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735
735화 이러고도 죽으면 운명이지
하늘을 바라보며 장정의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여긴 사해황막이다. 아무리 강한 녀석들이라도 천만 리 너머에 있는 날 일격에 죽이진 못하겠지…….”
안전하다는 것을 재차 확인한 장정의는 그제서야 다시 세 발 솥을 챙겨 넣은 뒤 초청장을 작동시켰다.
그리고 일 다경 뒤.
모래 바다 아래에서 천 장 정도 되는 거대한 사충(沙蟲)이 바다를 뚫고 하늘로 솟구쳐올랐다.
무려 수천 장이나 튀어 오르는 그는 다시 모래 바닷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 * *
다시 유령 비경으로 돌아온 장정의는 가지고 온 초청장을 진양에게 돌려주었다.
“어떻습니까? 저 장정의, 한다면 하는 남자입니다! 하하하!”
“그래, 수고했어.”
진양은 초청장을 건네받으며 장정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근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 꼴이 된 거야?”
“확실히 위험한 곳이긴 하더군요. 모래 바다의 바닥 쪽이었는데 아마도 모래 바다의 가장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무시무시한 이수들도 있었습니다. 제가 상대할 수 있는 녀석들은 아니었죠. 그래도 녀석에게 벗어나는 것 정도야 어려울 건 없었습니다.”
장정의는 한층 더 콧대가 솟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진양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모습에 그냥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혹여나 그들이 찾아올지도 모르니 미리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 사형, 사실은 정황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예전에 유적에서 얻은 법보를 써버리고 말았거든요.”
“무슨 법보? 설마 또 훔쳐 온 거냐?”
“아, 아닙니다! 이번엔 정말이에요. 그냥 오랜 시간 버려져 있던 유적에서 주워온 거라고요. 실력이 안 되는 놈들만 다녀갔던 건지 아무도 발견을 못 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주워왔죠.”
“허허…….”
진양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네가 언제부터 버려진 유적에 관심을 가졌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
“진짜라니깐요. 북두성종 녀석의 조상들이 유적에 어떤 보물을 숨겨두었다는 얘기를 듣고 가 본 겁니다. 설마 싶긴 했는데 정말로 보물이 있을 줄은 저도 몰랐죠. 어쨌든 그렇게 얻게 된 겁니다.”
진양은 기가 막힌다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하여간 보물 냄새라면 기가 막히게 맡는 녀석이란 말이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보물을 사용했으니 아마 북두성종에서도 눈치를 챘을 겁니다.”
“그게 뭐? 설령 널 찾아온다 해도 모래 바다로 가겠지. 됐어. 이만 잊도록 해.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시간 없어.”
경매가 시작된 만큼 할 일이 태산이었기에 자잘한 것까지 신경 써 줄 틈은 없었다.
진양은 초청장을 챙겨 시괴와 함께 미리 지정해둔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사방이 노란 모래로 가득한 곳이었다.
환경의 변화를 느끼기라도 한 것일까?
시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훨씬 더 활발해졌다.
진양은 동술을 펼쳐 먼 곳을 살펴보았다.
이곳에서 수많은 요족들이 태어나게 된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이곳은 상당히 무덥고 또 뜨거운 모래가 잔뜩 깔려 있는 곳이다.
물이라곤 한 모금조차 찾아볼 수 없는 곳이었으나, 모래 바다 아래에는 강력한 음기가 마치 바다처럼 모여있었다.
음기는 오랜 시간 모래 바다에 의해 짓눌리며 쌓이게 되었고, 그 결과 지금과 같은 극단적인 환경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사해황막에선 그나마 사람의 흔적이라도 찾을 수 있었지만, 모래 바다에서는 살아있는 생명체라곤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래도 나쁠 건 없다.
이런 곳이야말로 시괴에게 더 적합할 테니까.
시괴가 이런 곳에서 태어났다면 지금쯤 진작 활동을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이어서 다른 곳으로도 눈길을 돌렸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시괴가 태어날 때 기운을 느끼고 요족들이나 고수들이 몰려들 염려도 크게 덜었다.
사해황막 전체를 통틀어 시괴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될 만한 존재는 윤전사뿐이다.
그러나 당장은 안심이다.
현재 그들은 경매에 온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골금신에 이어 현황지기까지 올라왔으니 윤전사의 시선을 끌기엔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다.
설령 경매가 끝난다고 해도 걱정할 건 없다.
중요한 시기인 만큼 겨우 시괴 하나 잡자고 강자를 모래 바다로 보내는 모험을 감수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대놓고 시골맥 사람들에게 윤전사를 넘길 생각이 아닌 이상 말이다.
어쨌든 안심은 됐다.
그러나 그때.
멀리서 거대한 모래 언덕이 폭발을 일으켰다.
이어서 모래 언덕을 뚫고 십여 장이나 되는 굵직한 괴수가 튀어나와 진양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진양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저건 또 뭐야?’
이어서 괴수의 머리 위로 거대한 흑옥 신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육중한 압력이 사방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이곳저곳 솟아있던 모래 언덕은 강렬한 기운에 의해 평평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흑옥 신문이 빠른 속도로 내려와 괴수의 머리를 강타했다.
그러나 모래 바다는 평온했다.
물결조차 일어나지 않았으며 부드러운 모래는 마치 단단한 바위가 된 것처럼 평평함을 유지했다.
괴수의 머리는 흑옥 신문과 단단해진 모래에 의해 완전히 짓이겨져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놈은 여전히 꿈틀거리며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다.
그때, 흑옥 신문에 새겨진 검은 응룡 조각상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괴수를 노려보았다.
순간 괴수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이어서 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기운은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흑옥 신문에 의해 흡수되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녀석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진양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모든 과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괴수를 흡수하며 흑옥 신문은 한층 더 강해졌으나 그것조차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얼굴이었다.
단지 응룡 조각상이 가볍게 괴수를 제압했다는 사실은 다소 흥미로웠다.
응룡 조각상은 진짜 응룡과는 큰 접점이 없는 존재다.
녀석이 응룡의 형상을 띄고 있는 건 그저 응룡의 힘을 흡수하여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괴수가 응룡 조각상에게 꼼짝도 못 하고 당했다는 건 곧 녀석이 용족과 어느 정도 접점이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용의 후예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놈은 한때 진룡에게 빌붙어 살아갔던 어느 종족이라는 뜻이 된다.
흑옥 신문을 다시 회수한 진양은 모래 바다를 유심히 살폈다.
방금 전 나타났던 괴수와 비슷한 녀석이 상당히 많이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방금 전 일어났던 일로 인해 전부 멀리 도망가버렸다.
‘뭐, 이로써 방해꾼들은 모두 사라졌군.’
진양은 빠른 속도로 모래 바다 상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난폭하고 혼란스러운 영기들이 느껴졌다.
사해에서도 느껴본 적이 있는 상당히 익숙한 기운이었다.
그렇게 잠깐의 비행 끝에 마침내 적절한 장소를 찾아낼 수 있었다.
진양은 지기석부(地氣石膚)를 발동한 뒤 모래 바다의 바닥으로 향했다.
모래 바다 아래 삼천 장 정도 되는 곳.
불타는 듯 뜨거운 기운을 내뿜고 있는 모래 아래로 뼈까지 얼어붙게 만들 듯한 차가운 검은 모래가 모여있었다.
뜨거운 기운과 차가운 기운이 교차하며 한층 더 강력한 압박감이 느껴졌고, 금방이라도 진양의 방어를 뚫을 듯한 기세였다.
기혈을 끌어올려 주위의 기운을 다스리고 나니 압박감은 한층 줄어들었다.
적당히 압박감에 적응한 뒤 진양은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갔다.
몇 장 더 내려가지 않아 뜨거운 모래는 전부 사라지고 차가운 음기로 이루어진 모래가 주위를 가득 채웠다.
검은 모래는 마치 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뜨거운 모래와 끊임없이 섞이고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이곳에 있는 음기는 오랜 시간 쌓이고 쌓인 압력에 의해 질적인 변화를 일으킨 듯했다.
진양은 기혈을 끌어모아 황천비전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황천비전을 수련하기엔 황천마종의 음천보다 훨씬 더 적절한 곳이었다.
그렇게 검은 모래로 이루어진 바다 바닥에 도달한 진양은 주위를 살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위로 이루어진 천연 동굴을 발견했다.
진양은 먼저 진법을 펼쳐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다음 방어 진법, 경계 진법 등 여러 방어형 진법을 펼쳤고, 일련의 작업을 마치고 나서야 시괴가 누워있는 관을 꺼내 삼 장 정도 크기밖에 되지 않는 동굴에 내려놓았다.
외부의 음기와 땅의 기운이 모여들며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검은 강을 이루었고, 곧바로 시괴의 체내로 흘러 들어갔다.
시괴에게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점점 더 활발해졌고, 이성의 파동도 점점 더 커져 갔다.
녀석이 이곳의 환경에 상당히 만족해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뿐만 아니라 진양에게도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미 했던 얘기를 또다시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앞으로 여기서 잘 지내도록 해. 초청장은 여기 남겨두고 갈 테니까 혹여나 난처한 일이 생기거나 대적할 수 없는 강적이 나타나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그 해에 유령 비경이 열릴 때까지 버티도록 해.
넌 시괴야. 내 곁에 두면 네가 직접 겪어봐야 할 일도 겪지 못하게 될 거다. 그렇게 되면 넌 끝장이고. 시작은 내가 잘 끊어줬으니까 앞으로는 네가 스스로 잘 해결해 보도록 해. 그리고 웬만해선 실력 갖추기 전엔 쓸데없이 돌아다니지 말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넌 이족 생명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돼. 눈치 없이 굴다간 얼마 못 가 죽게 될 테니까. 그런 건 알아서 잘 조절하도록 해.”
말을 마친 진양을 곧바로 돌아섰다.
그러나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진 않았다.
혹여나 시괴가 죽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 되었던 것이었다.
게다가 모래 바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위험한 곳이다.
시괴가 깨어나 활동을 시작한다고 해도 그를 위협할 만한 존재들이 사방에 널려있다.
한참을 고민하던 진양은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떠한 이족들도 시괴와 같은 완벽한 시작점에서 출발한 이들은 없을 것이다.
이러고도 죽게 된다면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수밖에.
* * *
다시 유령 비경으로 돌아온 진양은 쉴 틈이 없었다.
이번에는 유령호 선장실로 향했다.
선장실은 바뀐 거 하나 없이 진양이 떠날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진양이 자리를 비웠을 땐 가끔 온우백이 한 번씩 들르는 게 전부였고, 그 외의 사람은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들어올 수가 없었다.
심지어 유령호의 관가인 소장환조차도 이곳에는 발을 들일 수가 없었다.
진양은 한쪽 구석에 잘 모셔두었던 상자를 꺼내왔다.
상자 안에는 기이 덩굴이 들어있었다.
마땅히 보관할 곳이 없어서 이곳에 보관해둔 것이다.
당시엔 검둥이를 이제 막 속여서 해안 속에 봉인해 둔 상태였다.
잔뜩 화가 난 검둥이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던 만큼 이런 귀한 물건을 해안에 보관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해안을 창고로 사용할 생각조차도 못 했던 시기다.
그 이후로는 여러 가지 사건이 있었기에 기이 덩굴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나마 장정의에게 기이과를 주기로 약속했기에 생각이 난 것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아예 가지러 오지도 않았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