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684
684화. 옥상으로 바람 쐬러 가자
주위를 한번 둘러보던 장목화는 웃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도수종도 고등학교 3학년이고, 성적이 꽤 좋은 편이야. 그러니 서연교도 분명히 도수종을 알 거야. 근데 서연교는 내성적이라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굳이 도수종을 찾아 대화할 일이 없겠지. 꿈이 이식한 사유에 따르면 둘을 얽히게 하긴 엄청나게 어려워.
근데 우리는 이 사유를 위배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도움이 될 디테일을 부가할 수 있어. 예를 들면, 서연교는 내성적이긴 해도 성적도 좋고 체육도 잘하는 도수종한테 분명 어느 정도 호기심이 있을 거야.
어느 날 둘이 아무도 없는 곳, 음……, 옥상 같은 곳에서 갑자기 우연히 만나게 되면 서연교는 도수종한테 뭔가 묻고 싶은 충동을 느낄지도 몰라.
서연교가 원래 짝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면 이 사유는 꿈에서 부여한 사유랑 그 어떤 각도로도 상충하지 않아. 우리가 사전에 이런 사유를 이식해도 다른 사유로 덮이거나 대체되지 않고 특정한 상황에 활성화할 수 있다는 거야.
간단히 말해서 꿈이 부여한 사유가 디테일하게 설정하지 않은 부분을 노려서 우리가 원하는 내용을 첨가하는 거지.”
장목화, 성건우, 백새벽, 용여홍이 상응하는 캐릭터를 연기하면서도 자체적인 특성을 드러냈던 것과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즉, 사전에 상응하는 사유로 그중 일부 특성을 대체하려는 것일 뿐이었다.
다만 유일하게 주의할 부분이 있다면 그 특성이 캐릭터 자체의 특성과 충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짝! 짝! 짝!
성건우가 손뼉을 쳤다.
게네바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뒤이어 그들은 도수종과 서연교를 어떻게 아무도 없는 곳에서 만나게 할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토론 끝에 성건우는 자신에게는 도수종 캐릭터에 맞게 ‘오늘은 수업을 듣고 싶지 않으니 옥상에서 쉬어야겠다’는 사유를, 장목화에게는 ‘지나치게 내성적이라 친구가 없는 서연교는 고3 생활로 쌓인 스트레스를 1교시 수업을 마친 후 옥상에서 바람을 쐬는 방식으로 풀려고 한다’는 사유를 이식했다.
이러면 도수종과 서연교 두 사람은 옥상에서 만나게 될 것이었다. 이를 위해 게네바는 그들 행동에 영향을 미칠 다른 요인을 제거해줘야 했다.
이후 도수종에게 할 질문을 이식하기 전, 용여홍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장목화를 쳐다보았다.
“팀장님, 도수종한테 뭘 물어보실 거예요?”
“어디서 전학 왔는지, 고향은 어딘지, 이휘영, 방민서, 이진용, 인수영, 오크, 찰리, 이두형 같은 사람들을 아는지⋯⋯.”
장목화는 단번에 대량의 질문을 쏟아냈다.
이를 듣고 성건우가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제가 아는 도수종이면 그딴 거는 왜 묻냐고 할 것 같은데요.”
장목화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하긴. 그럼 처음에 했던 질문 세 개만 해야겠다. 아니, 두 개만. 나머지 질문이야 일이 수월하게 진행되면 다음에 하면 되지.”
그녀를 보며 웃던 성건우가 돌연 진지하게 얼굴을 굳혔다. 눈동자는 점차 깊고 짙어지며, 입술 사이론 약간 카리스마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스스로를 서연교라고 믿을 때⋯⋯.”
* * *
타이 시티 제1 고등학교, 3학년 5반.
장목화는 웃으며 수다를 떠는 주위 급우들을 보았다. 그에 반해 자신만의 세상에 갇힌 듯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본인 모습이 참 답답했다. 귀를 틀어막고 날카롭게 비명을 질러대고 싶은 충동이 일 정도였다.
그러나 상당한 그녀는 충동을 방출하는 대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곳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게 어디인지는 아직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교실 안에는 더 이상 머물러 있기 싫었다.
복도로 나온 장목화는 벽 형태 난간에 기대 담소를 나누는 학생들과 수시로 쫓고 쫓기며 법석을 떠는 이들을 훑었다. 이곳 역시 그녀가 머물기를 바라는 곳은 아니었다.
‘어디로 가지?’
그녀의 발길이 머뭇거렸다.
그러던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 어딘가가 번뜩 떠올랐다.
‘옥상.’
장목화는 고3이 되기 전까지는 주말마다 드라마를 보거나 소설을 읽곤 했다. 그리고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나 소설에서는 주인공이든 아니든, 무슨 일이 있든 없든 꼭 옥상으로 올라가 바람을 쐬는 장면이 나왔다.
물론 오늘 이 충동을 느끼기 전까지는 그건 다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허황된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정상적인 학교에서 누가 옥상에 올라가? 교장 선생님이 분명 어떤 학생도 그 위험한 곳에 가지 못하도록 단단히 잠가뒀을 텐데.’
망설이던 장목화는 결국 계단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이때 맞은편에서는 장목화의 짝 진인선이 다가오고 있었다. 화장실에 다녀오는 모양이었다.
그녀와 진인선은 친한 친구까지는 아니었지만 거의 1년 가까이 옆자리에 앉아 지낸 만큼 하루에 몇 마디씩은 주고받는 사이였다. 장목화의 입장에서 진인선은 다른 급우들보다는 훨씬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이 상황에서 진인선이 장목화를 본다면 분명 어디를 가느냐고 물을 터였다. 하지만 장목화는 같은 반 누구에게도 옥상에 올라가 바람을 쐬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화장실에 간다고 해? 그냥 옥상에 가지 말까?’
장목화가 망설이던 도중, 복도에서 쫓고 쫓기던 남학생 둘이 미끄러지면서 우스꽝스럽게 자빠져버렸다. 그 요란한 기척에 진인선의 고개가 돌아갔다.
누가 다쳤는지부터 조심스레 살피던 진인선은 곧 두 남학생 모두 멀쩡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배를 부여잡고 웃기 시작했다.
진인선의 신경이 다른 곳으로 쏠리자 장목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얼른 진인선의 등 뒤를 스쳐 지나갔다.
층계참에 이른 장목화는 계속 위로 올라갔다. 하나하나 계단을 오르는데, 마침 담임이 계단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의 뒤엔 숙제로 보이는 공책 더미를 안은 3학년 10반 학생 두 명이 따르고 있었다.
장목화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이러한 만남은 사실 놀랍지도 않은 일이었다. 본래 담임은 3학년 10반의 물리 교사도 겸임하고 있었다.
장목화가 미간을 찌푸린 건 담임이 자신을 보면 아무 이유도 없이 왜 위층에 올라왔느냐고 물을 게 분명해서였다.
학급 내 최고 우등생이자 학년을 통틀어 극강의 경쟁력을 가진 모범생 장목화는 담임, 나아가 각 교과 선생님들의 중시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늘 조용하고 침착한 그녀가 특별한 이유 없이 반을 떠날 리는 없었다. 게다가 그녀의 담임은 학생들 정신 건강에 특별히 신경 쓰는 편이기도 했다.
그렇게 장목화가 다시 한번 옥상으로 올라가기를 포기할까 망설이던 그 순간, 그녀의 귓가에 요란한 소리가 닿았다.
담임의 뒤를 따르던 두 학생이 공책을 제대로 쌓지 않은 건지 죄다 떨어뜨려 버렸다. 추락한 공책들은 계단 가득 흩뿌려졌다.
두 학생이 급히 허리를 굽혀 공책을 줍는 동안, 장목화의 반 담임은 수수방관하는 대신 함께 허리를 굽혀 발치에 떨어진 공책 몇 권을 주웠다.
시선을 거둔 장목화는 조용히 그들의 곁을 지나갔다.
* * *
아는 사람을 또 만날까 싶은 두려움에 걸음을 재촉한 장목화는 얼마 지나지 않아 6층에 도착했다.
여기서 한 층만 더 올라가면 옥상 문이 나왔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던 장목화는 다시 이쪽을 향해 껄렁껄렁하게 다가오는 한 사람을 목격했다.
불량 학생으로 유명한 그의 이름은 동준권. 걸핏하면 싸움을 일으키는 문제아로, 집안이 빵빵하지 않았다면 진즉 퇴학당하고도 남았을 것이었다.
“옥상으로 바람 쐬러 가자!”
동준권이 층계참에서 가장 가까운 교실을 향해 외쳤다. 그 교실 안에는 그와 똑같은 친구들이 있었다.
결국 위로 향하려던 장목화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그런 불량 학생들과 함께 아무도 없는 옥상에 올라가고 싶지는 않았다. 이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자기 보호 본능, 혹은 위험을 피하고 싶은 본능이었다.
순간 장목화는 더욱 답답해졌다.
‘오늘 왜 이렇게 운이 안 좋지? 그냥 옥상에서 바람이나 좀 쐬고 싶을 뿐인데 난관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그녀가 막 자신의 반으로 돌아서려던 찰나였다. 층계참에서 가장 가까운 교실에서 갑자기 칠판 지우개가 날아와 동준권의 얼굴을 때렸다.
퍽!
어찌나 세게 던졌는지 동준권은 눈앞이 다 아찔해질 지경이었다.
“누구야? 어떤 새끼야?”
동준권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포효하며 그 교실 안으로 뛰어들었다.
교실 안은 즉시 혼란스러워졌다.
장목화는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다음 수업까지 남은 시간은 겨우 5분이었다. 그렇다면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동준권이 옥상으로 올라와 따로 바람을 쐴 시간은 없을 것 같았다.
장목화는 옥상에서 딱 3분만 신선한 공기를 마시자고 생각했다. 그럼 동준권 같은 불량 학생들과 마주칠 일도 없을 것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녀는 가볍게 뛰어 옥상으로 통하는 문 앞에 이르렀다. 문의 자물쇠는 누군가 이미 망가뜨린 상태였다.
장목화는 문을 슬쩍 당겨 연 뒤 옥상에 발을 들였다. 마침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마음을 한결 상쾌하고 가뿐하게 만들어주었다.
방향을 판별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는데, 놀랍게도 학교 정문 쪽 여장 위에 선 한 학생이 있었다. 건들건들한 남학생이었다.
‘도수종⋯⋯.’
장목화는 그를 알았다. 상대는 평판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학생이었다.
도수종은 때로는 자신까지 위협할 정도로 성적이 좋고, 몸도 잘 써서 단거리 달리기, 멀리 뛰기, 브레이크 댄스, 농구 등에서 모두 뛰어난 편이었지만 우등생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동준권 같은 녀석들과 함께 어울려 다녀서 패싸움에 참여하기까지 했다는 소문도 따랐다.
‘이상한 애야.’
속으로 중얼거리던 장목화는 도수종이 자리한 여장 쪽으로 다가갔다.
그녀를 뒤따르던 게네바는 이를 보고서야 드디어 마음을 놓았다.
서연교, 그러니까 장목화 입장에서는 옥상에 오르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았겠지만, 게네바는 이 상황을 만들어내기 위해 사력을 다한 상태였다.
복도를 달리던 학생 발을 걸어 넘어뜨려 서연교 짝의 시선을 돌린 것도 게네바였고, 두 학생이 품에 안고 있던 공책을 쓰러뜨려 서연교 담임의 시선을 돌린 것도, 층계참에서 가장 가까운 교실로 급히 들어가 칠판 지우개를 동준권에게 던져버린 것도 모두가 게네바가 만들어낸 우연이었다.
일의 순조로운 진행은 절대 배후의 고생 없이 실현될 수 없는 법이었다.
장목화는 곧 여장 근처에 이르러 먼 풍경을 바라보며 맑고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셨다. 여러 고민이 잊히고 답답한 마음도 적잖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이 기회를 틈타 게네바는 지금까지의 관찰 결과를 정리했다.
‘그래, 어제는 봄이었는데 오늘은 늦가을이군. 서연교와 도수종은 여전히 3학년이고.’
서연교와 도수종은 모두 성적이 굉장히 우수한 학생이었다. 그러니 설령 연애에 정신이 빠졌다 한들 낙제를 당할 리는 없었다.
답은 하나뿐이었다. 시간이 거꾸로 흐른 것이다. (* 중국 학기는 9월에 시작됨)
다시 말해 이 꿈의 시간대는 멋대로 이리저리 튀는 듯했다.
꿈이라는 개념에는 퍽 부합하는 특징이었다.
바람을 쐬다 고개를 튼 장목화는 멀지 않은 곳의 도수종을 바라보았다. 그는 옥상에 올라와 바람을 쐬는 자신을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은 눈치였다.
‘쟤는 어떤 사람일까?’
장목화의 마음속에서 강렬한 호기심이 일었다. 이에 그녀는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을 했다. 용기를 내 상대에게 말을 건 것이었다.
“야!”
성건우가 연기 중인 도수종이 고개를 틀어 그녀를 힐긋 바라보았다.
“내 이름은 야가 아닌데.”
장목화는 밀려드는 부끄러움에 잠시 뜸을 들인 뒤 입을 열었다.
“알아. 네 이름 도수종인 거. 너 2학년 때 우리 학교로 전학 왔다며?”
도수종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
“1학년 2학기 때야.”
장목화의 질문이 이어졌다.
“전에는 어디에 있었는데?”
“왜 이렇게 질문이 많아⋯⋯. 대강시에서 살았어.”
도수종은 툴툴거리면서도 마지못해 답은 해주었다.
‘대강시.’
게네바는 얼른 이 중요 정보를 기록했다. 동시에 관련 정보도 떠올렸다.
‘대강시, 임하 마을 어귀 늙은 홰나무 아래.’
그곳은 또 다른 불가 성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