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46
00046 46화
아침 식사를 하고 정관영의 말에 따라 태수는 외과 외래 쪽으로 향했다.
내방하는 환자는 의외로 많았다.
그 환자들의 질환은 항문이나 화상, 탈장 등이 대부분이었다. 그 외에도 외상이나 위, 간이 나빠서 진료를 받으러온 환자들도 간혹 존재했다.
특별한 경우로는 내과적으로 치료를 해봐도 소용이 없는 경우에 찾아오기도 했다.
간단한 처지를 할 때도 있고 진단서를 발급해주는 경우도 있었다.
다양한 환자들의 상태에 맞게 태수도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그렇게 한참 정신없이 돌아다니던 중이었다.
정관영이 다가와 태수에게 말했다.
“어제 대형사고쳤다며?”
“죄송합니다. 환자 상태가 너무 다급해서 그만.”
“됐어.”
“네?”
너무도 태연한 정관영 말에 태수가 당황할 지경이다. 정관영은 알듯말듯한 미소를 지으며 지시했다.
“최 선생. 가서 밥 먹고 병동으로 올라가서 수술 준비해.”
“알겠습니다.”
태수는 대답과 동시에 몸을 움직였다.
점심 식사를 마친 태수는 바로 수술 준비에 들어갔다.
지방의 군소병원이었지만 수술실 규모가 의외로 컸다.
외과만 사용하는 수술실이 아니라 전 의과가 모두 사용하는 수술실이라는 게 다른 점이었다.
태수는 수술실에 들어가자마자 먼저 내부를 샅샅이 살폈다.
뭐가 있는지를 알아두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시간을 투자해 돌아다닌 후 태수의 얼굴이 묘했다.
‘웬만한 수술은 다 할 수 있겠는데?’
그만큼 수술도구와 기계들이 다양하고 최신식도 많았다.
한 번 더 살피던 태수가 결국 감탄사를 터뜨렸다.
“우와. 이것도 있어?”
태수의 감탄에 옆에서 수술을 준비하던 수술 간호사가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20대 중반?
그 이상은 때려죽여도 안 들어보인 간호사 외모였다.
“몇 달 전에 들어온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멋진 수술 기구들과 기계들이 있는데, 왜 외과 환자는 치질 환자 밖에 없습니까?”
“호호.”
“진짜 궁금해서요.”
태수의 물음에 수술 간호사가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뭐 간호사인 제가 알겠어요?”
“그래도 보시는 눈이 있는데.”
“뭐 의사 분들 실력차이도 있겠죠. 대형병원 준비한다고 계속 수술기계들은 들어오는데 사용할 사람이 없으니까 보기 좋은 떡이라고 할까요? 좌우간 그래요.”
싸한 느낌이 드는 말투였지만 사실만 꼬집었다.
그제야 이유를 정확하게 들은 태수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군요.”
“간밤에 응급실에서 활약을 좀 하셨다던데.”
“활약이라니요?”
“왜 모르는 척 하실까. 간호사들은 의사들보다 입이 빠르답니다.”
간호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이 그랬다.
의사들은 자존심이 강하기에 다른 의과에 도움을 받은 사실을 숨기는 경향이 강했다.
그런 반면 간호사들은 그럴 이유가 없기에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의사들도 간호사들에게 소문을 들을 정도였다.
태수는 난데없는 곳에서 듣는 칭찬에 괜히 머쓱해졌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그럼 노력하셔야죠. 이 수술 기계 다 녹슬게 하진 말아주시고요.”
“제가 할 수 있을까요?”
태수가 슬쩍 묻자 수술 간호사는 찡긋 미소를 지었다.
“그건 선생님 하시기 나름이죠.”
“그럼 죽어라 열심히 해야겠네요. 혹시 기계들 사용설명서 있으면 나중에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건 나중에 봐서요.”
눈빛이 뭔가 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바로 뭔가를 약속할 수도 있지만 취향을 몰랐다.
“나중에 그럼 제가 식사부터 대접하면서 아부 좀 떨겠습니다.”
“데이트 신청?”
“모시는 거죠.”
“속이 보이긴 하는데, 나쁘진 않네요. 그럼 나중에 기대할게요.”
수술 간호사가 찡긋 미소를 보였다.
그 뒤로도 수술 준비는 계속 됐다.
중간중간 수술 간호사와 대화도 나누며 이름도 알아냈다.
김수진.
각 의과 수술에 참가하고 있다고 했다.
병원에서 일한지는 1년 정도고 수술실만 전담했다고 한다.
이런 저런 대화로 수술 준비를 화기애애하게 마무리하던 중이었다.
외과 간호사 한 명이 들어오더니 씁쓸하게 말했다.
“오늘 수술 안 한답니다. 정리하고 각자 볼일 보시래요.”
그 말에 수술실에 있던 의료진들 얼굴이 허탈하게 변했다.
“나 참, 또야?”
“환자한테 각서를 받던가 해야지.”
투덜거리며 늘어놓은 수술도구들과 기계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편 태수는 의아했다.
불과 30분도 남지 않았는데 수술이 취소 됐다는 게 영 꺼림칙했다.
환자 상태가 급변했다?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치질의 경우에는 그럴 만한 변수가 없었다.
소식을 전해준 간호사에게 물어보려 했지만 이미 모습을 감춘 후였다. 그 외에도 의료진들이 수술실을 정리하는 중이었지만 그들이 정확한 이유를 알리는 없었다.
가장 확실한 이유를 알려줄 사람을 떠올렸다.
곧장 수술실을 나선 태수는 곧장 외과 당직실로 향했다.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역시나 이명석 치프 등이 보였다.
수술 취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건지 논문 작성에만 열중이었다.
태수는 조용히 다가갔다.
“치프.”
“왜?”
“갑자기 수술이 취소 됐다는 데 어떻게 된 겁니까?”
태수의 질문에 이명석 치프 손이 멈췄다.
그리고 논문을 향한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져 갔다.
태수가 다시 입을 열려할 때 이명석 치프의 짜증어린 한 마디가 들려왔다.
“가서 네 할 일 해.”
“치프.”
“…….”
아예 무시였다.
더 물어보면 안 될 거 같은 분위기에 태수는 서서히 뒤로 몸을 뺐다.
“실례했습니다.”
인사하고 뒤돌아 당직실을 나서려 할 때였다.
쾅!
이명석 치프가 손으로 책상을 거칠게 내려치는 모습이 태수의 시선에 잡혔다.
당직실을 나선 태수는 간호사실로 향했다.
분위기가 안 좋을 때는 괜히 눈에 띠지 않는 게 중요했다.
차트를 정리하는 게 가장 좋았다.
간호사실에 도착한 태수가 컴퓨터에 자리를 잡고 앉아 차트를 손에 쥘 때였다.
스윽.
손 하나가 불쑥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 손에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쥐어진 모습이다.
태수가 돌아보자 넉넉한 몸집의 수간호사가 푸근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안 받아요? 팔 빠지겠네.”
“잘 마시겠습니다.”
태수가 바로 받아들고 가볍게 입을 축일 때였다.
“어제 문 선생님 물 먹였다면서요?”
“그건 오해입니다. 제가…….”
“다 들어서 알아요. 농담한 건데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신다.”
“수간호사님이 하시는 농담은 전혀 농담 같지가 않아서요.”
태수가 넉살 좋게 말하자 수간호사는 마치 이모와 같이 더욱 푸근함을 내보였다.
“실력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너무 튀면 골치 아픈 건 알죠?”
“주의하겠습니다.”
“그렇게 정색하고 사과하면 내가 뭐가 돼요. 난 의사도 아닌데.”
“수간호사님이시면 준의사 아니십니까?”
태수의 처세술에 수간호사가 배시시 미소 지었다.
“최 선생님도 참. 그건 그렇고. 수술 취소돼서 치프 기분이 영 말이 아니죠?”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기는. 괜히 책상에다가 화풀이 하고 있을 텐데. 선생님도 괜히 눈에 띠기 싫으니까 여기 있는 거잖아요.”
수간호사의 예측이 정확했다.
태수는 쓴 미소를 짓다가 눈빛을 반짝였다.
처음부터 자신에게 호의를 보인 수간호사라면 어느 정도 이야기해주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이런 경우가 가끔 있나보죠?”
“가끔이요? 자주 있는 편이에요.”
“수술 취소가요?”
태수가 황당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수술은 한 의과에서만 실시하는 일이 아니었다.
응급 수술이 아닌 이상 최소 며칠 전에 마취과와 간호과 등. 각 의과에 연락해 수술할 인원들을 선별한다.
다양한 의과에서 힘을 합쳐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와 같은 작업이 바로 수술이었다.
그런데 수술 취소가 자주 있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수간호사는 의아해하는 태수를 보며 이어서 이야기했다.
“일단 급하니까 여기에 입원해서 치료 좀 받고요. 그 사이에 가족들이 잘하는 병원을 알아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럼 이번 수술이 취소 된 것도……”
“서울 쪽에 치질로 아주 유명한 병원이 있다고 그쪽으로 간다네요. 보호자들이 과장님한테 얼마나 사정을 하든지.”
수간호사가 고개를 젓자 태수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과장님이 쉽게 허락하셨습니까?”
“그 분이 뭐 관심이나 있나요? 알아서 하라고 하시죠. 덕분에 치프만 임상경험 케이스 날아갔다고 성질내다가 당직실 들어갔고요.”
수간호사의 투덜거림이 길게 이어졌다.
그 외에 대화를 좀 더 나눈 후에야 태수는 컴퓨터 앞에 홀로 자리했다.
수간호사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는 이해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자주 일어난다는 건 아무래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시간이 흘러 저녁시간 즈음이었다.
외래가 끝나 잠시 쉬고 있을 때였다.
휴대폰이 울어 바라보자 응급실 번호였기에 태수가 얼른 받아들었다.
“최태수입니다.”
“응급이요!”
“갑니다!”
태수는 통화를 종료하기도 전에 먼저 뛰었다.
신속하게 달린 태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응급실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외과 도착했습니다!”
“여기!”
이철준의 다급한 목소리에 태수는 앞뒤 가리지 않고 뛰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지금 달려가는 쪽이 간호사실인 탓이었다.
‘응?’
일단 의아함을 접고 달려간 태수 얼굴이 멍하니 변했다.
간호사실 위에 가득 펼쳐진 먹을거리들 탓이다. 빵과 음료수는 물론이고 과자나 초콜릿 등 종류도 다양했다.
태수 얼굴이 순간 당황으로 물들어갈 때 이철준이 피식거리며 다가왔다.
“이거 너무 급하게 불렀나?”
“헉헉. 환자는요?”
“여기 있잖아. 아주 응급이야.”
이철준은 넉살좋은 말투로 간식거리를 가리켰다.
그제야 장난전화였다는 걸 직감한 태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선배님.”
“왜, 전혀 응급해 보이지 않아?”
“하하.”
태수가 어이없이 웃자 이철준은 음료수를 하나 오픈해 내밀었다.
“이거 길병원 혈관센터에서 보내준 거야.”
“어제 혈우병 환자 이송한 곳이요?”
“그래. 네가 구급차 타고 가면서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전문의가 바리바리 싸서 보냈더라.”
이철준의 말에 태수가 머리를 긁적였다.
“대단한 것도 아닌데.”
“인마. 레지던트 1년차 주제에 혈우병 알아보고 조치한 놈이 그런 말을 해?”
“…….”
“사정은 모르겠는데 말이다. 어제는 네가 있어서 참 든든했다.”
툭툭.
이철준이 칭찬과 동시에 태수 어깨를 가볍게 쳤다. 옆에 둘러선 다른 이들의 말도 귀에 들렸다.
“선생님 멋졌어요.”
“난 아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니까.”
간호사들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태수도 인간이다.
이런 칭찬은 백번이고 들어도 귀가 아프지 않을 거 같았다.
응급실에서 듣는 게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자신을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어깨를 펴지게 했다.
그 순간 태수가 짖궂은 미소를 지으며 이철준에게 물었다.
“저한테 보낸겁니까?”
“엄밀히 따지면 그렇지.”
이철준이 엉겁결에 대답하자 태수가 기분 좋게 외쳤다.
“다 드십시오!”
“그렇지! 바로 그거야.”
“네?”
“먹으라며. 자, 먹자고.”
이철준의 말에 간호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 먹읍시다.”
“잘 먹을게요.”
인사와 동시에 빠르게 사라져가는 간식거리를 바라보던 태수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가슴이 뛰었다.
행복했다.
남에게 인정받는다는 것.
‘이런 기분이구나.’
태수의 얼굴에 미소가 만개했다.
그 후 며칠이 별 소동없이 지났다.
가끔 응급실 콜을 받았지만 외과에는 별다른 일이 없었다.
오히려 너무 한가할 정도였다.
과장은 여전히 무심했고, 치프는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문승현은 여전히 싸늘한 시선으로 대했으며 그나마 정관영만이 태수를 챙겼다.
허나 태수는 그 사이 외과에 대한 문제를 하나씩 몸으로 실감했다.
우선 하석준 과장은 외래 외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차피 개업할 생각으로 커리어 쌓는 중이었다.
떠날 병원이라는 생각이 강했기에 진료에 열정적일 수가 없었다. 하석준 과장도 문제였지만 레지던트들도 그리 열정적이지 않았다.
그런 상황인데 환자들이 자처해서 찾아올 이유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