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526
526화 이럴 줄 알았습니다
진양은 이도를 벗어나 흑림해로 향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인마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직접 인마를 만나 원한이 풀렸는지 확인해보면 이도 쪽의 일이 잘 풀렸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양은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했다.
이제 남은 건 순전히 운에 맡기는 수밖에.
빠른 속도를 가르는 진양의 어깨 위에 닭이 앉아있었다.
닭은 햇볕을 쬐며 기분 좋은 듯 날개를 푸드덕거렸다.
“유덕, 이제 이 몸도 회복이 슬슬 끝나가고 있거든. 잘 보일 기회를 줄 때 잡아두라고. 나중엔 국물도 없을 테니 말이야.”
“허…….”
한때 닭은 죽을 뻔할 정도로 위험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많은 일을 겪으며 수많은 힘을 집어삼키게 되었다.
마수의 힘부터 봉호도군의 앙기까지.
여러 종류의 힘을 삼켰다.
만약 호양보종이 충분히 강력한 보물이 아니었다면 이미 이성이 날아가 버리고도 남았을 것이었다.
벌써부터 태양 가까이 다가갈 생각을 하는 걸로 보아 거의 회복이 끝난 듯했다.
물론 정말로 다가갈 순 없을 것이다.
정말로 가까이 다가갔다간 본체가 태양의 강력한 진화에 태워버릴 테니까.
한편, 진양은 자신의 또 다른 신분이 이 세상에서 영원히 지워졌다는 고통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도저히 닭을 상대해줄 여유가 없었다.
계무도는 그나마 지금까지 가장 오랫동안 사용해왔던 신분이었다.
안정적인 배경도 만들어줄 만큼 꽤 공을 들였던 신분이었는데, 이렇게 잃게 되니 공허함은 말로 이루다 할 수가 없었다.
닭은 한참을 떠들어댔으나 진양은 한마디 대꾸조차 해주지 않았다.
닭은 김이 샌 듯한 얼굴로 자신의 털을 골랐다.
닭이 깃털을 골라낼 때마다 거무스름한 녀석의 피부가 깃털 사이로 드러났다.
그는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모든 힘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운이 좋았다는 건 부정할 수가 없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 많은 힘을 모두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나마 오랜 시간 동안 여유를 두고 흡수한 덕분에 모든 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진양은 닭을 힐끔 쳐다보기만 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긴 했지만, 괜히 했다간 또 닭이 난리를 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제 그에게 남은 건 화려했던 과거의 모습인 대일금오계(大日金烏鷄)의 깃털이 전부였다.
게다가 혈통까지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에 지금의 모습은 그저 중독된 한 마리의 오골계와 다를 바가 없었다.
* * *
진양이 흑림해로 향하고 있는 사이.
이도에서는 한바탕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결말이 있을지, 그리고 어떤 과정이 있을지 예측하지 못했다.
진양은 결과를 예측했다.
그러나 어째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는 예측하지 못했다.
대윤 신조는 대영 신조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다.
때문에 대영 신조는 대윤 신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많은 힘과 공을 들였고,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대가를 치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완벽하게 무너뜨리진 못했다.
옥새조차 찾아내지 못했으니, 다른 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대영 신조의 대제가 가장 꺼리는 건 전조와 관련된 물건이다.
전조라는 명칭에 걸맞은 것도 오직 과거의 대윤 신조뿐이다.
헌국공부.
헌국공은 관직을 잃고 도장까지 빼앗겼다.
더 이상 신조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그는 머리까지 새하얗게 변해버린 모습이었다.
허리까지 굽어버린 그는 이제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평범한 노인처럼 보였다.
그는 무릎을 꿇은 채 넋이 나간 얼굴로 자신의 앞에 놓인 쟁반을 바라보았다.
쟁반에는 돌로 만든 새까만 잔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취할 것만 같은 향을 뿜어내고 있는 술이 담겨있었다.
술은 마치 뜨겁게 데워진 것처럼 연신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연기의 모습은 심상치 않았다.
허공으로 피어오른 연기는 닭벼슬이 달린 독사의 형상을 이루며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입은 쫙 벌리고 있었다.
헌국공은 조심스럽게 잔을 들었다.
궁성을 바라보는 그의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폐하, 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안다고 하셨으면서, 어찌하여 제게 독주를 내리신 겁니까? 소신 무지하여 알 길이 없사옵니다.”
사실 그는 어째서 수많은 죄를 지은 자신에게 이처럼 편안한 죽음을 맞을 수 있는 기회가 내려진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대제는 그가 단 한 번도 다른 마음을 먹은 적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 그가 태자를 돕지 않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 심지어 제일 처음 옥새를 손에 넣은 게 엽건중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래서 이와 같이 편안한 죽음을 하사한 것이다.
그러나 어째서 죽음을 내린 것인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음을 피할 방법이 있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그가 한때 헌국공이었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대제의 명을 거역할 수는 없는 법.
꿀꺽-
그는 단숨에 잔에 든 술을 모두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무릎을 꿇은 채 멍한 눈으로 궁성을 바라보았다.
동공이 점점 풀리기 시작했고 정신이 흐릿해져 갔다.
그의 몸은 시든 나뭇가지처럼 마르기 시작하며 순식간에 새까맣게 물들어버렸다.
그렇게 그는 마른 시체가 되어 최후를 맞이했다.
* * *
형부.
이곳은 사형수를 수감하는 감방이다.
일련의 신분 확인 과정을 거친 후, 누군가 칼을 들고 와 엽건중의 몸에 빼곡한 문양을 새겨넣었다.
구혈이 봉인되는 동안에도 그는 아무런 저항 없이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엽 대인,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소?”
옆에 서 있던 위흥조가 물었다.
“인제 와서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엽건중의 목소리는 매우 평온했다.
위흥조는 미간을 찌푸리기만 할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제의 명이 담긴 칙서가 그의 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 적힌 건 겨우 몇 글자가 전부였다.
그는 이 순간까지도 일말의 후회조차 없었다.
심지어 어째서 칙서에 담긴 것이 겨우 몇 글자뿐인지도 몰랐다.
대제가 멀쩡히 건재하고 있었음에도 그는 몰래 조왕을 도왔다.
그동안 뒤에서 조왕을 도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해왔다.
대제를 수도 없이 속여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나 이번 일은 대제로서도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는 그저 자신이 패배했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신하로서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실패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는 패배했기 때문에 죽게 된 것이 아니었다.
대제가 자신의 행위를 납득할 수 없게 죽게 된 것이었다.
오형은 보통 먼저 숨을 끊어뜨린 뒤 진행된다.
그러나 구혈을 봉인하고 오형을 가하는 건 다르다.
쉽게 죽지 않게 되는 것이다.
봉인 작업이 모두 끝났다.
그의 영혼과 이성을 포함한 모든 것들이 강제로 육신 내부에 구속되었다.
이제 손과 발, 귀를 자르고 눈알을 파낼 것이다.
그다음으로 몸을 차근차근 토막 낸 뒤 마지막으로 목을 자를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쉽게 죽음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모든 힘이 소진되어 말라갈 때까지 살아있다가 마지막 남은 생기까지 소진하는 순간 비로소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이 얼마나 처참한 죽음이란 말인가!
위흥조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서 버렸다.
그래도 지금까지의 충심을 고려하여 조금이나마 고통 없이 보내줄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만 단념하기로 했다.
신조가 다른 곳과 다른 이유.
그것은 바로 엄격하게 지켜지는 법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전전긍긍하며 하루 종일 불안에 떠는 사람도 있었다.
대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갈수록 예측이 어려워졌다.
심지어 지금의 대제가 과거 정복 전쟁을 할 때의 대제처럼 냉혹한 사람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헌국공은 죽었다.
형부 상서 엽건중도 죽었다.
두 사람의 죽음과 함께 남아있는 다른 일들도 하나씩 정리되어가기 시작했다.
먼저 환해 일족에게 엽건중의 죄목과 함께 대제가 그를 극형에 처했다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대제가 얼마나 환해 일족을 중시하고 있는지에 대한 성의를 보이기 위해서였다.
헌국공부에서 헌국공을 따르던 참모들도 절반 이상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들 역시 범인 학살 사건에 연루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이들은 신조의 관직을 가진 자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들의 죽음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사건의 원흉인 헌국공이 죽었는데 원흉의 참모들을 그냥 남겨둘 순 없는 법.
괜히 후환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건과 관련된 이들이 줄줄이 죽어 나갔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집행한 것은 바로 한안명이었다.
계무도가 죽기 직전에 남겼던 말이 여전히 그의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사건 마무리에 각별히 신경을 쓰며 그물 사이로 빠져나가려던 자들까지 모두 잡아 극형에 처했다.
한편, 장향각은 또다시 과거의 시끌벅적한 모습을 되찾은 상태였다.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은 이미 이곳 사람들의 머릿속에선 완전히 지워진 듯한 모습이었다.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정천사에 의해 봉쇄당했던 청루가 어떤 곳인지 확인해보고 싶다며 멀리서 찾아오기까지 했다.
여심의 시신도 수습되었다.
그녀의 시신을 처리한 것은 천천소였다.
웬만큼 실력이 되지 않는 사람은 감히 가까이 가는 것도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천천소는 계무도가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를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여심을 사형의 땅에 묻어주셨으면 합니다. 동봉된 편지는 그녀에게 보내는 편지니까 관속에 넣어주시고, 관은 아무 곳에나 묻어주세요.’
죽은 사람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순 없었다.
때문에, 그는 진양의 부탁대로 관을 가지고 자신의 땅으로 왔다.
그리고 편지에 적힌대로 아무 곳이나 적당하다 싶은 곳을 골랐다.
마지막으로 관과 편지를 구덩이에 넣고 흙을 덮으려는 순간.
그는 멈칫하며 멈춰 섰다.
“살아있을 땐 뭐하고 죽어서야 청서(情書, 연애 편지)를 보내는 겐가! 어차피 보지도, 듣지도 못할 텐데……. 그래도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여심 소저에게 편지를 읽어주도록 하겠네.”
천천소는 곱게 접혀진 편지를 천천히 펼쳐 들었다.
그러나 편지를 다 펼치기도 전에 첫 줄에 적힌 글자를 읽은 그는 깜짝 놀랐다.
‘사형,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죽은 사람의 편지를 몰래 볼 생각을 하다니. 정신 차리세요!’
천천소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영악한 녀석. 또 어떻게 내가 편지를 살펴볼 줄 알고…….”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편지 아래를 펼쳤다.
‘이럴 줄 알았습니다. 애초에 기대도 안 했거든요.’
천천소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계속해서 편지를 펼쳤다.
‘분명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여기까지 읽었을 줄 믿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부탁 하나만 하죠. 나중에 누군가 이곳에 찾아올 겁니다. 그럼 그 사람이 이도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리고 이렇게까지 얘기했는데 계속해서 편지를 읽는다면 진짜 치사한 놈이 되는 겁니다. 아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