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433
1433화 오늘부터 따르겠습니다
과거 풍도대제는 자신을 열 개로 나누는 결정을 내린 뒤 자신은 곧장 영면의 땅으로 향했다.
그곳은 땅은 있으나 하늘은 없는 곳.
천지가 손상되어 온전한 비경으로도 볼 수 없는 곳.
그러나 매우 안정적인 세계였다.
영면의 땅의 환경은 시신과 이성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시켜주었다.
때문에 깊은 잠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세월의 침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기다렸다.
언젠간 찾아올 새로운 시대에 나뉘어진 열 명의 사람들이 찾아와 자신을 깨울 때까지.
하지만 상황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일부는 이미 죽어 망자의 세계로 가버렸다.
산 자의 세계에 남아있는 자들 중, 무사히 부활하여 은월계로 온 것은 여자 수도사가 유일했다.
애석하게도 그녀는 은월계로 건너왔음에도 불구하고 영면의 땅은 조금도 건드리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크게 문제가 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망자의 세계가 나타나고, 호량 조각 사이에 연결고리가 형성되며 태호 세계와 연결되었다.
심지어 태호가 죽음을 맞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굵직한 사건들이 연달아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자 수도사는 끝까지 그를 깨우지 않았다.
더 이상 무슨 이유와 핑계가 필요하겠는가?
풍도대제는 단 한마디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건 그녀의 사심으로부터 어긋나게 된 것이라는 것을.
이렇게 된 이상 그녀를 살려둘 순 없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에겐 힘이 부족했다.
망자의 세계에서조차 나타날 수 없도록 상대를 완전히 소멸시킬 힘만 있었다면 결코 이런 방법을 쓰진 않았을 것이다.
힘만 충분했다면 지금처럼 망자의 세계로 보내버리는 게 아니라 완전히 소멸시켜버렸을 것이다.
여자 수도사가 죽음을 앞두고 두려움에 떨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풍도대제의 눈빛은 상당히 복잡해졌다.
그는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자 수도사는 풍도대제로부터 비롯된 존재다.
설령 독립된 생명체라곤 하나 따지고 보면 모든 근본은 풍도대제로부터 온 것이니까.
그녀는 사리사욕에 눈이 멀었다.
그러나 이것이 풍도대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욕심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았다곤 말할 수 없었다.
풍도대제가 그동안 수많은 일을 벌이는 동안 일말의 욕심이나 사심이 없었을 리가 없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이건 정상급 강자나 아무 힘 없는 범인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그의 욕심은 처음에는 작은 새싹에 불과했으나 시간이 지나며 점차 거대한 나무로 자라났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영향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결국 이 모든 건 나의 욕심 때문이란 말인가…….”
풍도대제는 복잡한 얼굴로 제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과거 천제를 따라 하는 건 결국 막다른 길로 향하는 것이라고 했던 부군의 말이 떠올랐다.
천제는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족쇄에 발목을 붙잡혔다.
겉보기엔 상당히 강한 것처럼 보였지만,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고 나자 기존보다 훨씬 더 강한 족쇄가 채워져 버렸다.
사람들은 말한다.
신선이란 그 어떠한 구속도 받지 않는 자유자재한 존재라고.
사람은 강한 힘을 가질수록 더욱 그것에 미련을 갖게 된다.
그리고 결국 족쇄는 한층 더 무거워지게 되는 것.
이 사실을 풍도대제가 모를 리는 없다.
풍도대제는 부군의 말에 이렇게 대답했었다.
‘난 이것이 막다른 길이라는 걸 알고 있네. 어차피 막다른 길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은 품지 않고 있지.
내가 손에 넣고자 하는 것은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일세.
나의 말로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네.’
당시 풍도대제는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었고, 설령 어긋난다고 해도 큰 영향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되돌아보니 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부군이 막다른 길에 다다르게 될 거라고 했던 건 풍도대제 자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바로 자신의 목적이 막다른 길에 다다르게 될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가 희망을 주며 분화했던 열 개의 존재들도 말이다.
“시대가 변했군.”
풍도대제는 씁쓸한 얼굴로 천궁 쪽을 바라보았다.
더 이상 태호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십 대 대신관의 존재도 마찬가지였다.
느껴지는 건 하급 신들의 기운과 존재뿐이었다.
그러나 풍도대제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의 시선은 더 먼 곳으로 향해 진곤이 일 검을 날렸던 곳으로 향했다.
겉보기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였고, 이미 완전히 회복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무려 진곤의 일 검을 맞은 태호 세계가 그렇게 쉽게 회복될 리는 없다.
풍도대제는 아직 그곳에 남아있는 상처를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관 안으로 향했다.
한편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건장한 남자는 차마 더 이상은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그가 여자 수도사를 존경하는 건 곧 풍도대제를 존경하는 것.
여자 수도사가 잘못을 했다고 판단하고 그녀를 망자의 세계로 보낸 건 대제가 직접 내린 결정이다.
그는 그저 수하로서의 본분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풍도대제는 현재 그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떠나버리려고 하자 그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대제시여!”
풍도대제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비로소 그제야 건장한 남자에게 시선을 주었다.
“세대는 이미 바뀌었다. 난 이미 더 이상 내 앞가림조차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날 쫓아다녀봤자 네겐 득이 될 게 없다. 그러니 이만 돌아가거라. 차라리 수련에 전념하여 더 높은 곳으로 향할 기회를 노리는 게 네게 더 큰 이득이 될 게다.”
건장한 남자는 곧장 나머지 무릎도 꿇으며 이마를 바닥에 찧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공포가 가득했다.
“대제시여, 어찌 제 충심을 의심하시나이까? 소신, 목숨을 다하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대제를 따르겠사옵니다.”
풍도대제는 대견스럽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생각지도 못했구나. 가장 눈에 띄지 않던 자가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나를 따르게 되다니.
흑면, 네 마음은 잘 알았다. 허나 내게 허락된 길은 오직 막다른 길뿐이다. 네가 나를 따르다가 죽는다고 해도 결국은 헛된 희생에 불과하다.
아직 마음이 남아있다면 차라리 그를 찾아가도록 하거라.”
풍도대제가 손가락을 들어 흑면의 머리를 가리켰다.
그러자 흑면의 머릿속에 진양의 모습이 떠올랐다.
“난 네가 헛되이 희생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 그러니 그를 따라가도록 하거라. 그는 이 시대를 바꿀 천하의 인재다.
내겐 더 이상 희망은 남아있지 않다. 허나 그를 따라간다면 희망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게다.
언젠간 정말로 희망을 보게 된다면 그땐 내게도 네가 본 희망을 공유해 주었으면 한다.”
흑면은 가슴이 찢어지는 기분이었다.
대제가 지금 하는 말이 유언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공손히 예를 갖추며 다시 한번 바닥에 이마를 찧었다.
“소신 흑면, 대제 폐하의 명을 받듭니다! 폐하의 명이라면 소신 죽어도 결코 후회는 없사옵니다.”
흑면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흑귀가 관을 짊어진 채 하늘의 상처가 난 곳으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풍도대제는 그곳을 통해 태호 세계를 빠져나갔다.
한참 뒤.
흑면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고개를 돌려 귀번을 들고 있는 흑신을 바라보았다.
이어서 그의 시선이 붕대를 감고 있는 남자에게 향했다.
“대제의 명은 반드시 따라야 하는 법. 대제께서 가라고 하신다면 난 결코 주저하지 않을 걸세.”
“허허, 이미 각오가 된 모양이군.”
흑면은 고개를 끄덕이며 호량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수많은 귀신들이 먹구름처럼 몰려들어 귀번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흑면은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이곳에서 수년 동안이나 온갖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흑면은 붕대를 감은 남자와 함께 처음 이곳으로 왔던 길을 따라 다시 되돌아갔다.
* * *
은월계.
호량 조각을 지키고 있던 강자는 누군가 접근하고 있는 것을 느끼고 곧바로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이들은 더 이상은 방심할 수가 없었다.
평범한 수준의 힘을 가진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세계에서 돌연 최소 도군 이상의 실력을 가진 거물급 귀신이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풍도대제의 본존까지 나타났다.
관 안에 들어있던 풍도대제가 이성이 없는 시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설령 관에 들어있는 게 평범한 시체일 뿐이라도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을 가볍게 꺾고도 남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무시무시한 풍도대제가 지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누군가 나타나다니.
당연히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흑면은 귀번을 든 채 붕대를 감은 남자와 함께 은월계로 돌아왔다.
풍도대제가 떠나기 전에 수많은 정보를 준 덕분에 은월계의 현황이 어떤지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다리 밖으로 걸어 나온 흑면은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자들의 시선 따위는 가볍게 무시했다.
그는 자신이 들고 있던 귀번을 지면에 꽂아 넣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소신 흑면, 풍도대제의 명을 받아 진 대인을 따르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대황의 강자들은 ‘진 대인’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은월계를 통틀어 ‘진 대인’이라고 불릴 만한 인물.
그것은 진양이 유일했다.
그때, 진양이 먼 곳에서 이곳으로 날아왔다.
진양을 발견한 흑면은 곧바로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를 갖췄다.
“소신 흑면, 진 대인을 뵙습니다!”
진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진양은 주위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대화를 하려면 자리를 옮겨야 할 듯했다.
“이쪽으로 따라오세요.”
흑면은 귀번을 들고 붕대를 감은 남자와 함께 순순히 진양을 따라갔다.
조용한 곳에 다다르자 진양은 곧바로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봐요. 지금 이게 뭐 하자는 겁니까?’
“대제의 명을 받고 이곳에 왔습니다. 오늘부터 진 대인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흑면은 그동안 있었던 자초지종을 진양에게 모두 설명해 주었다.
얘기를 듣고 나니 진양은 한층 더 답답해졌다.
흑면이라면 이미 여러 번 본 기억이 있다.
그가 귀번을 들고 수억에 달하는 귀신을 부리는 것을 본 적도 있었고, 심지어 귀번의 주혼은 한 하급 신으로부터 비롯된 존재다.
겉보기에는 귀신을 부리는 재주가 전부인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연체술을 익힌 무시무시한 존재다.
아마 그의 겉모습만 보고 덤벼들었다가 죽은 사람은 수두룩할 듯했다.
흑면의 말이 의심이 되는 건 아니었다.
풍도대제가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갑자기 진양을 찾아왔다.
풍도대제의 명령이 아니라면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다만 그 광기로 가득한 여자 수도사가 풍도대제의 분화된 열 개의 부분 중 하나였다는 사실은 상당히 의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