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491
491화 곱게 죽을 수 있나 보자고
진양은 멍한 눈으로 초상화를 쳐다보았다.
장정의 이 녀석.
혹여나 어디 이름 모를 무덤 속에서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온갖 걱정을 다 했건만.
알고 보니 황천마종에서 호의호식하고 있었다니.
누구는 가져온 탕마저 바닥이 난 걸로도 모자라 지명수배까지 당했는데, 누구는 편안하게 누워서 뜨끈한 탕을 마시고 있다니.
“뭐, 정의 녀석도 꽤 고생 했잖아. 게다가 몇 번이나 죽었다니 이번만은 편하게 쉬도록 놔둬야지.”
이쯤 되니 최후의 보루로 미뤄두었던 방법을 슬슬 위로 꺼내 올려도 될 듯했다.
진양은 이제야 소식을 알게 되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미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듯했다.
그렇다면 크게 걱정할 것도 없었다.
물론 걱정한다고 하더라도 괜한 걱정이었다.
모두 진양이 지명수배를 당한 일에 대해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껏 진양은 온갖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아남지 않았는가?
진양은 호숫가에서 눈을 감은 채 한참 수련에 집중하고 있는 산겸을 찾아갔다.
“스승님, 볼일이 있어서 잠시 외출을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허, 이제 갓 입문한 녀석이 어딜 나간단 말이냐? 게다가 요즘 바깥 상황도 흉흉하던데.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는 것이냐?”
“다른 사람에게 전해줘야 할 중요한 물건이 있었는데, 그게 지금 생각났지 뭡니까.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산겸은 눈을 뜨고 진양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대답했다.
“그럼 다녀오거라. 대신 몸조심하거라.”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진양은 짐을 챙겨 오행산을 빠져나왔다.
이대로 곧장 헌국공이 있는 곳으로 갈 계획이었다.
전해줄 ‘선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시비를 걸어온 것은 상대였다.
이대로 참으면 진양이 아니었다.
‘좋아. 어디 내가 죽나 네가 죽나 한번 해보자고.’
오행산을 빠져나온 진양은 먼 길을 떠나기 전 우선 미리 수집한 정보부터 정리했다.
신전후와 싸울 때 헌국공에게도 좋은 일을 적지 않게 했었다.
아마 중간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본 사람은 헌국공일 것이었다.
때문에 진양은 헌국공에 대한 정보도 어느 정도 확보해놓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중에는 헌국공의 사람들에 대한 정보도 포함되어있었다.
천천히 살펴보니 헌국공을 따르는 자들이 동경 내에 꽤 많이 있었다.
백포 도관 녀석들과 헌국공 사이엔 별다른 관계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수집한 정보망을 기반으로 점점 좁혀가다 보니 접점이 하나 나왔다.
바로 인태주 주목이었다.
그러나 그가 헌국공의 사람이라는 것은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일이었다.
헌국공이 이런 일을 벌이기 위해선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만 한다.
그래야 언제든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백포 도관과 관련된 인물을 나열해놓고 헌국공의 사람들과 비교를 해보니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이들 중 동경 내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적절한 조건을 갖춘 사람은 오직 인태주의 주목뿐이었던 것이었다.
게다가 인태주는 사방으로 길이 뻗어진 곳이었다.
대륙뿐만 아니라 동쪽으로는 바다까지 닿아있었기 때문에 동경 내에서 압도적인 유동 인구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때문에 인태주를 드나들거나 어떤 물건을 반입시키는 건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더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먼저 시비를 걸어온 것은 헌국공이다.
위부터 아래까지 단 한 놈도 빼놓지 않고 벌을 줄 생각이었다.
일단 이 일을 수면 위로 드러낸 뒤 놈에게 물건을 보낸다.
그러면 놈은 대제가 금지한 금기를 범한 것도 모자라 천하의 금기까지 범한 꼴이 되어버린다.
‘어디 곱게 죽을 수 있나 보자고.’
그러나 이 일을 어떻게 수면 위로 드러낼지는 신중해야만 한다.
진양의 모습으로 나설 수는 없었다.
지금 진양의 모습으로 나섰다간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계무도의 모습으로 나설 수도 없었다.
물론 계무도의 신분으로는 적당히 사람들의 눈에 띄어도 괜찮지만 그렇다고 과하게 선을 넘으면 오히려 귀찮아질 수도 있을 것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진양은 이번 일에 가장 적합하면서도 사건의 당사자들을 당장이라도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인물을 떠올렸다.
진양은 주머니에서 봉인된 옥병을 꺼냈다.
옥병 안에선 회색 기운이 쉬지 않고 옥병 내부를 맴돌고 있었다.
진양은 나판을 꺼내 옥병을 나판의 정중앙에 놓았다.
그리고 나판을 조절한 뒤 수인을 맺었다.
연속으로 여든한 개나 되는 수인을 맺고 나자 나판 위로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오며 천천히 옥병을 감싸기 시작했다.
옥병 내에서 날뛰던 기운은 진양의 손짓에 따라 나판과 일시적으로 하나가 되었고, 간단한 법보의 형상을 띠었다.
무엇이든 연화시키고 나면 다루기 쉽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사실 진양이 방금 사용한 공법은 성공률이 매우 낮은 공법이었다.
다른 사람의 힘엔 저항의 기운이 녹아있으므로 다루기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한편, 옥병 내에 있는 기운은 옥병의 한쪽으로 쏠려있었다.
“남쪽이군.”
인마는 아무래도 지난번의 일로 적지 않게 놀란 듯했다.
녀석은 원래대로라면 인태주로 갈 계획이었을 것이었다.
먼저 인태주에서 대학살을 벌이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성장한 뒤 인태주 주목을 찾아가 보복하고 이어서 이도로 갈 생각이었을 것이었다.
그런데, 녀석은 도대체 이 사실을 어떻게 안 것일까?
인마에겐 태생적으로 자신의 적을 알 수 있는 능력이라도 있는 것일까?
당장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진양은 곧장 나판에 올려진 옥병 속 기운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고기주가 자리 잡고 있는 남쪽이었다.
그렇게 보름 정도 움직이고 나자 대략적으로 어떤 곳을 가리키는지 알 수가 있었다.
오십 리 정도 펼쳐진 사지 내에는 묘지가 수도 없이 깔려있었다.
대충 보기에도 어느 문파의 조상 묘지인 듯했다.
그러나 문파가 멸문당하며 현재는 공동묘지가 되어버린 듯했다.
가장자리 쪽에선 범인의 무덤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진양은 이곳을 중심으로 한 바퀴를 돌아보았다.
어느 방향으로 돌건 원한의 기운은 이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진양은 주위를 돌다가 성낙진판을 땅의 기운이 몰리는 곳에도 내려놓았다.
안쪽으로 이십 리 정도 걸어가다 보니 묘지가 파여있는 곳이 나왔다.
그리고 그 옆에는 무려 오십 장이나 되는 거대한 늑대가 누워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늑대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이빨을 드러냈다.
놈의 눈에선 붉은 기운이 솟구쳤고, 동시에 온몸에서 강렬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진양을 발견하고는 곧장 살기를 거두며 ‘깨갱’ 하는 소리와 함께 재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묘지 안에서 한 줄기의 어두운 빛이 빠져나와 요괴 늑대의 머리 위로 향했다.
이어서 빛은 대략 열두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러나 늑대는 그러든 말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친 듯이 도망만 칠 뿐이었다.
“아니, 잠깐만 기다려 봐! 누가 잡아먹기라도 한대? 난 그냥 볼일이 있어서 온 거라고.”
아무래도 두 녀석 모두 진양에게 단단히 혼이 났었던 듯했다.
진양은 한숨을 푹 쉬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수인을 맺었다.
그러자 맑았던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며 수십 리 내의 하늘에 밤하늘이 펼쳐졌다.
찬란한 빛을 내뿜으며 밤하늘을 가르는 유성우에선 엄청난 힘이 느껴졌다.
콰광-!
늑대가 도망치려는 곳 앞쪽으로 거대한 유성이 하나 떨어졌다.
놀란 늑대는 재빨리 발걸음을 돌리려 했으나.
찰나의 순간 고개를 돌린 녀석은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수의 유성우가 마치 폭우처럼 자신의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앞길도 막히고 뒤도 막혔으니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이어서 진양이 천천히 걸어오며 소년과 늑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글쎄 이번엔 진짜 볼일이 있어서 온 거라니깐. 왜 못 믿는 거야…….”
“가까이 다가오지 마!”
소년의 눈빛이 푸른색으로 물들었다.
눈동자에는 범상치 않은 부문이 떠오르며 은은한 빛을 뿜어냈다.
“알았어. 네가 강한 건 충분히 알겠다고. 그리고 생각해봐. 내 말대로 학살을 벌이지 않고도 충분히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잖아? 그러니까 잠깐 얘기 좀 하자고.”
“흥!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죽인다고 먼저 했던 건 아저씨잖아요!”
소년은 여전히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진양을 노려보았다.
“그건 그냥 놀래키려고 한 말이지. 너, 어릴 때 울면 호랑이가 물어간다는 말 못 들어봤어? 그게 설마 진짜겠냐? 장난 그만치고 이만 얘기나 좀 하자고.”
소년은 진양을 유심히 살폈다.
살의도 느껴지지 않았고, 어차피 여기서 도망친다고 하더라도 무사히 도망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소년은 늑대의 머리 위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여전히 경계심 가득한 모습이었다.
여차하면 곧장 도망칠 준비가 되어있었다.
“녀석, 쫄긴.”
진양은 피식 웃으며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네가 누굴 죽이려고 했는지 알 것 같아서 말이지.”
“뭐라고요?”
소년은 놀란 듯 뒷걸음질 쳤다.
“너, 인태주 주목을 죽이려고 했던 거 맞지? 솔직히 여기서 갑자기 가서 복수하라고 그러면 안 믿길 테니까 솔직하게 얘기해 줄게.
사실 난 인태주 주목 그 녀석에게 진 원한이 조금 있거든. 게다가 녀석의 배후에는 모든 일을 주도하는 더 큰 인물이 있는데, 그 녀석과는 더 큰 원한을 맺을 상태지. 근데 내가 직접 나서면 별다른 효과가 없어서 말이야. 그래서 네게 부탁하러 온 거야.”
“그게 무슨 소리죠? 그래서 원하는 게 뭡니까?”
“네가 원한을 산 그 사람은 모든 사건을 무고한 사람에게 떠넘겼거든. 이대로 녀석이 발을 빼고 도망쳐버린다면 앞으로 네가 복수해야 할 대상은 대영 신조야. 생각해 봐. 너 혼자 대영 신조 전체를 어떻게 상대하겠어?
물론 인태주 주목 녀석이야 얼마든 죽일 수 있겠지. 그런데 배후의 인물은 이도에 있는 사람이라서 말이야. 넌 인마잖아. 아마 이도로 들어가기 전에 곧장 제압당할걸? 재수 없으면 그 자리에서 맞아 죽을 수도 있고 말이야.”
잠시 고민하던 소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저씨, 정말로 날 죽이러 온 거 아니죠?”
“허!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으로 보이냐?”
진양은 황당하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갔다.
“잘 들어. 네가 복수하고 싶어 하는 그 사람, 마침 나도 그 사람에게 복수하고 싶거든. 그래서 내가 아주 좋은 계획을 짜놨지. 물론 조금 위험하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죽을 정도는 아니니까 걱정하진 말고.
만약 인마가 태어났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네가 복수하고자 하는 그 사람들은 엄청나게 난처한 상황에 빠질 거야. 누가 이런 일을 벌였는지는 너무나도 뻔하니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것조차 불가능하겠지. 물론 이건 네가 놈들을 마구잡이로 죽이지 않아야만 가능한 일이야. 만약 그렇게 했다간 내가 세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 버리거든.
네가 직접 나서서 사건의 진상을 천하에 알리게 된다면 네가 복수하려는 그 녀석들을 보호하는 힘도 전부 사라지게 될 거야. 그때 마음껏 복수하면 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