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789
789화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 건가
태자가 죽었는데도 본존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곧 모든 재앙의 발단이 될 것이다.
하지만 영제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아니, 나타날 수가 없다.
태자는 이 사실을 모른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온 세상을 통틀어 진양과 가희, 그리고 몽의가 유일하다.
아마 최소 수십 년 내에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태자는 평온한 얼굴로 차분하게 포단에 무릎을 꿇은 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했다.
원통하지도 않았고, 두렵지도 않았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죽음의 기운은 어느새 평화의 기운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죽음의 기운이 형성되는 속도는 이전보다 훨씬 더 느려졌다.
금방이라도 바람에 꺼질 것 같던 생명의 불씨는 조용히 타올랐다.
영제는 계속해서 자리를 지키며 태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태자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의 눈빛은 복잡한 심정으로 가득했다.
고개를 들어 여인의 초상화를 바라보니, 그 눈빛은 더욱 복잡해졌다.
그렇게 한참 초상화를 쳐다보던 영제는 한숨을 푹 내쉬곤,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 * *
진양의 저택.
진양은 눈을 감은 채 이제 막 입수한 정보들을 소화시키고 있었다.
짧은 한 줄이었지만 결코 가볍게 볼 내용이 아니었다.
한참 뒤.
정보 정리를 마친 진양이 돌연 듯 눈을 번쩍 떴다.
과연, 전조 녀석들은 똑똑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들의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들이 했던 모든 행동들은 단순히 간을 보기 위해 했던 행동이 아니다.
더 나아가 미래를 위한 계획을 향한 발걸음이었던 것이었다.
전조가 회자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태자는 이미 깊게 그들과 연관이 되어있던 게 분명하다.
현재 태자는 수명이 얼마 남아있지 않다.
그러므로 그들은 태자로 하여금 수명을 늘리도록 하는 것이 훌륭한 착수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니 이제는 태자가 언제 죽을지도 알게 되었다.
태자의 죽음은 곧 국상이다.
영제의 본존도 결국은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게 된다.
만약 영제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전조 세력이 바라는 대로 흘러가게 된다.
이후로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계획대로 진행하면 그만이다.
전조 세력이 무슨 짓을 하든 영제의 본존은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 것이다.
이 사실은 진양이 가장 똑똑히 알고 있다.
전조 세력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마침내 상황을 해결할 핵심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진양은 이런 것들은 일단 자신만 알고 있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조용히 현생에 집중하며 자신의 눈앞에 놓인 일부터 해결하는 게 먼저였다.
한편, 경매의 후속 처리는 지금까지도 진행 중이다.
만일의 하나라도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진양은 단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아무런 문제 없이 며칠 내에 모든 처리가 완료되었다.
진양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령 경매는 이미 진양에겐 매우 중요한 하나의 보루가 되어버렸다.
유령 경매가 쌓은 신용은 영석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
신용이 있어야 계속해서 경매를 이어나갈 수 있고, 또 덩치도 불릴 수가 있는 법.
영석 조금 손해 보는 것쯤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때문에, 수하들에게도 조금도 인색하게 굴지 않았다.
그저 시키는 대로 묵묵히 일만 해 주면 그만이었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거나 다른 마음을 품지만 않으면 그만이다.
이제 막 모든 일 처리가 끝나고.
잠시 한숨을 돌리고 있을 때.
가희가 찾아왔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대문 너머로 다가오는 모습으로 보아 기분이 결코 좋아 보이진 않았다.
진양은 아무 말 없이 찾아온 그녀에게 차를 대접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침묵을 유지한 채 찻잔만 비우고 있을 때.
먼저 입을 연 쪽은 가희였다.
“태자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궁에서도 이미 사후 처리를 위한 준비를 마쳤고요. 저도 얼마 전에는 태자를 만나고 왔습니다.”
“그렇군요.”
진양은 짧은 대답 외에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찻잔을 기울이는 가희의 표정은 여느 때보다 훨씬 복잡해 보였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어요. 마치 모든 집념과 울분에서 자유로워진 느낌이랄까. 일말의 후회조차 없이 덤덤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이었어요. 오히려 잘된 일이라는 느낌마저 받았을 정도였죠. 이해해요. 영제의 간섭에서 벗어나 일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스스로 내릴 수 있었던 결단이었을 테니까요.”
“그게 사실인가요?”
진양은 진심으로 놀랐다.
마치 장정의가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는 무덤을 도굴하지 않겠다고, 앞으로는 새사람이 되어 올바른 삶을 살겠다고 말했다는 걸 전해 들은 것처럼 말이다.
“놀란 건 저도 마찬가지이지만, 한편으로는 크게 놀랄 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태자의 몸에선 이미 짙은 죽음의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지만, 그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도 더욱 편안해 보였어요. 그토록 편안한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아요.
과거 아버지의 뜻에 따라 대영으로 오게 되었을 때, 태자는 이미 오랜 시간 동안 태자 자리를 지키고 있었죠. 영제가 황족이나 황자, 황손들에게는 일말의 관심조차 주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주로 태자와 자주 마주하게 되었었죠.
그때 만났던 태자는 뜻은 크지만 능력은 없고, 온갖 음모로 가득 찬 사람처럼 느껴졌었는데, 지금은 모든 집념을 내려놓고 덤덤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더군요. 유년의 일을 생각하니 기쁘긴커녕 오히려 마음 한구석이 막히는 기분이네요.
태자의 말이 맞아요. 만약 선택권이 있었다면 저 역시 지금의 신분을 선택하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어쩔 수 없었죠. 제겐 선택권이 없었으니까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진양이 평온한 얼굴로 이도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수도사들이 박 터지게 경쟁을 벌이는 건 결국 자유로운 선택의 기회를 위한 것 아닙니까?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싸워야죠. 제자리에 머문다면 결국 죽음뿐일 겁니다. 이건 모두가 같습니다. 결국 각자 자신의 목적을 위해 싸우는 거죠. 그저 자신의 약함만을 탓한다면 결국은 누군가에게 속박된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되는 겁니다.”
“맞는 말이죠. 단지 씁쓸한 건 어쩔 수가 없네요. 알다시피 전 아주 어렸을 때부터 궁에서 자랐죠. 삭막한 궁에서 자라며 유일하게 느꼈던 따뜻함은 연회 자리에서 태자가 제게 계화떡을 나눠주었을 때거든요. 그런 그가 오늘날 큰 깨달음을 얻고 자신을 얽매고 있던 족쇄로부터 자유로워졌으니 오히려 기뻐해야 하는데…….”
가희는 씁쓸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금세 원래 표정으로 돌아오며 진양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 건가요?”
“저요?”
진양은 잠시 고민을 한 뒤 입을 열었다.
“크게 고민할 것 없이 절 위협하는 사람을 한 방에 눌러 죽일 수 있는 그런 삶을 위해서 싸우고 있죠.”
피식-
너무나도 진양다운 대답이라 그런 걸까?
가희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진양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혹시 제가 직접 태자를 만나볼 수는 없을까요?”
가희는 다소 이상한 눈으로 진양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유는 묻지 않고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입궁할 때 저와 함께 가요. 태자를 만날 수 있게 해드릴게요.”
비록 태자는 현재 연금 상태이긴 했지만, 궁 내에서는 국상을 위한 사전 준비가 한창이었다.
때문에, 누군가 태자를 만나고 싶어 한다면 모두들 조용히 눈을 감아주었다.
그러나 태자가 곧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 귀족들 사이에 퍼졌음에도 불구하고 태자를 따르던 사람들 중 태자를 찾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조왕이나 주왕 등 황실의 사람들은 동궁을 방문하긴 했으나, 그저 예의상 찾은 것에 불과했다.
입으로는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네는 척하고 있었지만 뒤로는 웃고 있었던 것이었다.
평소 태자와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던 사람에 속하던 가희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태자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진양은 고맙다는 인사 대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희의 말을 듣고 나니 태자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직접 만나야겠다는 마음이 든 것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오히려 태자의 죽음에 마냥 기뻐했을지도 모른다.
진양과 태자 사이에는 은원이 존재한다.
비록 태자는 모르겠지만 진양이 판 함정에 의해 태자 수하에 있던 대장군이 한 명 죽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자는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그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을 벌이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샀다는 사실을 말이다.
진양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가득했다.
그러나 어떻게 할지는 일단 태자를 만나고 나서 결정하기로 했다.
만약 정말로 태자가 많은 것을 깨닫고 마지막으로 깨끗한 사람으로 돌아가 최후를 맞이하기로 결정한 것이라면.
그가 편안하게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성불시켜줄 생각이었다.
만약 그렇게 해 주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이 세상을 떠날 수가 없다.
그의 몸에는 신조의 기운이 서려 있다.
거기에 경지도 꽤 높고 그동안 많은 보물까지 삼켰으니, 생기는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이성은 멀쩡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간이 흘러 이성이 희미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죽어서도 편안히 눈을 감지 못한다는 건 매우 끔찍한 일이다.
무엇보다 사망한 뒤에는 더 이상 동궁에 머물지도 못 할 것이다.
차갑고 눅눅한 무덤에 누워 그저 자신에게 드리워진 빛이 거둬질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태자에게 원한을 졌다고 해도 죽은 사람에게까지 찾아가 그 빚을 갚으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를 완전한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건 오히려 그를 해탈시켜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어쩌면 태자는 죽는 순간마저도 결코 편안하게 죽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가 정말로 죽을 생각이라면 이를 이용하여 태자와 거래를 하기로 했다.
그가 편안하게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진양은 반대로 쉽게 얻을 수 없는 은밀한 정보를 손에 넣는 것이다.
* * *
이틀 뒤.
진양은 이도에 있는 가희의 저택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희를 만나 함께 궁으로 향했다.
궁 내에는 삼엄한 경비가 펼쳐지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고수들도 꽤 많았지만, 그보다는 숨어있는 강자들이 훨씬 더 많았다.
이도 황궁은 이도 내에서도 영기가 가장 짙은 곳이고, 또 신조의 힘도 가장 강력하게 미치는 곳이다.
이곳을 지키는 자들은 모두 자신의 실력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거기에 사방에 깔려 있는 금제는 대영 신조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강력하다고도 할 수 있다.
때문에, 무모하게 궁에 침입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괜히 발을 들였다간 스스로 목을 내놓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