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ienced Newbie RAW novel - Chapter 149
149
마녀의 여왕
씩씩대며 걸어온 수아람이 현의 팔을 잡았다. 본능적으로 저항하려던 현은 수아람의 눈가에 매달린 눈물을 보고 손에 힘을 줄 수 없었다.
그녀의 살벌한 눈빛에 에이네와 이성철은 입도 뻥끗 못 했다.
수아람은 그대로 현을 질질 끌고 방으로 돌아갔다.
쾅!
문이 닫히고 남겨진 두 사람은 멀뚱히 문을 바라봤다.
“부녀 상봉에 끼어드는 건 예의가 아니겠지?”
에이네가 어색하게 말했고.
“그렇지.”
이성철도 어색하게 대답했다.
***
현을 침실로 끌어들인 수아람은 현을 침대에 던진 다음 자신도 침대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팔과 다리를 이용해 현에게 매달렸다.
“음. 아람아?”
“잠깐만, 잠깐만 이대로 있어요. 오빠.”
“… 아까는 아빠라더니.”
“잘못 들으신 거예요.”
현이 한숨을 쉬었다. 현이 수아람을 주었을 때, 현의 나이는 27살이었고, 수아람은 8살이었다. 부녀 사이라고 보기엔 애매하고, 오빠라고 부르기엔 큰 나이 차였다.
수아람은 철들 무렵까지는 현을 아빠라고 부르다가, 어느새 호칭이 오빠로 바뀌었다. 그 마음을 아는 현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현에게 수아람은 그저 귀여운 딸이었다.
몸을 일으키려는 현을 수아람이 붙잡았다.
“잠깐만. 잠깐만 이대로 있어요.”
수아람의 몸은 잘게 떨리고 있었다. 현은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고생했다. 그리고… 미안하다.”
“그걸 아는 사람이 왜 연락도 없어요.”
울먹이는 목소리에 현은 계속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현이 수아람을 만났을 때는 튜토리얼도 없던 때였다. 사람 한 명 없는 평야에 떨어져 몬스터를 피해 하루하루 지옥처럼 살아가던 수아람을 발견한 게 현이었다.
불안해하는 수아람을 위해 그때는 자주 이렇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수아람이 잠들 때까지 곁을 지키고는 했다.
“미안하다. 미안해.”
수아람이 잠들 때까지 현은 앵무새처럼 그 말만 반복했다. 부모랍시고 거둬놓고, 정작 현이 그녀에게 부모다운 행동을 해준 적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근원 세계나 이해득실을 우선했다.
주변의 도움이 없었다면 수아람을 이렇게 키워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부모 실격인 아비를 아직 아비로 생각하는 수아람이 고마웠고, 또 미안했다. 진짜 부모가 아닌, 부모의 감정을 모르는 현이 딸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이 정도였다.
“그러면 앞으로 잘하시던가…….”
중얼거림을 끝으로 수아람이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들었다. 현은 잠든 수아람을 조심히 떼어놓고 밖으로 나왔다.
“부녀 상봉은 잘 끝냈어?”
현이 난처하다는 듯 시선을 피했다. 에이네는 그걸 보고 더욱 신나 까불었고, 그러다 가족의 철퇴를 맞았다.
“엎드려. 아람이가 일어날 동안 너는 카펫이다. 누가 허튼 수작 못하게 입구나 지키고 있어.”
에이네가 바닥에 엎어졌다. 엎어진 채로 그녀는 눈만 돌려 현을 노려봤다. 현은 에이네를 완전히 무시하며, 발로 밟고 지나갔다.
“애들도 안 할 싸움을 하고 있는 게 지구 최강과 최후의 안드로이드라고 하면 누가 믿을까.”
“너도 우리랑 별로 차이 없거든?”
“적어도 난 그 정도는 아니다.”
현과 엎어진 에이네의 시선이 동시에 이성철에게 향했다. 이성철은 큼큼 헛기침했다.
“어쨌든 아니다.”
“본인이 부정해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건 조율의 신자뿐이야. 현실을 받아들여.”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이성철은 아예 화제를 돌렸다.
“아까 죽인 마녀들. 마녀의 나라의 주축들 아니었나? 모두 죽이면 타격이 클 텐데.”
현은 알면서도 속아줬다. 한 번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기도 했다.
“관리자 겸 주 전력이었던 년들이 모두 죽었으니 당연히 타격이 크지. 마녀의 나라는 사실상 망했어. 외교는 불가. 자기방어만 겨우 수행하겠지. 마녀의 나라가 수성에는 좋으니까.”
“복구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소 수십 년.”
“나라 하나를 시원하게 말아먹었군. 도착한 당일 말이야. 꼭 그렇게 다 죽여야 했나?”
“그 정도로 노골적인 따돌림을 몰랐다는 것도 죄고, 방관했다는 것도 죄야. 왕정 국가도 아니고 왕의 힘에 의존해 성립하는 나라가 왕을 무시한다면 망해도 싸. 그리고 누가 망하게 놔둔데?”
현은 옥좌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
-망하면 어떻게 되냐고 묻더니 나라를 그 꼴로 만들어놔?!
현이 마녀의 나라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하자마자 터진 윌리엄의 고함이었다. 현이 양자폰에서 귀를 떨어뜨리며 변명했다.
“잘못하면 아람이가 죽었을 거라고. 안 빡치게 생겨? 위원회에 나가 있던 마녀들을 잡아 고문한 게 누군데.”
-그건 내가 아니라 우가혁.
“시킨 건 너겠지. 그런데 그놈 결국 걸렸네.”
-운 좋게 셜록키언이 잡아냈어. 그나저나 하아… 이제 어쩔 거냐. 위원회가 마녀의 나라와 맺은 협약. 잊진 않았지?
“주술 고문. 그리고 주술과 관련된 사건의 해결까지.”
주술은 한 번 배우면 편리하지만, 배우는 과정 자체가 까다로운 힘이다. 그리고 주술을 경지까지 배우는 것은 더욱 힘들었다. 일정 경지 이상의 주술사와 술법사를 배출하는 곳은 정해져 있었고, 마녀의 나라는 그중 최고였다.
마녀의 나라의 모든 백성은 마녀고, 모든 마녀는 주술을 배운다. 극소수의 인재들에게만 주술이 허락되는 여타 국가, 조직이나 세상을 등지고 소수만 모여 살아가는 곤륜과는 주술사의 단위가 달랐다.
근원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고들에 대처하는 데 필요한 건 인력이다. 그런 면에서 마녀의 나라는 딱 맞는 조건을 가지고 있었고, 마녀의 나라는 위원회와 동등한 협약을 맺을 수 있었다.
-지금은 네가 있던 시절이 아니야. 마녀의 나라가 협약을 지키지 못하면, 이쪽에선 협약을 깰 수밖에 없어.
그건 마녀의 나라가 위원회의 비호에서 빠져나온다는 것을 의미했다. 마녀를 노리는 사람은 많았다. 마녀들은 다양한 금주를 알고 있으며, 시간이 넘치는 마녀들은 미용에도 상당한 시간을 투자한다. 그래서 마녀는 대부분이 아름답다.
다재다능하고 아름다운 마녀는 노예 사냥꾼들의 좋은 표적이다.
“안 깨져. 마녀는 꾸준히 파견할 테니까. 그리고 현장에서도 뛰도록 할 거니 위원회 입장에서도 좋지.”
-마녀를 현장에서?
“자세한 건 나중에 아람이한테 물어. 사흘 뒤면 왕위 선양도 끝나 있을 거니까.”
-선양이라니, 너 설마…….
“진작 넘겨줬어야 했는데 너무 오래 잡고 있었어. 은퇴할 사람이 왕 같은 거창한 이름을 달고 뭘 하겠다고. 끊는다.”
-야, 은퇴는 또 무슨 소리…….
전화를 끊은 현은 전화가 와도 알 수 없게 양자폰을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그리고 옥좌에 앉았다. 마녀의 나라 전체 풍경이 머리에 들어왔다. 마녀의 나라 안에 있는 수십 개의 금지도 함께.
금지는 모두 해악만 끼치는 게 아니다. 마녀 육성을 위해 만들어졌다가, 그 시설이 폭주해 접근이 금지된 장소도 존재했다. 현은 그 금지의 봉인을 풀었다. 현은 봉인을 푸는 방법을 모른다.
전적으로 현이 마녀의 왕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봉인을 푼 현은 남은 관리직에 있는 마녀들을 불러 모았다. 릴리리카를 포함한 파수꾼처럼 다른 마녀와 왕래가 없는 일을 하던 자들만이 숙청에서 살아남았다.
앞에 선 다섯 마녀에게 현은 다시금 질문했다. 문제가 있는 걸 몰랐느냐, 알고도 모른 척 했느냐. 그녀들은 자신의 이름과 마녀의 이름을 걸고 모른다 했다.
“몰랐다 하나 무지는 무지로 죄가 된다.”
다섯 마녀가 땅에 머리를 박았다. 릴리리카가 그들을 대표해 말했다.
“직무에 정신이 팔려 정작 중요한 일을 소홀히 하고 말았습니다. 저희에게 벌을 내려주시옵소서.”
“너희들을 이 시간부로 현재 직위에서 해임한다. 릴리리카, 잉, 더틀. 각자 재능을 보이는 마녀 백 명을 데리고 위원회로 가라. 가서 개처럼 구르며 위원회에 협력해라. 몇 명이 죽어도 상관없다. 혹독하게 몰아붙여 그녀들을 나라의 차기 기둥으로 만들어라.”
-명을 받들겠나이다.
“슈와게츠, 이스트라빌. 너희는 각자 천 명의 마녀를 뽑아 금지된 수련장으로 가라. 가서 마녀들을 수련시켜라.”
“하지만 전하, 금지된 수련장은…….”
현이 마녀 슈와게츠의 말을 끊었다.
“죽으면 그 자리를 다시 사람으로 채워라. 인원은 항상 이천 명이 유지되게 해라.”
두 마녀가 숨을 삼켰다. 그녀들의 귀에는 지금 왕이 마녀들을 떼죽음시키라는 말로 들렸다. 금지는 이름만 금지가 아니었다. 일반 마녀가 금지에 들어가면 죽는다.
“관리자들이 기를 쓰고 숨겼어도 눈치 빠른 원로들이 그걸 몰랐을 리가 없다. 알고도 움직이지 않은 자, 알려고도 하지 않은 자. 모두 죄인이니 이건 내가 왕으로서 내리는 마지막 형벌이다.”
현이 손을 휘저었다.
“이만 나가봐라.”
다섯 마녀가 나가고, 혼자 남은 현이 눈을 감았다. 옥좌의 힘이 그의 영혼에 있는 왕의 증표를 보여주었다.
이게 진짜다. 현은 딸에게, 차기 여왕에게 줄 왕관 만들기에 집중했다.
***
릴리리카는 현의 명령을 확실하게 지켰다. 복수 재판에 매달린 마녀를 제외한 모든 마녀는 늙고 병들었지만 꾸역꾸역 살아 있었다.
현은 마녀의 나라 전역에서 마녀들을 불러 모았다. 성 밖 광장에 마녀가 모여들었다.
“쟤들은 왜 또 저래?”
“나도 잘 모르겠군.”
이성철과 에이네는 마녀들을 영 모르겠다는 듯 보고 있었다.
마녀들은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독극물을 끓이던 가마솥에 수프가 끓고 괴악한 먹거리가 공짜로 뿌려졌다. 마녀들의 출신 문화와 종족은 다양했고, 축제는 그만큼 개판이었다. 그래도 마녀들은 즐거워보였다.
서로 다른 종족이 모여 웃고 떠든다. 갈등일랑 없어 보였다. 요정과 수인이 춤추고, 엘프와 고블린이 고기를 뜯는다. 취한 자들의 사소한 다툼을 빼면 모두가 평화로웠다.
“저들에게 여기는 진짜 낙원이니까. 평소에 모이기도 힘드니 이렇게 모이면 몇 날 며칠이고 놀고먹어.”
기척도 없이 다가온 현이 말했다. 에이네가 못마땅하게 말했다.
“그걸 아는 놈이 그런 벌을 내려?”
“왕의 시선과 사람의 시선은 달라야 한다. 누가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이지. 저들이 웃을 수 있는 건 마녀의 나라가 있기 때문이야. 마녀의 나라가 사라지면 저런 축제도 더는 없어.”
현은 앞으로 나갔다. 마녀들에게서 환호성이 울렸다. 십자가에 매달린 마녀들이 타올랐고, 환호는 더욱 커졌다.
여긴 그녀들이 자신의 손으로 쟁취한 낙원이었다. 한 가닥 희망에 목숨을 걸고 여행길에 올라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겨 도착한 낙원. 그 낙원을 망가뜨리려 한 마녀들은 그녀들에게 부모의 원수보다 더한 적이었다.
타오르는 불꽃 위로, 성의 테라스에 선 현의 손 위로 붉은 왕관이 떠올랐다.
환호하던 마녀들도 입을 다물고 숨을 삼켰다.
“공주는 앞으로.”
“네, 아바마마.”
수아람이 침을 꿀꺽 삼키며 앞으로 나왔다. 그녀는 몇 번이나 왕위를 거절했다. 그러나 현의 고집은 꺾을 수 없었다. 현의 말도 있었다. 왕위를 물려주고 나라에서 떠나면 서로의 가족 관계는 사라진다고.
사람의 마음을 이용하는 비겁한 말이었지만, 수아람은 그 말에 혹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녀는 선양에 동의했다.
“이 순간, 새로운 여왕이 탄생한다.”
현이 붉은 왕관을 수아람의 머리에 씌웠다. 왕관은 스르륵 녹아 수아람의 몸으로 사라졌다. 그녀는 자신의 영혼에 스며드는 왕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지는 힘까지도.
수아람은 막대한 힘에 몸을 떨었다.
마녀의 나라에서 왕가의 혈통이 끊어지면 관리자를 맡은 마녀 중 새로운 여왕이 뽑힌다. 수아람은 관리자들이 왕관을 탐낸다는 건 알았지만,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직접 써 본 왕관은… 저들의 욕심과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위대했다.
“오빠. 산맥 쪽에서 뭔가 오는데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현이 씩 웃었다. 역시, 마녀의 왕관은 마녀가 써야 했다.
“여왕이잖아. 하고 싶은 대로 해.”
“네.”
저 멀리 보이는 산맥, 만년설로 뒤덮인 산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연달아 일어난 폭발은 하늘로 올라가 다시 폭발하며 성대한 불꽃놀이를 만들었다.
낮에도 선명하게 보이는 강렬한 불꽃이었다.
“마시고, 취하고, 즐겨라! 여왕의 첫 명령이다! 건배!”
수아람의 선창에, 광장이 떠나갈 듯한 후창이 뒤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