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n though he's a genius idol, his passive is a sunfish RAW novel - Chapter 496
외전 85화
쌀을 향한 백야의 열망은 대단했다.
그길로 곧장 전통 줄넘기 대회가 열리는 곳까지 달려간 백야는 긴 접수 줄을 보고 깜짝 놀랐다.
평일이라 한산한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민속촌 입장객들이 모두 이곳에 모여 있는 탓에 한산한 거였다.
개복치의 레이더망에 건장한 체격의 가장들이 수두룩하게 걸렸다. 대충 둘러보니 아이들과 놀러 온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많은 듯했다.
살면서 승부욕이 발동된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는데. 하필이면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백야는 한쪽 다리를 굽히고 반대쪽 다리는 쭉 뻗는 자세를 번갈아 하며 큰 열의를 보였으나 그의 기합 소리는 친구들이 보기에 하찮기 그지없었다.
“호이짜! 호이짜!”
“뭐 하냐? 전 재산은 내팽개쳐 두고.”
재현이 한심해하는 얼굴로 바닥에 놓인 바가지를 눈짓했다.
“스트레칭. 너희도 얼른 해.”
“됐으니까 너나 열심히 해.”
“왜? 뛰려면 몸 풀어야지!”
“내가 왜 뛰어? 난 안 뛸 거야.”
“이거 단체 줄넘기인데? 저기 적혀 있잖아. 2명 이상 4명까지 가능.”
거지의 자다가 봉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백야를 향했다.
“우리 다 같이 해야…….”
모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열심히 설명하던 백야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며 오한이 들었다.
떼구루루.
눈알을 굴리던 눈새는 웬일로 알맞은 타이밍에 제대로 줄행랑을 쳤다.
“끄아앙!”
“네 이노오오옴!”
“당장 저놈을 잡아라!”
세 사람 중 가장 무서운 건 아무 말 없이 달려오는 지한이었다.
얼마 못가 자객의 손에 붙잡힌 백야는 화장실 뒤로 끌려갔다.
열심히 도망치는 와중에도 바가지를 챙기는 건 잊지 않은 그는 전 재산을 힘껏 끌어안은 채 몸을 잔뜩 움츠렸다.
“아니이…. 내가 혼자 온 것도 아니구, 나도 친구가 있는데에…….”
“그럼 물어보고 신청했어야지! 쌀 때문에 지금…! 너희 얼굴 팔려도 괜찮아?”
재현의 날카로운 질문에 백야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근데 왜 자꾸 나대. 왜! 여기서 팬 사인회라도 하려고?”
“아니?! 근데 오히려 이렇게 당당하게 다녀야 사람들이 못 알아본댔어! 그치, 지한아?”
백야가 공감을 바라는 얼굴로 지한을 올려다봤다.
그러나 지한은 대답이 없었다.
“아, 아닌가…?”
아무도 제 편을 들어 주지 않자 백야는 조금 의기소침해졌다. 자신감을 잃고 점점 숙어지던 고개는 곧 바가지에 담기기 직전이었다.
하필이면 거지꼴을 하고 있는 탓에 그 모습이 그렇게 불쌍해 보일 수가 없었다.
“힝…….”
백야의 턱에 작은 호두가 자라났다. 그 순간, 참다못한 자객이 살기를 드러냈다.
“재현 씨. 말이 조금 심하신 것 같은데.”
뭐야. 같은 편 아니었어…?
내내 가만히 있길래 저희 편인 줄 알았는데….
당황한 재현이 지한과 백야의 사이에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한편 당연히 재현의 편을 들려고 했던 유경은 또양이의 싸늘한 표정을 발견하곤 빠르게 생각을 바꾸었다.
“야! 차라리 내가 사 줄게. 쌀이 다 거기서 거기지, 명품이면 얼마나 명품이라고. 이름이 뭐라고?”
호기롭게 핸드폰을 꺼낸 유경은 큭팡에 ‘이천 임금님 쌀 20kg’를 검색했다.
[특등급 햅쌀 이천 임금님 표 황제의 밥상 20kg (무료배송) : 142,900원]그러나 이내 떠오르는 화면을 보고는 당황한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무슨 쌀을 금싸라기로 만들었나…….’
그래도 사나이가 돼서 뱉은 말에 책임은 져야 하는 법 아니겠나.
“사, 사 줄게!”
따흑.
눈물 나는 우정이었다.
하지만 백야는 제우스가 오냐오냐 키운 로열 햄스터답게 바라는 게 많았다.
“싫어! 그냥 사는 거랑 1등 해서 받는 거는 느낌이 다르지!”
“……그래?”
유경은 이때다 싶었는지 얼른 백야에게로 환승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친구가 그렇게 갖고 싶다는데. 줄넘기 그까짓 거 몇 번 뛰어 주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유경이 남자답게 가슴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외쳤다.
“우리 애기! 오빠 믿지?”
* * *
잠시 후, 전통 줄넘기 대회 출전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이 자리에 모인 거지들 중 가장 예쁜 백야 거지는 관람석에 앉아 친구들을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얼굴을 훤히 드러낸 탓에 이목이 집중되는 일은 최대한 자제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한백야는 나의 원수…….”
“재현. 내가 말한 적 있었나? 사실 난 어릴 때 줄넘기 국가대표 선수가 되는 게 꿈이었어.”
“지랄하지 마. 언제는 카푸어가 꿈이라며.”
“이게 진짜…!”
언제는 의사라 했다가 언제는 선생님이라 했다가, 또 언제는 웹툰 작가라 했다가.
도대체 장래 희망이 몇 개인지…. 어린 유경은 꿈나무 그 자체였던 모양이다.
한편 백야 없는 백야 팀에 백야의 대타로 나온 지한은 약간의 현타를 느끼는 중이었다.
시작하기도 전부터 팀워크가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숙소에 있을걸……. 헉!’
순간 저도 모르게 백야를 따라나선 것을 후회하던 지한은 사색이 된 얼굴로 그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제 생각이 들릴 리 없었을 텐데도 괜스레 미안해졌다.
‘그래, 피할 수 없다면 즐긴다.’
복면을 더 단단하게 묶은 지한은 서로의 멱살을 쥐고 있는 유경과 재현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은 노려보기만 할 뿐, 진심으로 싸울 생각은 없는지 목 부근의 옷매무새만 헝클어진 채였다.
“보는 눈이 많아요.”
지한이 말리자 두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 금세 얌전해졌다.
“저희 순서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전통 줄넘기 대회의 규칙은 간단했다. 사회자가 줄을 넘기기 시작하면 한 명씩 들어가 줄을 넘는다.
모든 팀원이 들어온 순간부터 카운트가 시작되며, 가장 많은 줄을 넘은 팀이 우승이었다.
“두 분 줄넘기 잘하세요?”
“제가 몸 쓰는 거 하나는 자신 있습니다! 이래 보여도 체대생이라.”
유경이 건치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가진 거라곤 튼튼한 몸뚱어리가 전부였던 그는 금용고등학교의 살아 있는 입시 기적(미스터리)이었다.
점심시간마다 축구공을 들고 그렇게 운동장으로 뛰쳐나가더니, 입시 학원 한 번 다닌 적 없는 주제에 그 빡세다는 실기 시험을 재능으로 통과하고 체대에 덜컥 합격했더랬다.
천재 아이돌의 탄생으로 묻히긴 했지만, 당시 선생님들 사이에선 유경 또한 화제의 인물이었다.
반면 재현은 땀 냄새라면 치를 떠는 공주과였다.
운동장보단 스탠드 파.
타고난 운동신경은 뛰어났으나 깔끔을 떠느라 재능을 낭비한 케이스였다.
“저도 웬만큼은 해요.”
재현은 지한의 앞에서 유경과 투닥거린 게 부끄러운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형님은요? 춤 잘 추시니까 당연히 잘하시려나?”
“당연하지, 바보야. 춤도 운동신경이 있어야 추는 거야.”
“그래? 그래서 백야가 춤을 못 췄구나…….”
“걔는 철봉 오래 매달리기도 0.1초 컷이었잖아.”
잠시 바보들의 대화가 이어졌다.
지한은 그 모습이 꼭 청이와 백야를 보는 것 같아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 그리고 말 편하게 하시라니까요.”
지한은 이들에게 몇 번이나 말을 편하게 하라고 권했음에도 두 사람은 ‘형님’이라는 호칭을 고집했다.
율무에게는 말을 편하게 하는 것 같던데. 역시 제 얼굴 때문인가?
복면 위로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던 지한은 먼저 솔선수범을 보이기로 했다.
“그럼 내가 먼저 놓을게. 내 줄넘기 실력은 그냥 평범해.”
지한은 재작년쯤 출연했던 아이돌 체육대회에서 줄넘기 4위를 기록했던 게 생각났다.
백야 없는 백야 팀은 나름 드림팀이었다.
“좋았어! 그럼 체력이 제일 좋은 내가 1번으로 들어갈게. 그다음은 재현이, 그리고 지한 형, 아니 지한이 네가 마지막으로 들어와.”
“응.”
“좋아.”
세 사람이 작전을 짜는 사이, 한쪽에선 줄넘기 대회가 시작됐다.
경기는 접수 순서대로 진행됐는데, 백야 없는 백야 팀의 순서가 대회의 가장 마지막이었다.
“저기 봐. 대부분 가족끼리 나오네~ 애들이 많아서 얼마 뛰지도 못하겠다.”
이대로라면 쌀은 따 놓은 당상이라며 유경이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그러나 얼마 안 가 혜성처럼 등장한 다크호스의 존재로 장내가 술렁였다.
세 사람과 또래로 보이는 학생들이 출전해 32개라는 최고 기록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뭐야! 내 쌀!”
객석에 앉아 초콜릿만 뇸뇸 까먹고 있던 백야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덕분에 주위에 있던 몇몇이 백야 쪽을 돌아봤지만, 모자 대신 뒤집어쓴 바가지가 그의 얼굴을 반이나 가려 주어 다행히 정체를 들키진 않았다.
시무룩.
힘없이 주저앉은 백야는 시작도 하기 전부터 잔뜩 실망한 얼굴로 친구들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백야 없는 백야 팀은 심각한 얼굴로 긴급 작전 회의를 하는 중이었다.
“어쩌지? 저런 강력한 팀이 숨어 있었을 줄이야.”
유경이 분하다며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어쩌다 보니 팀의 리더를 맡게 된 지한은 팀원들의 떨어진 사기를 돋우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그래도 우리가 마지막 참가자라 유리한 점은 있어. 저 팀보다 딱 1개만 더 뛰면 되는 거잖아?”
역사에 남는 건 1등뿐이다.
1등과 2등은 한 끗 차이고.
“한번 하기로 결심한 거라면 죽기 살기로 해. 후회 없이.”
과연 빌보드 1위 가수의 멘탈은 남달랐다.
짝짝짝짝!
가슴을 울리는 리더의 명언에 덤앤더머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임금님 쌀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불평불만이던 세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백야 없는 백야 팀의 차례가 다가왔다.
“이천!”
“임금님 쌀!”
“파이팅!”
한 명씩 손을 포개며 기세 좋게 파이팅을 외친 세 사람이 전장으로 나섰다.
유경은 움직일 때마다 펄럭거리는 사또복이 거추장스럽다며 겉옷을 벗어 던졌다.
티셔츠 위로 흰색 한복 바지를 명치까지 추켜올린 그는 배바지 차림으로 당당하게 뛰어들었다.
재현도 익선관과 곤룡포를 벗어 완벽한 사복 차림이었다.
그러나 지한만큼은 얼굴을 최대한 가려야 했기 때문에 자객 차림을 고수했다.
“자, 마지막 팀입니다! 과연 최고 기록을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주목하는 가운데, 첫 번째 선수가 무사히 줄 안으로 들어오는 데 성공합니다!”
이어서 재현과 지한까지 무난하게 진입하며 카운트가 시작됐다.
“1! 2!”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백야는 두 손을 간절하게 모으고 기도했다.
‘쌀! 제발…!’
어느새 카운트는 20을 넘어갔고, 대회는 점점 무르익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이 흘렀다.
체대생답게 파워풀한 점프를 보여 주는 유경.
X나 하기 싫은데 또 적성에는 맞는 재현.
가벼운 몸으로 사뿐사뿐 춤을 추듯 줄을 뛰어넘는 복면의 지한까지.
왠지 모르게 자꾸 눈길이 가는 조합에 근처를 지나던 사람들까지 걸음을 멈추고 대회를 지켜봤다.
그러던 그때였다.
사회자의 카운트가 25를 넘어가던 순간, 유경의 바지가 천천히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
사회자도 당황스러운지 눈을 크게 뜨며 동요했다.
“2, 26!”
최고 신기록까지 이제 10개도 채 남지 않은 상황.
장내는 여러 의미로 술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