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238
1238화 일단은 포기
진양은 지금 눈앞에서 싸움을 벌이는 무리들에게서 매우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의 몸속에 있던 죽음의 기운이 생명의 불꽃과 함께 타오르며 힘으로 바뀌긴 했지만, 이를 제외하면 힘을 다시 보충할 방법은 전혀 없었다.
만약 이대로 모든 힘을 소진한다면 어떻게 될까?
다시 망자 상태로 돌아가게 될까?
그렇게 되면 다시 죽음의 기운을 보충하고 꽃향기를 맡아 생기를 다시 불태울 수 있게 되는 걸까?
확실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멀리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것을 보고 있으니 결말이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힘을 모두 쓴 자는 한 줌의 재가 되어 완전히 사라져버릴 게 뻔했다.
설령 사라지지 않는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생명의 불꽃이 되살아나도 망자의 세계를 벗어나 다시 산 자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면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완전한 부활을 위해서는 생명의 불꽃을 되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에 다시 산 자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이 중 단 하나도 빠져선 안 된다.
사자결을 다시 거두고 나니 마음속을 가득 채웠던 기쁨은 어느새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멀리 거대한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씁쓸함이 가득했다.
진양이 스스로 세웠던 가설 그대로였다.
이 세계는 결코 이유 없이 당근만을 주지 않는다.
당근이 있다면 반드시 채찍도 있는 법.
눈앞에 일어난 상황이 모든 것을 해명해 주고 있었다.
겉으로는 먹음직스러운 당근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실상을 벗겨보면 날카로운 갈고리가 달린 채찍이 숨겨져 있던 것이다.
이렇게 보니 황천에서 수백 년의 시간을 낭비한 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이곳에 가장 처음 발을 들였다면 이성을 초월하는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생명의 불꽃을 다시 타오르게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코앞에 놓여있는데 그 누가 버텨낼 수 있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앞서 시간을 낭비한 게 천운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 덕분에 다른 이들이 진양을 대신하여 실험자가 되어주었으니 말이다.
진양은 곧바로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마음속에 여전히 미련이 남아있었다.
사실 지금 당장 생명의 불꽃을 되살린다고 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될 건 없다.
지금까지 쌓아둔 힘과 자원의 양은 당분간은 마음껏 쓰고도 남을 정도로 충분하다.
이것을 전부 소진하기 전에 산 자의 세계로 다시 돌아갈 방법을 찾으면 그만이다.
정 안 되면 지금까지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방법을 시도해 보는 것도 가능하다.
고해를 역행하고, 장막에서 뛰어내리고, 다시 검은 바다를 통해 산 자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미련의 불씨는 점점 커지며 결국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진양은 피식 웃으며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에게도 이런 날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과연, 죽음은 인간이 받아들이기 가장 어려운 현실이었다.
한편, 멀리선 전투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었다.
이쯤 되면 이들도 자신들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하지만 전투를 멈출 수가 없었다.
아니, 감히 멈출 엄두조차 낼 수가 없었다.
여기서 멈추는 순간 상대에게 어떤 꼴을 당할지 너무나도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눈앞에 나타난 신비로운 나무였다.
지금 타오르는 생명의 불꽃이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영원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꽃향기를 맡았기 때문에 부활 상태가 유지되는 것인지도 알 수가 없었고, 향기를 맡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과거의 힘을 다시 되찾아 지금과 같이 자유롭게 전생의 공법을 사용할 수 있는 건지도 알 수가 없었다.
더욱 강력한 힘을 손에 넣은 이상 내려놓는 건 결코 쉽지 않다.
단순히 미련 때문이 아니다.
힘으로부터 오는 안정감 때문이었다.
힘이 없으면 다가오는 상황과 마주할 수도 없었고, 적절한 대처를 취하지도 못하고 멍하게 눈뜬 채 당할 수밖에 없다.
아직은 모르는 게 너무 많다.
그리고 이 세계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게 거의 없다.
그래서 더더욱 손을 놓을 수 없는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약간이나마 취할 수 있는 확실함은 오직 힘뿐이었다.
그리고 이걸 위해선 죽음을 불사하며 달려드는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흐르며 새로운 망자들이 추가되며 난전은 한층 더 치열해졌다.
힘을 소진하여 사라지는 이들도 속속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힘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는 게 육안으로도 보이는 이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망자의 수가 줄어들며 전투의 규모도 점점 작아졌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며 마침내 남은 건 두 사람뿐이었다.
한 사람은 소머리 요괴, 나머지 한 사람은 기괴한 기운을 풍기고 있는 인간이었다.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솟구치는 요기, 천지를 파괴해버릴 듯한 맹렬한 기세의 공법.
지금 이 순간엔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기혈은 소진되었고 진원도 완전히 고갈되었다.
지금 두 사람에게 남은 힘은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서로에게 더 이상 운용할 힘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또다시 손과 발을 이용한 육탄전이 벌어졌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남은 육신의 힘까지 모두 써버리고 나서야 두 사람은 동시에 쓰러졌다.
기혈, 진원, 요기, 심지어 마지막 남아있던 육신의 힘까지 모두 소진되었다.
그러나 생기는 여전히 소멸되지 않고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지만 이미 써버린 힘은 다시 회복되지 않았다.
지금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멍하게 누워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살아나는 건커녕 마음대로 죽는 것조차 불가능해진 것이다.
지면엔 전투의 여파로 인해 나무뿌리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나무뿌리는 천천히 이들에게 다가와 이들의 몸을 완전히 감쌌다.
그리고 미세한 뿌리들이 이들의 몸을 파고들어 양분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생기는 가는 뿌리를 따라 조금씩 나무에게 흡수되어갔다.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식물이 수분을 빨아들이는 속도와 같았다.
두 사람은 힘을 빼앗기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두 눈 뜨고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힘이 남아있었다면 충분히 가볍게 벗어날 수 있는 수준의 속박이었지만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두 사람의 육신은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했고, 생기도 어느새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마지막 남은 생기까지 모두 빼앗기는 순간.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두 사람의 육신은 퍼석- 하는 소리와 함께 먼지가 되어 부서져 버렸다.
은은한 바람이 불어오며 순백색의 꽃에서 꽃잎이 떨어지며 사방에 흩날렸다.
꽃이 시들고 나자 상쾌하던 꽃향기도 조금씩 옅어졌다.
한편, 진양은 멀찍한 곳에 떨어져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열흘, 아니면 보름?
대략 그 정도의 시간이 흐른 듯했으나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처참한 결말을 맞은 망자들의 모습을 보니 자신도 모르게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힘을 소진한 자들은 모두 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렸고, 조금이나마 힘이 남아있던 자들도 거대한 나무의 양분이 되어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이런 결말이 나올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상할 건 없었다.
산 자의 세계만 해도 인간의 생기를 양분처럼 빨아먹는 식물은 널려있다.
마찬가지로 죽음의 기운이 가득한 환경에서 죽음의 기운을 양분 삼아 자라는 식물도 널려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해 보면 망자의 세계에 산 자의 생기를 양분으로 삼는 식물이 있는 것도 크게 이상할 건 없다.
이번 일로 진양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
살아있을 때 습득한 경험들이 반드시 이곳에서도 모두 적용된다는 법은 없었다.
어쩌면 이곳에서 살아있는 자가 겪게 되는 곤경은 대황에서 죽은 자들이 겪는 곤경보다 훨씬 더 심각할지도 모른다.
다소 과장되게 말하자면, 한 발자국 내딛는 것조차 어렵다고도 할 수 있다.
어쨌든 망자의 세계에서 생명의 불꽃을 다시 타오르게 만드는 건 절대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일단 이곳에서 산 자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는 게 우선이었다.
생명의 불꽃을 다시 타오르게 만드는 건 그다음의 일이었다.
진양은 일단 계속해서 나무와 관련된 숨겨진 규칙에 대해 살펴보았다.
나무를 통해 생명의 불꽃을 다시 타오르게 만들었을 때 어떠한 부작용이 있는지 한층 더 구체적인 파악이 필요했다.
다만, 그 전에 먼저 찔러봐야 할 게 한 가지 더 있다.
진양은 해안으로 들어가 붓을 들었다.
그리고 규칙 하나를 추가했다.
‘이 나무는 파괴될 수 있다.’
규칙은 몇 번 깜빡이긴 했으나 사라지지 않았다.
진양은 여기에 한 단어를 더 추가했다.
‘이 나무는 망자에 의해 파괴될 수 있다.’
붓을 떼기 무섭게 규칙이 사라졌다.
아무래도 망자가 나무를 파괴하는 건 불가능한 듯했다.
이 부분에 대한 단서는 망자들이 죽음의 기운을 이용하여 이제 막 싸움을 시작했을 때에 이미 확인했다.
각종 여파가 나무를 향해 날아들었지만, 나무는 털끝 하나 손상되지 않았다.
‘이 나무는 산 자에 의해 파괴될 수 있다.’
이번에는 숨겨진 규칙에 부합했는지 사라지지 않았다.
진양은 이어서 자신이 시도해 볼 수 있는 수천 가지의 방법을 전부 다 적어보았다.
단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부 사라져버렸다.
이에 대한 단서도 이미 확인한 바가 있다.
망자들의 생기가 다시 불이 붙으며 전투는 몇 단계나 더 치열하게 바뀌었으나, 나무는 여전히 전투의 여파에 일말의 영향조차 받지 않았었다.
이러한 사실들을 먼저 확인해 본 이유는 문득 눈앞에 있는 이 나무가 상당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무의 존재는 진양마저도 헛된 희망과 미련을 품게 만들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것이 스스로의 간절한 바람 때문인지, 아니면 나무가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매력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확실히 알아내기 전엔 ‘이 나무는 태생적으로 망자들이 생명의 불꽃을 불태우도록 유혹하는 힘이 있다’라고 감히 써볼 수도 없었다.
만약 이러한 힘이 없는데 괜히 적었다간 정말로 규칙으로 받아져 버릴 수도 있다.
처음 나무에 꽃이 피었을 때 채집 능력으로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너무 가까이 다가간다면 진양의 생명은 다시 뜨겁게 불타오르고 말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꽃이 전부 시들며 향기가 사라졌다.
남아있는 향기가 꽃이 피어있을 때만큼 강하지 않았기에 감히 다가갈 엄두를 낼 수 있었다.
앞서 죽은 망자들을 통해 꽃이 피기 전에는 망자들의 생명은 불타오르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산 자가 나무를 파괴할 수 있는 방법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일단은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좋은 쪽으로 생각해 보면 일단 생명을 다시 불태울 수 있는 방법은 찾은 셈이다.
물론 아직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대신 생명을 불태울 방법을 찾았으니 앞으로는 산 자의 세계로 돌아가는 방법을 찾는 데 온 힘을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