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785
785화. 일을 맡다
운전대를 잡은 백새벽이 바로 대꾸했다.
“겐한테 감시카메라 영상이 삭제되거나 방해받은 흔적이 있는지 살펴보라고 해야지.”
장목화가 덧붙였다.
“그것도 방법이네. 다른 방법으로는 뒷문으로 이어지는 거리를 따라 탐문하는 것도 있어. 주로 거리 상점의 사장이나 직원을 대상으로.”
이는 굉장히 번잡스러운 작업이 될 것이었다. 건물을 떠나는 길이 한 갈래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장목화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음, 모르의 이웃과 정보 제공자를 찾아 물어볼 수도 있겠다. 제8 연구원이 최근에야 사람을 보내 모르를 몰래 감시하면서 뭔가 이상한 낌새를 보이면 바로 죽이려 했을 리는 없어. 모르가 제8 연구원을 위해 일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주위에 비슷한 인력이 심어졌을 거야.
꽤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그런 감시자들이라도 많건 적건 어느 정도 허점을 드러냈겠지. 언제나 빈틈없는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그쪽도 그렇고, 우리도 그래.”
짝! 짝! 짝!
성건우가 손뼉을 쳤다.
* * *
네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지프는 다시 한번 광업 연합회 건물 밖에 이르렀다. 그렇게 게네바와 합류 후, 성건우가 먼저 다급하게 물었다.
“건물에서 나가는 사람이 있었어?”
“게스트 보루의 치안관이 오기 전까지 3명이 정문으로 나갔다. 이미 그 사람들 생김새를 기록해뒀고 나중에 다시 조사해볼 생각이야.”
역시, 게네바는 실망시키는 법이 없었다.
장목화는 창밖으로 펼쳐진 하늘의 색을 잠깐 살폈다.
“좋아. 이제 뭘 좀 먹고 여관으로 돌아가 쉬자.”
* * *
경비를 마련한 구조팀은 간단히 점심을 먹고 불과 철 여관에 들어갔다.
오늘 낮, 프런트를 맡은 것은 지티스였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멍한 눈빛을 드러내고 있던 그녀는 돌아온 구조팀을 보자마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모르가 죽었어?”
“소식이 진짜 빠르네.”
성건우가 진심으로 감탄했다.
지티스는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대신 약간 혼란스러워했다.
“광업 연합회 건물이 봉쇄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다 널리 퍼졌어.”
장목화가 웃었다.
“그럼 모르가 어느 저격수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건 알아?”
지티스는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리며 미스터리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알아.”
지티스의 대답에 성건우가 순간 흥분했다.
“그럼 그 저격수 행방도 알아?”
‘정보상이 무슨 신선인 줄 아냐? 모르는 게 없게.’
용여홍이 참지 못하고 속으로 빈정거렸다.
눈이 잠시 초점을 잃었다가 원상태로 돌아온 지티스는 방금의 그 미스터리한 미소를 유지한 채 답했다.
“필요하다면 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그게 무슨 의미야?”
장목화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지티스는 약간 공허한 목소리로 말했다.
“충분한 보수만 준다면 난 너희를 도와 그 저격수를 찾을 수 있어. 물론 성공한다는 보장은 못 하고.”
“충분한 보수가 얼만데?”
장목화는 스스로 가격을 제시하는 대신 상대의 공으로 넘겼다.
지티스는 몇 초간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랜드 기사 금화 10개면 사흘 안에 답을 찾을게. 5개면 2주 안에 피드백 받을 수 있고, 1개면 한두 달은 있어야 결과가 나올 거야. 지금 바로 값을 치를 필요는 없어. 기사 은화 10개만 계약금으로 걸어뒀다가 내가 정보를 파악했을 때 그 정보의 중요도와 소요 시간에 따라 비용을 내면 돼.”
다시 말해 일단 계약금을 걸어놓고 지티스가 사흘 안에 그 저격수의 행방을 파악하면 구조팀은 그때 그녀에게 그랜드 기사 금화 10개를 지불해도 된다는 이야기였다.
“합리적이네. 그렇게 할게.”
구조팀이 현재 가진 돈을 다 모아도 그랜드 기사 금화 3개가 채 안 됐지만 장목화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응했다.
저격수의 행방은 빨리 파악하면 빨리 파악할수록 좋았다. 그만한 실력을 갖춘 구조팀은 돈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사실 지티스가 정보를 알아낼 수 있을지, 장목화는 큰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 하나의 방법이라도, 하나의 희망이라도 생겨서 나쁠 건 없었다. 기껏해야 계약금으로 건 기사 은화 10개만 잃고 말 뿐이었다.
그래도 만약 지티스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정보를 얻어내 그 저격수의 행방을 알아낸다면 구조팀에겐 뜻밖의 기쁨이 될 터였다. 그 정보, 그 기쁨에 비하면 그랜드 기사 금화 10개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장목화는 곧장 전술 배낭을 풀어 그 안에서 기사 은화 10개를 꺼낸 후 총 30개를 세어 지티스에게 건넸다.
“전에 맡겨둔 저당물은 이제 돌려줘.”
구조팀은 원래 지티스에게 기사 은화 20개를 빚지고 있었다.
순간 눈을 번득이며 은화 개수를 꼼꼼하게 헤아리던 지티스는 서랍을 열어 장목화의 연합202를 꺼내주었다.
장목화가 총기를 살피는 사이, 성건우는 황급히 기사 은화를 챙겨 넣는 지티스에게 당부했다.
“그 저격수 배후에 굉장히 강력하고 무시무시한 조직이 있을 가능성이 커. 행방을 찾아내려면 네 안전에 특별히 유의해야 할 거야. 정보를 빨리 얻겠다고 스스로의 존재를 드러내면 안 돼. 반드시 조심해야 해!”
이목구비가 약간 뻣뻣한 지티스는 흠칫 놀란 눈치였다. 이 정보상이 만난 의뢰인 중 안전을 염려하는 이를 처음 보기라도 한 것 같았다. 당연히 까불고 다니지 마라, 밤길 조심하라는 그따위 말을 염려라 볼 순 없었다.
‘가끔은 건우만한 모범 사례도 없다니까.’
장목화는 연합202를 무장 벨트에 채우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후 구조팀이 계단으로 올라가자 지티스는 다시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멍한 눈빛을 드러냈다.
* * *
“그랜드 기사 금화 10개라니, 지금 가진 돈이 그 절반도 안 되잖아요.”
방으로 돌아온 뒤 용여홍이 걱정을 내비쳤다.
사냥꾼 길드에 공개된 임무에 대한 보수는 대부분 기사 은화 단위였다. 그랜드 기사 금화를 보수로 주겠다고 하는 임무는 극소수였다.
이내 장목화가 웃으며 대꾸했다.
“진짜 그랜드 기사 금화 10개를 내야 할 일이 생기면 피라도 팔아야지!”
그건 그래도 좋을 만큼 귀한 정보였다.
그때, 솔직한 게네바가 일렀다.
“각 방면의 소식에 따르면 게스트 보루는 피 장사가 잘 안된다. 화이트 기사단의 정식 구성원이 정기적으로 헌혈을 하는 데다 여긴 변방의 압박도 없고, 강도도 많지 않아서 심각하게 수혈이 필요한 상황이 많이 없거든.”
이는 퍼스트 시티와의 또 다른 차이점이었다. 그곳의 여러 불법진료소에서는 항상 피가 부족했었다.
게다가 이곳에서 대량의 수혈이 필요할 정도로 병들거나 다친 일반 주민들은 보통 치료를 포기하는 편이기도 했다.
기사의 신조를 굳게 지키는 화이트 기사단에서 일정한 보조를 해주긴 해도, 여전히 일반 가정은 재정적인 압박이 컸다.
아무튼 게네바의 말은 게스트 보루에서는 피를 팔아도 큰돈을 마련하기는 힘들다는 뜻이었다.
“……그냥 예시를 든 것뿐이야.”
장목화가 무기력하게 대꾸했다.
뒤이어 성건우가 말을 받았다.
“정 안 되겠으면 핵탄두를 게스트 보루 그랜드 기사한테 팔죠! 그러면 그랜드 기사 금화 정도는 상당하게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용여홍은 속으로 빈정거리고 싶었지만 잠시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장목화가 웃었다.
“핵탄두를 팔려면 일단 겐을 밖의 은밀한 곳에 숨겨놓고 그 그랜드 기사한테 핵탄두 안 사면 바로 동료한테 신호를 보내 폭발을 일으키게 하겠다고, 다 같이 죽자고 협박해야겠지?
만약 그 사람이 사겠다고 하면 애쉬랜드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핵탄두는 계속 우리가 보관하는 거야. 그 사람이 더 이상 물러날 데 없는 궁지에 몰렸을 때만 협박용으로 쓸 수 있게 하고.”
“⋯⋯.”
용여홍의 입꼬리가 경련했다. 동시에 그와 백새벽은 머릿속으로 한 단어를 떠올렸다.
‘공갈 갈취…….’
그 사이, 성건우가 진지하게 답했다.
“안 돼요. 만약 그 그랜드 기사가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면, 거기다 강력한 전자파 방해 능력을 갖고 있으면요? 그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보내진 신호는 왜곡돼서 아무 효과도 발휘하지 못할 텐데요?”
장목화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진짜 그걸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던 거야? 아무튼 돈 문제는 다른 것보다 해결이 쉬워. 막다른 골목에 봉착해도 결국 그 난관을 뛰어넘을 방법은 생기게 마련이니까. 하지만 저격수의 행방을 찾기는 쉽지 않지. 일단은 인내심을 갖고 소식을 기다려보자.”
* * *
하늘이 어두워질 무렵, 저녁 식사를 한 뒤 불과 철 여관으로 돌아온 구조팀에게 손님 한 명이 찾아왔다.
구조팀과 낮에 만난 게스트 보루의 치안관 예르가이였다.
예르가이는 검은색 트위드 코트에 같은 색 얇은 장갑을 끼고 있었다.
이 계절의 게스트 보루는 낮에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밤에는 꽤 추웠다.
문을 연 성건우가 환하게 웃어 보였다.
“치안관님, 저희한테 일을 맡기려고요?”
예르가이는 난감한 듯 두어 번 기침한 뒤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광업 연합회 건물에서 어떤 단서도 찾지 못했습니다. 게스트 보루에는 우리가 처리할 일들도 아주 많고요.
그래서 그 저격수 행방을 찾는 번잡스러운 임무를 사냥꾼 길드에 공포하려 합니다. 당신들 역시 참여해줬으면 해서 온 겁니다. 이 사건에 있어 당신들보다 구체적인 디테일을 잘 파악하고 있는 유적 사냥꾼은 없으니까요.”
장목화가 미소를 지었다.
“보수는요?”
예르가이는 목을 한번 풀고 답했다.
“가치 있는 정보 하나를 찾을 때마다 그랜드 기사 금화 1개를 드리겠습니다. 그 저격수의 행방을 특정한다면 그랜드 기사 금화 5개를 드리죠.”
그는 목표를 체포했을 때의 보수는 언급하지 않았다. 해당 작업은 치안관과 현지 기사단이 직접 나설 거라는 암시였다. 이 기회를 틈타 유적 사냥꾼들이 거점 안에서 합법적인 총격전을 벌이는 걸 방지하려는 것일 터였다.
‘그랜드 기사 금화 5개라⋯⋯. 만약 지티스가 정말 사흘 안에 저격수의 행방을 찾아내도 모자란 돈은 그랜드 기사 금화 2개 반에 불과해.’
빠르게 계산을 마친 용여홍은 이만하기만 해도 다행이라고, 돈을 마련하기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예르가이한테 일을 받고 그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지티스에게 정보를 구하는 것이 정상적인 순서이자 약간의 이문을 남기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구조팀의 목적은 현상금 획득이 아닌 그 저격수를 잡는 것이었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비용이야 기꺼이 치를 수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말했다.
“문제없습니다. 근데 치안관님, 죄송하지만 오늘 광업 연합회를 조사하면서 있었던 구체적인 상황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 그래야 저희가 시간을 효율적으로 아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예르가이는 당연하고도 정상적인 이 요구를 과하다 여기지 않았다. 그는 바로 코트 안주머니에서 일찍이 준비해둔 자료를 한 다발 꺼냈다.
“조사 결과와 감시카메라 영상 관찰 보고서입니다.”
구조팀의 예상대로 감시카메라 영상에 긴 상자를 들거나 멘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건물 내부 사람 중 초연 반응을 보인 사람도 없었다. 비교적 눈에 띄는 대물 저격 소총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게다가 게스트 보루의 치안관들은 도착하기 전 건물을 떠난 3명을 파악하고 직접 찾아가 탐문하고 조사했지만 그 3명에게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빠르게 보고서를 훑어본 장목화는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
“완전한 감시카메라 영상이 필요합니다.”
예르가이는 게네바를 힐긋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준비돼 있습니다.”
이후 그는 작은 메모리 칩을 하나 건넸다.
게네바가 그 데이터의 판독과 복사를 마치자 예르가이는 자료와 칩을 회수한 뒤 임무를 공포하기 위해 사냥꾼 길드로 향했다.
“어때, 감시카메라 영상에 삭제된 흔적이 있어?”
예르가이를 1층까지 배웅하고 온 장목화가 나무 문을 닫으며 물었다.
게네바는 탄소 기반인은 흉내 낼 수도 없는 분석 속도로 이미 결과를 도출했다. 결과는 용여홍, 백새벽, 성건우에게는 이미 다 알린 상황이었고, 게네바는 다시 장목화에게도 조금 전 했던 말을 반복해주었다.
“없어, 방해를 받은 흔적도 없었고.”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말했다.
“그럼 계단으로 이동했나 보네. 지금 광업 연합회 건물로 가서 다시 살펴보고 탐문해보자.”
단서의 소실을 막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했다.
“좋아요!”
성건우도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듯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