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596
Chapter 365화.
반 정도 떼어내던 중이었다.
환부가 드러나자 태수의 미간이 확 좁아졌다.
옆구리에 수류탄이 피폭 됐는지 거뭇거뭇하게 살이 타들어갔고 하얀 갈비뼈도 일부 보였다.
그 상처는 결코 얕지 않았다.
태수의 눈썰미가 틀리지 않았다면 폐도 무사하단 장담을 할 수 없었다.
‘젠장.’
여기서 응급처치하기엔 너무 상황이 좋지 않았다.
태수는 번쩍 고개를 들어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런 태수의 모습에 의아함을 보인 현장반장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어디 수술할 장소 없습니까?”
“수, 수술이요?”
“응급수술 해야 합니다.”
태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상황을 알렸다.
현장반장은 놀란 얼굴로 공장장을 바라봤다.
군용 모르핀 주사가 투여됐단 건 군대를 다녀온 한국남자라면 무조건 짐작할 수 있었다.
현장반장도 짐작되는 눈치였다.
그런데 공장장은 모르핀이 투여 됐음에도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흐으으. 흐으으.”
신음소리가 한결 안정적으로 변한 정도였다.
아픔은 줄어들었지만 근본이 되는 부상이 엄청난 게 분명했다.
현장반장은 당혹감을 억누르며 태수에게 말했다.
“저기 가까운 창고가 있습니다. 찻잎 보관용이라 그나마 깨끗합니다.”
“거기 책상이라든지, 아무튼 수술대로 쓸 만한 게 있습니까?”
“음, 선별작업대가 있습니다.”
현장반장이 대답함과 동시였다.
태수는 배낭에서 여러 번 접힌 수술포를 몇 장 꺼내 건네며 부탁했다.
“먼저 가서 수술대 좀 만들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헤이! #%#$.”
현장반장은 몇몇 현지 사람들을 데리고 이동했다.
투박한 느낌이지만 기본적인 힌두어는 가능해 보였다.
태수는 그런 사실에 집중할 겨를이 없었다.
우선 반쯤 떼어낸 하얀 천으로 다시 환부를 덮었다.
이어서 그 위에 소독약을 쏟아 부었다.
콸콸!
짙은 갈색의 소독약으로 물들자 수술포를 펼쳐 그 위에 덧댔다.
“흐으으. 크으.”
환자에게서 반응이 들려왔다.
그러나 선명하지 못한 신음소리였다.
태수는 손을 넓게 펼쳐 수술포를 압박했다.
“흐으. 흐으으.”
모르핀 영향인지 엄청난 고통을 토로하진 않았다.
태수는 그런 환자의 의식을 한 번 더 확인했다.
“환자분, 공장장님. 들리세요?”
“흐으. 으으. 네…….”
“상처가 생각보다 깊습니다. 제가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상……. 깊으…….”
공장장은 희미하지만 분명 반응을 보였다.
태수는 그 정도 반응을 보이는 자체에 감사했다.
그런 감정은 속으로 감춘 채 목소리를 좀 더 높여 이후 진행될 일들을 알렸다.
“피치 못하게 응급수술이 진행될 겁니다.”
“응……. 수…….”
“네. 그래서 여줍는데, 혈액형이 어떻게 되십니까?”
“에……. 에…….”
“A형이요. 혹시 약에 대한 거부반응이나 알레르기가 있습니까?”
태수는 재차 물으며 공장장의 반응을 끌어냈다.
일일이 테스트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공장장에게 의식이 있으니 직접 묻는 게 불필요한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공장장은 지금 생각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conditioned reflex(조건반사)로 반응했다.
“으으……. 없…….”
“없다고요. 알겠습니다. 곧 옮겨지고 수술도 들어갈 겁니다.”
“아, 아…….”
“네. 알아들으셨죠. 그때까지 정신 잃으시면 안 됩니다.”
태수는 그의 귓가에 대고 크게 말했다.
그런 모습이 입원 전과 비교해 차이가 있었다.
태수가 스스로 경험한 부분들을 적용하고 있는 거였다.
똑같이 수류탄에 피폭된 환자라서 그런지 더 자세하고 세세하게 챙길 수 있었다.
당부를 마친 태수는 공장장의 왼손을 잡았다.
오른쪽 옆구리가 다쳤기에 멀쩡한 왼손을 택한 거였다.
꽉.
붙든 손에 힘을 주며 응원을 보냈다.
태수의 그런 행동에 반응하듯이 공장장 손에도 미미한 힘이 느껴졌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태수는 빠르게 고개를 돌려 브레드 김을 찾았다.
“브레드!”
“왜!”
그의 반응이 날카가로웠다.
환자의 상태에 비례한 반응일 터였다.
태수 표정이 굳어지며 물었다.
“이쪽은 right flank exposure(오른쪽 옆구리 피폭)이고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그쪽은요?”
“옆구리에 피폭? 그래서 이런 거였어.”
“무슨 말씀이십니까?”
“여기 환자는 오른쪽 등하고 어깨만 피폭이 집중되어 있어. 척추를 기준으로 오른쪽으로만.”
“이분이 그분을 피폭 순간 감쌌단 거네요.”
태수가 유추하자 브레드 김도 동의했다.
“같은 생각이야. 다행히 출혈은 심하지 않은데, burn(화상)하고 exposure(피폭)이 상당해.”
“그럼 그쪽도 응급수술 들어가야 합니까?”
“그래야 할 거 같아.”
브레드 김의 대답소리가 묵직했다.
그때였다.
차착.
태수 옆으로 정민수가 다급히 도착했다.
“경상자들은 당장 문제될 정도는 아니야. 그리고 공장장님 아내 되시는 분이 응급처치 요령을 좀 아셔.”
“그럼 정 선생도 움직일 수 있어?”
“가능해.”
정민수의 대답에 태수 눈썹이 크게 들썩였다.
그럼 중상자 두 명을 동시에 응급수술 할 수 있다.
브레드 김이 함께 출동해서 가능해진 일이다.
태수는 다시 소리 높여 브레드 김에게 외쳤다.
“브레드, 혁권씨하고 응급수술 진행하세요!”
“그쪽……. 닥터 정이 왔네. 그쪽은 둘이 가능 하겠어?”
“해낼 겁니다. 그리고 혁권씨!”
태수가 찾음과 동시였다.
브레드 김의 반대편에서 환부를 드레싱하던 김혁권이 번쩍 고개 들어 마주봤다.
“왜요!”
“수술실 마련하시라고요.”
“방금 그쪽에서 누가 달려가더만!”
“그건 저희가 사용할 겁니다.”
태수는 양보할 기미를 눈곱 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양쪽 환자 모두 부상정도가 비슷한 상황인데 양보하고 말고 할 게 없었다.
김혁권도 직감했는지 쓴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어디서 수술실을 구하라고……. #^#$%#$.”
투덜거린 그는 힌두어로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렇게 각자 응급수술을 진행하기로 결정이 났다.
그 사이 정민수의 손이 분주했다.
철컥, 척.
이상한 소리도 덩달아 들려왔다.
태수가 바라보자 놀랍게도 들것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게 뭐야?”
“4중 접이식 들것, 우리 팀 신형 장비.”
“우리한테 딱 필요한 거네. 다 됐어?”
태수가 묻자 정민수는 빳빳하게 펴진 들것을 옆에 내려놓으며 답했다.
“됐어.”
“그럼 옮기자.”
“옆구리가 다쳤으니까 좌우로 잡는 게 좋겠지?”
“내가 왼쪽으로 갈게.”
태수는 자진해서 환부 방향에 섰다.
자세를 낮춘 태수는 환자의 어깨 아래에 손을 넣고, 다른 손은 허리춤을 잡았다.
반대편에선 정민수가 똑같이 행동했다.
준비가 끝나자 서로 눈을 보며 들어 올릴 타이밍을 맞추려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사삭.
몇 명의 현지인이 주변을 둘러쌌다.
태수가 의아해할 틈도 없이 정민수가 턱수염만 풍성한 현지인을 보며 반색했다.
“히만 씨.”
“저희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고맙습니다. 두 분은 다리를 잡아주시고, 한 분은 머리 쪽으로 오셔서 어깨를 잡아 주시고, 공장장님을 들면 히만 씨가 들것을 받혀 주세요.”
정민수는 영어로 말하며 빠르게 사람들의 포지션을 잡아줬다.
“@%#%#$%#.”
히만이란 현지인이 손짓하며 힌두어로 말했다.
사삭.
사람들이 그 손짓에 따라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태수도 그제야 상황을 눈치 챘다.
시선이 공장장에 게로 향했다.
이런 일이 벌어졌음에도 이곳 사람들이 자진해서 돕고 있었다.
평소 구승헌과 공장장 등 한국인들이 현지인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알 수 있었다.
‘베푸는 만큼 돌아오는 거야.’
그건 진리였다.
이렇게 눈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잠깐 사이 사람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섰다.
곧바로 발치에서 들것을 대기 중인 히만이 영어로 말했다.
“다들 영어로 숫자는 셀 줄 압니다.”
“좋습니다. 그럼 ‘쓰리’에 움직이겠습니다.”
태수가 숫자를 강조해 말함과 동시였다.
끄덕, 끄덕.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여 반응했다.
그걸 확인한 태수가 긴장감을 끌어올리며 숫자를 셌다.
“원……. 투……. 쓰리!”
“히만씨, 들것!”
“이엽!”
스윽. 사삭.
모두가 타이밍 맞춰 움직이자 환자를 들것에 조심히 안착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도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히만이 태수와 정민수에게 말했다.
“저희가 모시고 갈 테니까 먼저 출발하십시오.”
“부탁합니다.”
“저희 매니저입니다. 저희가 부탁드려야죠.”
대답하는 희만의 표정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도 똑같았다.
태수와 정민수는 걱정을 내려놓는 대신 출동가방을 들며 일어났다.
“먼저 움직이겠습니다.”
“너무 흔들리지 않게만 신경 써주십시오.”
“그럼.”
타다닥.
태수와 정민수는 부탁과 당부를 마치고 몸을 움직였다.
저 앞에 찻잎 보관소로 나란히 달리던 중이었다.
태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차 재배만 노력한 게 아닌 거 같아.”
“저렇게 다들 도와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면 우리도 도울 맛나지.”
“물론. 그런데…….”
태수가 묵직하게 말끝을 흐렸다.
그런 태수의 시선이 정민수 반대쪽을 향하고 있었다.
“음? 아…….”
정민수는 의아함을 눈치 채고 고개를 돌려봤다.
그리고 태수와 똑같이 눈꼬리가 아래로 축 내려갔다.
두 사람의 시선이 향한 곳엔 현지 여성이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흐어엉!”
그녀의 앞엔 하얀 천으로 뒤덮인 무언가가 있었다.
태수와 정민수는 그게 무언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번 사고의 사망자일 터였다.
그 현지 여성 옆에는 여러 여성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그 중 한국 여성도 보였다.
그녀는 누구보다 유가족과 가까이 자리해 위로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 속에 진심어린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다.
태수와 정민수는 다시 앞을 보며 달렸다.
그런 두 사람의 표정이 착 가라앉아 있었다.
누군가의 죽음은 결코 유쾌할 수 없었다.
그 짜증과 원망은 문제를 야기 시킨 양쪽 군대로 향했다.
“썩을 놈들.”
“하필이면 여기서 만날게 뭐야.”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러나 당장 그 분노를 표출하진 않았다.
응급수술이 우선이다.
그 수술을 원만히 끝낸 후 더 크게 화를 내도 될 일이었다.
타다닥.
달리고 달린 태수와 정민수는 찻잎 보관소 안으로 나란히 들어갔다.
잠시 후.
찻잎 보관소는 응급수술실로 변해있었다.
널찍한 창고 가운데에 급조된 수술대가 위치했다.
그 위엔 방금 도착한 공장장이 환부가 위로 향하도록 옆으로 누워 있었다.
태수와 정민수는 수술가운을 걸치고 수술대에 마주 서 있었다.
각각 허리 높이까지 오는 작업 선반을 옆에 두고 있었다.
작업 선반 위에는 수술포가 깔려있고 수술용품들이 늘어져 있었다.
의료카트를 작업 선반이 대신 하는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각각 헤드랜턴을 장착했다.
조명 대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