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221
221화 누가 손을 쓴 거지?
유령호 선장실.
감히 어두운 그림자 속에 앉아있는 선장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기에 대부는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는 상당히 위축되어있었다.
며칠 전, 원 대사의 일만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위축되진 않았을 것이었다.
무엇보다 방어 진법의 손상은 원양 항해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육지나 섬에서 멀리 떨어진 심해로 갈수록 더욱 강력한 바다 괴수들이 나타나기 때문이었다.
“선장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선체 하부 방어진이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지금 당장 진법사들을 투입한다고 하더라도 내일 출항 전까지 복구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풍림호의 수석 진법사인 진양을 불러와라. 그는 원 대사를 능가하는 실력을 지니고 있다. 일전에 하루 만에 풍림호를 수리했던 이력이 있으니, 이번에도 문제없이 유령호의 진법을 수리할 수 있을 거다.”
선장은 차분하게 명령을 내렸다.
대부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물러갔다.
그렇게 선장실을 빠져나온 유령호 대부는 곧장 풍림호로 향했다.
한편 대부가 빠져나간 선장실.
선장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초대장은 보냈느냐?”
“전부 보냈습니다. 호량 외 지역에 있는 자들은 미리 도착한 상태입니다. 아마 초대장을 받은 자들 대부분 참석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림자 속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며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래. 앞으로의 일은 이제 위 대부에게 맡기도록 하거라. 실력은 조금 부족해도 시킨 일은 충실하게 하는 녀석이니까. 게다가 충성심도 넘치는 친구지.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느냐?”
같은 시각.
위 대부는 황급히 풍림호로 향하고 있었다.
사전에 사람을 통해 통보할 시간도 아까웠기 때문에 무언가에 쫓기듯 황급히 곽순풍을 찾아갔다.
“곽 대부, 급한 일일세. 어서 자네 풍림호의 진법사를 좀 빌려주시게나.”
“응? 위 대부,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정신이 없는 겐가?”
“시간 없어! 빨리 가야 해! 원 대사 그놈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유령호 외부의 방어 진법이 심각하게 손상됐단 말일세.”
곽순풍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그대로 반나절 동안이나 그를 쳐다보고 나서야 천천히 입을 뗐다.
“확인은 제대로 한 겐가?”
“그럼 확인도 안 하고 자넬 찾아온 것 같나?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인 줄 아나?”
흥분한 위 대부가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그의 코에선 금방이라도 김이 뿜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해응호로 가서 알아보시게. 미안하지만 우리 풍림호에는 진법사가 딱 하나뿐이라서 말일세. 하나 더 있긴 한데 녀석은 없는 것만 못한 녀석이라 말이지.”
곽순풍은 나긋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러나 마음속으론 극도로 상대를 경계하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항해가 시작될 것이고, 곧바로 경매가 시작될 것이었다.
그리고 경매가 끝나면 곧바로 원양 항해가 시작될 것이었다.
지금과 같은 급박한 상황에서 하루 만에 진법을 수리할 수 있는 건 아마도 진양이 유일할 것이었다.
얼마 전 풍림호는 바다에서 갑자기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외부 방어 진법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던 적이 있었다.
상당히 위급한 상황이었기에 풍림호 진법사는 목숨을 걸고 바다로 잠수하여 수리를 진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 순간, 바다 괴수 무리와 마주하게 되었다.
뒤이어 서혼수가 나타나며 바다 괴수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어느 멍청한 놈의 짓인지는 몰라도 서혼수를 배 가까운 곳으로 끌어들인 것이었다.
바다로 뛰어든 진법사와 수리공들은 손 쓸 틈도 없이 달려든 서혼수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풍림호에 타고 있던 기술자들은 전부 전멸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 어렵사리 실력 좋은 기술자인 진양을 배로 데려오게 되었다.
여기에 며칠 전에는 유령호의 기술자인 원 대사가 죽임을 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풍림호의 유일한 기술자인 진양을 유령호에 빌려달라니.
풍림호의 입장에선 당연히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만 기다리시게.”
곽순풍은 관자놀이 주위가 지끈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는 사람을 보내 진양을 부르는 대신 직접 식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한참 화염에 휩싸인 채 맛있게 식사를 즐기고 있는 진양에게 다가갔다.
곽순풍은 지금의 상황을 전부 진양에게 설명해 주었다.
설명을 모두 들은 진양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필 이런 때에?”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을 리가.”
곽순풍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결국 우리도 별다른 수 없이 도와줘야 해. 이건 함대 전체의 계획이 달린 문제니까.”
진양의 표정이 한층 더 굳어졌다.
왠지 모르게 한층 더 짙은 어둠이 자신을 향해 덮쳐오는 기분이었다.
“넌 풍림호의 유일한 수석 진법사나 마찬가지야. 하지만 아쉽게도 별다른 핑곗거리가 생각나지 않아. 이는 선장도, 너도 마찬가지일 거고. 그러니 갈 수밖에 없겠지. 그래도 걱정할 필요는 없어. 녀석들이 먼저 도움을 요청한 이상 절대로 너를 해칠 일은 없을 테니까. 그 이상은 선을 넘는 행동이라는 건 잘 알고 있을 거야.”
“난 괜찮아. 다녀올게.”
진양은 의외로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런 상황에서 거절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외눈이를 붙여줄게. 함께 가도록 해.”
“아니야. 혼자 가도록 할게.”
진양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오히려 혼자 가는 것이 안전할 수도 있다.
외눈이 풍림호를 비우는 게 더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대가 작정하고 다른 마음을 품고 진양을 불러들이려는 거라면 설령 외눈을 데려간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곽순풍의 얼굴에 복잡한 심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조용히 진양의 어깨를 두들길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진양은 위 대부와 함께 유령호로 건너오게 되었다.
이곳은 풍림호와는 다르게 다소 무거운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모두들 처음 보는 진양을 보고도 말을 걸어올 법했으나, 마치 아예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취급하며 눈길도 주지 않았다.
“상황이 급하니 일단 일부터 얼른 해결합시다.”
어느덧 유령호 갑판에 다다른 진양이 평소와 같은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
“알겠소. 진 대사, 그럼 편하게 살펴보고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하시오.”
위 대부는 한시라도 빨리 진양이 작업을 시작해 주기를 바랬다.
“진법 도안이 있으면 훨씬 수월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맞물린 부위와 재료 등에 대해서 미리 생각을 하고 시작하는 편이 좋거든요.”
“하지만 그건……”
위 대부는 난처하다는 듯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진 대사, 오해하진 마시오. 우리 유령호의 진법 도안은 설령 진법사라도 해도 일부분밖에 보여줄 수가 없는 것이 원칙이라……”
“알았어요. 정 그러면 안 봐도 상관없어요.”
예상하고 있던 대답이다.
애초에 유령호의 사람도 아닌 진양에게 진법 도안을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니 말이다.
“위 대부님, 진법 도안 없이도 수리는 가능합니다만, 대신 맞물린 부분에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은 사전에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절대로 제가 대충 고친 것이 아니라 능력으로 돌파할 수 없는 범위가 있다는 걸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런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진 대사가 최선을 다한다는 건 잘 알고 있으니 말이오.”
“좋습니다. 그럼 작업을 시작하도록 하죠.”
말을 마친 진양은 곧바로 바다로 뛰어들어 곧장 선체 하부로 향했다.
바닷속으로 들어온 진양은 하부를 살펴보자마자 왜 긴급하게 수리가 필요한지 알 것만 같았다.
선체에서 가장 중요한 뼈대 부분의 진법만 완전히 파괴된 것이다.
이곳은 사람으로 치면 급소와도 같은 부분으로 가장 중점적으로 방어해야 하는 곳이다.
보통 사해에서 항해하다 보면 바다 괴수와 자주 마주치는데, 이때 가장 쉽게 공격을 당하는 부분이 바로 선체 하부였다.
지금과 같이 방어 진법 한 겹조차 없는 상태에 공격을 당한다면 하부는 곧바로 처참하게 박살 나게 될 것이고, 선체는 심해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버리게 될 것이었다.
진양이 선체를 조심스럽게 만져보았다.
순간 진양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건 오랜 시간 축적된 피로로 인해 발생한 손상이 아니었다.
선체에 새겨진 도문과 부문이 무언가에 의해 지워진 흔적이 보였다.
단순히 망가진 게 절대 아니었다.
외부에서 가해진 충격이나 내부에서 발생한 알 수 없는 일로 인해 순식간에 진법이 파괴된 것이 분명했다.
유령호 사람들의 부주의로 인해 벌어진 일은 아니었다.
이토록 조심성 없는 자들이라면 지금까지 살아남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누가 봐도 고의로 한 게 분명했다.
그것도 최근 이틀 사이에 저지른 일인 듯했다.
진양은 원 대사에게 얻은 진법 도안의 일부를 떠올려보았다.
핵심 위치도 없고 그나마 있는 부분 역시 상당수가 불완전한 진법 도안이었지만, 다행히 원 대사에게 얻은 진법 도안에는 현재 진양이 살펴보고 있는 부분이 포함되어있었다.
이 정도면 매우 간단하게 수리 가능했다.
길어야 반 시진 정도면 충분할 것이었다.
진양은 머릿속으로 진법 도안을 떠올리며 수리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잠시 뒤, 물 밖으로 나온 진양은 다시 갑판으로 올라왔다.
“이 재료들이 필요합니다.”
진양은 종이를 꺼내 필요한 모든 재료를 적어 위 대부에게 건네주었다.
“이렇게 많은 재료가 필요하단 말이오?”
위 대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종이에 적힌 재료들은 하나같이 비싼 재료였다.
심지어 용의 골수 같은 무시무시한 재료까지 포함돼 있었다.
“손상을 입은 부분은 사람으로 치면 급소와도 같은 부분입니다. 게다가 진법이 일부만 사라진 게 아니라 통째로 날아가 버렸으니 그걸 복구하려면 어쩔 수 없이 많은 재료가 들어가는 법이죠. 왜요?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진양이 씨익 웃으며 위 대부를 바라보았다.
“다른 건 크게 문제없겠습니다만, 여기 있는 용의 골수가 문제로군요. 진룡의 골수는 고사하고 진룡의 혈맥을 가진 후예의 골수조차 구하기 어려울 텐데……”
위 대부는 상당히 난처한 듯한 기색이었다.
“다른 재료로 대체할 순 없는 것이오?”
“전혀 안 되는 건 아니죠. 용의 골수라면 두 냥 정도면 충분하지만, 대신할 재료라면 용족의 용혈이 필요합니다. 대략 삼십 근 정도면 충분하겠군요.”
“사, 삼십 근!?”
위 대부의 표정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그는 진심으로 크게 놀란 듯했다.
보통 용족의 선혈은 방울 단위로 거래가 된다.
심지어 용혈보단조차 겨우 세 방울이면 만드는데, 무려 삼십 근이나 필요하다니.
물론 용혈이 무거운 편이긴 해도 삼십 근이라면 무려 이백에서 삼백 방울 정도 되는 엄청난 양이다.
“못 구하는 건가요? 그럼 어쩔 수 없죠. 저로선 더 이상 방법이 없습니다.”
진양은 곧바로 몸을 돌렸다.
“지, 진 대사! 잠시만 기다리시오. 삼십 근, 있소!”
위 대부는 황급히 떠나려는 진양을 붙잡았다.
이번엔 진양이 크게 놀랐다.
‘뭐? 이놈의 해적단, 그렇게 돈이 많았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