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tertainment Bureau Crazy PD is back RAW novel - Chapter 77
77화 – 엿 먹어.
동수는 허리의 뻐근함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자 ‘멍멍이와 산다!’ 회의실 풍경이 보였다.
‘깜박 졸았네.’
어제 다양한 유기농 채소를 구하려고 여기저기 뛰어다닌 탓에 조금 피곤했던 거 같다.
하지만 한창훈 배우 캐스팅을 위해서라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면 한창훈은 A등급(92점) 출연자니까.’
그나저나,
‘얼마나 잔 거지?’
그때 가온의 목소리가 들렸다.
‘회의실로 들어온 사람은?’
[박지혜가 들어왔다가 당신한테 담요를 덮어주고 나갔다.]‘막내가?’
힐끗 보니 바닥에 떨어진 담요가 보였다.
덮어주긴 했는데, 떨어졌나 보다.
“착한 녀석.”
[당신한테 과분할 정도로 착하지.]“알긴 아는데, 그렇게 대놓고 말하면 기분 나쁘다.”
[OK.]동수는 혀를 차고 바닥에 내려둔 등산 가방을 멨다.
안에 가득 들어있는 유기농 채소들 때문에 굉장히 무거웠다.
‘행군 PTSD 올 거 같네···.’
[행군 잘하지 않나?]‘잘한다고 좋아하는 건 아니다.’
‘OK, OK!’
동수가 막 등산화로 갈아 신고 나가려는데, 박지혜가 회의실로 들어왔다.
“선배님, 이제 출발하시려고요?”
“응! 그런데 너 오늘 오전에 윤 작가랑 현장 답사가기로 하지 않았나?”
“아침 일찍 다녀왔어요. 좀 있다가 민 작가님이랑 이번 주 ‘인기 뮤직’ 관련해서 회의할 게 있어서요.”
“성아랑? 뭔 일로?”
“글쎄요.”
“뭐, 하여튼 고생하네.”
“고생은요. 아녜요. 그보다 이거···.”
그녀는 쇼핑백을 내밀었다.
안에는 등산 점퍼가 들어있었다.
“뭐야, 이게?”
“금일봉으로 산 거예요. 겨울 등산은 무척 추우니까. 잘 챙겨 입으셔야죠”
“고맙긴 한데···. 됐어. 마음만 받을게! 그냥 아무거나 입으면 돼.”
“추운데 감기 걸리시면 안 되잖아요.”
“신입이 한 푼이라도 더 모아야지···. 뭘, 이런걸.”
“별로 비싼 브랜드 아니에요. 그리고···.”
박지혜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저 돈 많아요!”
동수는 그녀가 장난을 친다고 생각하며,
“하하, 알겠어. 알겠어. 우리 막내 정성 생각해서 잘 입을게!”
그때 쇼핑백 안쪽에 도시락 가방이 보였다.
“이건 또 뭐야?”
“그건 윤 작가님이 준비하신 거예요. 선배님, 분명 라면에 김밥 같은 거 드실 거 같다고···.”
“윤 작가가? 거참···. 근데 윤 작가는 어디 갔어?”
“강남희 할머니께 갔어요.”
“아···.”
-뾰로롱
요정 가온이 나타나더니 도시락 가방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말했다.
[풍겨오는 향기로 판단했을 때, 보온병에 담긴 국물은 사골곰탕이 분명하군, 적어도 열두 시간 이상 푹! 우린 게 분명하다. 반찬으로는 버섯이 듬뿍 들어간 소불고기도 있군. 오! 볶음밥은 죽순과 전복 그리고 파프리카, 양파···. 굴 소스와 간장으로 만든 거다. 이건 맛있을 수밖에 없겠군.]‘···뭐, 어쩌라고?’
‘시끄러워!’
동수가 그러거나 말거나 가온은 도시락 가방에 찰싹 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그는 속으로 한숨을 쉰 뒤, 막내에게 말했다.
“하여튼 잠바 고맙다.”
“아녜요.”
“먹고 싶은 거 생각해놔. 밥 살게.”
막내는 빙그레 웃더니,
“그냥···. 커피 우유 사주세요.”
“인마, 뭔 맨날 커피 우유야. 요 앞에 뷔페 갈까? 윤 작가랑 셋이···.”
박지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괜찮아요. 커피 우유면 충분해요. 부담 갖지 마세요. 아셨죠?”
“그 말이 더 부담되는데···.”
“헤헤, 저는 그럼 이만 가볼게요! 민 작가가 기다려서···.”
“그래, 수고해!”
“네! 선배님도 등산 조심하세요!”
막내가 나가자 가온이 말했다.
[당신이 금일봉을 전부 대출금에 갚는다고 말해서 박지혜가 밥을 얻어먹기 부담스러워하는 거 같다.]확실히 배려심이 강한 막내라면 그럴 거란 생각이 들었다.
동수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막내 밥도 못 살 정도로 궁하진 않은데···.”
[그런데 말이다. 막내가 돈이 많은 건 사실이다.]“일 말곤 따로 놀지도 않는 애니까. 돈이 많을 만도 하지.”
‘됐고, 빨리 출발하자. 다섯 시까지 연주대에 올라가야 한다고.’
[···알았다.]그는 등산 가방에 도시락 가방을 넣고 나왔다.
복도를 걸으며 생각했다.
‘이번에 아이리스 양조 광고를 찍으면 대출금도 많이 갚을 수 있겠지?’
[······.]‘연예인들 광고 한 번 찍으면 억 소리 나게 벌지? 나도 그렇게 받으려나?’
[그런데 말이다. PD도 광고를 찍을 수 있나?]‘어, 그거야···.’
동수는 발걸음을 멈추더니 중얼거렸다.
“···되겠지. 우린 S잖아. 공영 방송이나 문화 방송이랑 달리 민영···.”
그때 가온이 말했다.
[···규정을 확인했다. SBC 방송국 PD는 공익 광고 이외에 광고 모델을 할 수 없다.]“정말이냐···?”
“······.”
복도 저편에서 뚱뚱한 체구의 중년 남자가 스마트폰을 보면서 지나가는 게 보였다.
제작 2본부 광고국의 심형철 국장이다.
사장님과 등산 때 안면을 익힌 사이다.
“심 국장님!!!”
“어? 어? 아, 뭐야? 강 PD야?”
“질문이 있습니다!”
“······?”
“PD는 광고를 찍으면 안 됩니까!?”
“엉, 안 돼.”
“왜요!? 우리는 S잖아요! K나 M이랑은 다르잖아요!”
“뭐, 그렇긴 해도 일단은 지상파고···. 에, 또 이게 왜 이렇게 됐냐면···. 에라, 몰라. 하여튼 안 돼.”
“하여튼 안 돼 라뇨!? 자세하게 설명을···.”
“광고 찍고 싶으면 사표 쓰고 나가! 프리랜서 되면 문제 될 거 없잖아!”
“······!”
멀어지는 심 국장을 보며, 동수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 마음은 이해한다. 일단 관악산으로···.]‘빌어먹을 방송국.’
[광고가 찍고 싶으면 지니 회장한테 부탁해보는 건 어떤가?]“···됐어. 관악산부터 가자. 광고 문제는···. 그다음이야.”
[알았다.]= = = = = = =
한남동 담우철 회장의 사저, 서재.
담 회장은 남오균 비서에게 되물었다.
“아이리스 양조에서 강동수를 광고 모델로 쓰려고 한다고?”
“정확히는 ‘한설희와 미친개 밴드’입니다.”
“···미친개 밴드가 강동수잖아.”
“네, 맞습니다.”
담 회장은 미간을 찡그렸다.
왠지 미친개 하니까 술 광고하고 딱 맞는 느낌이다.
그는 다급하게 물었다.
“강동수는? 수락했어?”
“한설희 측은 수락했는데, 강동수는 아직 확답을 안 한 거 같습니다.”
“그래? 그러면 우리가 낚아채!”
대명 그룹의 계열사 ‘대명 주류’는 업계 점유율 3위인 소주를 판매하고 있다.
4위인 아이리스 양조하고는 피 터지는 싸움을 하고 있는데···.
좋은 광고 모델을 아이리스한테 뺏길 생각을 하니 배가 아팠다.
더군다나 SBC는 그가 주인인데!?
‘우리 집 미친개를 딴 놈 집 간판으로 쓰게 할 순 없지!’
그때 노크와 함께 검은 머리 외국인 가사 도우미 추키가 한약을 들고 들어왔다.
“회장, 약 먹어.”
“중요한 얘기 중이니 잠시 기다려라.”
추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쪽에 섰다.
담 회장이 남 비서에게 소리쳤다.
“도 사장(대명 주류 사장)한테 지시해서 강동수를 어떻게든 잡으라고 해! 아이리스 양조가 제시한 조건에 두 배! 아니, 세 배를 더 주더라도!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강동수가 ‘참 맛’ 광고를 찍는 꼴은 못 봐!”
그때 남오균이 살짝 웃으며,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강동수 PD가 아이리스 양조 광고를 찍을 일은 없을 겁니다.”
“뭐? 왜? 설마, 이미 우리가 낚아챈 거야?”
“그게 아니고···. SBC 사내 규정에 PD는 광고 모델을 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아무래도 지상파 방송국의 PD는 공인이니···.”
담 회장은 껄껄 웃더니,
“뭐야? 그런 규정이 있어? 누가 만들었는지 잘 만들었네! 푸하핫!”
“회장님께서 만드셨습니다.”
“푸하핫! 그래! 내가 선견지명이 있었군! 그럼, 미친개가 아이리스 양조 광고를 찍을 일은 없겠군.”
“네, 절대 없을 겁니다. 후후.”
“푸하하핫!”
그때 가만히 지켜보던 추키가 말했다.
“회장.”
“응? 아! 약 먹어야지. 고맙다.”
“난 그만둔다.”
“뭐? 아니, 왜 갑자기 누가 괴롭히는 게야? 혹시 윤지 고것이 또 시비를···.”
“아니. 광고.”
“······?”
“광고 찍고, 돈 많이 받으면. 일 왜 해.”
담 회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의 말이 일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때 남 비서가 다급히 말했다.
“강동수는 PD로서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SBC를 그만두지 않을 겁니다.”
“그, 그건 그렇지. 나한테 프로그램 촬영하게 전용기를 빌려달라던 놈이니까.”
추키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책상에 한약이 담긴 컵을 올려두며,
“약 먹어.”
“···그래.”
담 회장은 쓰디쓴 한약을 마셨다.
“크···. 추키 사탕은?”
“깜박했어.”
추키가 서재에서 나가자 남오균이 말했다.
“강동수는 제작비 누명을 쓰고도 SBC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광고 하나 못 찍게 한다고 그만둘 리 없습니다. 심지어 강동수는 집안도 넉넉치 않아서···. 그 친구가 기둥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절대 그만둘 리 없습니다.”
“음···. 기둥이라···.”
담 회장은 목에 가시가 걸린 기분이었지만, 일단 알겠다고 하고 남 비서를 돌려보냈다.
그는 혼자 생각에 잠겼다.
‘그래, 어렵게 PD가 됐는데, 쉽사리 그만두겠어? 그놈이 엄청난 스타 PD면 모르겠는데···. 그래, 이번에는 남 비서 말대로···.’
그때 추키가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회장, 엿 먹어.”
“······.”
“사탕 없대.”
“···고맙구나.”
“응.”
추키는 그가 엿을 먹자 서재에서 나가려고 했다.
그때 담 회장이 그녀에게 물었다.
“정말 그만둘 거 같으냐?”
“······?”
“강동수 말이다. 광고 못 찍게 하면···.”
“몰라.”
“아깐 그만둘 거라고 하지 않았더냐?”
“난 그만둬. 근데 PD는 내가 아냐.”
“······.”
맞는 말이다.
동수가 어떻게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가 고민하자, 추키가 말했다.
“사람 마음은 한순간이래.”
“음···.”
“놓치기 싫으면 잡아.”
추키는 빙긋 웃더니 서재에서 나갔다.
담 회장은 팔짱을 끼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남오균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회장님.]“송민용 사장한테 저녁에 보자고 해.”
[송 사장이요? 무슨 일로···.]“자네한테 그것까지 일일이 말해야 하나?”
[죄, 죄송합니다. 알겠습니다. 어디로···.]“어디긴 어디야. 내 집이지.”
[네, 알겠습니다.]전화를 끝낸 담 회장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미친개가 뭐라고···.”
= = = = = = =
동수는 산을 오르며 여러 차례 미끄러질 뻔했다.
잘못하면 골로 갈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저 멀리 정상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산신령 할배, 정상에 없는 거 아냐?”
-뾰로롱
요정 가온이 나타났다.
[당신 걸음으로 한 시간 십 분이면 정상에 도착할 거다. 힘내라.]‘정상에 할배 있는 거지?’
[해킹하지 않은 대상의 위치는 확인이 어렵다.]결국 걸어가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그때 가온이 말했다.
[전방에 생체 반응이다.]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네발로 기어서 산을 오르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뭐야, 저건?’
[개였군.]‘인마, 말이 심하잖아.’
[그보다 저 여자 위험하다.]‘뭐?’
여자가 비틀거리더니 가파른 경사 쪽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동수는 깜짝 놀라며,
“위험해!”
라고 소리치며 뛰어갔다.
.
.
.
누가 그런 말을 했다.
밤을 새는 게 자신 있으면 PD를 하라고.
물론, 최윤아가 PD가 된 건 그 때문이 아니지만···.
하여튼!
그녀는 편집에 문제가 생겨서 한숨도 못 잤다.
그리고 곧바로 등산까지 하니 죽을 맛이었다.
심지어···.
└박채연 작가: 최 AD, 정말 미안해요. 오늘 강세나 씨랑 미팅이 잡혀서요. 한창훈 선생님한테는 최 AD 혼자 가야 할 거 같아요···. ㅠㅠ
여우 같은 X한테 뒤통수를 맞아서 혈압까지 올랐다.
‘이 여자···. 맨날 힘든 일에는 살금살금 빠지고···.’
최윤아가 딱 싫어하는 타입이다.
하지만 작가로서 재능도 꽤 있고, 그녀와 달리 애교는 물론 정치질까지 잘해서 김치형 PD를 비롯한 스태프들의 신임을 듬뿍 받고 있다.
‘염병···!’
생각할수록 짜증 났다.
그녀는 산을 오르다가 털썩 주저앉았다.
체력에는 자신 있었는데···.
지금은 춥고, 졸리고, 배고프고···.
다 포기하고 내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아냐. 이렇게 돌아가면 박 작가 그 X이 분명···.”
[어머, 미안해요. 제가 갔어야 했는데···. 최 AD를 믿고 맡긴 건데···. 이렇게 될 줄은···.]이럴 게 분명했다.
-으득!
최윤아는 이를 가면 중얼거렸다.
‘그 꼴은 못 봐!’
그녀는 네발로 기어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스키 장갑을 끼고 온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때였다.
몹시 피곤해서인지 잠깐 현기증이 났고, 땅을 잘못 짚었다.
그대로 비틀거리며 절벽처럼 보이는 경사로···.
‘엄마야···!’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순간,
“위험해!”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고, 아주 잠깐 붕 뜬 느낌이 들더니,
-턱!
남자의 오른손이 그녀의 뒷목을 잡았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괴상한 비명을 질렀다.
“끄엑!”
그때 남자, 동수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더니 소리쳤다.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