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647
Chapter 416화.
응석부리는 태수의 말투가 훨씬 듣기 좋은 모양이었다.
“무게 잡는 척하더니 할 말 떨어지니까 생떼 쓰는 버릇부터 나오나?”
“세 분이 그렇게 바라보시는데 저도 긴장되죠.”
“긴장 같은 소리 하네. 그런데 이놈아. 된장찌개는 어디다 팔아먹고 빈손이야?”
전 노인이 당당하게 요구하자 태수는 억울함부터 내보였다.
“저 어제 죽다 살아났다니까요.”
“그리고 잠만 퍼질러 잤다며.”
“둘째 어르신. 그냥 잔 게 아니라 극도의 정신적인…….”
태수의 말이 길어지려하자 조 노인이 거칠게 손을 휘저었다.
휙휙.
“어디 어른들한테 설교를 하려 들어.”
“설교가 아니라…….”
“이놈이 그래도, 떽!”
“또 그러신다. 아무튼 저도 제 일 해야 되니까 빨리 해결 좀 봐 주십시오.”
태수가 뚱하니 답하자 노인들 얼굴이 바로 일그러졌다.
“저놈 말하는 본새 좀 보소!”
“아주 그러다가 배 까뒤집고 드러눕겠어.”
“오냐. 한 번 배 까봐라. 내가 가만히 놔두나 보자.”
조 노인은 팔까지 걷어붙였다.
태수는 득달같이 몰아붙이는 노인들 모습에 빙그레 미소 지었다.
“하하.”
“웃어?”
“웃어야죠.”
“우리가 우습냐?”
“아니요. 정정하셔서 너무 좋습니다. 정말 너무너무 좋습니다.”
태수는 대답하고는 더 환하게 미소 지었다.
어느새 노인들도 모든 까칠함을 벗어던지고 밝은 미소를 내보였다.
“잘 돌아왔다.”
“고생 많았나 보네.”
“녀석.”
계속 미루고 감췄던 진심을 그제야 내보였다.
태수도 그에 화답했다.
“다녀왔습니다.”
이 말이 꼭 하고 싶었다.
잠시 후.
끼익.
전 노인의 현관문이 다시 열렸다.
태수가 먼저 나와 옆으로 서자 노인 삼인방이 차례로 나왔다.
태수는 방향을 잡고 안내를 자청했다.
“가시죠.”
“앞장서라.”
“네.”
뚜벅뚜벅.
태수가 앞서 걷자 노인 삼인방이 뒤를 따랐다.
그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이동한 그들은 마을 중앙의 평상에 도착했다.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평상에 노인들이 앉을 자리까지 마련해 놓고 있었다.
척.
노인들은 차례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전 노인이 천천히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 결정에 우리가 따르기로 했다.”
그 말에 모두가 움찔했다.
그 중 전노식 촌장이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아버지, 이게 보통 일도 아니고……. 중심을 잡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네. 어르신들, 촌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곳곳에서 사람들의 진심어린 부탁이 들려왔다.
그저 나이 많아 추대하는 게 아니라, 지혜를 구하는 존중이 담겨 있었다.
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른이 어른다워야 아랫사람들도 따르는 거지.’
당연한 일을 이렇게 다시금 상기시켜야 하는 현대풍토가 씁쓸했다.
그런 태수의 옆으로 정민수와 김혁권이 다가왔다.
“너 안 맞았냐?”
“얻어 터져도 할 말 없긴 했을 텐데요.”
두 사람의 말에 태수가 힐끔 흘겨봤다.
“제가 몽둥이 찜질이라도 당했을까 봐요?”
“아니야? 아쉽네.”
“민수야……. 됐다. 내가 무슨 얘기를 하니.”
태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거기까지는 장난이었다.
김혁권이 먼저 진지한 목소리로 바뀌며 다시 물었다.
“안에서 따로 오간 얘기는 없습니까?”
“어르신들 욕심 때문에 오랫동안 마을 문을 닫았다고. 그걸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뭐야. 어째 분위기가 좋은 거 같은데요.”
“그건 아닙니다. 말 그대로 흘러가는 걸 지켜보자고 하셨습니다. 지금처럼요.”
스윽.
태수가 마을 사람들을 가리켰다.
전노식 촌장을 중심으로 거수투표가 진행되고 있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소신껏 투표하고 있었다.
그 결과는 빠르게 나왔다.
전노식 촌장이 결과에 대해 말했다.
“그럼 찬성이 조금 더 많은 관계로 어떤 사람들인지 얼굴부터 보기로 하겠습니다.”
“네.”
“사람의 속을 알기에 짧은 시간이겠지만 그래도 잘들 지켜봅시다.”
스윽.
전노식 촌장이 태수에게 고갯짓했다.
그 신호를 본 태수는 무전기를 들어 브레드 김에게 알렸다.
“브레드, 다들 모시고 들어오세요.”
– 정말 들어가도 돼?
“허락은 아니고 면접 볼 분위기입니다.”
– 그래. 알았어. 곧 갈게. 들어가서 보자고.
그 말이 무전의 마지막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태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전기를 신기해하는 건 아니었다.
브레드 김의 목소리가 낯이 익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강영훈이 다가와 확인차 물었다.
“김 선생님이십니까?”
“네. 다들 본 적 있으실 겁니다. 사전답사 왔다갔던 그 분이요.”
태수가 추가로 설명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넉넉한 의사.”
“휴대폰으로 여기저기 사진 찍고 다녀서 눈치 많이 줬었지.”
“그때 차갑게 군 게 좀 미안했는데, 오늘 다시 보겠네.”
“쓴 소리 들으면서도 웃던 모습이 생각나.”
처음 만난 타지의 한국인이라 잠깐의 만남도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그 후로 마을 사람들이 궁금증과 경계심 사이에서 기다리던 중이었다.
부우웅.
트럭소리들이 들려오더니 곧 마을 안으로 들어왔다.
라쿠의 트럭부터 멈춰서고, 구승헌 사장부터 긴장된 얼굴로 내려섰다.
“크, 크흐흠.”
“흠흠.”
어제 부렸던 배짱과 달리 대놓고 어려워하고 있었다.
그들 입장으로 보면 한 없이 졸인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태수와 정민수, 김혁권은 그 자리에서 있었다.
이제부터는 자신들의 손을 떠났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이렇게 지켜보는 게 현명한 처신이었다.
‘평소대로만 하세요.’
태수 느낌이 옳다면 그 정도로도 충분할 터였다.
그 사이 전노식 촌장이 먼저 다가가 인사했다.
“촌장인 전노식입니다.”
“구승헌입니다. 갑작스럽게 찾아와 송구스럽습니다.”
꾸벅.
서로 정갈하게 서서 마주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악수와는 확실히 다른 정중함이 느껴졌다.
구승헌 사장은 뒤에 선 일행들을 차례로 소개했다.
“이쪽은 제 아내 됩니다.”
“김영선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 옆은 공장장입니다.”
“나두영입니다. 염치불구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피해 끼치려고 온 거 아닙니다. 일도 곧잘 합니다.”
나두영 공장장은 진심과 애절함을 담아 부탁했다.
그 뒤로 봉윤주 순으로 이어졌다.
그저 한 마디 인사로 끝내는 게 아니라 포부와 각오를 덧붙여 말했다.
기다리는 동안 준비한 모양이었다.
짧은 시간 사이 진심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 엿보였다.
히만과 가족들, 또 바룬의 가족들은 구승헌 사장이 대신 소개를 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남궁현철 순서였다.
그는 뒷머리를 멋쩍게 긁적이며 말했다.
“남궁현철이라고 합니다. 저는 사실 뜨내기입니다. 카자흐스탄 고려 마을 출신이고, 머무는 동안 저도 열심히…….”
그가 말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잠깐.”
반대편에서 불쑥 말을 끊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노식 촌장에게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그는 오히려 당황한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나 아니야.”
“촌장아.”
“아버지, 제가 그런 거 아닙니다.”
“내가 그랬으니까 잠시 비켜봐.”
“네? 아, 네.”
스윽.
전노식 촌장은 얼떨떨한 얼굴로 길을 열었다.
그 길을 따라 나온 전 노인은 그대로 남궁현철에게로 향했다.
혼자가 아니었다.
안 노인과 조 노인도 함께였다.
관망하겠다던 노인들의 움직임이라 다들 의아하게 바라봤다.
그건 태수와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지는데요?”
“혹시 모르니까 가 봅시다.”
타닥.
멀찍이 떨어져 있던 세 사람은 얼른 거리를 좁혔다.
태수와 두 사람이 도착할 무렵이었다.
노인들도 남궁현철의 앞에 다가섰다.
“흐음.”
“흐으음.”
빤히 바라보는 노인들의 시선에 남궁현철은 당혹해 했다.
“저, 왜들 그러시는 지요.”
“남궁씨라고.”
“그렇습니다.”
“부친 아니지……. 혹시 조부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노인들의 표정은 너무도 진지했다.
남궁현철은 얼떨떨한 얼굴로 답했다.
“환 자라고, 외자 사용하셨습니다.”
“남궁환……. 그럼 혹시 증조부 성함도 아시는가?”
“죄송합니다만 제가 거기까진 잘 모릅니다.”
남궁현철의 대답 속에 의아함이 가득했다.
그만의 궁금증이 아니었다.
태수와 의료진들, 한인 마을 사람들에 이어, 한국 사람들까지.
모든 의아함이 한 곳으로 집중되어 있었다.
그런데 정작 노인들은 남궁현철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전 노인의 질문이 막힌 순간이었다.
그러자 안 노인이 얼른 나서서 다른 질문을 건넸다.
“조부 출생지가 어딘지 혹시 아나?”
“아니요.”
“흠. 그렇군.”
안 노인은 별다른 소득이 없는 거 같았다.
그때 조 노인이 안 노인에게 한마디 했다.
“물어도 제가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그렇구나.”
“좀 비켜보십시오.”
휙.
조 노인은 얼른 남궁현철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조부는 무탈하신가?”
“아니요. 몇 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살아서 자네와 왕래는 많았나?”
“제가 태어나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한 집에서 살았습니다.”
남궁현철은 의외로 순순하게 대답했다.
들려오는 질문들에 그도 뭔가 느낌이 오는 모양이었다.
그런 남궁현철에게 조 노인이 이어서 물었다.
“그럼 조부에게 혹시 특징 같은 게 있지는 않았나?”
“목에 화상 자국이 있었습니다.”
그 대답을 들은 순간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던 조 노인의 몸이 눈에 띄게 흔들렸다.
그는 떨리는 손을 애써 움직이며 물었다.
“혹시, 혹시 말이야……. 이렇게 된 상처였나?”
“어? 네. 맞습니다.”
“네가……. 그럼 네가……. 정말 환이 손자라고.”
“할아버지를 아십니까?”
수더분하게 대답하던 남궁현철 분위기도 점점 심각해졌다.
그런 그에게 가까이 다가간 조 노인이 어깨를 붙들었다.
부들부들.
쓰러질까 겁날 정도로 팔을 떨며 재차 물었다.
“네가 정말 환이 손자라고?”
“제 조부님이 환 자, 성함을 사용하신 건 맞습니다.”
“그래. 그래……. 가까이 보니 눈이 닮았구나……. 코가 닮았구나……. 환이 손자가 맞구나. 맞아. 아이고, 이놈아.”
와락!
조 노인은 대뜸 남궁현철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얼떨떨해하던 남궁현철이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조용히 물었다.
“혹시 어르신 성함이 조……. 되십니까?”
“어, 어이구. 그래. 나다. 그놈이 내 얘기도 하고 그랬더냐?”
“돌아가시기 전날에도 말씀하셨습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소식도 모른다며 비통해하셨습니다.”
“어이고. 환아, 이놈아……. 나 여기 있다, 이놈아. 여기 있단 말이다. 어이고, 어이고!”
조 노인은 가슴을 쥐어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