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325
325화 당장은 목숨이 우선이다
진양은 곧바로 계단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석탑 첫 번째 층으로 들어선 진양은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부지런히 달렸다.
석탑은 일부가 박살 나며 층마다 하나로 연결이 되어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진양은 단숨에 일곱 번째 층에 도착했다.
그러나 용의 뿔은 이곳에도 떨어져 있었다.
진양은 아무 말 없이 계속해서 위로 달렸다.
그리고 여덟 번째 층에 도착했다.
멀리 수백 장 길이의 용의 뿔이 일곱 번째 층의 천장을 박살 내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들더니 여덟 번째 층의 땅에 박혔다.
용의 뿔에선 엄청난 힘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그 힘으로 인해 만들어진 거대한 폭풍이 진양의 몸을 순식간에 휩쓸며 공중으로 날려버렸다.
다시 땅 위로 추락한 진양은 몸을 일으키며 용의 뿔을 바라보았다.
용의 뿔은 수백 장 밖에 있었다.
“역시, 난 보물에 깔려 죽을 운명이라니깐.”
그러나 여전히 미련이 남은 듯 용의 뿔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진양이었다.
그때, 뒤늦게 소마불이 나타났다.
“용의 뿔이 일곱 번째 층으로 떨어질 줄 알았는데. 진 형, 과연 혜안이 있으십니다. 어떻게 저게 이곳으로 떨어질 거라고 예상하신 겁니까? 정말 대단하십니다.”
“허허…….”
진양이 의미 없는 웃음과 함께 용의 뿔을 가리켰다.
“저걸 당장은 둘로 나눌 수 없을 겁니다. 일단은 당신이 보관해두는 걸로 하고, 나가서 다시 분배하도록 합시다.”
소마불은 곧바로 진양을 의심했다.
저런 보물을 순순히 남의 손에 맡긴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 끝에 이런 결론을 내렸다.
‘저 인간은 감정이 오락가락하는 미친놈이야. 상식적으로 생각해선 안 돼. 게다가 아무 뜻 없이 그냥 가지고 있으라고 한 거일 수도 있잖아?’
“감사합니다.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소마불은 진양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인 뒤 손을 뻗어 용의 뿔을 챙겼다.
“허, 아무리 그래도 사양 한 번 하지 않다니.”
진양은 진심으로 황당했다.
“진 형의 성의인데, 어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진지했다.
“알았어요. 일단 가지고 있어요. 분배는 나가서 다시 하는 걸로 합니다.”
진양은 겉으론 무덤덤하게 말하고 있었으나, 속으로는 웃고 있었다.
‘자소도군 몸의 일부인데. 그걸 미쳤다고 함부로 만지냐? 만져도 저 둘이 싸우다 죽고 난 다음에 만져야지.’
진양의 시선이 탑에 뚫린 거대한 구멍으로 향했다.
소녀는 여전히 거칠게 자소도군을 공격하고 있었다.
목숨조차 아까워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결국은 뿔 하나 부러트린 것이 전부였다.
그녀는 역공에 당해 허공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생사는 알 수 없었다.
‘저 소녀, 장해도군이 여기 가뒀던 거 아니었어? 그나저나 죽으면 안 되는데.’
그동안 등에 업고 다니면서 유용하게 호신용 무기로 사용한 것도 있고, 업고 다니는 게 익숙해진 것도 있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겠다고 약속까지 했었다.
죽지만 않는다면 반드시 밖으로 데리고 나갈 것이었다.
잠시 살펴보았으나 별다른 건 없었다.
아무래도 진양의 등 뒤에 업혀있던 소녀가 끼어들며 벌어진 결과였다.
죽은 두 사람과 달리 소녀는 적어도 목숨은 붙어있었으니 소녀에겐 점점 더 유리한 상황이 펼쳐질 것이었다.
두 봉호도군은 세상모르고 싸움에 완전히 정신이 팔려있었다.
서로의 힘이 약해져 가는 걸 분명 뚜렷하게 느끼고 있을 텐데, 두 사람은 점점 더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쯤 되자 자소도군도 착한 인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석탑으로 난입하여 진양을 죽이지 않는 것도 전투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진양은 걱정이 되었지만,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비록 선천홍몽자기를 익히긴 했으나, 자소도군은 이미 오래전부터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자소도군은 현재 진양이 죽은 줄로 알고 있었다.
진양이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소마불이 마지막 층으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던 진양은 문득 무언가 떠올랐다.
황급히 뒤를 따라 계단을 오르고 마침내 마지막 층에 도착했다.
탑의 마지막 층은 공간이 넓혀지지 않은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직경은 무려 수백 장에 이르렀으며, 검은 금속으로 바닥이 깔려있었다.
바닥엔 아무것도 없었고, 유일하게 중간에 흑금색의 포단이 놓여있었다.
사방의 벽에 알 수 없는 문자가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먼저 위로 올라온 소마불은 정면의 벽을 바라보며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진양도 벽을 살폈으나 새겨진 글자는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글자에서 왠지 모르게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마도 장해도군이 직접 쓴 글인 듯했다.
진양은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중간에 놓아진 포단 외에는 별다른 특별할 건 없었다.
진양은 포단을 챙겨 넣었다.
‘이런 곳에 있는 만큼 귀한 물건이겠지.’
그리곤 소마불에게 다가와 물었다.
“부도마교의 장해비전 말이에요. 이미 실전된 거죠?”
소마불은 눈빛을 반짝이는 듯싶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긴 무슨.”
진양은 다 알고 있다는 듯 소마불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장해도군 이후로 부도마교에서 장해비전을 전수받은 사람이 없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거든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 알겠다. 제가 잘못 얘기한 게 맞네요. 완전히 실전된 게 아니라 일부분만 실전됐다고 해야 맞겠네요. 그렇죠?”
“아미타불…….”
소마불은 시선을 돌리며 대답을 피했다.
“아마 저게 장해비전이겠군요.”
진양이 벽에 적힌 글자를 가리켰다.
“그렇습니다. 저건 장해비전의 첫 권으로 기초에 대한 내용이죠. 관심 있다면 직접 살펴보셔도 좋습니다만, 알아보실 수 있을지는 의문이군요. 여기 적힌 글씨는 그저 상징적인 거고, 진정한 의미는 안에 숨겨져 있을 겁니다.”
소마불은 이 한 마디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진양을 상대해 주지 않았고, 자신의 생각에만 전념하기 시작했다.
진양은 벽을 한참 살폈다.
그러나 소마불의 말대로 알아볼 수가 없었다.
소마불과 고혈도희를 처음 만났을 때, 두 사람이 장해비전 때문에 이곳에 왔을 거라고 추측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부도마교의 장해비전이 유실되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남해에 도착하자마자 사람을 보내 정보를 수집했다.
그 결과 부도마교에 아직 장해비전의 계승자가 남아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렇게 진양은 자신의 추측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그들이 장해도군의 어떤 보물 때문에 이곳으로 들어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전부 실전된 것이 아니라 일부만 실전된 거라면 어떨까?
모든 경전이 자소도경처럼 기초편만 있는 건 아니니 말이다.
진양은 가부좌를 튼 채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을 떠올렸다.
자소도군이 상상했던 것과 달랐던 것처럼 장해도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장해도군에게 후대에 전승을 남겨줄 방법이 있었다면, 양범이 이곳으로 와서 무엇을 가장 먼저 했을까?
진양은 천천히 눈을 뜨고 장해수수전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그다음 벽을 바라보자 미지의 문자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자에 안에 포함된 진리가 진양의 두 눈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방의 벽을 모두 살피고 모든 내용을 머릿속에 넣은 진양의 얼굴은 실망으로 가득했다.
소마불의 말대로 이건 첫 권, 기초편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적혀있는 내용에 따르면 장해비전은 총 세 권이 존재했다.
첫 권은 양기, 축기, 삼원 세 경지까지만 수련이 가능했다.
신해, 영태, 신문 경지를 익히기 위해선 장해비전의 두 번째 권, 그러니까 장해비전의 가장 핵심인 장해권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 장해권이 바로 진양이 현재 필요로 하는 것이었.
하지만 장해권은 이곳에 없었다.
‘결국은 직접 시신에 습득 능력을 사용해야 하는 건가?’
그러나 엄청난 기운을 내뿜으며 치고받고 싸우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습득 능력을 사용한다는 건 말이 안 됐다.
원래는 장해도군이 보책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보책의 내용만 빠르게 익히고 도망치면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어차피 다른 건 중요하지 않으니 말이다.
물론 가장 좋은 상황은 저 두 모자란 인간들이 함께 동귀어진 하는 상황이었다.
미련이 남은 진양은 아쉬웠는지 반나절을 살펴보았다.
눈알이 빠지도록 살펴보았으나 여전히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아홉 번째 층에서 내려온 진양은 벌어진 틈을 힐끔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여전히 격렬하게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계단을 따라 일곱 번째 층으로 내려오자 이번엔 단장공과 정동, 정삼모와 만났다.
그러나 진양은 아무 말 없이 계속해서 걸었다.
첫 번째 층까지 내려온 진양은 마을을 지나는 길에 왕계현을 만났다.
근처에 누군가 있을 수도 있었으나 개의치 않고 말했다.
“밖에서 자소도군과 이성이 깨어난 장해도군이 싸움을 벌이고 있어요. 참고로 말해 주자면 지금은 자소도군이 극도로 불리한 상황입니다. 어쨌든 전 이 기회에 이곳을 빠져나갈 겁니다. 선택은 당신의 몫입니다. 어떻게 할지 정하시죠.”
“먼저 가시게나. 방법은 혼자 생각해 보겠네…….”
왕계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선택은 당신이 한 겁니다. 나중에 제 탓하지는 마세요.”
곧바로 떠나려던 진양은 무언가 떠올랐는지 한마디 더 했다.
“참고로 탑은 이제 곧 무너질 겁니다. 심각하게 부서졌거든요.”
말을 마친 진양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언제 석탑이 무너질지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느덧 탑 정문에 도착한 진양은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전투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전투의 여파가 퍼져나가는 범위는 눈에 띄게 줄어있었다.
두 사람 모두 힘이 많이 빠졌다는 증거였다.
이대로 힘을 모두 써버리면 남은 힘은 사기뿐일 것이었다.
하지만 그쯤 되면 멀쩡하게 깨어있던 이성도 점점 더 흐려지게 될 것이고, 결국은 이성을 완전히 잃게 될 것이었다.
콧대 높은 두 사람의 성격을 생각해 보았을 때 절대 자기 자신을 살아있는 시신으로 만들진 않을 듯했다.
전투는 아마도 그 전에 끝이 날 것이었다.
진양은 도궁 가장자리를 향해 온 힘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석탑이 심각한 손상에 의해 무너지기 시작하며 도궁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도궁 가장자리에 도착한 진양은 뒤를 돌아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결과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당장은 목숨이 우선이었다.
장해비전이 없다면 다른 걸 수련하면 되고,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일단 수련이 빠른 공법을 먼저 익히고 나중에 대체할 만한 공법을 얻었을 때 다시 수련하면 될 것이었다.
어차피 진양은 그 누구보다도 안정적이고 튼튼한 도기를 가지고 있었다.
언제든 다른 공법을 배워도 상관없을 정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