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094
1094화 기괴한 해변
“사악한 자들을 물리치시느라 고생이……. 이런 쳐죽일 놈이!”
노승과 대화를 하던 진양은 갑자기 분노하며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검은 기름 바다를 노려보았다.
해수면 위로 검은 기름이 나무뿌리처럼 생긴 촉수를 이루며 살랑살랑 손을 흔들고 있었다.
조금 긴 건 진양을 향해서 다가오기까지 했다.
한편, 노승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합장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진 시주,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말씀하실 건 아니지 않습니까? 소승은 정말로 오래전에 눈이 먼 소경입니다. 소경이라 소경이라고 한 것인데 어찌…….”
노승은 곤경에 빠졌다.
비록 진양에게선 강한 기운이 느껴졌지만, 경지는 그다지 높지 않다.
설령 수많은 보물을 들고 있다고 해도 그의 상대가 되기엔 부족하다.
다만 그렇다고 정말로 정면으로 맞붙는다면…….
만약 그가 살초를 펼치면 진양의 배후에 있는 대영 신조의 대제가 율종을 가만히 놔둘 리 없다.
아무리 율종이라도 대황 전체를 압도하는 신조의 제군이 달려든다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원한은 풀어야지 맺어서는 안 되는 법 아니겠습니까? 소승은 그저……. 응?”
노승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양은 씩씩거리며 검은 기름 바다 안으로 퐁당 뛰어들어버렸다.
노승은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도무지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난 삼천 년 동안 온갖 괴인이란 괴인은 다 만나봤지만, 오늘 만난 자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 * *
진양이 손에 쥔 금화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왔다.
이어서 진양의 몸이 정체불명의 존재와 맞닿으려는 순간 기이한 힘이 흘러나와 온몸으로 흘렀다.
대충 알 것 같았다.
장정의가 도착한 곳엔 분명 무언가 있는 게 확실했다.
물론 흘러들어온 분신의 기억 속에 들어있는 장면은 순식간에 끝나버리긴 했지만 간단하게 확인하는 정도는 충분했다.
그곳이 장정의가 찾던 혈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 맞는지 아닌지는 아직 모른다.
금화가 그곳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정체불명의 존재에 휘말려 들면 목숨을 잃는 건 사실이다.
녀석이 수도사들에게 극도로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곳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죽어서 들어가야 한다.
살아서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매명전을 가지고 있다면 얘기가 다르다.
다만 상고 지부의 돈이라고 하니 은표가 문득 떠올랐다.
진양은 은표 한 다발을 꺼내 사방으로 흩뿌렸다.
은표가 정체불명의 존재에게 닿자마자 촉수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버렸다.
진양을 노리며 날아오던 촉수도 마치 무언가에 의해 타격을 받은 듯 튕겨져 나갔다.
‘오호, 다행히 먹히는 모양이군.’
진양은 금화를 목걸이로 만들어 목에 걸고 양손에는 은표 다발을 하나씩 쥐었다.
금화는 단 하나뿐이지만 은표는 차고 넘칠 정도로 많다.
어차피 밖으로 가져가 봐야 불쏘시개로 쓰는 게 전부다.
쓸 데가 생겼다면 아낌없이 써야 하는 법.
검은 바다로 들어선 진양은 허공을 밟으며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갔다.
앞길은 금화를 이용하여 열었고, 사방에서 달려드는 촉수는 은표로 막아냈다.
아래로 내려가다 보니 더 이상 영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주위엔 알 수 없는 사악한 기운들로 가득했다.
진양은 한층 더 속도를 높였다.
대략 일 다경 후.
주위에서 뻗어오던 촉수가 동시에 물러나며 검은 기름 바다 안에 아래로 내려가는 통로가 열렸다.
“오호…….”
진양은 은표를 몇 다발 더 꺼내 뿌렸다.
은표는 검은 기름 안으로 빨려 들어가며 사라졌다.
진양은 검은 기름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고맙습니다.”
대략 계산해 보니 가지고 있던 은표의 삼 할을 이곳에 뿌렸다.
그러니까 가지고 있던 은표의 삼 할이 금화와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간단하게 통과할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거다.
싸움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가장 좋으니까.
진양이 통로를 따라 나아가는 사이 위쪽의 검은 기름은 여전히 출렁이고 있었다.
마치 ‘생각지도 못했군. 이렇게 많은 돈을 주다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진양이 금화를 거둬들이자 출렁이던 정체불명의 존재는 천천히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엔 어두운 하늘이 나타났다.
마치 깊은 밤하늘과 같은 검푸른 색을 띤 하늘이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회흑색을 띠고 있었다.
사방에 영기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고 대신 기괴한 기운이 가득했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불쾌한 느낌이 들었다.
외층 공간에서 느꼈던 것보다 한층 더 불쾌한 느낌이었다.
외층 공간은 영기는 희박하지만 그래도 일월성휘는 가득했다.
뿐만 아니라 각종 힘들도 조금씩은 느껴졌었다.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허공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대지는 감각을 최대한 개방하여 느껴보니 전부 황무지였다.
하늘에서 지면으로 내려온 진양은 손을 뻗어 검은 흙을 만져보았다.
쥐어짜면 금방이라도 기름이 흘러나올 것 같은 비옥한 땅처럼 보였지만 일말의 생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땅에선 생명력 질긴 잡초조차도 자랄 수가 없다.
분명 안정적으로 대지를 밟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전혀 안정적이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불안함이 느껴졌다.
마치 감히 발을 들여선 안 될 곳에 발을 들여놓은 것처럼 말이다.
진양이 손을 펼치자 손가락 사이로 흙이 흘러내렸다.
왠지 어디선가 느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한참 생각해 보니 예전에 망자의 무덤에 들어갔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처음 산하도의 사본 속에 있는 죽음의 세계에 들어갔을 때와도 비슷했다.
아니, 그것보단 훨씬 더 강렬한 느낌이었다.
마치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죽음의 세계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생명체와 대립하는 세계의 느낌이었다.
상당히 불쾌했다.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장정의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먼저 들어왔던 묵양, 백령, 그리고 순목 역시 보이지 않았다.
진양은 우선 앞으로 걸어 나갔다.
적막이 가득한 이 세계에서 들려오는 건 사각거리는 흙 밟는 소리뿐이었다.
작은 호흡마저도 폭풍이 휘몰아치는 듯한 소리처럼 느껴졌고, 심장 소리는 마치 천지에 울려 퍼지는 천둥소리와도 같았다.
두려움마저 느껴질 정도로 조용했다.
자신도 모르게 불안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잡음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잡음 사이에 끼어있는 기운은 이 세계의 변화 소리를 조금씩 만들어냈다.
어느덧 진양이 내는 소리 외에 다른 소리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한참을 걷던 진양은 돌연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성을 회복하고 냉정함을 되찾은 진양은 조용히 세계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쏴아- 쏴아-
마치 파도가 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진양은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달려 나갔다.
드넓은 평지를 지나 언덕 위 절벽에 오르자 파도 소리는 한층 더 커졌다.
진양은 절벽 끝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보았다.
절벽 아래에서 백 장도 채 안 되는 곳에 검은 모래로 이루어진 모래사장이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회흑색의 바닷물이 출렁이고 있었다.
바다는 시야가 닿지 않는 먼 곳까지 뻗어있었다.
그 끝이 어딘지는 알 수가 없었다.
진양은 다소 놀란 표정으로 검은 모래사장을 바라보았다.
셀 수 없이 많은 시체가 해안가를 따라 끝도 없이 널브러져 있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해도 요수, 요족, 괴수, 인간, 이족까지.
이 외에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이족의 모습도 보였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종족이란 종족은 전부 모여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시신은 모두 하나같이 회흑색으로 물들어있었다.
마음속에 피어오른 불편함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심지어 억누를 수 없는 혐오와 거부감마저 들 지경이었다.
진양은 우선 발걸음을 멈추고 최대한 마음을 다스렸다.
다행히 알 수 없는 혐오와 거부감 외에 별다른 위험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허공을 건너 검은 모래사장으로 넘어왔다.
손을 뻗어 널브러져 있는 한 노인의 시신을 만졌다.
능력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노인은 분명 죽은 게 확실하다.
진양은 노인의 시신을 꼼꼼하게 확인한 뒤 다른 시신도 확인해 보았다.
모래사장 가장자리에서 바닷물과 가까이 맞닿은 곳까지 이동하며 요수, 괴수, 이족, 인간의 시신을 모두 한 번씩 살펴보았다.
계속해서 해변으로 파도가 몰려왔으나 진양의 발에는 닿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진양에겐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았다.
바닷물에선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떠한 영수에 속하지 않은 물이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심지어 일반적인 바닷물도 아닌 듯했다.
모든 물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천일진수로 수련해낸 수신조차도 겉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바닷물에 녹아들 수 없을 듯했다.
진양의 시선이 발아래 있는 한 여인의 시신으로 향했다.
바닷물이 밀려오며 여인의 시신은 계속해서 모래사장을 나뒹굴고 있었다.
상당히 익숙한 차림새였다.
옷과 장신구만 보면 남쪽 국경지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차림새였다.
조금 다른 부분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같은 뿌리를 가진 지역 사람인 건 확실했다.
그녀는 대황 사람이 분명했다.
그녀가 입고 있는 검붉은 가죽 갑옷에는 이미 모든 힘을 잃은 부문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대황의 기준으로 본다면 이 부문은 대략 육만 년 전에서부터 일만 년 전까지 유행하던 부문이다.
자세히 보니 이 부문은 대윤 신조의 표식과 닮아있었다.
‘대윤 신조라…….’
생각해 보니 일행 중에 대윤 신조 황실의 사람이 있었다.
진양은 부문 흑옥을 꺼내 툭툭 두드렸다.
이어서 조청삼이 밖으로 나왔다.
“이게 뭔지 알아보겠어?”
유심히 부문을 살피던 조청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대윤 신조의 한 가문의 징표 같은데, 이게 뭔지 기억은 안 나네요……. 분명……. 분명…….”
조청삼은 말끝을 흐렸다.
그의 눈빛은 초점을 잃어 갔고 몸에서는 알 수 없는 회색빛이 은은하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죽음과도 같은 적막함만이 가득하던 세계에 웅장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슴이 벅차오를 것만 같은 웅장함 속에는 적막함과 절망이 뒤섞여있었다.
진양은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의해 강제로 밀려났다.
마치 조청삼과는 서로 다른 세계로 나뉘어진 것처럼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청삼아? 청삼아!”
진양은 큰소리로 그를 불러보았으나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조청삼은 초점 잃은 눈빛과 멍한 표정으로 천천히 검은 바다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바닷물을 밟으며 해수면 위를 걸어 나갔다.
느낄 수도, 말로 형용할 수도 없는 힘이 아무 소리도 흔적도 없이 그의 체내로 흘러들었다.
영혼으로 이루어진 그의 몸에 다시 육신이 재건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몸에 있던 생기도 모두 사라져버렸다.
진양은 육신이 재건된 조청삼이 해수면 위를 걸으며 멀리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