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223
223화 진정한 고수
선장을 바라보는 진양의 미간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그럼에도 놀란 기색은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전 요청을 받고 유령호의 진법을 고치기 위해 온 사람입니다. 일도 무사히 마쳤는데 이런 식으로 절 죽이려고 하시다니요? 이건 유령 해적단의 규칙을 완전히 무시하는 행위 아닙니까?”
“아니다. 네가 오해를 하고 있는 모양이구나. 넌 죽지 않을 것이다. 무사히 풍림호로 돌아가게 될 것이고, 심지어 육신에 입은 모든 상처도 회복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네 안의 잠재력도 훨씬 더 강력해질 것이다.
넌 앞으로 이 몸이 풍림호에 심어둔 가장 강력한 잠재력을 가진 말이 되어 추후 곽순풍을 대신하여 풍림호의 선장이 될 것이다. 넌 그대로 진양이겠지만, 더 이상 네가 아닐 것이다.
넌 심각한 중상을 입었다. 육신의 근원에 손상을 입었고, 수명이 크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네 도기는 작은 흠집조차 생기지 않았지. 그건 네 도기가 매우 강력하기 때문이다.
비록 멀리서 본 것이 전부지만 난 확신했다. 내 일생 가운데 이렇게 강력한 도기를 가진 이를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라고. 아니, 널 필적할 적이 아무도 없을 거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러니 진양, 넌 나의 가장 완벽한 화신이 될 것이다.”
유령호 선장의 말투는 매우 나긋했다.
느린 목소리로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을 내뱉고 있었으나, 그가 한 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마음속에 큰 두려움이 몰려왔다.
평온한 목소리였으나 억제할 수 없는 열광이 섞여 있었다.
진양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역시, 제가 너무 완벽해서 그런 거였군요. 하여튼 어딜 가나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다니깐. 난 괜한 시비를 일으킬 생각 없습니다만, 굳이 시비를 일으키겠다면 가만히 있진 않을 겁니다.”
“걱정할 것 없다. 오늘 이 시간 이후로 그 누구도 네게 시비를 거는 이는 없을 테니까. 너는 내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가장 완벽하면서도 아름다운 화신이자 보석이다.”
유령호 선장의 목소리에는 기쁨이 녹아있었다.
선장은 어느덧 가까이 다가온 진양을 향해 굵직한 손을 내뻗었다.
그의 손이 진양의 오른쪽 가슴에 닿는 순간, 선장의 목소리가 급격하게 변했다.
“응? 분신? 도대체 언제?”
이제껏 평온하던 선장의 목소리에서 당황스러움이 묻어나왔다.
진양은 히죽거리며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앞쪽을 직시했다.
어둠 속에 숨어있는 선장의 모습을 살펴보기 위함이었으나 아쉽게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침묵하던 선장이 한숨과 함께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군. 유령호에 올라 진법을 수리한 건 네 본체가 맞아. 분신으론 진법을 수리할 만한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으니 말이야. 진법 수리가 끝나고 영력의 폭발이 일어나고, 모든 사람들의 감각이 마비된 틈을 타 분신을 만든 모양이구나.”
“과연 보통 분은 아니시군요.”
진양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아주 잠깐의 생각으로 모든 것을 눈치채다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양, 과연 내가 널 잘못 본 게 아니군. 넌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완벽하구나. 아무도 모르게 분신을 남긴 것도 모자라 조용히 본체를 빼돌리다니. 심지어 나까지 속일 줄은 몰랐다. 유령호에서 이렇게까지 날 속일 수 있었던 자는 네가 유일하다.”
선장은 화를 내기보단 오히려 기분 좋다는 듯 큰소리로 웃었다.
진양 역시 웃고 있었으나, 그의 가슴속에는 왠지 모를 한기가 느껴졌다.
상대는 결코 만만한 자가 아니었다.
‘영태성녀와 임지청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들은 정말로 선장의 화신일까? 아니면 두 사람 모두 화신이 아닌 단순한 해적단 단원인 건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일단 선장의 반응으로 보아 그는 삼신술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뿐만 아니라 삼신술에 통달한 것이 분명했다.
사실 분신술로 만들어낸 분신의 실력은 당연히 본체에 비해 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장점도 있다.
소멸되더라도 본체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점이었다.
진양이 바다에서 도망칠 때 쓴 방법은 바로 수신 상태가 되는 것이었다.
천일진수의 특성을 이용하여 수신 상태로 완전히 바닷물에 녹아들었기 때문에 아무런 흔적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자신의 의도를 모두 들키고, 심지어 진양에게 속아 넘어가기까지 했으나 선장에겐 일말의 분노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자신감.
진양에게 모든 의도를 들켜도 상관없다는 자신감 때문임이 분명했다.
선장은 이미 진양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진양은 아직 선장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가 무슨 속셈으로 이러는 것인지, 어느 정도의 실력을 진 것인지, 어떻게 생겨 먹은 인간인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날이 밝으면 경매가 시작될 테니 남아서 즐기도록 하거라. 진법을 고쳐주었으니 당연히 사례는 해야겠지. 네 이름 앞으로 열 마리의 괴수를 풍림호로 보내도록 하겠다.”
선장은 진양을 놓아주며 손짓을 했다.
진양은 곧바로 선실 밖으로 쫓겨났고, 나무로 된 육중한 문은 펑- 하는 소리를 나며 닫혀버렸다.
마치 환각을 본 듯한 기분이었다.
진양은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찍혔다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극도로 넘치는 자신감, 게다가 어둠 속에 숨어있으면서도 바깥의 모든 일을 아는 듯한 모습까지.
선장은 진양이 빠져들 수밖에 없는 함정을 팠다.
그리고 진양을 화신으로 만들어 다시 풍림호로 돌려보낼 계획을 세웠었다.
계획이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진양’은 살아있었기 때문에 이번 일은 단순히 진법사를 빌려 쓴 것으로 마무리됐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전부 들통나고 말았다.
그럼에도 선장은 전혀 분노한 기색이 없었다.
정말 생각하면 할수록 무시무시한 인물이었다.
그는 말도 안 될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는 인물이었고, 감히 범접할 수 없을 만큼 냉정한 인물이었다.
모든 계획이 들통나고 자신이 분신에게 농락을 당했다는 것을 알고도 대범하게 분신을 놓아주었다.
게다가 진양을 경매에 초대하는 여유까지 보여주었다.
진양은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
진양은 한숨을 푹 쉬었다.
“어휴,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뜯어먹는 건데. 아무리 못해도 용혈 팔백 근 정도는 땡길 수 있었는데 말이야.”
진양은 느긋하게 선실을 빠져나왔다.
어차피 이곳에 머물고 있는 건 분신이었기 때문에 딱히 급할 것도 없었다.
갑판으로 나올 진양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덧 육지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고, 주위엔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배는 여전히 전속력을 다해 이동하고 있었다.
배가 바닷물을 가르며 나아가자 파도가 일어 흰 포말을 일으켰다.
공기 중에선 이상할 정도로 짙은 바다의 짠 내가 진동했다.
뿐만 아니라 다소 거친 영기도 잔뜩 느껴졌다.
진양은 기운을 조금 흡수하여 연화를 시도했다.
다행히 성공하긴 했으나 호량에 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시간과 힘이 들어갔다.
‘가성비가 별로군.’
해안과 멀어질수록 거친 기운은 점점 더 짙어졌고, 진양의 힘으로는 다스릴 수 없는 혼란한 힘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하늘 높이 떠 있는 구름은 물고기 비늘 형상을 띄고 있었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기온이 점점 더 오를 것이라는 뜻이었다.
허공으로 난폭한 기운이 퍼지며 혼란이 가중되어 구름이 한곳으로 모이지 못해 이런 현상을 띄기도 했다.
어느덧 사해 해역으로 들어선 듯했다.
물론 완전히 들어선 것은 아니고 이제 막 발을 들였을 뿐이었다.
이 앞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견고하지 못한 배는 사해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사라지게 될 것이며, 승선하고 있던 사람들 역시 목숨을 잃게 될 것이었다.
잠시 뒤.
하늘 끝에서 한 줄기의 빛이 번쩍였다.
천지를 가르며 빠르게 날아온 빛은 눈 깜짝할 사이에 자취를 감추었다.
동쪽에서 저항할 수 없는 강력한 보라색 기운이 밀려왔다.
사해를 가득 채우고 있던 난폭한 기운이 순식간에 모두 사라져버린 듯했다.
진양은 숨을 들이켜 보라색 기운을 마셨다.
기운이 몸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체내로 상쾌한 느낌이 감돌았고 머릿속은 먼지 한 올 없이 깨끗이 비워졌다.
“진 대사, 여기 있었구려. 이제 곧 경매가 시작될 텐데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게요?”
위 대부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진 대사, 정말 고맙소. 진 대사의 도움이 없었다면 항해에 큰 지장이 생겼을 것이오. 덕분에 우리 유령호의 체면과 신용을 지킬 수 있었소이다.”
“과찬이십니다.”
진양도 은은한 미소로 화답했다.
하루 동안 관찰한 결과 위 대부는 배의 핵심 기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듯했다.
그는 그저 이 배의 대부로서 자신의 임무에만 충실한 뿐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선장의 비밀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듯했다.
“진 대사, 그럼 이쪽으로 안내하겠소.”
위 대부는 경매가 열리는 곳으로 진양을 안내했다.
사실 유령호에는 제법 많은 진법사들이 있었다.
이들 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이들은 원 대사고, 남은 사람들은 비록 원 대사에 비하면 한참 뒤떨어지는 수준이긴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유지보수 정도는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실력의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보통 바다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대부분이 갑작스럽게 생기게 됐다.
그러므로 실력 좋은 진법사와 관계를 잘 맺어 나쁠 건 없는 것이었다.
위 대부는 진양을 데리고 갑판 끝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뒤를 돌자 뜬금없는 위치에 커다란 석문(石門)이 서 있었다.
분명 방금 걸어올 때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문이었다.
복잡한 도문이 새겨진 문의 표면에는 살벌한 전류가 흐르고 있었다.
위 대부는 영패를 꺼내 석문에 가져다 댔다.
순간 육중한 소리와 함께 석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석문 안쪽으로 비경이 펼쳐져 있었다.
비경 내부엔 높낮이의 차이가 크지 않은 비교적 낮은 산이 깔려있었는데, 전부 초록빛으로 뒤덮여 상큼한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두 사람은 숲 사이에 난 길을 따라 걸었다.
작은 새와 곤충들은 찾아볼 수 있었으나 요괴나 독충 등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영기가 매우 희미한 곳이었기 때문에 강력한 생명체들은 이곳에서 살 수가 없을 것이었다.
숲길을 따라 걸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평지가 나왔고, 돌로 잘 다듬어진 길은 여러 채의 대전이 몰린 곳까지 이어져 있었다.
아직 가까이 가지도 않았으나 그곳에서 수많은 강자들이 뿜어내는 기운이 느껴졌다.
심오한 기운부터 패기로운 기운, 차가운 기운, 뜨거운 기운까지.
여러 종류의 기운이 느껴졌다.
분위기가 예사롭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