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524
1524화 어둠 속 거대한 변화
융합은 어느덧 칠 할 가까이 진행되었다.
진양이 대부분의 시간을 십방계에서 보내는 이유 중 하나.
바로 습득한 정보와 느낌을 가장 먼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진양은 몽사를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계획에 대해 얘기해 주지 않았다.
함부로 말을 꺼낼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가희는 대황과 십방계의 전쟁으로 인해 형성된 모든 압력을 홀로 버텨내고 있었다.
특히 대황의 상황이 장기적인 열세에 처하며 가희의 위신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게 되었다.
그나마 지난 천여 년 동안 튼튼하게 쌓아둔 위엄과 명성이 있기에 버티고 있는 것.
이마저도 없었다면 부도마교와 같은 배반자들이 곳곳에서 생겨났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눈여겨볼 가치조차 없는 작은 세력들을 제외하면 부도마교는 유일한 배신자다.
물론 유일한 배신자답게 그 결과는 상당히 참혹했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로 진양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가희 홀로 모든 압박을 견뎌내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진양도 때로는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는 지금 나이에 견뎌낼 수 없는 수준의 압박을 견뎌내고 있었다.
진양은 이제 겨우 천 살이 넘은 젊은 도군에 불과하다.
사실 책임에 대해 논한다면 진양이 가장 많은 것을 짊어지고 있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이런 상황이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는 건 대황의 수많은 강자들 덕분이다.
그 누구도 진양의 행동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양이 무슨 말을 하든 전적으로 믿어줄 뿐이었다.
그동안 쌓아두었던 모든 공덕이 이제야 빛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설령 파장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아주 작은 파장에 불과했다.
현재 대황에 일어난 파장 중 그나마 가장 큰 것이 부도마교의 배신이다.
이 이상의 파장은 일어날 일도 없다.
절대적 다수를 이루고 있는 최하층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할 건 없었다.
혹여나 다른 마음을 먹고 있다고 해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길 때쯤이면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을 시점이니까.
애초에 진양은 수만 년 동안 시간을 끌 생각도 없었다.
평화로운 날은 항상 짧은 법.
어둠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변화는 결코 진양의 계획만 있는 게 아니었다.
* * *
같은 시각.
풍도대제의 본존이 십방계에 나타났다.
그는 자신의 계획과 의견에 아직 문제가 남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던 와중에 세 천제 중에 태일 한 사람만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에겐 다시 강제로 망자의 세계로 끌려가기 전에 최선을 다해야만 할 마지막 일이 남아있었다.
* * *
정체를 알 수 없는 허공 속.
사방에서 반짝거리는 별빛조차도 이곳을 밝힐 수가 없었다.
그때, 작은 점처럼 생긴 빛이 터져 나오며 순식간에 허공을 비췄다.
그리고 그곳에서 묵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몸에 걸려있는 봉인은 끊임없이 폭발을 일으키며 무너져내렸다.
묵양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렸다.
매번 폭발이 일어날 때마다 체내에 있는 영혼마저도 밖으로 튀어나올 듯한 기세였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폭발과 거대한 압력 가운데 파괴와 재건이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 묵양의 기운도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봉인되어 있던 것들 역시 이러한 과정 중에 끊임없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이것은 반드시 치러야 하는 대가.
자아와 기억을 잃는 대신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힘을 손에 넣는 것이다.
묵양은 마치 훼멸구가 되어버린 것처럼 끊임없이 자폭을 이어나갔다.
그의 몸은 번쩍이며 광택을 뿜어냈다.
폭발과 함께 몸 곳곳에 피어있던 녹이 모두 날아가 버린 것이다.
인간 십이사 중에서 유일하게 절대적인 불사의 몸을 가진 존재.
망자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는 존재.
그것이 바로 묵양이다.
그러나 그가 죽지 않는 것은 장정의의 부활과는 다소 다른 개념이다.
묵양은 어둠으로 가득 찬 알 수 없는 세계 속에서 끊임없이 자폭을 반복했다.
충분한 힘을 모아 일정 수준까지 회복을 한 뒤, 그는 이러한 방법을 통해 봉인을 한 겹씩 풀어내고 있었다.
이 순간 묵양이 신경 써야 할 일은 오직 단 한 가지.
자기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파괴해버리는 것이다.
모든 것이 파괴되는 순간 봉인도 자연스럽게 파괴된다.
도(道), 영기, 물질.
그 어떤 것도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묵양이 마음껏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감히 그 누구도 이러한 방법을 따라 할 수는 없다.
빛은 벌써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리고 잠시 뒤.
눈부신 빛이 한곳으로 모이며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묵양은 또다시 안에서부터 바깥으로 자폭을 이어나갔다.
모든 부문들, 심지어 그의 몸에 새겨져 있던 부문까지도 전부 소멸되었다.
모든 것이 자폭 과정 중에 강제로 흡수되며 자폭을 일으키는 힘으로 전환되었다.
계속해서 같은 상황은 반복되었다.
묵양의 눈엔 초점이 없었다.
마음속에도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어떤 생각을 떠올리려는 순간 곧바로 그것은 자폭을 위한 힘으로 바뀌어버렸다.
묵양조차도 자신이 얼마나 이곳에 있었는지 자각하지 못할 정도였다.
또 한 번의 폭발이 일어났다.
묵양의 미간에서 한 부문이 강제로 뜯겨 나왔다.
뜯겨 나온 부문은 또다시 강렬한 폭발을 일으켰다.
이번 폭발로 인해 만들어진 빛은 무려 사흘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그렇게 빛이 모두 사그라든 후.
묵양에게 남은 건 순수한 인형 몸이 전부였다.
그는 정적 가운데 홀로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자폭을 하고 싶어도 이제는 더 이상 제물로 삼을 것이 남아있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인형 몸은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파괴할 수가 없다.
한참이 지난 뒤.
멍하게 서 있던 묵양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그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인형 몸을 살펴보았다.
“이제 보니 모든 게 풀렸군.”
그가 가볍게 몸을 흔들자 육신이 급격히 팽창하기 시작했다.
무려 만 장에 이르는 거대한 인형 진룡으로 변한 그는 점차 사그라들고 있는 육신의 빛과 함께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인형 진룡이 어둠 밖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혼자가 아니었다.
무려 십만 리에 달하는 거대한 조각과 함께 나타난 것이다.
마치 불규칙한 대지 조각처럼 보이는 그것은 일말의 빛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다.
심지어 주변의 빛마저도 집어삼키고 있는 모습이었다.
묵양은 조각을 짊어진 채 허공을 향해 날아올랐다.
처음에는 매우 느릿한 속도였으나, 점차 속도가 불어나기 시작했다.
* * *
괴산.
풍수사의 석벽 뒤쪽으로 넘어가면 또 다른 허무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곳에는 유학자처럼 점잖게 생긴 한 노인이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는 상의를 벗으며 뼈만 남은 자신의 가슴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어서 몇 개 남지 않은 갈비뼈 중 하나를 취하여 허공을 향해 던졌다.
갈비뼈는 순식간에 빛나는 알갱이가 되어 퍼져나갔다.
각 알갱이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의 형상으로 바뀌었다.
자갈, 화초, 지렁이, 머리카락, 계척(戒尺), 옥잠 등등…….
은은한 빛이 피어오르자 비로소 이곳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얼핏 보면 쓰레기장처럼 보이기도 했다.
크고 작은 여러 가지의 물건들이 마치 별처럼 노인을 중심으로 공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어떠한 물건도 공전 과정 중에 서로 맞부딪치는 일은 없었다.
마치 겉보기엔 상당히 불규칙해도 사실은 각자 약속한 길이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새로운 변수가 일어나며 공전 속도는 한층 더 빨라졌다.
이어서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난 뒤.
빠르게 공전하던 물건들은 다시 원래의 속도로 되돌아왔다.
그때, 겉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나무 계척이 한 부서진 면구와 살짝 부딪쳤다.
그로 인해 두 물건의 공전 궤도에 변화가 일어났다.
이어서 두 물건은 다른 물건의 궤도를 침범하며 연쇄적으로 충돌을 일으켰다.
단 하나의 작은 변화로 인해 큰 변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노인은 꼿꼿하게 허리를 세운 채 눈빛을 불태우며 눈앞에 일어난 변화를 살폈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이곳에 있는 수많은 물건들이 궤도에서 이탈하며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하하하!”
노인은 돌연 큰소리로 웃음을 지었다.
마치 오랜 시간 동안 그를 괴롭게 만든 묵은 변이 전부 배출된 것처럼 말이다.
그가 손을 뻗자 부서진 계척과 면구가 그를 향해 날아왔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 널려있던 잡동사니들은 전부 가루가 되었고, 가루는 한곳으로 모여들며 거대한 두루마리의 형태로 변했다.
두루마리에는 ‘선천하지우이우(先天下之憂而憂, 어떤 일이 벌어지기 전부터 걱정을 한다)’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그러나 두루마리는 온전한 모습이 아니었다.
비어있는 곳으로 보아 두 조각 정도가 모자란 듯한 모습이었다.
노인은 손에 쥔 두 개의 물건을 바라보았다.
이것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놓는다면 두루마리는 온전한 모습으로 회복될 것이다.
그는 이것을 위해 오랜 시간을 허비했다.
그러나 이 순간 모든 걸 포기할 생각이었다.
노인은 손을 뻗어 두루마리를 만지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일자결은 인간 천존이 남긴 것. 인간이 가진 최후의 무기라고도 할 수 있지.
난 이미 모든 가르침을 얻었다. 스스로의 경지와 신통력을 남겨둔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일개 신통력 따위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노인의 말과 함께 두루마리는 바람에 흩날리며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가루가 된 것은 아니었다.
아예 완전히 흔적을 감춘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이 익혔던 우자결(憂字訣)과 파생된 모든 신통력이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