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ienced Newbie RAW novel - Chapter 195
195
프롤로그
실적이 꼭 긍정적인 방향일 필요는 없다. 위원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기에 복귀하기 힘들다면, 그녀가 복귀해도 아무도 책하지 못할 정도로 위원회를 망가뜨리면 된다.
프라그하의 의견은 역발상이나 창의적인 발상이라는 영역을 넘어선 4차원 어딘가에 있었다. 그러나 무작정 부정하기에는 또 그럴듯했다. 최악의 사태 앞에 사형감의 죄를 저지른 지휘관을 불문에 부치는 일은 흔한 편이었다. 그게 유능한 지휘관이라면 더욱 그랬다. 그리고 프라그하는 유능한 지휘관보다 귀한 유능한 주술사였다.
현실성을 따져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레이트 다운타운의 현 주인은 리센이다. 이쪽은 토지의 주인에 대주술사도 합류한 참이다.
성공 확률을 계산한 에이네의 눈동자가 굴러갔다.
“이거 진짜 될지도?”
위원회와 싸워줄 필요는 없다. 요점은 위원회가 싸울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전투에서 벗어나면 수단은 비약적으로 늘어난다. 본디 압도적인 폭력 앞에선 잔재주가 통하지 않는 법이지만, 현재의 위원회는 압도적인 폭력이 아니다.
그 힘은 여전히 강하다. 그러나 안으로는 곪았고, 밖으로는 분열이 눈에 보일 정도다. 위원회 어플이 아닌 사회 관찰을 통해 정보를 얻는 과학조차 위원회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안다.
튼튼한 둑을 무너뜨리긴 쉽지 않지만, 구멍 숭숭 난 둑은 시간에 무너지는 법이다. 해야 할 일은 간단하고 명확하다. 둑에 난 구멍 근처에 대고 망치질 몇 번, 끌질 몇 번 해주면 된다.
위원회라는 거대한 둑에 대고 망치를 휘두르고 끌을 가져다 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겠으나, 둑 전체를 무너뜨리는 것에 비하면 쉬운 일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걸 충분히 성공시킬 수 있는 사람들까지 갖춰져 있다.
“확실히 재미있는 이야기군.”
문이 열리며 찌란과 리센이 들어왔다.
현은 찌란이 은신술을 풀고 나서야 둘을 알아차렸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숨길 수 있는 은신술. 전설의 대도라 불리던 도둑의 실력은 여전했다.
“왔냐. 그런데, 예상 밖의 인물도 함께 있군.”
현이 인사를 건넸다. 찌란의 정보 수집 능력과 추적 능력은 익히 아는 바다. 찌란을 거느린 리센이 그레이트 다운타운까지 손에 넣었다. 리센이 만나길 원하다면, 그와 만나는 건 필연이었다.
그러나 옆에 있는 인물은 의외였다.
“세 분 모두, 헤어진 지 얼마 안 되었지만 그래도 정말 반갑습니다.”
휘헌이 리센과 같이 있을 줄은 몰랐다.
정중한 인사를 마치기 무섭게 휘헌은 에이네에게 매달렸고, 해후를 나누는 두 사람을 놔두고 현은 리센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떻게 된 일이지?”
“그레이트 다운타운에서 일어나는 일을 해결하기 위해 그레이트 다운타운의 주인에게 협력을 부탁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지.”
휘헌은 윌리엄과의 개인적인 계약 관계로 프로만 리슈타인을 쫓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레이트 다운타운은 생화학 폭탄 거래의 허브다. 프로만 리슈타인을 잡기 위해 리센의 도움을 빌리는 것도 신기해할 일은 아니었다.
네티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방해하지 않는 거 아니었나요?”
“방해가 아니라 도움이라면 해당하지 않는 약속이다.”
“뻔뻔하군요.”
“거점을 지키는 데 필요한 게 뻔뻔함이라면, 얼마든지 뻔뻔해질 수 있다.”
비밀 창고야 얼마든지 옮길 수 있다고 말은 했지만, 리센이 그 창고에 들인 돈과 정성은 보통이라는 말로 끝날 게 아니었다. 토지의 주인을 속이는 은, 엄폐가 갖춰진 창고가 흔할 리 없었다. 그게 지하 3천 미터에 달하는 창고라면 더더욱.
“방법은 있겠지?”
현이 리센에게 물었다. 리센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없다. 무능한 것들은 대부분 암살됐다. 위원회의 진짜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놈들은 죽고, 위원회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아는 놈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막장으로 흘러가던 위원회가 총의를 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어지간한 일로는 분열되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
예상보다 훨씬 갈등이 심하다는 것만 빼면 지금의 위원회는 리센이 상상하던 이상의 위원회에 가까웠다. 능력 있는 자들이 이끄는 세계 최강의 집단. 임시지만 그 힘이 뭉쳤다.
잠시 고민한다고 파고드는 걸 넘어 와해시킬 방도가 떠오르는 무른 조직이 아니다.
“자부심 넘치는 건 좋은데, 그거 때문에 망하게 생겼거든.”
현이 혀를 찼다. 위원회 고위 간부 암살 소식 같은 건, 당연히 어플에는 올라오지 않는다. 위원회의 근간은 무력 집단, 일종의 군대다. 군대 총지휘관 중 하나가 암살당했다고 동네방네 떠벌렸다간 군대의 사기는 물론이고 군대의 평판마저 떨어진다.
죽은 사람은 죽은 게 아니라 주화입마나 자진 사퇴 정도로 처리되어 후임자가 자연스레 그 자리를 물려받았을 것이다. 후임이 해당 세력 소속인 건 말해 입만 아픈 사실이고.
“망하면 망하는 대로 상관없다. 여기도 언젠가 정리되어야 하는 쓰레기장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으니까.”
“이득만 보시겠다?”
위원회가 타격을 입든 그레이트 다운타운이 사라지든 리센이 손해보는 건 없다.
“사람이라면 그러고 싶어 하는 게 당연하다.”
뻔뻔하고 당당한 대답이었다.
***
윌리엄은 오랜만에 전선에 나섰다. 리센 축출 작전 이후 처음이었다. 그는 다섯 개의 아티팩트를 점검하고 있었다. 이론상 1억 년도 버티는 아티팩트지만, 그래도 혹시라는 게 있으니까.
‘…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 시점에서 그레이트 다운타운을 건드려서 좋을 게 전혀 없었다. 리센은 도망가겠다고 했지만, 그 인간이 손만 놓고 도망갈 리가 없었다. 선물 하나는 준비해놓고 갔겠지.
위원회는 그걸 모른다. 리센이 그레이트 갓 파더, 세상 모든 범죄자의 정점에 있다는 걸 모른다. 알았다면 이렇게 무식한 방법은 쓰지 않았을 것이다. 금지된 핵을 쓰든 대규모 섬멸 마법을 사용하든 그냥 원거리에서 도시만 지도에서 지워버렸겠지.
핵은 금지되어 있지만, 그 금기를 정한 건 위원회와 드래곤이다. 드래곤의 동의만 얻어내면 위원회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을 합법적으로 쓸 수 있는 집단이다. 그 법이란 것을 위원회가 정하니 신기할 것도 없는 사실이지만.
아티팩트를 손질하던 윌리엄은 은밀한 마력의 유동을 느꼈다. 지척에서도 희미하게 느껴지는 손질된 마력. 이런 일이 가능한 사람은 그가 아는 한 한 사람뿐이다. 윌리엄은 그대로 마력에 몸을 맡겼다.
약간의 어지러움에서 회복하자 그곳은 세상의 끝이었다.
세상의 끝에는 로드 말고도 두 사람이 더 있었다. 윌리엄은 그중 한 사람을 보고 멋쩍게 웃었다.
“이거, 스승 실격이겠지?”
로테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 사부님은 영원히 사부님 한 분뿐입니다.”
“제자가 초월자가 될 때 도움도 주지 못한 사람이 사부는 무슨. 아무튼, 축하한다.”
“이제 겨우 벽 너머에 발을 디뎠을 뿐입니다. 아직 멀었어요.”
그가 보지 못했던 사이 로테는 초월자라 불리는 영역에 들어서 있었다. 분명 재능은 있었지만, 이토록 단기간에 가능하리라곤 윌리엄도 예상하지 못했다. 기연이 있었거나, 대전과도 비교되는 아수라장을 거쳐 왔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 번도 도움을 청하지 않은 제자가 대견하면서도, 미안해지는 윌리엄이었다.
“레벨은 몇이니?”
“953이요.”
“준수하구나.”
근원 세계니 일반적이 기준밖에 되지 않지만, 낮은 레벨에 벽을 넘는 다는 건 재능이 뛰어남을 뜻한다. 남들이 신체를 단련하고 마력을 쌓아 벽을 부술 때, 오로지 재능만으로 그걸 뚫어낸다는 것이니까.
“회포는 풀었나.”
로드의 음성이었다. 세계의 끝을 지키는 드래곤은 오늘도 금빛 거체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대 권능 융합 주문은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미완성품일 뿐이다.”
로드의 미미한 불쾌감이 전해졌다. 마법의 성인으로서 미완성 마법을 내놓은 게 마음에 안 드는 거겠지. 그러나 그 미완성 마법을 보고 대마법사라 불리는 자들이 까무러쳤으며, 아직 원리를 모르고 있었다. 단지 로드가 가르쳐준 이론대로 마법을 사용하는 게 그들의 한계였다.
윌리엄도 그들과 같은 신세였지만, 다른 마법사들처럼 좌절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마법의 성인, 세상 모든 마법에 통달한 존재가 만든 마법을 완벽히 이해하면 그게 바로 마법의 화신일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절 부르신 겁니까?”
로드가 아무 말 않고 있던 이선을 슬쩍 바라봤고, 웃는 낯의 이선이 앞으로 나왔다. 로테의 안색이 나빴다.
“헌신으로 세상을 구하는 분께 한 말씀 묻겠습니다.”
현기가 깃든 말이었다. 인간 이선이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상징인 아벨도 아닌 도사이자 선각자 이선으로서 건네는 물음이었다.
“당신은 세상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러면, 세상은 나에게 뭘 주지?”
“최소한의 폭력과 최대한의 안정.”
윌리엄의 대답에 망설임은 없었다. 세상과 나.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무엇을 택할 것인가. 윌리엄 안에서 그 대답은 이미 예전에 나와 있었다.
“내 목이란 건. 참으로 비싸게 치는군.”
“다섯 별의 축복을 받은 사람의 목숨이 싸구려일 리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난 뭘 하면 되지?”
“전쟁을 일으켜 주시면 됩니다. 전 세계가 말려들 대전쟁을.”
“그래서 날 이때 부른 건가.”
판은 바깥에 깔려 있다. 반목하던 위원회가 임시로 손을 잡고 그레이트 다운타운을 노리고 있다. 분란을 일으키기 딱 좋은 환경이다.
“나치라면 학을 뗐는데, 내가 전범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윌리엄이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리고 이선에게 물었다.
“내가 뭘 하면 되지? 그리고 전범이 되기로 한 김에 이유도 좀 확실히 알아야겠어.”
“전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이선의 설명이 시작됐다.
***
“아, 맞다. 여기 폭탄 있었지.”
어떻게 위원회에 파고들까 고민하던 중 프라그하가 난데없이 뱉은 말이었다. 그에 리센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하지만 좋은 방법이군.”
“그런 말을 할 거면 내가 없는 데서 해라.”
“그래서 반대하나?”
“다행히 믿음은 괜찮네.”
“그럼 뭐가 문제지?”
“음. 난 찬성.”
텔레파시라도 통하는 건지 셋은 툭툭 던지는 말로만 의사소통을 이어가는 신기를 보였다. 서로가 서로를 알기에 통하는 소통이었다. 지구인인 둘은 말할 것도 없고, 프라그하도 함께 싸워온 세월이 길었다.
“어찌 알아는 듣겠는데, 너희끼리만 알아듣는 대화는 적당히 해줄래?”
에이네가 다른 사람의 심경을 대변했다. 리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프로만 리슈타인을 찾아 폭탄을 거래할 거다. 그리고 그걸 위원회 병력 사이에서 터뜨린다.”
“어설프게 자극하면 반대로 진격 속도를 높이지 않을까?”
에이네가 말했다.
위원회가 바라는 건 그레이트 다운타운이 완전한 소멸이다. 고위층을 모두 놓쳐도 모든 일의 원인인 그레이트 다운타운이라는 도시만 지워버리면 된다는 식이다. 위원회는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그레이트 다운타운을 조여오고 있었다.
폭탄에 자극받은 위원회가 확실한 섬멸을 포기하고 그냥 밀고 들어올 가능성도 있었다. 그때 벌어지는 건 피할 수 없는 전면전이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되게 두진 않는다.”
“어떻게?”
“암살과 도둑질의 공통점이 뭔지 아나?”
“… 정보?”
“그놈들이 어떻게 나와도 상관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그놈들은 서로를 물어뜯을 거다. 유능한 권력자의 머리에 신뢰란 존재하지 않는다.”
리센이 확신에 찬 어조로 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