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842
00845 845화
뜻하지 않게 한 방 얻어맞은 데이먼이 보조할 타이밍을 놓쳤다. 그렇다고 멍하니 쳐다만 볼 만큼 어수룩하지 않았다.
“이쪽부터라 이거죠.”
데이먼이 바로 따라붙자 태수의 손길도 계속 이어졌다.
“오른쪽, 당겨 주시고요.”
“당겼습니다.”
“아래쪽 조금만 들어 주세요.”
“네.”
데이먼의 대답보다 손이 먼저 움직였다.
태수는 그 반응 속도를 보더니 마스크 속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좀 더 빠르게 갑니다.”
“여기서 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아서요. 그럼 시작합니다.”
태수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원래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야전에서 커 온 태수의 장점은 정교함보다 신속함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정교함이 현저히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필요한 부분과 필요 없는 부분을 명확하게 구분해 수술했다.
턱턱.
태수는 말없이 손만 움직였다.
가끔 나오는 말은 수술 도구를 바꾸기 위해서일 뿐이었다.
“믹스터, 디바키, 썩션, 뱁콕…….”
태수가 수시로 수술 도구를 바꾸니 그에 맞춰 데이먼의 수술 도구도 변화했다.
“인터네셔널 포셉, 보비, 니들홀더, 엘리스, 메이요…….”
우측에서 당겨 주고, 좌측에서 밀어 주고.
아래로 당겨서 공간을 줄이고, 전체적인 판막의 크기를 축소하고.
그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옆에서 냉정한 시선으로 지켜보는 스미스의 눈썹이 크게 들썩였다.
데이먼의 실력이야 잘 알고 있었다.
차기 존스홉킨스의 흉부외과를 짊어질 젊은 의사인 만큼 또래에 비해 실력이 무척 뛰어났다.
그런데 그런 데이먼이 쫓아가기에 벅찰 정도로 수술하는 집도의가 바로 태수였다.
태수 최.
외과 전문의.
제임스와의 인연으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의사.
하지만 지금 태수의 모습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스미스의 예상을 모두 뒤집었다.
지금 태수의 모습은?
누가 뭐래도 유능하다 못해 경험이 많은 흉부외과 전문의였다.
‘도대체 넌 누구야?’
스미스는 태수의 수술을 지켜보며 의구심을 떨치기 힘들었다.
스미스도 그런 상황인데 참관실에서 지켜보는 심사관들은 어떨까.
“…….”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입을 쫙 벌린 채 수술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실력이라면 10년 차 이상의 흉부외과 전문의 수준이다.
아니, 그보다 뛰어날지도 모른다.
여기 앉아 있는 자신들과 비슷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의사가 지금 테스트를 받기 위해 수술을 하고 있다.
왜 여태까지 저런 실력이 알려지지 않은 걸까.
심사관들의 두 눈에서는 그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은 열망까지 느껴졌다.
그들뿐만이 아니라 수술 스텝들도 경악하고 있었다.
이틀에 걸친 회의.
보통 수술에 자신이 없는 의사들이 회의에 장시간을 투자한다.
물론 스텝들도 태수를 그렇게 평가했다.
테스트를 받는 입장이라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회의 중에 태수가 얼핏얼핏 흘린 상황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앞뒤 순서가 바뀌거나 다소 달라진 점도 있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다르지 않았다.
태수가 오랫동안 회의를 한 건 이런 변수도 생각했다는 이야기였다.
스텝들이 당황하지 않고 보조할 수 있는 건 귀가 따갑도록 듣고 또 들은 탓이었다.
정신없이 수술 도구가 오가는 와중에도 스텝들은 힐끔거리며 태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태수와 데이먼은 쉬지 않고 수술했다.
삼천판막의 크기를 줄여 판막이 꽉 물리게 조치하고, 이어서 T자로 잘라 낸 우심실까지 다시 봉합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그 과정 사이사이 문제가 있는 관상동맥까지 일부 절제하고 인공혈관으로 대체하기도 했다.
몰아치고 또 몰아치기를 거듭했다.
그사이 단 한 번도 수술대에서 떠나지 않았던 태수가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심장 수술 완료.”
“이쪽도 끝났습니다.”
데이먼이 뒤따라 보고한 후였다.
“혈압, 체온 이상 없습니다. 맥박은 여전히 멈춰 있고…….”
“혈액 손실도 많지 않습니다. 산화기, 와파린 역시 양호, 그리고…….”
마취의와 인공심폐기 기사가 차례로 보고했다.
크게 문제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태수는 아직 안심하기 이르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젠 다시 심장을 뛰게 해야 한다.
이 순간이 이번 수술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일이다.
무사히 심장이 다시 재가동되느냐, 아니면 예상치 못한 문제로 다른 부위를 수술해야 하느냐.
2가지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다.
태수도 지금은 긴장되었다.
“후우.”
짧게 숨을 내쉬는 사이 에밀리아가 땀을 닦아 주며 말했다.
“성공할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위로 감사합니다.”
“내가 왜 위로를 해야 하죠?”
에밀리아가 묻자 태수가 멈칫했다.
“하긴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그럴 이유가 없으시네요.”
“난 내가 본 것만 말하는 거예요. 내가 수술 보조한 이후로 이렇게 정신없지만 체계적인 수술은 몇 번 경험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래서 성공한다는 건가요?”
“아니요. 닥터 최가 이 환자를 꼭 살리고 싶어 한다는 걸 느꼈으니까요. 환자도 느꼈을 거라 생각해요.”
에밀리아는 솔직하면서도 직설적으로 자기 생각을 표현했다.
태수는 회의 때 이미 에밀리아가 그런 성격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확실한 건 마음에 없는 소리는 안 한다.
자신이 보고 느낀 걸 숨기고 감추는 법도 없다.
20년이 넘는 수술 보조 베테랑 간호사의 이야기였다. 그런 그녀의 말이었기에 태수도 신뢰가 갔다.
분위기를 바꾼 태수가 조금은 진중하게 데이먼과 스텝들을 바라봤다.
모두 땀에 절어 있는 모습이다.
그런 그들에게 태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지금부터 심장을 되돌리겠습니다.”
“네!”
모두의 목소리가 잔뜩 쉬어 나왔다.
앞서 인공심폐기로 우회할 때도 긴장했던 만큼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제때 밸브를 돌려 심장에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해야 한다. 그 타이밍을 잘못 맞추게 되면 환자는 사망한다.
그만큼 중요한 일이었기에 긴장하는 게 당연했다.
태수도 그 중요성을 알기에 스텝들에게 긴장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물론 태수가 선언하기 전에 몇 번이나 심장에서 공기를 뺐다.
하지만 이것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완벽이라든지, 절대 문제가 없다는 오만은 절대 금물이었다.
태수가 대동맥 밸브에 손을 대자 데이먼과 보조 간호사들도 바로 담당 밸브에 손을 댔다.
태수는 시선을 인공심폐기 기사에게 돌리며 말했다.
“기사님이 타이밍 잡아 주시고요. 마취의.”
“대기하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시작하시죠.”
태수가 말하자 인공심폐기 기사도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인공심폐기 기사가 외친 순간이었다.
태수와 데이먼, 그리고 간호사들은 동시에 밸브를 돌렸다.
“대동맥 전환 시작.”
“상하대정맥 전환 시작.”
“폐동맥 전환 시작.”
“폐정맥 전환 시작.”
네 사람이 거의 동시에 외친 순간이었다.
인공심폐기에서 흘러나오던 혈액이 차단되었다. 그리고 상하대정맥을 통해 쏟아져 들어온 피가 심장에 차올랐다.
그 증거로 푹 꺼진 심장이 다시 빵빵하게 부풀었다. 그와 동시에 심정지액은 혈류에 휩쓸려 제 역할을 상실하게 된다.
심정지액이 혈액에 녹아들어간 순간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수술하기 전과 다르게 우심실이 규칙적이고 확실하게 수축하고 있었다.
펄쩍 뛰고 싶을 정도로 기쁜 순간이다.
하지만 태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아직 심장이 완전히 되돌아오지 않은 탓이다.
쿵쿵.
아주 미약한 반응.
확인과 동시에 태수가 직접 마취의에게 오더했다.
“cardiotonic(강심제).”
“투여합니다. 산소포화도 50퍼센트.”
“하나 더.”
“1앰풀 더 추가합니다. 산소포화도 55퍼센트.”
마취의가 오더에 맞춰 빠르게 반응하며 폐의 반응도 보고했다.
반면, 오더를 내리는 와중에도 태수는 심장을 향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심장의 움직임에 따라 오더도 계속되었다.
“hypertensor(승압제).”
“추가합니다. 산소포화도 70퍼센트.”
“defibrillator(제세동기) 샷, 준비.”
그 소리에 이미 마취의 보조 간호사가 바로 충격기를 들고 다가왔다.
“여기요.”
“20줄 맞춰 주시고, 일단 대기.”
“대기할게요.”
간호사가 다시 멀어진 후였다.
태수는 충격기를 양손에 들고 언제든 충격을 줄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속으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다섯까지만 넘어가면 된다.
그때까지 아무런 이상도 없으면 더 이상의 문제가 없다.
그렇게 속으로 넷까지 센 직후였다.
삐빅!
“V-FIB(심실세동)!”
ECG(심전도 모니터)에 온 정신을 쏟고 있던 마취의가 별안간 소리쳤다.
ventricular fibrillation.
심장의 심실들이 갑자기 불규칙적으로 반응하며 이상을 만드는 증상을 뜻했다.
예상한 일이 일어나자 태수는 거침없이 충격기를 심장에 대고 소리쳤다.
“샷!”
치직!
“아직!”
“충전.”
“충전했어요.”
목소리들이 빠르게 오가는 사이 태수는 또 한 번 심장에 충격을 줬다.
“샷!”
“한 번 더.”
“충전은?”
태수가 낮게 소리치자 마취의 보조 간호사의 목소리가 따갑게 들려왔다.
“잠시만요……. 됐어요!”
“샷!”
세 번째 충격을 준 순간이었다.
사방팔방 날뛰던 심장이 찰나의 순간 멈추더니 다시 규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불어 마취의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대기……. 오케이!”
“후!”
“맥박 상승 중이고요. 상승폭은 안정적입니다. 산소포화도는 현재 75퍼센트.”
“산소 좀 더 올려 주세요.”
“알겠습니다. 산소, 그리고 마그네슘도 추가합니다.”
마취의가 유동적으로 반응하자 태수는 그제야 한시름을 놓았다.
“잠깐만 숨 좀 돌리죠.”
태수의 말이 끝난 순간이었다.
“후우우우.”
“하아아.”
사방에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짧고 응급한 순간 동안 다들 숨을 쉬지 못한 모양이었다.
태수도 온몸의 솜털이 설 정도로 긴장된 순간이었기에 그들의 한숨 소리가 이해되었다.
스미스는 그런 상황에서도 눈썹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굿 잡.”
“감사합니다.”
“이따가 이 일에 대해서는 다시 이야기하지.”
여전히 담담한 스미스의 얼굴이다.
그러나 참관실에 자리한 심사관들의 모습은 스미스와 조금 달랐다.
“후!”
“흠.”
짧은 한숨이나 낮은 침음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자신들도 모르게 꽉 쥐고 있던 주먹에 서서히 힘을 풀기 시작했다.
흉부외과 수술에 있어선 공중전을 제외한 산전수전을 모두 겪었다고 자부하는 그들이었다.
공중전까지 거치려면 스미스 정도의 경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 수준은 아닌 탓이다.
그런 자신들도 일순간 긴장했을 정도로 긴박한 순간이었다.
이내 긴장했었다는 사실에 서로 무안한 얼굴로 시선을 사방으로 돌리기 바빴다.
그것도 잠시였다.
이내 심사관들의 시선은 다시 대형 TV로 향했다.
쿵쿵.
몇 시간 전과 다르게 규칙적으로 뛰는 심장의 모습이 대형 TV 화면에 가득했다.
이 이상의 증거가 필요하냐.
마치 리카르도의 심장이 심사관들에게 묻는 듯이 힘차게 박동하고 있었다.
심사관들도 눈이 있기에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이렇게 되면 결과는 따로 상의할 필요가 없을 거 같습니다.”
“맞습니다. 그리고 닥터 최와의 인터뷰에서 물을 게 상당히 많아졌네요.”
“몇 가지는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겠죠. 이 변형된 바치스타 수술법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도 궁금하고요.”
“결과는 나왔지만 아직 수술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마무리하는 걸 확인한 후에 계속 이야기하시죠.”
“그래야지요.”
다들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한 심사관이 마취의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왜 산소포화도가 80퍼센트를 못 넘는 걸까요?”
“그건 상당히 궁금하네요.”
“이 수술에서 폐가 따로 문제 될 상황은 아닌데요.”
폐에 어떤 이상이 있는지 보고 싶었지만 참관실에서 확인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대형 TV도 심장만 클로즈업해서 보여 주고 있을 뿐, 주변까진 보여 주지 않는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