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ienced Newbie RAW novel - Chapter 194
194
미친년!
그레이트 다운타운은 세계의 어둠이다. 빛이 밝을수록 어둠 또한 짙어진다. 위원회는 빛이었다. 유사 이래 가장 찬란히 빛나는 빛. 그리고 그만큼 어둠 또한 컸다.
위원회의 존재가 그레이트 다운타운을 낳았고, 성장시켰다. 그레이트 다운타운은 세계의 똥통이며 세계의 어둠이 되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다. 그러나 빛이 사라진다고 어둠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빛이 사라지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건 또 다른 어둠이다. 마찬가지로 위원회가 약해진다고 그레이트 다운타운이 약해지는 일은 없었다.
반대로 빛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에 그레이트 다운타운의 어둠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리센은 그 어둠의 주인된 자리에 있었다.
“위원회 사람과 건설적인 대화할 날은 다시 안 올 줄 알았는데.”
“엄밀히 말하면 저는 위원회 사람이 아니니까요. 계약 때문에 돕고 있을 뿐.”
리센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휘헌은 그의 앞에 서서 지루한 듯 옷자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런 걸 지구에선 비정규직, 계약직이라고 부르지.”
“저는 위원회에 속할 생각도, 관련될 생각도 없어요.”
관련 주제로 더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단호함에 리센이 화제를 돌렸다.
“추적은 아직인가? 찌란을 붙여 줬을 건데.” “그렇게 간단히 잡을 수 있다면, 1년 넘게 이렇게 고생하고 있지도 않았겠죠. 바깥을 둘러싼 병력에 대한 대책은 있는 건가요?”
“그건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아뇨. 걱정해야겠어요. 저 병력이 그레이트 다운타운으로 몰리는 이유도 모두 프로만 리슈타인 때문이니까.”
“나 때문이기도 하고.”
그레이트 다운타운은 포위되고 있었다. 그건 단순한 포위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그레이트 다운타운과 외부를 연결하는 모든 고리가 천천히 끊어지고 있다. 그레이트 다운타운은 고립되고 있었다.
도시 하나를 둘러싸는 것과는 다르다.
그레이트 다운타운은 밤의 제국이라 불리고, 그 규모도 제국이라는 이름에 뒤지지 않는다. 제국 하나를 조여 죽인다. 이런 일을 태연하게 저지를 수 있는 집단은 하늘 아래 위원회밖에 없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위원회 간부들을 암살하고 다니던 리센이 꼬리를 잡혔고, 비록 리센이라는 인물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레이트 다운타운을 지배하는 단 한 명의 지배자의 존재에 위원회가 위협을 느꼈다.
최근 세계 각지에서 터지고 있는 생화학 폭탄의 중간 유통지가 그레이트 다운타운이다.
두 가지 요소가 겹친 결과 위원회는 그레이트 다운타운의 소멸을 결정했다.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분열되고 있는 위원회가 드물게 제대로 된 회의까지 거쳐 내놓은, 위원회의 통일된 선택이었다.
위원회의 총의가 가진 힘은 강력했다. 열흘도 안 되는 사이 그레이트 다운타운을 구성하는 외적 요소들이 빠르게 붕괴했다. 외부와의 상행이 끊어지고, 그레이트 다운타운과 이어진 도시와 마을이 사라졌다.
위원회의 총의 앞에 도덕과 윤리는 무시되었다. 그들은 그런 것에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위원회가 일을 행하니 위원회가 곧 윤리요 도덕이었다.
그리하여 죄 많은 사람이 죄 없이 죽었다. 그레이트 다운타운에 한 발 걸치고 있는 만큼 그 도시들에도 제대로 된 사람은 많지 않았겠지만, 정작 그들의 죽음은 그들의 죄와는 관계없는 일로 찾아왔다.
“편하게도 이야기하는군요. 누구에겐 목숨이 달린 문제인데.”
방에 나타난 네티가 심기가 불편한 눈빛으로 리센을 보았다. 리센은 눈 하나 깜짝 않고 답했다.
“내 목숨이 아니니까.”
“당신이 지하에 숨긴 것들이 어찌 되어도 좋단 말인가요?”
리센과 깊은 관계를 맺지는 않았지만, 네티는 토지의 주인으로서 그레이트 다운타운의 지배자인 리센의 동향을 살필 필요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빌딩 지하에 무언가가 있다는 걸 알았다. 안에 무엇이 있는지까지는 그녀도 알 수 없었다. 지하를 감싼 마법은 그녀도 엿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네티의 협박에도 리센은 느긋했다.
“비밀 창고는 옮길 수 있지. 시작은 다시 하면 되고. 부하는 다시 키우면 돼. 땅에 묶여 있는 누군가와는 다르게.”
그녀의 정체를 암시하는 발언에 네티가 손을 떨었다. 그러나 곧 평정을 되찾았다. 리센이 어떤 과정을 거쳐 그레이트 다운타운의 주인이 됐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다. 리센이 이렇게 나오리란 건 예상했다.
“당신이 일을 해결할 생각이 없다면, 제가 자의로 처리해도 괜찮다는 거겠죠?”
“그걸 일일이 나에게 물을 이유가 있나?”
“도시의 주인인 당신이 방해한다면 귀찮아질 뿐이니까요.”
각종 괴담의 주인으로 암중에서 영향력을 키워온 네티가 직접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은 많지 않다. 그리고 그 현상은 리센이라는 절대적인 한 명이 등장하며 더욱 심해졌다.
그녀가 하려는 일에 리센이 훼방 놓는다면, 그게 무엇이 됐든 목적을 이루기는 매우 힘들어진다.
“그레이트 다운타운에서의 목적은 거의 이뤘다. 방해할 이유도 없다.”
사실이었다. 리센이 그레이트 다운타운에 터를 잡은 이유는 도시를 차지하고 힘을 길러 위원회에 대적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 목적은 거의 이뤘다. 윌리엄의 의뢰로 무능한 임원 상당수를 처리했다.
또 요령만 부리면 그레이트 다운타운 없이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위원회는 분열되고 있었다. 이간질만 잘 해주면 남은 것들을 청소하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레이트 다운타운에 집착할 이유가 없었다.
“그 말 꼭 지키길 빌게요.”
네티가 사라졌다. 선선한 물러남에 리센이 찌란을 불렀다. 찌란이 천장에서 떨어졌다. 하루 이틀의 만남이 아니다. 그는 리센이 무얼 명령할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클클. 토지의 주인을 쫓는 건 나라도 쉽지 않아. 그것만 알아두게.”
바람처럼 나타났던 찌란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
“그런 이유로. 그레이트 다운타운이 사라지게 생겼어요.”
“그레이트 다운타운이 사라지면 너는 어떻게 되지?”
네티에게 그레이트 다운타운이 처한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은 이성철의 첫 말이었다.
“당장은 약화될 거고, 그 후 천천히 사라지겠죠. 그레이트 다운타운에 새로운 마을이 들어선다면 모르지만… 여긴 지리적으로 그렇게 좋은 땅이 아니니까요.”
그레이트 다운타운이 번성했던 건 그레이트 다운타운이 범죄자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범죄자들이 맘껏 날뛸 수 있다는 점을 빼면 이 땅은 도시가 생기기에 그리 매력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한 번 사라진 도시가 다시 세워질 일은 아마 없다.
“다른 땅으로 이사할 수는 없나?”
“제가 아는 바로는 없어요. 뛰어난 주술사라면 뭔가 알지도 모르지만.”
“그런가.”
그레이트 다운타운의 전망은 좋지 않다. 위원회의 세력이 예전 같지 않다지만, 그건 그들이 뭉치지 않아서다. 일시적으로라도 손을 잡는다면, 그레이트 다운타운은 바람 앞의 등불이 된다.
네티는 버리기 아까운 패였다. 그녀가 수집하는 다양한 정보들은 이성철은 얻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현은 이성철의 시선에 어쩔 수 없이 양자폰을 들었다. 이럴 때 써먹기 딱 좋은 호기심 많고 참견하기 좋아하는, 정확히는 장난치기 좋아하는 인물이 하나.
연락을 받은 해당 인물이 뿅 나타났다.
“내 몸값은 비싼 거 알지?”
프라그하가 빙글 돌자 아슬아슬한 옷이 아슬아슬하게 펄럭였다. 부적을 엮어 만든 옷은 빈말로도 잘 만들었다고 칭찬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입은 사람이 엘프의 피를 이은 프라그하기에 그나마 옷처럼 보였다.
“그러면서 늘 싸구려였지.”
“허, 오지랖 덩어리가 하는 말하곤. 나한테 부탁 하나 하러 왔다 까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일정 수준 이상 되는 주술사는 위원회에서도 대접받는 귀중한 인력이다. 마녀가 직접 현장에 나간다는 조건만으로 마녀의 나라는 김우현이라는 전력의 부재를 메우며 위원회 내부에서의 발언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대주술사인 프라그하에게도 부탁이 쏟아질 것이다. 그러나 그건 그치들 이야기.
현이 원래의 몸을 가지고 있을 때는 프라그하가 재미있는 일은 없냐고 현에게 칭얼대는 처지였다.
살 만큼 산 프라그하의 흥미를 끄는 일은 좀처럼 없었고, 오지랖 때문에 여기저기 간섭하고 다니던 현은 늘 사고를 몰고 다녔다. 프라그하는 거기 한 발 걸쳐서 일을 해결하거나 사건을 키우는 일을 했고.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흥미진진하게 설명을 듣고 네티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프라그하가 입을 열었다.
“옮길 수 있어.”
“정말인가요?”
네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러나 바로 이어진 프라그하의 말에 기껏 펴졌던 얼굴이 찌그러졌다.
“1% 확률로.”
“… 별로 듣고 싶진 않지만, 무슨 뜻인가요?”
“첫째, 네 영혼은 땅에 묶이다 못해 땅 그 자체가 되었다. 둘째, 토지의 주인이라는 주술 자체가 희귀한 주술이다. 선례도 몇 없고, 파생 주술이 발생할 만큼 유명하지도 않다. 고로 1%. 주술사가 늘어날수록 확률도 늘어나겠지만, 네가 토지의 주인이라는 걸 만방에 알리고 싶어?”
“아뇨.”
네티가 단호히 고개 저었다. 토지의 주인은 강하다. 그러나 주술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한계가 있다. 약점을 파고들면 파고들 구석은 많다.
주술사들에게 좋을 대로 이용당하고 버려질 것과 쓸쓸하지만 평온한 죽음. 그녀의 선택은 단연 후자였다.
“이사는 불가능하고. 그럼 다음은?”
프라그하의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보고 현이 물었다.
“안 가냐? 일 다 봤잖아. 나한테 뭐라고 해도 없던 일이 생기진 않아.”
“아니, 그게…….”
프라그하가 볼을 긁적였다. 그녀는 볼을 긁던 손가락으로 벽을 가리켰다.
“나도 이번 작전에 참여하던 사람 중 하나라서 위치 이탈해서 여기 온 거 들켰을 거거든? 이미 그레이트 다운타운에 연고가 있다고 의심을 샀을 거니 돌아가는 건 무리. 아니, 정상적으로 돌아가려면 반대로 실적을 내야 한다고 할까.”
현이 폐부에서 우러나오는 한숨을 길게 뱉었다. 바람 빠지는 소리가 에이네와 이성철의 심경을 대변했다. 프라그하가 어떤 인간인지 모르는 네티는 말의 뜻을 해석하느라 얼굴이 굳었다. 작전 이행 중 무단 위치 이탈.
즉결처형도 가능한 중죄였고, 그런 중죄를 위원회의 중진이며 대주술사라 불리는 여인이 태연하게 저질렀다는 것에 네티의 이성적인 사고가 따라가지 못했다.
“실적이라면 어떻게 할 거냐? 그레이트 다운타운을 박살 내게?”
“실적이란 게 꼭 긍정적일 필요는 없잖아?”
프라그하의 말을 정상적으로 알아들은 건 현 혼자였다. 그도 그럴 게, 발상이 딱 프라그하나 할 짓이었다. 이어지는 프라그하의 말은 모두를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위원회가 총의를 내린 이상, 절대로 그게 거둬질 일은 없을 거고. 그러면 차라리 위원회를 부숴버리자.”
“… 제정신인가?”
“와, 이 구역의 미친년이란 게 저런 거구나.”
이성철과 에이네가 각각 다른 의미로 감탄했다.
“저기, 괜찮은 건가요? 당신은 위원회 임원인 게?”
네티가 말을 더듬었다. 프라그하가 엄지를 척 추어올렸다.
“어차피 마음에 안 들던 놈들이었으니까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