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the World Tree RAW novel - Chapter 303
천마님 마법 쓰신다 (11)
“마로니에.”
이시헌이 아침 일과를 위해 자리를 비운 시각.
깊은 잠에 빠져 조금씩 앓는 산수유를 두고, 마로니에는 평소보다 일찍 연구실에 들어왔다.
“네?”
미리 연구실에 와 있던 현자가 그녀에게 물었다.
“연구는 할만 해요?”
“당, 당연하죠! 에덴인데…. 평생 한 번이라도 에덴에 들어오는 게 꿈이었는 걸요.”
“블랑쉬님이 기쁘다면, 저도 기뻐요.”
“혀, 현자님도 참.”
마로니에는 쑥스러운 듯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현자는 그런 마로니에를 귀여워했다.
“시헌씨가 별명을 참 잘 짓는 거 같아요.”
“네, 네에?”
“밤냥이.”
“읏.”
“아, 고양이로 변신하는 마법이라도 가르쳐 드릴까요? 시헌씨한테 사랑받을지도 몰라요.”
“필요 없어요!”
마로니에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시헌과는 달리 무어라 타박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걔랑은 그런 사이 아녜요.”
“어머, 제가 착각했나요?”
“……그런 감정이 아닌 걸요. 진짜도 아닌데.”
“그럼 고양이로 변하는 건.”
“그건…나중에 알려주세요.”
현자는 마로니에에게 우상 그 자체였다. 아쉬운 소리를 뱉을 수가 없다.
현자는 고개를 돌려 마로니에가 연구했던 지금까지의 성과물들을 지켜보았다.
마법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재능. 천재인 마로니에가 남긴 연구물들.
현자가 보기에도 제법 뛰어나다.
마법사의 직업을 가진 국목. 프랑스의 6500만명 중 가장 뛰어나야만 하는 목인이다.
“그래서.”
현자는 재차 그녀에게 물었다.
“저번에 말한 거 생각해 봤어요?”
“…….”
마로니에는 말문을 닫았다.
약품 향이 은은하게 감도는 연구실 내부에 침묵이 찾아왔다.
마석 보관을 위해 차갑게 가라앉힌 공기.
연구복의 보온 스위치를 만지작 거리던 마로니에가 조심스레 되물었다.
“제가, 현자…님의 후계를 이어받는 거요?”
“네.”
“왜… 그런 기회를 저에게?”
“여러 이유가 있겠죠. 미래에 일어나는 일, 배신 가능성. 세피로트님의 계약을 준수할 수 있는가. 그 모든 가능성을 고려했을 때. 마로니에님이 가장 걸맞다고 생각한 거예요.”
마로니에는 현자의 직속 제자가 된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수 년 후에는 세피로트를 보좌하고 에덴을 지킬 존재가 되는 것이다.
“…아직 고민이에요.”
“이유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부작용이 없지는 않다.
에덴에서 평생 마법만을 연구하는 건, 마법사들에게 있어 꿈과 희망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그러나 마로니에의 꿈은 사실 그렇지 않다.
“그게. 마법사로서의 성취도 보람은 있겠지만…. 저는, 국목이라는 자리도 사실 부담이 커요.”
“그렇군요. 평안하게 살고 싶으시다는 의미일까요?”
마로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바라는 건 줄곧 똑같았다.
평범한 생활. 평범한 직장. 평범한 연애. 평범한 결혼.
사랑과, 남편과 자신을 조금씩 닮은 아이를 배어 도란도란 살아가는 단란한 가정.
그 낭만 어린 인생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현자라고는 하지만, 딱히 그런 삶을 막지는 않아요.”
“그치만, 에덴을 지켜야하는 게 아니에요?”
“결혼을 못하는 건 아니에요. 저는 그저 아직 단짝을 찾지 못한 것일 뿐이죠.”
마로니에는 아마 현자에 걸맞은 남자는 이 세계에 없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만한 명예를 가진 존재가 현자니까.
그녀가 살려낸 아이들과 민간인만 해도 수백만은 넘는다.
게이트의 폭주를 연달아 막아내어 국가 하나를 구해낸 적도 있을 정도.
그 정부에게 무한한 감사를 받았던 현자이다.
그리고 그런 후계를 잇는다는 건, 솔직히 마로니에에게 있어서는 너무도 부담이었다.
“그럼, 단순히 저한테 마법을 배워보는 건 어때요?”
“…너무 저한테만 좋은 조건이 아닌가요?”
“마음에 들면 다음 대의 현자로 오세요. 5년 정도 여유를 드릴 테니.”
격동의 순간이다.
아무리 현자라 하여도 몇 세기씩이나 생명을 유지할 수는 없다.
미래를 위해, 후계를 하나 만들어두는 것이 현명한 선택.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현자는 충분히 준비를 해둘 생각이었다.
이시헌과 연이 깊은 마로니에를 후계로 택한 이유도 분명히 있고.
마로니에의 재능이 탐이 난 것도 있었다.
지금껏 있어 온 세상과 사건 사고. 그 모든 걸 아는 현자의 사고(思考)는 이미 이 세상에서는 예언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항상 옳은 선택을 하는 가에 대해선, 현자조차 자신에게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었지만.
그녀가 산수유와 이시헌, 마로니에를 한 곳에 부른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배움은, 마다하지 않을 게요.”
마로니에는 고민을 거듭해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이 책상 위에 있는 마법진을 향했다.
이번에 그녀가 개발중인 마법.
현자의 충고와 도움을 받아, 그녀의 인생에 최고의 걸작이 될 터인 마법이었다.
* * * * * * * *
나무가 있다고?
‘지성이 있는 나무라.’
아직 세계수가 되지 못한 걸 생각하면 메리와 비슷한 케이스라 봐도 무방할 것 같았다.
플라워들이 왜 나무와 함께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치유의 세계수처럼 이용당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이쪽으로 좌표 보낼 수 있겠어?’
‘아니 일단 멈춰 봐.’
루시를 멈춰 세운 뒤, 나는 근처 건물 사이 골목에 숨었다.
벽에 몸을 기대고 편히 앉은 자세.
그대로 서서히 마력을 끌어올려 딱따구리 루시에게 시야를 공유했다.
정령술사의 이점 중 하나. 감각을 공유하는 것이 가능하다.
정령사로서의 재능은 형편없는 나인지라, 나무발바리의 힘을 빌리는 건 필연적이었지만. 상급 정령의 도움을 받으면 이 정도쯤은 식은 죽 먹기다.
-지직.
나무 발바리가 내 어깨 위를 타고 올라 마력을 불어넣으니, 눈알에 새파란 문양이 새겨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귓가를 타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비 다 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시스투스님도 흡족해 하실겁니다. 수고했어요.]“최대한 많은 어린아이…. 열 명정도면 되려나요.”
[충분해요.]나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로브를 입은 성인들.
주변은 오래된 교회로 보였다.
로브를 입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신도복을 갈아입은 수많은 인물들이 그 자리에 서서 나무의 옆을 지켰다.
천장에서부터 나무뿌리로 추정되는 것들이 지저분하게 내려와 있었다.
시스투스.
그 이름이 귀에 들려오자마자 미간이 찌푸려졌다.
‘플라워인건 확정이고. 왜 플라워에 나무들이 있냐는 건데.’
목인말살. 우월한 인간을 꿈꾸는 플라워에 나무가 들어가는 메리트가 있을까.
세계수의 신정체제를 반대하는 나무가 하나쯤은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세상에 다양한 사람은 많다.
그만큼이나 특이한 연놈도 있고. 백인 우월 단체에 가입을 모색하는 유색인종도 어딘가에 존재는 하겠지.
“…읍.”
시야의 구석엔 끌려온 아이들이 보였다.
다른 지역에서도 아이들을 납치해왔는지, 10명이 모여 있다.
개중에는 티나도 있었다. 앙상한 팔로 밧줄을 풀기 위해 애를 쓰지만, 풀어지지는 않는다.
몇몇 애들은 공포에 질려 울기도 할 정도.
“칸나님이 이 일을 아시면… 목숨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을 텐데.”
[아무리 ‘구역’이 칸나님의 소관이라지만, 눈치채지는 못할 거에요.]‘칸나. 두 번째 잎새였나.’
듣기로는 자기들끼리 의견도 갈리고 싸운다고는 한다.
나는 이야기를 조금 더 듣다가, 더이상 뜯어낼 정보가 없다고 판단했다.
[푹 쉬세요들. 내일 바로 시스투스님과, 대면하겠습니다. 그때를 위해 몸을 청결히 하시길.]‘보내.’
딱따구리를 즉시 재소환.
루시가 내 손아귀 안에 들어오면서 녀석이 발로 잡고 있는 아티펙트를 발동시켰다.
로브의 모자부분을 눌러쓰고 공간 마법이 발동하자, 내 몸이 부유하며 순식간에 교회 안으로 이동했다.
-우우웅!
발 밑의 마법진이 진동하며 도착한 교회 안.
당연하게 주변에 있던 성인들의 시선이 모아진다.
“형제님?”
날 보자마자 살짝 경계하는 듯 물어오는 남자.
로브의 색이 조금 다를 뿐 형태는 비슷하니 같은 존재라고 여겨졌을까.
나는 아티펙트를 주머니에 일단 집어넣었다.
이 장소에 다시 올 일이 생길지는 모르는 일이다.
“…….”
침묵한 채 주변을 둘러본다.
내 눈이 근방 로브를 입은 남녀를 훑었고. 내 어깨 위에 올라간 두 새는 가슴을 펴고 나와 똑같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갑작스런 일을 즉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조금씩. 이상 변화를 알아본 남자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고.
그 안에서 날붙이가 나오는 순간 내 손이 움직였다.
“큽! 습격이….”
말은 이어지지 않는다.
손아귀가 남자의 얼굴을 틀어잡는 순간. 남자의 얼굴이 기괴하게 뒤틀렸다.
그대로 전력을 다해 다른 조직원이 있는 곳으로 집어던진다.
-콰당!
순식간에 밀쳐진 남자의 몸을 받아내지도 못하고 그대로 절명한다.
뒤이은 루시의 마법이 놈들을 갈갈이 찢어놓는다.
“누, 누구냐!”
“습격이다!”
교회 건너편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란이 확인되자마자 양 옆에서 몰려드는 무기를 든 사제들.
그 한 명 한 명이, 예전에 상대했던 자들보다는 조금씩 강했다.
예전에 아카데미를 기습했던 이성한의 사제들보다야.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나무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가장 안쪽에 있겠지.
[무, 무슨 소란이죠?]저 멀리서 들리는 나무의 목소리에 나는 손을 올려 루시에게 명령했다.
공중에서 튀어나온 수십의 노란 검이 살벌하게 땅에 꽂히며 사제들의 진격을 저지한다.
쉰. 예순 정도는 되는가.
소규모는 아니다.
나는 팔찌를 두드려 손아귀에 스태프를 만들었다.
동시에 마력을 일깨워 몸 전체에 둘렀다.
덩달아 어깨 위, 루시와 엘레오노르의 깃털 역시 새까맣게 물들었다.
[주, 주인님 이제 어쪄죠?]싸움 경험이 많이 없는 엘레오노르가 걱정어린 음색으로 말을 잇는다.
정령과의 동화상태는 감각을 공유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내가 정령의 마력을, 정령이 내 마력을 조작할 수도 있다는 소리다.
자연스럽게 내 마력 감응또한 늘어나기 마련.
지금 내 눈에는 마력의 흐름이, 먼지 바람처럼 눈에 훤히 보이고 있다.
누가 마법을 쓰려 하는가.
어떤 사람에게 얼마나의 마력이 있는가. 전부 보일 지경이다.
그 뒤는 편했다.
나는 손을 내저었다.
-콰직!
움직임을 저지하기만 했던 샛노란 검이 처음으로 사람을 찢어죽였을 때.
그제야 사제들은 뒤늦게 검을 빼어들고 이쪽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하품이 날 정도로 느리다. 마법을 일으켜 연놈들 쓸어버린다.
-스스스.
검은색의 마기가 솟구치는 풍련(風蓮).
바람의 마력을 모은 화살의 형태로 그칠 풍련이 마기를 머금으니, 주변 공간이 일그러진다.
새까만 잎처럼 흩날리는 마력은 꼭 두둥실 떠오른 연꽃 같은 형태를 보였다.
내가 이 마법을 풍련이라 이름지은 이유기도 하다.
“…….”
죽음을 직시한 듯. 더욱 세차게 쏟아지는 반항어린 검격들.
놈들의 검끝이 나를 꿰뚫기 전에 손을 아래로 내렸다.
풍련이 사제들의 사이를 파고들었다.
교회 안의 모든 마력이 블랙홀처럼 공간 안을 집어삼킨다.
-콰아아앙!
한 차례 폭발음.
그보다 먼저 빛이 번쩍이더니. 뒤늦게 소리가 울렸다.
터진 사제들의 시체는 뼛조각과 핏덩이가 되어 근처에 비산했고.
꼭 그것이 우박처럼 로브 위에 떨어졌다.
[……어버버.]자기가 했다지만 깜짝 놀란 엘레오노르가 충격적인 듯 말을 잇지 못한다.
“많이 겪을 거야.”
[…주, 주인님. 저, 저.]“적응해야지.”
더 이상 시체의 형태를 유지하지도 못한 채 일그러진 살점들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자 미처 마법에 휩쓸리지 못한 사제들이 벌벌 떨며 자리를 비켰다.
아니, 도망친다.
“으, 으아아악!”
여기 플라워는 이성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던가.
내가 지금까지 상대했던 연놈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거에 비하면, 이색적인 광경이다.
물론 어김없이 마법을 쏘아냈다.
-콰직!
등 뒤에서 울리는 살 짓이겨지는 소리.
죄책감, 있기는 하나 신경쓸 정도는 아니다.
사람을 죽이는 건 언제 해도 기분이 좆같아지는 일이다.
줄 세워서 누가 더 착하고 나쁘고. 하나하나 계산해서 이놈은 살리고, 이놈은 죽이고.
그런 짓거리는 해서는 안되거니와, 그럴 자격도 없다.
피가 조금 섞인 레드카펫을 따라 걸으니 몇 번이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쪽에 아이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아이들 앞에 있는 나무 한 그루.
‘서어나무.’
보자마자 머릿속에 이름이 떠오른다.
[대체 누구길래, 이런 만용을 부리는 거죠?]머릿속에 울리는 여성의 목소리에 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헌터.”
[왜 우리에게 이런 짓을?]“니들 플라워라서.”
명쾌한 해답이다.
나는 가장먼저 얇게 저민 마법으로 아이들의 밧줄을 풀어헤쳤다.
당황한 아이들은 그 와중에도 누가 아군이라 판단이 선 건지 내쪽으로 조금씩 달려왔다.
-서걱!
아이들의 뒤를 따라 뿌리를 뻗어오지만 당연히 약하다.
세계수도 아닌 녀석이 마법으로 붙으려 해봤자.
[…하.]나무가 일이 꼬였다는 듯 낮게 뇌까린다.
[별 병신같은 놈이 훼방을.]변명은 안해서 좋네.
“대체 나무가 왜 플라워 안에 있는 거냐?”
[알 필요 없어요. 여기서 죽게 될 테니.]공격적인 어조에 내 어깨 위에 있던 나무발바리가 빽 소리친다.
나무의 말이 길어진다.
교회의 천장을 뒤덮고 있는 줄기와, 바닥에 자라난 뿌리들이 각자 자아를 가진 듯 서서히 나를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나무이기도 하고, 도망칠 구석은 없으니 나와 싸우는 것밖에 답이 없을 거다.
[…당장 죽으세요!]-쐐애애애액!
나를 향해 쇄도하는 나뭇가지들.
각각 마력이 얽혀 있어, 하나하나가 강력하다.
나무의 몸통째로 터뜨릴까.
그리 고민하던 와중.
“무슨 소란이냐.”
바로 옆, 작은 문 쪽에서 여자아이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나무의 움직임이 멎었다.
동시에 마법을 일으키려던 내 팔도 함께 멈추었다.
새하얀 머리카락.
유아 체형.
코를 중심으로 여아의 피부에 원형으로 넓게 퍼진 붉은색 무늬.
[시, 시스투스님.]시스투스.
세 번째 잎새. 플라워의 간부.
“…이곳을 지키라고 했는데, 금세 일을 저질러버리는군.”
무감정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의식이 전혀 담겨있지 않는 눈동자. 분신체.
그녀의 눈이 사뿐히 좁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