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68
168화
혈귀라는 말에 노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나를 알고 있나.”
지크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래, 아주 잘 알고 있지.”
노인이 무법자 시절 썼던 네임을 아는 사람은 이미 모두 다 죽었다.
혈귀는 과거를 정리한 뒤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아르고스 할렘에서 작은 조직을 운영하며 숨죽인 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는 인물이 튀어나온 것이었다.
“네놈 정체가 뭐냐.”
혈귀가 살기 어린 눈빛으로 지크를 노려봤다.
두 사람 사이에 낀 프랭크가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지크가 천천히 혈귀 앞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
“혹시라도 눈치 채고 도망칠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이군.”
지크는 눈앞에 있는 혈귀와 전생에 악연을 맺었었다.
그를 남부 노예로 팔았던 조직이 다름 아닌 혈귀의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후에 지크가 메케인의 히트맨으로 활동하다가 조직을 해체시키고 다시 중앙대륙으로 올라왔을 때. 그는 자신을 팔아넘긴 아르고스 조직들의 뒤를 모두 캤었다.
그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점조직들을 관리하며 인신매매를 해 온 이가 바로 이 노인이었다.
과거 혈귀라는 이름으로 무법자 활동을 하다가 자신의 정체를 아는 이들을 모두 죽이고 잠적한 뒤 이곳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는 자.
지크는 전생에서 이 혈귀를 붙잡아 그가 노스트라 패밀리에서 운영하는 중간 운영 조직과 선이 닿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는 일이 커지기 전에 혈귀까지만 정리하고 손을 뗐지만, 현재는 노스트라 패밀리와의 연결점을 찾을 필요가 있기에 그를 다시 찾아온 것이었다.
게다가 이렇게 운이 좋게 한 번에 혈귀에게로 붙잡혀 오다니. 지크는 내심 기분이 좋았다.
지크가 품에서 단검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 뒀다.
혈귀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앞에 있는 청년이 자신은 감당할 수 없을 만한 실력자라는 것을 느꼈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뭘 원하는 건가.”
지크가 혈귀를 보며 말했다.
“노스트라 패밀리.”
그 말에 옆에 있던 프랭크가 더욱 바쁘게 눈알을 굴려 댔다.
혈귀는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서랍을 열었다.
그러고는 파일 뭉텅이를 꺼내서 그것을 지크 앞에 올려놨다.
“나는 그쪽이랑 직접적인 선은 없어. 가끔 위에서 내려오는 일만 받아서 처리할 뿐이지. 관련 자료는 여기 있으니까 필요한 건 다 챙겨 가라고.”
프로답게 상황을 파악하고 쓸데없는 반항은 하지 않는 혈귀였다.
지크가 파일을 열어 내용을 훑어봤다.
그가 이내 파일을 모두 바닥에 버리며 말했다.
“중간 유통망 쪽이랑 접선하는 방법을 알고 싶은데 말이야.”
“콧대 높은 노스트라 패밀리가 나 같은 구멍가게랑 상대나 하겠나. 내가 아는 쪽도 허접한 양아치들일뿐이다. 그 위로 올라가는 쪽은 몰라.”
그 말에 지크가 탁상에 놨던 단검을 들고 혈귀의 손등을 팍 찍어 버렸다.
콰직!
단검이 손등을 관통했지만 혈귀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지크가 그런 혈귀를 보며 말했다.
“스킨과 직통으로 연락되는 거 알고 있다. 잔머리 굴리지 말고 빨리 말하는 게 좋을 거다.”
스킨이라는 말이 나오자 혈귀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그는 노스트라 패밀리의 일원 중 하나로 가끔 조직에서 건드리기 어려운 더러운 일을 혈귀에게 맡기고는 했다.
그 와중에도 망설이는 혈귀를 보며 지크가 단검을 쥐고 전격 스킬을 썼다.
파지지직!
전격이 혈귀의 몸 전체를 훑었다.
보스로서의 위엄을 지키려던 혈귀가 거품을 물었다.
“끄어억!”
지크가 단검을 하나 더 꺼내 무너지듯 책상을 짚은 혈귀의 나머지 손까지 찍었다.
“제대로 말하면 고통 없는 죽음을 약속하지.”
그러자 혈귀가 쿨럭거리며 입을 열었다.
“나, 남부식이군. 카르텔이 왜 여기까지 와서 이 난리를 치는 거지.”
혈귀는 전생에서 죽기 전에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했다.
지크가 대답할 생각이 없다는 듯 세 번째 단검을 꺼냈다.
“얼마나 인내심이 좋은지 내가 한계를 시험해 주지.”
파지지지직!
* * *
몇 시간 뒤 지크는 혈귀에게서 스킨의 정보를 얻어 낼 수 있었다.
프랭크에게 은밀하게 전달했던 의뢰도 노스트라 패밀리에서 스킨을 통해 내려온 것이었다.
대륙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노스트라 패밀리는 각 지역의 영주들이나 유력 귀족들의 승계 상황에도 개입하며 그들을 협박하고 이권을 챙겼다.
마피아에게 약점을 잡힌 가문은 결국 그들에게 충성을 맹세하거나, 더러운 일에 공범으로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노스트라 패밀리의 몇 백 년 역사는 이렇게 이루어졌다.
지크는 죽은 혈귀의 시신을 보다가 옆에서 완전히 얼어붙은 프랭크를 돌아봤다.
자신이 팔아넘긴 어수룩한 초짜가 냉혹한 남부 히트맨이었다는 걸 알게 된 프랭크는 그만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
지크가 프랭크를 보며 말했다.
“혈귀가 거미손 너한테 그 의뢰를 맡기려 했다던데.”
그 말에 프랭크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습니다.”
지크가 고민을 하다가 그에게 말했다.
“좋아. 그럼 네가 나를 좀 도와야겠다.”
“제, 제가요? 사, 살려만 주신다면 뭐든 하겠습니다!”
“귀족 후계자를 위장 암살하는 의뢰, 상당히 중요한 작업이라서 스킨이 직접 온다더군. 나를 도와준다면 살려 주고 돈도 얹어서 주지.”
프랭크로서는 거절할 방법이 없었다.
내일 당장 의뢰의 목표물이 던전 관광을 위해 아르고스에 오기로 되어 있었다.
지크는 변환 망토를 이용해 모습을 바꿨다.
잠깐 사이에 그는 아까 문 앞에서 쓰러진 문신 사내의 모습으로 변했다.
“이놈 이름이 뭐지.”
갑자기 모습이 변한 지크를 보고 프랭크가 입을 쩍 벌렸다.
그가 더듬더듬 지크의 물음에 답했다.
“재, 잭입니다.”
“좋아. 내일 나랑 같이 접선 지역으로 가서 스킨을 만난다.”
“아, 알겠습니다.”
지크는 시체들을 부패의 권능으로 처리한 뒤 함께 프랭크의 사무실로 갔다.
노스트라 패밀리의 일원인 스킨을 붙잡아 헬리에 있는 그들의 본부 위치를 제대로 털어 낼 생각이었다.
이튿날 지크는 예정대로 프랭크를 데리고 접선 장소로 향했다.
* * *
“진짜 이 동네 암울하네.”
올백 머리를 한 청년이 검은 마차에 기댄 채 담배를 피우며 말을 내뱉었다.
검은 수트를 입고 있었는데 목과 팔목 쪽에 언뜻 문신들이 보였다.
맞은편에 있는 곱슬머리 청년은 말없이 담배를 깊이 빨아들였다.
올백 머리가 곱슬머리에게 말했다.
“야, 너 진짜 벙어리냐? 하, 진짜. 다음에 호위 붙이는 놈은 혀 좀 돌아가는 놈으로 달라고 해야지. 진짜 재미라곤 조금도 없네.”
그때 마차 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나왔다.
“자식들아. 저쪽 가서 피워라.”
그러자 올백 머리 청년이 사내에게 투덜거리듯 말했다.
“아, 삼촌! 재밌는 데 가자고 해 놓고서 이딴 깡촌으로 데려와 놓고. 뭐예요, 이게!”
역시나 검은 수트를 입은 사내.
적대 조직의 조직원들을 붙잡으면 피부를 벗겨 내는 악취미 때문에 ‘스킨’으로 불리는 남자가 마차에서 내린 뒤 담배를 입에 물었다.
곱슬머리 청년이 스킨의 담배에 불을 붙여 줬다.
“나한테 뭐라 하지 말고 너네 꼰대한테 가서 말해.”
“젠장, 역시 아버지가 시킨 건 줄 알았어.”
올백 청년은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바닥에 내던졌다.
그때였다.
마차 한 대가 다가왔다.
스킨이 대기하고 있던 조직원들을 향해 손짓을 했다.
조직원들이 마차를 가로막자 바로 멈춰 선 마차 안에서 누군가가 내렸다.
잭으로 위장한 지크와 프랭크였다.
조직원들은 잭과 프랭크의 몸을 수색해 이상이 없는 걸 확인했다.
그제야 스킨이 씨익 웃으며 둘에게 다가갔다.
“잭, 저번보다 살찐 것 같은데. 요즘 상황이 좋나 봐? 그나저나 너네 꼰대는 어쩌고 너만 왔어.”
잭으로 위장한 지크가 프랭크를 가리키며 말했다.
“일이 좀 있어서요. 보스 성격 아시잖습니까. 가이드 할 놈 데려왔으니 확인해 보시죠.”
신경 쓰이는 일이 있으면 그것부터 처리해야 하는 혈귀의 괴팍한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스킨은 그러려니 했다.
그가 프랭크를 보며 말했다.
“이놈이야? 너 무슨 일 해야 하는진 알지?”
그러자 프랭크가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마, 맡겨 주십시오!”
스킨이 프랭크의 뺨을 툭툭 치며 말했다.
“이 새끼 이거. 이렇게 긴장해서 가이드 제대로 하겠어?”
잭의 모습을 한 지크가 걱정하지 말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 바닥에서 15년은 굴러먹은 놈입니다. 작업 들어가면 혓바닥 놀리는 건 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
스킨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가 너네 꼰대 믿고 가 본다. 실수하면 알지?”
그가 목을 슥 긋는 시늉을 했다.
그러고는 이내 뒤에 있는 청년들을 불렀다.
“인사해. 이쪽은 내 조카야. 현장 좀 보고 익히라고 데려왔어.”
올백 청년은 씨익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반갑수다. 이쪽 일 오래 했다고 들었는데. 잘 지내 봅시다.”
지크는 잭의 얼굴로 두 사람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고는 스킨에게 다가가서 속삭였다.
“작업장 준비는 다 됐습니다. 보스께서 시작하기 전에 최종 확인을 해 주셔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스킨이 귀찮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 진짜. 노인네 깐깐하네.”
혈귀와 몇 번 작업을 맞춰 본 스킨이었기에 그의 깐깐한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귀찮다고 투덜거렸지만, 철두철미한 성격 때문에 그에게 이런 중요한 작업을 맡기는 것도 있었기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목표물은 오후에 올 거니까 지금 가서 둘러보자고.”
스킨은 조카와 조직원들을 데리고 마차에 올라탔다.
그들은 미리 섭외해 둔 고위험군 던전 쪽으로 향했다.
산길이 가파르고 인적이 드문 곳이라서 사고가 나도 외부에서 알아차리기 어려운 곳이었다.
마차에서 내린 스킨은 조직원들과 함께 던전 내부로 들어갔다.
“으, 냄새. 이 몬스터 새끼들 냄새는 진짜 적응 안 되네.”
스킨이 손수건으로 코를 막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던전 안쪽에는 혈귀 측에서 미리 준비해 놓은 고위험군 몬스터들이 우리에 갇혀 있었다.
스킨이 몬스터들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미노타우로스에 사이클롭스? 쎈데. 영감이 신경 좀 썼네.”
가벼운 여행으로 알고 있어 호위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을 거라고 했으니 미노타우로스와 사이클롭스라면 목표물의 호위 기사들도 막기 어려울 듯싶었다.
스킨은 조카에게 손짓했다.
그러고는 우리에 갇힌 몬스터를 더 가까이에서 보여 줬다.
“자식아. 이런 거 봤냐? 이게 진짜 리얼 몬스터라는 거야.”
올백 머리가 신기한 듯 사이클롭스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차고 있던 검을 꺼내 우리 사이로 집어넣어 사이클롭스를 툭툭 건드렸다.
크르르르!
굶주린 채 우리에 갇혀 있던 사이클롭스가 침을 질질 흘리며 우리에서 일어났다.
쾅! 쾅!
우리를 잡고 흔드는 사이클롭스를 보고 올백 머리가 배를 잡고 웃었다.
“푸하하! 야, 저거 봐 봐. 겁나 웃…….”
퍽!
순식간이었다. 사이클롭스의 주먹에 맞은 올백 머리의 머리가 그대로 터져 나갔다.
“어?”
조카의 피를 뒤집어쓴 스킨이 깜짝 놀라서 눈을 끔벅였다.
쿵! 쿵! 쿵!
어느새 우리가 부서져 있었고, 그 안에서 미노타우로스와 사이클롭스가 나오는 중이었다.
크어어어어!
포효하는 몬스터들을 보고 스킨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뭐, 뭐야! X발! 잭! 야! 이 새끼야!”
당황해 주변을 둘러봤지만, 잭과 프랭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스킨이 욕을 내뱉으며 던전 밖으로 도망치려는데, 어느새 거대한 바위가 길을 턱 막고 있었다.
혈귀 측에서 미리 준비한 함정을 지크가 발동시켜 길을 막아 버린 것이다.
“젠장! 새끼야! 열어! 이거 열어! 야, 니들 얼른 쟤네 막아!”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라 굳어 있던 조직원들이 무기를 꺼내 들고 미노타우로스와 사이클롭스를 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퍽!
동굴 여기저기에 찢어발긴 조직원들의 시신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겁먹은 스킨이 자리에서 넘어졌고, 사이클롭스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
그때 스킨 앞에 곱슬머리를 한 청년이 섰다.
그가 품에서 단검을 빼 들더니 자신의 손바닥을 찔렀다.
주르륵!
곱슬머리가 달려드는 사이클롭스를 향해 자신의 피를 뿌렸다.
촤아아악!
청년의 피를 맞은 사이클롭스가 갑자기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크르르!
느닷없이 옆에 있던 미노타우로스에게 달려든 것이다.
미노타우로스와 사이클롭스가 서로를 물어뜯으며 싸우는 사이 청년이 스킨을 일으켰다.
스킨이 청년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비스코. 여기서 빠져나갈 길을 찾아라! 빨리!”
그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혈계 능력자가 붙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잭의 모습으로 나타난 지크였다.
스킨이 그를 노려보며 검을 빼 들었다.
“너 이 새끼! 정체가 뭐야, 잭이랑 영감은 어디 있어!”
“그래도 눈치는 있군. 완전 머저리는 아니었네.”
지크가 망토를 벗고 원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용살패가 붙어 있는 제복에 검은 장갑.
대륙에서 이 복장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드, 드레이커?”
전혀 예상치 못한 정체에 스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