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20
120화 보물들을 정리하다
현천성종의 대장로는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폐관 중이라는 소문도 있었고 호량을 떠나 여행 중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지긋한 나이의 종주는 대부분의 시간을 전심수련으로 보냈다. 더욱 높은 경지에 도달하여 수명을 연장하려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적들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었고 또 한편으로는 성종 내에서 후배들을 양성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성종 내의 거의 모든 일들은 진결남이 맡게 되었다.
진결남이 모든 권력을 쥐고 있는데 정신 나가지 않고서야 감히 누가 그에게 도발을 하겠는가?
진양은 팔찌에서 부러진 대추를 꺼냈다. 새겨진 문양을 가볍게 쓸 듯 만지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지금이야말로 가장 좋은 기회야. 생각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긴 했지만 지금보다 더 적절한 기회는 없다.’
닭에게 지금까지 나타나지 말라고 했던 것은 만일을 대비해서였다.
지금 닭은 운 좋게 진양에게 굴러들어온 기회였다. 지금 현천성종의 누구도 자신에게 이런 큰 패가 있다는 것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호양보종은 현천성종의 진종법보(鎮宗法寶)인데 한낱 만영상호의 보잘 것 없는 관사 따위인 자신이 알고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그런데 현재 성종의 고위층들은 더 이상 아무런 상관없는 낯선 사람이나 조무래기처럼 진양을 대하지 않았다.
이렇게 인정을 받고 있는 지금이 대추를 돌려줄 가장 좋은 기회였다.
지금 상황이라면 별다른 의심 없이 모든 것이 경우에 들어맞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대추만 돌려준다면 상황에 따라 구승이라는 신분을 완전히 벗어버릴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보종(寶鐘)을 훔친다는 미친 계획은 실행하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재 진양의 손에 있는 자원은 충분하지 않다. 진양은 이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만약 성종을 상대할 만큼 차고 넘쳤다면 이렇게 많은 일로 진땀을 뺄 필요가 있었겠는가?
닭의 회복에 필요한 자원은 엄청나다.
호양보종의 본체가 없는 상태에선 설령 일만 년이 지난다고 하더라도 최상의 상태의 호양보종이 가진 힘의 일 할 정도에 해당하는 힘조차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지금으로서 유일한 방법은 현천성종이 호양보종 본체를 다시 닭이 제어할 수 있도록 넘겨주는 것이다.
그리고 호량의 제일가는 성종이 방대한 자원으로 이 밑 빠진 독을 채워서 닭을 회복시킨다면 그다음에 진양이 다시 가져오는 것이다.
계획은 완벽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남은 건 동풍이 불어오길 기다리는 것뿐이다.
무엇보다 상황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그때, 진양은 볼이 간지러웠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잠에서 깨어난 고양이가 뚫어져라 대추를 노려보고 있었다.
고양이는 갑자기 대추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어서 동공이 점점 커지는 듯싶더니 발톱을 뽑아 그대로 대추를 할퀸 뒤 물어뜯었다.
파직-
번쩍임과 함께 불꽃이 튀었다. 그러나 대추엔 흠집 하나 생기지 않았다. 다행히 고양이의 이빨도 멀쩡한 듯했다.
진양은 놀란 눈빛으로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정말 단단한 이빨이군. 그건 그렇고 무슨 놈의 식탐이 이렇게 많은 거야? 뭐든 먹으려고 하다니…… 잠깐! 설마 닭의 기운을 느낀 건가?’
놀란 진양은 재빨리 고양이를 붙잡아 다시 어깨 위로 올려놓았다. 그리고 사탕이 가득 들어있는 자루를 꺼내 고양이의 품속에 안겨주었다.
“어르신, 저건 먹는 게 아니라고요.”
고양이는 별다른 저항 없이 진양의 어깨에 앉은 채 다소 못 미덥다는 듯 대추를 노려보며 품속에 있는 자루에서 사탕을 꺼내 하나씩 입으로 가져갔다.
그 모습에 진양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정말 유별날 정도로 먹성이 좋단 말이지. 이 정도 먹성이라면 닭을 구운 닭고기처럼 뜯어 먹을지도 모르겠어.’
진양은 대추는 한쪽에 놓아둔 채 계속해서 주머니 안에 있는 물건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일이 살피며 ‘습득 능력’을 사용했다.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지금까지는 강천에게 물건을 받은 뒤로 제대로 살펴볼 시간이 없었다.
이젠 그럴 시간이 생긴 것이다.
진양은 물건을 살펴보는 김에 자신이 가진 십여 개의 주머니도 함께 정리할 생각이었다.
평범한 주머니 중 작은 건 크기의 방의 절반만 한 크기였다. 그러므로 작은 물건을 넣을 목적이라면 한두 개 정도로 매우 충분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쌓이는 물건은 많아지는 법. 뿐만 아니라 보관하는 물건의 크기도 점점 커지게 된다.
예전에 준비했던 관들은 이미 진작 모두 사용하고 없었다.
돌아온 김에 관도 백여 개 정도 미리 사 둘 생각이었다.
나중에 큰 손님을 만났을 때 관이 부족하다면 그것만큼 난처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금속 광석은 주먹만 한 것부터 십여 장에 이르는 커다란 것까지 매우 다양했다.
모두 오금납서묘법을 수련할 때 금기(金氣) 보충에 필요한 것들이었다. 이것들 역시 상당히 자리를 차지하는 물건들이었다.
지금까지 수십 개나 되는 주머니를 가지고 다닌 것은 주머니의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천에게 받은 주머니엔 예금봉의 주봉(主峰)을 담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란 공간이 존재한다. 가장 큰 공간을 가진 주머니 수천 개를 합쳐놓은 것과 같은 크기의 공간이다.
이렇게 된 이상 더 이상 많은 주머니를 주렁주렁 달고 다닐 필요가 없어진다.
한참 물건을 살펴보던 진양은 마음속으로 크게 감탄했다.
‘돈 하나는 끝내주게 많은 노친네군.’
강천이 준 주머니 안에 있는 물건 중 가장 많은 건 금속 광석이었는데 족히 커다란 산을 이룰 듯한 양이었다.
금속의 금기만으로 보조 수련을 한다고 치면 앞으로 두 경지 동안은 금속 광석이 부족할까 걱정할 일이 없었다.
광석 중에는 현철 외에도 비교적 고급 광석에 속하는 오금(五金)도 꽤 있었다. 보조 수련에 사용하기엔 다소 낭비였기에 영기로 제련시킨다면 꽤 나쁘지 않을 듯했다.
일품부터 삼품까지의 영석도 산더미처럼 쌓여있었고, 사품과 오품의 영석도 꽤 있었다. 심지어 육품 영석은 무려 세 개나 있었다.
그 외에도 영기 비검(靈器飛劍) 세 자루, 호신 영기 한 개, 손바닥만 한 호심경(護心鏡) 한 개까지.
“이야, 진짜 대박이구나!”
진양은 입이 귀에 걸린 채 손을 뻗어 습득 능력을 사용했다. 그리고 연화시킨 뒤 가슴에 달았다.
그러다 잠시 망설이는 듯싶더니 이내 심장이 있는 위치에서 살짝 비켜 오른쪽 가슴에 달았다.
진양은 계속해서 물건을 살펴보며 습득 능력을 발휘했다. 작은 영석 한 조각조차 놓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어느덧 방안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 들어차게 되었다.
온갖 재료부터 법기, 영석, 영약, 단약, 비보, 공법 등 그 양은 엄청 많았다.
오랜 시간 동안 모을 수 있을 물건이란 물건은 전부 모아둔 듯했다.
그러나 진양이 선호하는 물건은 따로 있었다.
옥간(玉簡)이나 대나무로 만든 책 같은 건 대충 살펴본 뒤 한쪽에 따로 정리해두었다.
그리고 꽤 많은 양이 쌓여있는 비보를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절대 꺼지지 않는 등불.
이건 오랜 시간 무언가를 비추는 용도 외엔 딱히 쓸모가 없어 보였다.
끊임없이 샘물이 흘러나오는 돌 주전자.
이건 사막이 아니라면 딱히 쓸모가 없을 듯했다. 무엇보다 이 세계엔 환경 오염의 영향을 받지 않은 샘물이 사방에 널려있다.
진짜 같이 생긴 천녀(天女)의 환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수정.
천녀를 만들어내면 천녀가 나풀나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진양에겐 예술적인 감각이 없었기에 이런 물건엔 관심이 없었다.
‘차라리 그냥 고양이에게 먹으라고 줘버리는 게 낫겠어.’
진양은 들고 있던 수정을 고양이에게 주었다. 그러나 고양이는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앞발로 수정을 쳐 땅에 내팽개쳤다.
“……”
진양은 이어서 계속해서 다른 물건을 뒤졌다.
‘사람의 마음을 색깔로 나타내주는 촛불? 이런 걸 어디에 써먹으란 거야?’
‘한쪽에 자신의 그림자 비추고 심지어 대화까지 나눌 수 있게 해 주는 거울? 혼자 놀 때 쓰는 건가?’
‘온도를 유지 시켜주는 온주대(溫酒臺), 진원을 주입하면 사용할 수 있음? 굳이 이런 게 필요할까?’
진양의 표정은 잔뜩 찌푸려졌다.
십여 개나 되는 비보를 모두 살펴보았으나 전부 하나같이 쓰레기 같은 물건뿐이었다.
그나마 쓸만한 물건은 검은색 망토.
두르고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모습이 새까맣게 보이는 물건이었다.
물론 계륵 같은 물건이긴 하다. 모습을 완전히 감춰주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자신의 모습을 가리는 용도로만 쓸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비보를 모두 살펴보고 나자 물건을 살펴보고 싶은 마음은 완전히 사라졌다.
고대의 비보는 수량도 많고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제 보니 구 할 이상은 마땅히 쓸만한 구석이 없는 계륵 같은 존재뿐이었다.
지금까지 보았던 비보는 위력이 상당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몰랐으나 이젠 알 것 같았다. 고대의 비보를 두고 양만 많고 전부 쓰레기뿐이라고 얘기하는 이유를 말이다.
진양은 주머니 안의 물건들을 모두 대략 살펴보았다.
대부분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기에 팔아넘기는 건 문제가 없을 듯했다.
하는 김에 가지고 있던 주머니까지 전부 털어 물건을 정리하다 보니 방안은 말할 것도 없었고 어느새 마당까지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들어차게 되었다.
‘한 번에 가방을 정리해 주는 능력 같은 건 없나. 아쉽군.’
언젠간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이 든 수도사들은 가끔 자신들이 어떤 물건을 가지고 있는지 기억도 못 하는 경우가 태반이야.‘
이제야 그 말이 이해됐다.
겨우 수백 년밖에 살지 않은 강천조차 이 정도의 물건을 가지고 있는데, 수천 년을 살아온 늙은 괴물들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물건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진양이 한참 물건을 정리하고 있을 때, 진우달이 찾아왔다.
영석, 광석, 옥 상자와 나무 상자, 심지어 가구까지.
마당에 쌓여있는 온갖 잡동사니를 바라보며 진우달은 벙찐 표정을 지었다.
“구 형, 이게 다 뭐요?”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어요. 너무 많아서 뭐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겠더라고요.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마다 애를 먹을 정도예요.”
진양은 여전히 ‘습득’을 한 물건들을 따로 분류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시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진우달은 조용히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단 한 번도 가난이라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한낱 축기 수도사가 이렇게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알 턱이 없었다.
많은 물건이 있었지만 그의 눈에는 전부 보잘 것 없는 하찮은 물건들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