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794
794화. 마지막 가능성
“보수를 받기 전까지는 군용 외골격 장치를 맡아둬야겠어.”
지티스가 강조했다.
“좋아.”
장목화는 가장 오래된 모델을 저당물로 맡겨둘 생각이었다.
성건우는 환하게 웃으며 지티스를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거래 성사!”
이 말에는 사유 이식이 부가돼 있었다. 지티스가 도중에 번복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였다.
몇 초간 정신을 놓고 있던 지티스는 다른 신분을 조종하는 일을 마친 뒤에야 오른손을 뻗어 성건우와 악수를 했다.
“거래 성사.”
뒤이어 그녀가 모종의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
“빌려주더라도 보리 불상은 내가 통제할 거야. 너희가 하라는 대로 할게.”
그녀의 말뜻은 아주 간단했다. 그렇게 귀중하고 신기한 물건을 구조팀에게 넙죽 내주기는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않으니 해당 작업에 직접 참여해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성건우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굉장히 위험할 거야. 어쩌면 게스트 보루를 떠나 빙원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며칠 후에야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몰라.”
고민하던 지티스는 약간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게스트 보루에서 3킬로미터 안쪽이기만 하면 상관없어. 만약 정말로 빙원에 가야 한다면⋯⋯. 그때는 불상을 너희한테 맡길게.”
그 거리를 뛰어넘으면 그녀의 다른 육체 안에 있는 의식은 전부 강제로 회수됐다. 그럼 일찍이 죽었어야 할 그들은 그 자리에서 죽게 될 것이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부모님 치료를 위해 보리 불상과 다른 신분을 잃을 위험을 감수한 사람이었다.
“게스트 보루 안에 있더라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야.”
성건우는 이번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상대를 진정한 친구로 여기며 진심으로 아끼는 듯했다.
“맞아.”
장목화도 동조했다.
지티스는 초점이 살짝 흐려진 눈으로 미스터리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괜찮아. 직접 참여하는 대신 특정 신분이 불상을 가지고 너희들을 보조하게 할 거니까. 그러면 정말로 무슨 뜻밖의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내 자신은 영향을 받지 않을 거야.”
성건우는 그 이야기에 탄사를 내뱉었다.
“신경통에 숙명통을 더한 능력은 정말로 유용하구나!”
“그거라면 괜찮겠네.”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결정 후, 구조팀과 부모님을 검사할 시간을 정한 지티스는 돌아서 바로 자리를 뜨려 했다.
그때였다. 그녀를 부른 성건우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질문이 있어. 넌 의식을 여러 갈래로 나눈 상태잖아. 만약 내가 그중 한 의식을 상대로 능력을 발휘하면 다른 의식과 다른 신분에도 영향이 미쳐?”
지티스는 재차 미스터리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니, 그 의식이 깃든 육신이 마침 네 능력 범위에 있지 않은 이상은 안 그래. 어젯밤 내 다른 의식들이 전부 푹 자고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바람에 때맞춰 피드백을 주지 못하면 난 빠르게 뭔가 잘못된 걸 파악하고 네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어.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지.”
성건우는 모종의 깨달음을 얻은 듯 대꾸했다.
“어쩐지, 우정 이야기는 일언반구 하지 않고 사업 얘기만 하더라니!”
그의 얼굴에는 한탄하는 듯한 표정이 내걸렸다.
지티스가 곧장 반박했다.
“우정이 없었다면 난 이 거래의 상세한 내용을 듣지도 않았을 거야.”
그녀가 그들의 제안에 응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구조팀이 제시한 보수가 거절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장목화는 적절한 시기에 웃으며 끼어들었다.
“아이스트가 기억을 삭제당하고도 위탁자가 모르라는 걸 잊지 않았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네.”
기억을 삭제당한 건 아이스트의 육신을 점거한 의식일 뿐이었다. 게다가 지티스에게는 그것에 어느 정도 저항할 수 있는 숙명통이 있었다. 덕분에 일찍이 기억을 동기화해둔 지티스의 본체와 다른 육신은 여전히 그 내용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이었다.
지티스는 더 이상의 이야기를 하는 대신 몽유병에 걸린 것처럼 비틀거리며 그녀의 집으로 돌아갔다.
* * *
게스트 보루, 외부 바리케이드 근처 어느 블록 안.
머레이와 베니토는 안전 가옥 안에서 돌아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 처리 속도가 빠른 편인 제8 연구원에서는 이틀 전 이미 그들에게 임무가 끝났으니 본부로 돌아와도 되겠다고 알리고 인솔자와 만날 시간과 장소도 정해주었다.
빙원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물자를 보충해야 했기에 머레이와 베니토는 게스트 보루를 떠나는 데 급급해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 현상 수배령이 내려지지 않은 머레이는 매일 밖으로 나서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며, 기회를 봐서 구조팀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모레쯤에는 떠나도 되겠어.”
머레이는 방 안의 허공에서 흔들거리는 나무뿌리를 보고 소파에 몸을 던진 뒤 옆쪽의 구식 라디오를 켰다.
게스트 보루는 전기 공급량이 충분하고 가격도 저렴했기에 주민들은 전자 제품을 사용하는 것을 거리끼지 않았다.
유일한 문제가 있다면 화이트 기사단에 그런 제품의 생산라인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주요 수입품 목록에도 전자 제품은 포함되지 않아서 주민들은 대개 주위 도시 유적에서 찾아낸 전자 제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전자 제품 중 가장 쉽게 고칠 수 있고, 쉽게 조립할 수 있는 건 역시 라디오였다. 이에 게스트 보루에는 자체적인 라디오 방송국도 있었다.
머레이가 매일 누리는 여가 활동은 라디오 방송을 듣는 것이었다.
이 시간에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프로그램이 방송되었다. 머레이는 그 방송에 귀를 기울이며 앞으로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추측했다.
한 차례 절정을 맛본 뒤 은신 능력을 거둔 베니토도 그의 옆에 앉았다.
이번 이야기는 구세계 어느 소설에서 따온 것으로, 어느 덤벙대는 스파이가 적진에 정보를 탐색하러 갔다가 갖가지 우스꽝스러운 일과 위험을 겪으면서도 끝내 해당 임무를 완수하는 이야기였다.
머레이가 눈가의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진짜 웃기네! 적이 누군지, 어딨는지도 모르고 감히 정보를 수집하러 가다니. 운이 좋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진즉에 잡혀 목이 매달아졌을 거야!”
“웃긴 이야기야.”
베니토도 기분이 꽤 좋아 보였다.
다음 순간, 두 사람은 동시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방금 들은 이야기와 비슷한 특정 사건이 떠오른 탓이었다.
연구원 내부의 배반자를 제거하기 위해 초대된 그 팀은 심지어 연구원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통해 구체적인 위치를 알아내려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우스꽝스러운 상황이었다.
서로를 보는 머레이와 베니토의 얼굴에 서서히 두려움이 번져갔다.
몇 분 뒤 한숨을 토해낸 머레이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아하니 통제당했었던 것 같네.”
베니토가 진지한 얼굴로 말을 받았다.
“그 사람들도 오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나온 이야기 때문에 우리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게 될 줄은 몰랐겠지.”
머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운이 좋았어.”
그들은 모레 게스트 보루를 떠나 빙원에 진입한 뒤 약속 장소로 향할 예정이었다. 만약 오늘 들었던 이야기가 이틀 뒤에 방송되었다면 그들은 시한폭탄을 가지고 제8 연구원으로 가는 짝이 되었을 터였다.
“이제 어쩌지?”
베니토가 물었다.
머레이는 방 한구석에 놓인 무선 통신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연히 지금 당장 상황을 보고하고 연구원의 처신을 기다려야지.”
종이와 펜을 찾은 그는 빠르게 초고를 작성했다. 초고 내용에는 전체적인 상황과 그들이 정신을 차리게 된 계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거의 30분쯤 지나, 제8 연구원의 회신이 왔다.
「문제를 감지했다는 티 내지 말고 원래 계획에 따를 것.」
한동안 짧은 회신을 바라보던 머레이가 미소를 지었다.
“연구원이 녀석들을 위해 함정을 설치하려는 모양이야.”
* * *
불과 철 여관 안.
“목표가 미끼를 물었어. 원래 계획에 따라 행동할 예정이야.”
장목화, 성건우, 백새벽, 용여홍의 귓가에 지티스의 목소리가 울렸다.
일찍이 예측한 상황이긴 해도 용여홍은 참을 수가 없었다.
“들었어? 어떻게 한 거지? 보리 영역에 원거리 소리 전송 능력도 있나?”
그의 언어생활은 갈수록 구세계 콘텐츠에 깊은 영향을 받고 있었다.
백새벽이 가장 먼저 답했다.
“들었어. 보리 불상을 이용해 우리한테 천이통을 갖게 한 뒤에 말한 거겠지. 자세히 생각해보면 다른 방에서 기인하는 배경 소음이 있었었나봐.”
장목화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시카라 사원에서 경험했던 것과 같은 상황인 거야.”
그 말에 따라 생각을 더듬던 용여홍은 확실히 적지 않은 소음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다만 그 소리는 전부 지티스 목소리에 짓눌려 있었다.
뒤이어 성건우가 안타깝다는 듯 중얼거렸다.
“상상력이 부족하시네. 보리 불상은 진짜 확실히 신기한 물건이에요.”
그때, 게네바가 물었다.
“지티스가 뭐라고 했지?”
영향을 받지 못한 그는 당연하게도 지티스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장목화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물고기가 미끼를 물었대. 이제 지티스를 찾으러 가자. 직접 대면해서 얘기하는 게 더 안전하고 효율적일 때도 있는 법이야.”
* * *
이미 지티스의 주소를 아는 구조팀은 바로 그 정보상을 만나러 왔다.
“아주머니랑 아저씨는?”
성건우가 예의 바르게 물었다.
잠시 넋을 놓고 있던 지티스는 벌꿀색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전에 알고 지내던 동료의 집에 가 계시라고 했어. 세상엔 부모님이 모르는 편이 더 나은 일도 있잖아.”
구조팀의 특수한 생물 제제를 사용한 뒤 지티스 어머니의 몸은 확연히 호전된 상태였다. 아직 건강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계단을 내려가는 것도 벅차하던 예전에 비하면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나아져 있었다.
물론 장목화와 게네바는 둘 다 기껏해야 그 정도밖에는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병세에 딱 맞는 약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지티스의 어머니가 심한 노동을 하지 않고 충분히 수면을 취하면 노년기에 접어들어 몸 상태가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쇠하기 전까지는 현재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었다.
지티스의 아버지로 말할 것 같으면 주 증상은 기침이었다. 날씨가 추워지면 호흡하기 어려워져 습관적으로 헐떡였지만 지금은 나름 날씨가 온화한 편이기 때문에 상태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지티스의 어머니와 함께 외출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장목화는 어제 이미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을 모두 담아 정리한 전보를 회사에 발송했다. 지티스 부모님의 병증을 주로 설명한 전보였지만 아직까지 회신은 없었다.
“상세한 내용 좀 얘기해줄래?”
장목화가 부탁했다.
눈의 초점을 되찾은 지티스는 본 것들을 있는 그대로 전달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성건우는 두려워하기는커녕 굉장히 신이 났다.
“함정이다!”
백새벽은 입술을 오므렸다.
“그들이 함정을 약속 장소에 설치할 것인지, 그곳으로 가는 경로에 설치할 것인지, 아니면 약속 시간까지 남아있는 이틀 안에 게스트 보루에서 발동할 것인지가 문제네요.”
그녀가 제시한 마지막 가능성은 제8 연구원이 머레이, 베니토에게 계획대로 행동하라고 한 게 그저 가림막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구조팀을 방심하게 하고 암암리에 강자를 파견해 구조팀이 아무 경계도 하고 있지 않은 순간에 게스트 보루 안에서 습격할 수도 있었다.
“음흉하네!”
성건우는 자신이 얼마나 음흉한지에 대한 자각은 전혀 없는 듯 평했다. 지금의 그는 음험하고 악랄한 성건우가 아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