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645
645화 어디에 써
진양은 불안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삼안요괴를 날카롭게 째려보았다.
“그렇게 쳐다보면 뭐? 내가 함부로 약속을 어길 사람인 줄 아는 거냐? 걱정 마. 약속대로 놓아줄 거니까. 물론 그 전에 이곳에서의 기억은 전부 지워야겠지.”
“잠깐만!”
“또 왜? 나가기 전에 더 맞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그게 아니라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서…….”
“시끄러워!”
진양이 곧바로 대나무 피리를 꺼내 삼안요괴의 모든 기억을 지우려는 순간.
닭이 불쑥 머리를 들이밀며 물었다.
“듣고 보니 궁금하긴 한데. 진유덕, 그러지 말고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나 좀 해봐. 그리고 보니 뭔가 달라진 것 같은데. 큰 전투가 있었으면 날 부르지 그랬어. 내가 있었으면 너도 훨씬 든든했을 거 아냐?”
“어차피 네가 나선다고 될 일은 아니었거든. 됐으니까 이거나 구경해.”
진양은 응룡에게 받은 보물들을 마치 길가에서 주워온 폐품 다루듯 바닥에 쏟아냈다.
한눈에 느끼기에도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고, 닭은 놀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진유덕, 너 정말로 응룡의 무덤을 도굴한 거냐? 이러다 정말로 큰일을 당할 거라고!”
“무슨 개소리야? 난 누구처럼 함부로 남의 무덤을 털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고. 그리고 이것들은 난 분명히 괜찮다고 했는데 응룡이 끝까지 내 주머니에 쑤셔 넣어준 것들이거든.”
진양의 말에 닭과 검둥이, 심지어 심안요괴마저 동시에 피식 웃어버렸다.
“다른 사람들이야 지식이 부족하니까 내가 하는 말마다 의심하는 건 이해가 가는데, 너희는 날 이렇게 오랫동안 봐놓고도 의심을 하냐? 내가 겨우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할 사람처럼 보이는 거야?”
진양이 억울하다는 듯 한숨을 푹 쉬었다.
순간 응룡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분명 자신은 사실만을 말하지만, 사람들은 항상 그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할 때의 느낌 말이다.
“서, 설마 그럼 진짜라는 거야?”
놀란 닭은 말까지 더듬었다.
그러나 검둥이는 수긍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응룡이 죽었다곤 하지만 진양의 실력으로 이렇게 많은 보물들을 전부 도굴해올 수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뭐, 못 믿겠으면 말고. 근데 만약 내가 없었다면 들어갔던 사람들 전부 다 살아나오지 못했을 거라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말이지…….”
진양은 세계의 조각부터 시작해서 고해를 넘고 심교를 건넜던 일, 청동관이 있는 곳에 도달했던 일, 그리고 응룡에게 응백을 부탁받은 일까지 하나씩 모두 설명해 주었다.
“……이렇게 된 거란 말이지. 요모는 비록 날 납치했지만, 이 몸은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수십 번도 더 그녀의 목숨을 구해주었지. 게다가 그녀는 내 덕분에 큰 이득까지 보게 되었고 말이야.”
그러나 삼안요괴가 못미덥다는 듯 차갑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왜? 인정 못 하겠어? 뭐, 물론 마지막에는 요모가 큰 역할을 하나 해내긴 했지만, 단순히 공로로만 본다면 내가 공로가 가장 크다고. 너희 삼안요족 말이야. 이 정도면 나한테 큰 빚을 진 거라고. 매년 이 몸에게 선물을 갖다 바쳐도 할 말이 없을걸? 안 그래?”
삼안요괴는 미간을 찌푸렸고, 할 말이 없었다.
진양의 말은 사실이다.
아니, 설령 진양이 했던 얘기 중 삼 할 정도만 진실이라고 해도 삼안요족은 진양에게 큰 빚을 지게 된 건 맞다.
하지만 인정을 하고 싶진 않았던 것이었다.
“맞는 말이군.”
닭 역시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 요족들의 규칙대로라면 삼안요족은 이제 정식으로 용의 후예가 되는 거잖아. 물론 태생적으로 핏줄을 타고난 게 아니긴 하지만, 어쨌든 혈맥이 바뀌었으니 이제 너희들의 후손들은 전부 태생적으로 용의 핏줄을 타고난 용의 후예가 되는 셈이지. 무려 응룡의 후예 말이야.
이 정도면 매년 선물을 갖다 바치는 게 아니라 아예 요국 안으로 모셔놓고 받들어도 할 말이 없는 거지.”
“그 말이 맞다. 응룡이 친히 하사한 정혈이라니. 이 정도면 종족 전체가 한 단계 더 강해진 거나 마찬가지라고. 이런 일은 상고시대에도 없었던 일이다. 요족이 진룡의 정혈을 얻게 되다니. 설령 진룡의 정혈을 손에 넣는다고 하더라도 진룡의 허락 없이는 감히 쓸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거다.”
검둥이도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나 삼안요괴는 끝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자신만은 요모를 가장 잘 알고 있다.
요모가 진양을 놓아주고 먼저 자리를 떴다는 건 곧 진양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해 준 셈이다.
요모 역시 자신이 큰 빚을 졌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단지 입으로 인정하기 싫을 뿐이고, 고맙다는 말을 안 했을 뿐이다.
이런 사정이 있었다는 걸 알고도 무례한 소리를 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요모에게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에겐 인간의 규칙이 있듯, 요족에게는 요족만의 규칙이 있다.
심지어 일부 규칙은 인간의 규칙보다도 훨씬 더 옹졸하고 유치하기까지 했다.
예를 들면 지금처럼 삼안요족의 미래와 지위가 걸린 엄청난 일의 경우가 그렇다.
삼안요족이라면 앞으로 누구든 진양의 공로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됐고, 이만 빨리 노래나 듣고 꺼지도록 해.”
진양은 어면안신곡을 연주하여 녀석이 붙잡힌 이후에 만들어진 모든 기억을 지웠다.
그리고 마수의 힘으로 녀석을 봉인했다.
지금 당장 놓아줄 게 아니라 신조로 돌아가고 나서 놓아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녀석이 삼안요모의 가장 강력한 화신인지, 아니면 다른 존재인지는 더 이상 묻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궁금한 건 납치된 이후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했는지였다.
남은 시간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었고 날카로운 칼날이 진양의 목을 노리며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해안에서 나온 진양은 매우 평온한 모습이었다.
묵양은 일 처리가 썩 시원치는 않은 녀석이긴 하지만, 그래도 시킨 일이나 누군가와 싸우라는 일 하나는 훌륭하게 해내는 녀석이다.
“별일 없었지?”
“큰일은 없었고 요족 하나가 정탐하러 왔길래 죽였어. 그리고 몇몇 대머리 인간들이 몰래 우리를 지켜보다가 도망가더군. 벌써 몇 번이나 마주치긴 했는데 중간에 대놓고 다가온 녀석 하나 빼고는 별다른 마찰은 없었지.”
“대머리라…….”
진양은 고개를 돌려 북쪽을 바라보았다.
대머리라고 한다면 영야의 땅에 있는 율종밖에 없을 것이다.
놈들이 가만히 있었다면 별말 안 했겠지만, 먼저 쓸데없는 일을 벌인 이상 결코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일전에 몽의가 율종의 대머리들과 한바탕 싸움을 치렀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몽의는 자세하게 얘기해 주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정말로 놈들과 만난다면 곱게 보내주진 않을 것이다.
이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진양도 잘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이 상대와 박이 터지도록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고도 가만히 있을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거기서 무슨 이유로 싸우고 있을지 생각만 하고 있을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당장 달려들어 흠씬 두들겨줘도 시원치 않을 판에 말이다.
다른 건 생각할 필요도 없다.
애초에 주먹이 센 사람이 곧 법이니 말이다.
만약 묵양이 없이 진양 혼자 돌아다녔더라면 율종의 대머리는 진즉 한 번쯤은 달려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묵양이 있었기에 그저 멀리서 훔쳐보는 게 전부였던 것이었다.
“지금 당장은 녀석들 상대할 시간 없어. 코앞까지 찾아와서 귀찮게 하는 게 아니면 무시하자고. 물론 그 정도로 가까이 다가와서 도발한다면 그냥 살려서 보내진 않겠지만 말이야.
그건 그렇고 신조의 상황은 좀 어때? 전장의 분위기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도 궁금하네.”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네가 납치되고 난 뒤 대제희가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이란 사람은 죄다 끌어모아 널 찾도록 했거든. 그러다가 요국 사람들과도 몇 번 대치했고, 대연 신조의 사람들과도 대치했었는데. 그 이후로는 나도 잘 모르겠네. 네 흔적을 따라 빙원으로 간 이후로는 나도 그들을 못 봤거든.”
“알았어. 일단 자세한 건 돌아가서 상황을 좀 보자고. 그리고 돌아가는 길은 대연 신조나 요국을 거치지 말고 대연과 요국 사이에 있는 완충지대로 가도록 해. 중간에 수련을 좀 해야하기도 하고, 만들어야 할 물건도 있어서 말이야. 웬만하면 안전한 곳으로 가자고.”
분부를 마친 진양은 다시 선실로 돌아왔다.
공간을 완전히 봉쇄한 진양은 그제서야 수확물들을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먼저 커다란 항아리에 든 응룡의 피.
이 정도면 진양을 용의 후예로 만들고도 남을 수준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바뀐 혈맥은 후세에 물려줄 수가 없었다.
‘뭐, 이건 그냥 놔뒀다가 재료로 쓰도록 하자. 아니면 나중에 다른 사람한테 선물로 줘도 되고.’
그다음으로는 응룡의 용맥.
이건 더 말할 것도 없는 절세의 보물이다.
일단 안에 남아있는 신수는 잘 보관해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기로 했다.
용맥은 그 자체로도 엄청난 보물이고, 또 무궁무진한 용도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어떠한 용도로 쓰기에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남겨두자. 어떻게 쓸지는 천천히 생각해 보자고.’
이어서 산귀묘에 있던 보물들을 하나씩 꺼내 연화시켰다.
그렇게 연화 작업이 모두 끝난 뒤.
진양은 놀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당시에는 응룡이 허세를 부리려고 그저 그런 물건들을 넘긴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니었다.
전부 호양보종보다 한 단계 이상 높은 수준의 물건이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들이 전부 제사에 쓰는 물건이라는 점이다.
진양은 귀신도 아니고, 신력을 가진 산귀도 아니다.
이런 물건을 진양이 어디에 쓴단 말인가?
기껏해야 장식품으로 쓰는 게 전부일 것이다.
다소 못마땅하긴 했으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응룡은 분명 진양에게 사실대로 설명해 주었었다.
이렇게 되면 응룡을 원망할 수도 없다.
연화를 모두 마친 뒤 진양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것들은 본래 엄청난 위력을 지닌 보물들이 아니다.
제사 용도로 사용된다는 점을 제외하면 높은 등급을 가졌다는 것이 전부다.
진안으로 사용하여 진을 펼친다면 다소 사치스럽긴 하겠지만 어쨌든 사용이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
눈앞에 쌓여있는 수십 개의 보물 중 가장 낮은 수준이 호양보종과 엇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보다 조금 더 좋은 수준의 보물을 사용하여 진을 펼친다면 분명 적지 않은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 백 정도의 힘을 낼 수 있는 보물이 쌓여있음에도 겨우 십밖에 발휘할 수 없다는 건 썩 유쾌하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