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807
807화. 갑자기 생긴 의문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군용 외골격 장치에 탑재된 통신 시스템에서 갑자기 장목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말 들려?”
“들린다.”
게네바가 즉각 답했다.
장목화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꼭대기 층에 있는 거야? 야는 어때?”
“꼭대기 층에서 아버지 시신을 찾았다.”
게네바가 솔직하게 답했다.
장목화는 몇 초간 말이 없었다.
“……건우한테 시간 좀 줘. 그사이에 너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단서가 있는지 찾아보고.”
“알겠다.”
분석을 진행한 게네바는 성건우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기록을 장목화에게도 알려주었다.
의혹에 빠진 장목화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달지기 아들을 수술시켜주고 대신에 정보를 얻으려고 했던 건가? 그러다 수술에 뭔가 뜻밖의 문제가 생긴 걸까?”
“지금으로서는 그런 것 같아요.”
이번에 대꾸한 건 성건우였다. 소매로 얼룩진 눈물은 훔쳐냈지만, 목소리는 약간 거친 듯 엉망이 돼 있었다.
장목화는 다른 말은 일체 언급 하지 않고 지시만 했다.
“가지고 나올 물건들부터 얼른 챙겨. 중첩 상황은 언제라도 다시 나타날 수도 있잖아.”
“네.”
아직 무릎을 꿇고 있던 성건우는 배낭을 풀어 아버지의 유골을 하나하나씩 조심스레 담았다. 그러다 배낭의 공간이 부족할 것 같아서 다른 물건을 전부 꺼내 게네바에게 넘겼다.
빠르게 작업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난 성건우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단은 수술대를 찾자. 그곳에 뭔가 중요한 단서가 있을지도 몰라.”
현 상황으로 볼 때 수술은 이 펜트하우스에서 이루어졌을 터였다. 그 구조팀 팀원들 시신이 이곳과 계단, 1층에 흩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수술이 진행되기도 전에 환자에게 뜻밖의 사건이 일어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 * *
수술실은 당연히 거실에 없었다. 성건우와 게네바는 간단한 수색을 거친 끝에 오른쪽 측면에서 목표 지점을 찾았다.
이 방은 개조가 돼 있었다. 위에는 무영등이 걸려 있었고, 등 아래로는 이동이 가능한 수술용 침대가, 침대 옆쪽으로는 높은 수준의 기술로 만들어진 듯한 기기들이 여러 대 보였다.
지금 침대에는 어떤 것으로도 덮이지 않은 백골이 누워있었다.
주위로는 시신 몇 구와 녹슬지 않은 의료 기기들도 흩어져 있었다.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을 어깨에 걸고 불룩 부푼 배낭을 멘 성건우는 수술용 침대로 다가갔다.
달지기 아들로 짐작되는 백골을 진지하게 보던 그가 고개를 돌렸다.
“어떤 방면 수술이었는지 알 수 있겠어?”
카멜레온 인공지능 갑옷을 착용한 게네바는 금속 목을 좌우로 흔들었다.
“뼈만 보고는 판단하기 어렵다.”
이 대목에서 갑자기 그의 말투가 바뀌었다.
“하지만 아무 준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수술은 없지. 분명 사전에 병소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했을 거야.”
수술을 담당한 의사에게 비교적 완전한 병례 자료가 있으리란 뜻이었다.
탁!
성건우가 금속 골격으로 뒤덮인 오른손으로 달지기 상징 모음집이 붙은 가슴팍을 두드렸다.
“얼른 주위 시신들을 확인해야겠네!”
동시에 그는 수술대 위의 백골을 다시 바라보았다.
“정말로 달지기 아들일까? 남은 뼈는 평범한 사람과 다를 게 없는데.”
일찍이 검측을 진행한 게네바가 답했다.
“달지기 강림체가 낳은 아들이면 평범한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성건우는 그 말에 대꾸하진 않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느 달지기 아들일까? 4월의 달지기 왜곡의 그림자?”
그가 건물 안에서 받았던 영향에 근거한 추측이었다.
“그럴 확률이 82퍼센트다.”
게네바가 계산해낸 결과를 알렸다.
어느새 생각이 또 다른 데로 튄 성건우가 원통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달지기씩이나 돼서 자식을 치료해주지도 못하고 수술을 받는 위험을 감수하게 하다니!”
“애쉬랜드에 대한 달지기의 간섭엔 모종의 제한이 따르는 게 분명하다.”
게네바는 성건우의 사고의 흐름을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문제에만 답했다.
마침내 스스로를 통제한 성건우들은 쪼그려 앉아 수술대 근처의 흰색 가운을 걸친 시체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시체들 주위로는 메스와 생물 제제 등의 물건이 흩어져 있었으나 그 몸은 깨끗했다. 가지고 있는 자료 같은 건 하나도 없었다.
“찾았다.”
비스듬히 떨어진 뒤쪽 시신 옆에 쪼그려 앉아있던 게네바가 말했다.
성건우는 군용 외골격 장치의 도움 아래 180°로 회전했다.
“뭔데?”
바이저를 내리지 않은 그가 절박하게 물었다.
게네바는 자료를 살피는 동시에 번역기 역할을 했다.
“수술 목적은 환자의 심장 문제를 해결하는 거였네. 이를 위해 그들은 체외 순환을 준비했다.”
커닝미스는 구세계 파괴로 어떠한 타격도 입지 않았던 탓에 각 병원 기기가 꽤 완전하게 보존돼 있었다. 다만 이곳의 의료 체계는 각종 약품 및 의료 기기의 생산 라인이 없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 결핍된 듯했다.
“수술 중에 뭔가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고, 그로 인해 수술이 마무리되기 전에 재난이 초래된 모양이네.”
성건우는 똑바로 서서 달지기 아들의 유해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게네바가 말했다.
“수술 전에도 비교적 위험하단 평가가 나왔다. 그래도 그 구조팀은 한번 시도해보길 권했고, 환자도 충분히 이해하고 그 제안에 응했어. 그들도 수술의 실패가 온 도시를 파멸로 몰아넣을 재난을 야기할 줄은 몰랐을 거다.”
“맞아, 맞아.”
성건우가 동조와 동시에 오른손을 세웠다.
“나무아뇩다라삼먁삼보리,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7층 탑을 세우는 것보다 더 나은 일입니다.”
게네바는 계속해서 그 병례 자료의 내용을 읊었다.
“수술 전 방안에 따르면 환자는 강력한 각성자로 마취 후 무의식적으로 주위의 전자파 신호를 방해할 수 있으니 이 방면에 뛰어난 능력을 가진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나와 있어.”
“얼마나 강력하다는데?”
성건우가 게네바의 말을 끊었다.
“심령의 복도 깊은 곳까지 탐색했고 물질에 대해서도 상당한 수준의 간섭이 가능하다고 하네. 환자 나이는 81세. 몸이 굉장히 약한 상태라고 해. 아마 이게 위험의 주요 원인일 거야.”
“81세? 아들이라며!”
놀란 성건우가 내뱉듯 외쳤다.
게네바는 성건우가 ‘달지기의 아들’이란 칭호를 문자적으로만 이해했다는 걸 알아차리고 진지하게 설명에 나섰다.
“커닝미스가 파괴된 건 신력 37년이야. 그리고 신력 이전 혼란의 시대는 약 20년 동안 이어졌지.
커닝미스 현인 회의에서 달지기 아들이 이 도시와 주위 마을을 구세계 파괴로부터 비호했다고 말했다면 이는 그가 당시에도 비교적 강한 주체 의식과 행동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야.
81세라는 나이 정보에서 거꾸로 되짚어 볼 경우, 달지기 아들은 구세계 파괴 당시 약 24살이었을 테니 방금의 추측에 부합하지.”
각각의 세력에서는 혼란의 시대가 이어진 시간을 다르게 계산했다. 때문에 대략적으로 20년 정도 된다고밖에는 이야기할 수 없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애쉬랜드 내 대형 세력의 교류가 점점 빈번해지지 않았더라면 신력 역시 각 세력마다 다르게 계산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성건우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난 수종이랑 비슷할 줄 알았지. 칠팔십 먹은 노인네가 되어서도 달지기 아들이라는 칭호를 쓰면서 아버지 위엄을 빌려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려 했다니. 쯧쯧, 안 되겠네.”
게네바는 순간 한 문장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쇠귀에 경 읽기.
그로서는 성건우가 무엇에 한숨짓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성건우는 방금 한 이야기를 잊은 듯 나머지 시신들을 살폈지만 더 이상의 유용한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게 옷을 입지도, 뭔가를 가지고 있지도 않은 달지기 아들의 유해를 바라보던 그가 문 쪽으로 돌아섰다.
“다른 방에 가 보자.”
게네바의 눈에서 붉은빛이 번득였다.
“좀 전에 발견한 사실은 큰 흰둥이에게 먼저 보고해야 할까?”
성건우는 고개를 젖혀가며 웃었다.
“물을 필요 있겠어?”
이후 그는 게네바에게 호응할 기회도 주지 않고 군용 외골격 장치에 탑재된 통신 시스템을 이용해 수술실 안 상황을 간단히 보고했다.
얘기를 듣고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말했다.
“한 가지 문제가 있어.”
“무슨 문제요?”
성건우가 흥분해서 말을 받았다.
‘방금 아버지 시신을 발견한 사람 맞아?’
장목화는 저도 모르게 살짝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녀도 사실 성건우가 일찍부터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걸, 그저 아버지가 뭘 하다가, 무엇으로 죽었는지를 알고 싶어 했을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성건우도 속으론 많이 울고 있겠지만, 한편으론 염원을 이뤘다는 개운함과 해방감도 분명 있을 것이었다.
무엇보다 정상적인 정신 상태도 아닌 사람을 평범한 사고와 논리로 추측하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장목화는 몇 초간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달지기 아들이 무려 81살이었고, 심령의 복도 깊은 곳까지 탐색했다면 왜 굳이 심장 수술을 받는 위험을 감수한 거지? 차라리 신세계에 진입하는 게 낫지 않나? 그의 아버지인 달지기는 신세계 대문이 있는 방을 아들 코앞에 직접 나타나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달지기가 방의 순서와 위치를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은 공인된 사실이었다. 성건우도 그런 경우를 여러 차례 경험한 바 있었다.
성건우가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
“달지기는 아들이 신세계에 진입하는 걸 원치 않았던 모양이네요.”
장목화의 말문이 막혔다. 이는 그녀가 도출해낸 결론이기도 했다.
물론 이것이 유일한 가능성은 아니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장목화가 말했다.
“어쩌면 달지기가 자식을 도우려는 걸 막는 장애물이 있었는지도 몰라.”
“불쌍하네.”
성건우는 자식도 없는 사람이면서 달지기에 깊은 감정 이입을 했다.
시간이 부족한 탓에 장목화는 그쯤에서 얘기를 끊고, 두어 마디 당부를 한 뒤 연락을 중단했다.
* * *
성건우와 게네바는 곧장 수술실을 나와 옆방으로 들어갔다.
꽤 넓은 서재였다. 책장들에는 책이 가득 꽂혀 있었고, 곳곳에는 사다리까지 놓여있었다.
서재를 한번 둘러보던 게네바는 음악, 그림, 조각 등 예술 영역 책과 의료 보건 영역 책들을 발견했다.
[건강을 유지하는 법] [심장을 아껴라] [두뇌 열기] […]“방 주인은 다양한 영역에 관심이 있었나 보네.”
게네바가 기본적인 판단을 내렸다. 책에 근거해서 단서를 찾고자 했던 구조팀의 계획에는 심각한 타격이었다.
이내 바이저를 내릴 생각이 없는 듯한 성건우가 웃으며 말했다.
“구세계 파괴 이후 인간이 즐길 수 있는 오락은 극도로 적어졌으니까. 독서밖에 없지.”
다음 순간 그가 스스로에게 반박했다.
“누가 그래? 커닝미스의 지배자인 달지기 아들의 즐거움은 네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일걸!”
“그러는 너는 꼭 그 즐거움을 상상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한다?”
성건우들이 입씨름을 시작했다.
게네바는 뭔가 그의 병세가 점점 심해지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워졌다.
그가 막 싸움을 말리려던 그때, 군용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성건우가 돌연 창가에 붙은 책상으로 다가갔다.
펜과 책 등이 놓인 책상에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액자가 하나 있었다.
오른손으로 그 액자를 집어 든 성건우가 본인 쪽으로 돌렸다.
사진 속에 두 남자가 있었다. 한 명은 중년, 다른 한 명은 20살도 채 안 되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