사람은 일제히 불타는 버스 쪽으로 내달렸다.
이제 환자를 찾아갈 차례였다.
달려가던 중 버스 정류장이 시선을 잡아끌었다.
마치 한국의 지방 변두리 정류소처럼 벽돌로 지어져 있었다.
그 정류소도 폭발의 충격을 받았는지 무너졌다.
‘쓰읍.’
상당한 폭발력이 가늠되자 입 안이 썼다.
지금 그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모를 일이다.
응급현장에 도착한 터라 태수가 샘 분대장에게 오더했다.
“샘, 주변이 어수선합니다.”
“현장 통제부터 확실하게 하겠습니다.”
타다닥.
샘 분대장은 바로 방향을 바꿔 경찰들에게로 향했다.
잠깐 사이 저 앞에 헬기에서 봤던 환자들이 보였다.
사고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였다.
낮은 건물의 벽에 기대어 있었다.
30대 즈음으로 보이는 백인 남성들이었다.
한 사람은 이마를 손으로 가리고 있었다. 얼굴을 타고 길게 흘러내린 핏자국이 머리의 부상을 직감하게 했다.
또 다른 환자는 다리에 부상을 입었는지 오른쪽 다리를 붙들고 있었다.
“흐으, 흐으…….”
“끄으응.”
앓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의 구겨질 대로 구겨진 얼굴은 아픔이 충분히 짐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