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88
388화
히이이잉!
거해궁 기사단의 진영 한가운데 위치한 기사단장 프레츠 마이스의 막사 앞에 전령이 빠르게 달려왔다.
전령이 말에서 뛰어내린 뒤 급하게 프레츠 마이스의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단장님! 롬에서 온 급보입니다!”
막사 안에서 상의를 벗은 남자 노예들과 노닥거리고 있던 프레츠는 갑작스럽게 들어온 전령을 보며 인상을 썼다.
그가 노예들에게 물러나라는 듯 손을 내젓고는 마뜩잖은 표정을 지은 채 전령 쪽으로 몸을 돌렸다.
얼굴에 하얀 분칠을 하고 입술을 붉게 칠한 프레츠는 연극배우 같은 모습이었다.
그가 여전히 불만스러운 얼굴로 전령을 보며 말했다.
“갑자기 롬에서 무슨 급보가 왔다는 거냐.”
즐거운 시간을 방해받아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전령이 프레츠에게 전보를 전달했다.
그는 전보를 펼쳐 들고 빠르게 내용을 읽었다.
그러더니 이내 전보를 구겨서 갈가리 찢었다.
“빌어먹을! 흑마법사 새끼가 감히 제국군을 심부름꾼 취급해?”
프레츠에게 편지를 보낸 이는 다름 아닌 나락의 사도로 위장하고 있는 ‘질척이는 어둠의 구덩이’의 권속인 로포칼레였다.
롬을 차지한 아벨 뒤에 딱 붙은 로포칼레가 제국 군단들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프레츠였다.
로포칼레는 프레츠에게 바르칼을 하루빨리 차지한 뒤 아가멤논 가문이 있는 미케네를 치라는 명령을 재차 내린 것이다.
지크 드레이커의 근거지라고도 할 수 있는 미케네를 먼저 쳐서 그의 정신을 분산시키는 것이 로포칼레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제국 군단의 전략을 세우고 있는 마갈궁의 기사단장인 아즈문 바리오스의 생각은 이와 달랐다.
‘미케네를 건드리면 중부 귀족 가문들이 죄다 들고 일어날 텐데 거길 먼저 치는 건 말이 안 된다. 차라리 그레이엄 가문의 판스타스나 중립도시 쪽을 치는 것이 더 이익이 크다.’
판스타스는 중부 지역 금융의 중심지였고, 중립도시는 중앙대륙 의약 생산의 중심지였다.
함락이 더 쉬운 데다가 그곳을 점령하게 되면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컸다.
하지만 미케네의 경우에는 들이는 힘에 비해서 얻을 것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드레이커 가문의 수호 기사이자 흑색 기사인 지크 드레이커가 아가멤논 가문의 후계자였기 때문에 역공을 받을 가능성이 컸다.
로포칼레의 경우에는 지크 드레이커를 잡으려는 목적으로 이런 명령을 내린 것이었지만 프레츠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모험을 할 이유가 없었다.
아즈문을 따르고 있는 프레츠는 로포칼레의 명령에 이를 갈았다.
‘X도 모르는 흑마법사 새끼가 감히 어디서 군단장 행세를 하고 있어.’
프레츠는 자리에서 일어나 막사 바깥으로 나갔다.
그는 바르칼의 성벽을 보며 어느새 그의 뒤에 따라붙은 부관에게 물었다.
“바르칼 의회에서는 대답이 아직 없는 거냐.”
바르칼은 의회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자치 도시였다.
인간과 드워프를 비롯해 다양한 종족들이 모여 사는 곳인 만큼 각 종족과 지역을 대표하는 의원들이 발언권을 가지고 도시의 정책을 결정했다.
그 때문에 하나의 안건에 대한 결정이 내려지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리는 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평상시와 비교할 만한 때는 아니었다.
프레츠는 군사들을 이끌고 진을 친 뒤 바르칼 의회에 진입 허가를 요청한 상태였다.
표면적인 이유는 북부대륙에 몬스터 군단이 나타나 도시 자체가 위험에 처했으니 제국군이 보호해 주겠다는 명목이었다.
하지만 바르칼 의회에서 속이 훤히 보이는 프레츠의 의도를 모를 리가 없었다.
그들은 성문을 걸어 잠그고 조용히 버티기 시작했다.
프레츠는 바르칼 쪽에서 별다른 답이 없다는 부관의 말을 듣고는 혀를 차며 말했다.
“뭐, 이 정도 기다렸으면 됐지. 스스로 벌주를 마시겠다는데 어쩔 수 있나.”
말과 함께 잔혹한 미소를 지은 프레츠가 바르칼 성벽을 바라봤다.
거해궁의 기사단을 이끄는 프레츠는 적색 기사의 실력을 가진 강한 기사면서 또한 잔혹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자신보다 약하다 판단되면 잔혹하게 몰아붙인 뒤 완벽하게 굴종시키는 악한 성향을 지닌 인물이었다.
평화로운 바르칼은 그에게 이틀이면 금방 정복할 수 있는 아주 쉬운 먹잇감이나 마찬가지였다.
프레츠가 부관에게 명령했다.
“흑마법사 쪽에 연락해라. 몬스터들이 바르칼을 치면 무릎 꿇고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겠지.”
“알겠습니다, 단장님.”
프레츠는 몬스터 군단에게 유린당할 바르칼을 기대하며 출전 준비를 했다.
그런데 상황은 프레츠가 원하던 것과 전혀 다른 식으로 전개됐다.
처음에는 그가 의도했던 것처럼 몬스터 군단이 바르칼을 공격하기 위해 내려왔다.
그런데 이들이 바르칼 성벽에 닿기도 전에 이들을 공격하는 다른 부대가 등장해 순식간에 몬스터들을 쓸어버리는 것이었다.
프레츠는 그들의 갑옷에 새겨진 황소 휘장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
“저건 투른 놈들의 문장인데?”
미들랜드에 자리를 잡은 투른 가문이 갑자기 북부대륙에 나타난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황당한 상황에 그들을 살피던 프레츠는 투른 기사단을 이끄는 젊은 기사를 발견했다.
‘여자……?’
레이나가 투른의 기사들과 함께 몬스터들을 추풍낙엽처럼 쓸어버리며 돌진하고 있었다.
프레츠는 그녀가 렉스 투른의 딸인 레이나 드레이커라는 것을 금세 알아봤다.
‘뜬금없이 투른 놈들이 왜 여기에 나타난 거지.’
거해궁의 기사단이 북부대륙으로 향하기 전, 아즈문은 프레츠에게 혹시라도 히모나스의 북부대공 나타나면 정면에서 맞붙지 말라며 단단히 주의를 줬었다.
그렇기에 히모나스 측에서 혹시 기사들을 보낼까 내내 경계하고 있었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투른 쪽 병력이 온 것이다.
프레츠는 섬광처럼 검을 내지르는 레이나를 보며 이를 갈았다.
‘이제 갓 청색 기사가 된 년이 감히 내 계획에 껴들어?’
갑작스러운 투른 부대의 출현으로 몬스터들은 다시 산속으로 물러갔다.
몬스터들이 물러난 뒤 거해궁의 기사단 쪽으로 말머리를 돌린 레이나가 앞으로 나와 그들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드레이커의 순혈 각성자이자, 투른의 후계자인 레이나 드레이커가 북부대륙의 몬스터 군단을 막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제국군은 어찌하여 군사들을 이끌고 바르칼을 위협하고 있는지 이유를 밝혀라!”
프레츠는 레이나가 자신이 가져가려 했던 명분을 가로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몬스터를 자신들이 해치웠다면 여태껏 바르칼 성 앞을 불법 점거했던 것에 대한 명분이 생겼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바르칼을 위협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터였다.
프레츠가 이를 갈며 레이나 드레이커를 노려봤다.
“건방진 년.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 주제에 기고만장해 있구나.”
말은 그렇게 하지만 프레츠는 맹렬하게 머리를 굴리며 투른의 기사단과 거해궁 기사단의 전력 차를 계산하고 있었다.
레이나 드레이커 자체는 아직 애송이였지만 그 뒤에 있는 투른의 기사들은 만만히 볼 수 없었다.
더군다나 바르칼 도시의 성벽을 뒤로하고 이들과 정면으로 상대하기에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점이 많았다.
‘이리저리 따져 보면 지금 상황에서는 우리 쪽이 불리하다.’
프레츠는 잔혹한 성격인 한편, 자신의 전력이 쓸데없이 소모되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
그는 고민하다가 정면으로 맞붙는 대신 레이나 드레이커를 잡을 함정을 파기로 결정했다.
“레이나 드레이커에게 전달해라. 단둘이서 보고 싶다고.”
프레츠 측에서 연락을 하자 레이나 쪽에서는 긍정적인 답을 보냈다.
결국 양측 진영이 대치한 상황에서 가운데에 자리를 마련하고 레이나와 프레츠가 서로 마주하기로 했다.
양 진영의 사이에서 두 사람은 말을 탄 채로 마주했다.
프레츠가 레이나를 보며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레이나 드레이커, 뛰어난 실력을 가진 기재라는 말은 익히 들었지.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소,”
반가운 인사와 함께 다가온 프레츠를 보며 레이나는 곧장 본론을 쏘아붙였다.
“왜 이곳에 제국군이 주둔을 하고 있는 겁니까. 바르칼은 그 자치권을 인정받은 곳이니 제국 측에서 이곳에 관여할 권리는 없습니다.”
그 말에 프레츠가 능글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그렇소. 하지만 바르칼은 대규모 침공에 대해서는 방어 능력이 부족하오. 몬스터들에게 침공을 받아서 시민들이 고통을 받는다면 안 될 일이지 않소이까. 인류애적인 마음으로 제국에서 이들을 위해 군사를 파견한 것이외다.”
“그런 목적이라면 이제 그만 돌아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곧 구원의 기사인 지크 드레이커가 병력을 이끌고 북부대륙을 침공한 몬스터들을 해치우러 올 것이니 말입니다.”
프레츠는 지크 드레이커라는 말에 흠칫 놀랐다.
‘놈이 여길 온다고?’
흑색 기사이자 드레이커의 수호 기사인 지크 드레이커는 현재 그들이 가장 주시하고 있는 상대였다.
‘놈이 병력을 이끌고 온다면 몬스터를 핑계로 바르칼을 차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프레츠는 어떻게든 지크 드레이커가 오기 전에 레이나 쪽을 정리하고 바르칼에 입성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레이나를 보며 말했다.
“구원의 기사! 이전부터 그를 존경해 마지않았소이다.”
그가 말을 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더 잘되었소. 레이나 경이 도와준다면 오우거 산맥을 정찰해서 몬스터들의 본거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오. 만약 그렇게 되면 구원의 기사가 도착했을 때 아예 놈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을 것이외다.”
레이나는 프레츠의 말을 듣고 고민을 하다가 이내 그에게 물었다.
“몬스터들이 어디서 나오는지 위치가 파악된 것입니까?”
프레츠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소. 알고는 있었지만, 아까도 말했듯 바르칼의 방어 수준이 모자라다 보니 혹시나 더 큰 문제가 될까 봐 직접 치지를 못했던 것이지. 하지만 레이나 경과 투른의 기사들이 도와주신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오.”
프레츠의 말에 고민하던 레이나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함께 오우거 산맥으로 올라가 몬스터들을 칩시다.”
자신이 친 덫에 레이나가 손쉽게 걸려들자 프레츠가 속으로 진한 미소를 지었다.
* * *
레이나는 투른 기사단을 이끌고, 거해궁의 기사단과 함께 오우거 산맥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프레츠는 흑마법사들이 대기하고 있는 영역에 들어가는 순간 레이나 측을 치고 몬스터들을 더 보내 바이칼을 공격하도록 할 참이었다.
‘투른 놈들을 모두 제거하고 한시라도 빨리 바르칼을 차지한다. 먼저 입성해 버리면, 지크 드레이커라도 어쩔 수 없겠지.’
곧 부대가 흑마법사들이 쳐 둔 결계 영역에 들어섰고, 기사들은 이상한 낌새를 느낀 듯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레이나가 프레츠를 보며 말했다.
“프레츠 경. 이곳……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혹시 다른 길은 없습니까.”
그 말에 프레츠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길은 여기뿐이오. 다른 길은 없소. 조금만 더 가면 되니 걱정할 것 없소.”
그 말에 레이나는 마뜩잖은 얼굴을 하면서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프레츠가 씨익 웃었다.
‘경험도 없는 애송이 년이 뭘 어떻게 하겠어. 여기서 죽이고 몬스터들에게 습격받았다 하면 깔끔하게 해결된다.’
그는 부대를 이끌고 더 깊은 결계 영역의 안쪽으로 향했다.
흑마법사들에게 결계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는 토템을 받은 프레츠만이 이곳에서 제대로 오러를 쓸 수 있었다.
결계 영역의 완전한 중심에 이르렀을 때였다.
우우우웅!
숲 곳곳에서 흑마법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를 본 레이나가 깜짝 놀라며 기사들을 향해 외쳤다.
“적이다! 방어 태세를 준비하라!”
다른 기사들이 검을 뽑아 들었다가, 이내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주군! 오러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뭔가 이상합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레이나가 프레츠를 돌아보며 말했다.
“프레츠 경! 이게 어떻게 된……!”
그때 프레츠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검에서 오러 블레이드가 일어났다.
“지나친 공명심은 독이 되는 법이지.”
프레츠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레이나가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런데 그때였다.
콰득!
레이나 옆에 있던 평범한 기사가 앞으로 나서더니 맨손으로 프레츠의 검을 그대로 잡았다.
순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프레츠가 멍한 눈빛으로 그 기사를 바라봤다.
그런데 그때, 기사의 모습이 변했다.
프레츠는 형태 변환 마법을 해제한 지크를 보고 그 정체를 알아챘다.
“지, 지크 드레이커!”
어느새 지크가 거대한 해머를 쥔 채로 팔을 휘두르고 있었다.
프레츠가 당황하며 소리쳤다.
“자, 잠깐!”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프레츠의 머리가 산산조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